“땀 좀 닦아 줘요.”
근건 몇 가닥 꿰매고 신경을 뒤집는 동안 능연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 말에 왕가가 냉큼 거즈로 그의 땀을 깨끗이 닦아냈다. 아까 십여 분 동안 능연은 크게 움직이지도 않았지만, 활동량은 적지 않았다. 무협 소설식 표현을 빌려 보자면 온몸의 수많은 작은 근육들이 힘을 쓰고 있다고 할까.
특히 능연이 봉합하는 자세는 기마 자세만큼은 아니더라도 본질은 비슷했다. 루페를 낀 탓에 동작이 조금만 커도 봉합 구역이 시야를 벗어났다. 하여 기본적으로 책상에 엎드린 자세를 오래 유지해야 했는데, 거기다 지극히 흥분한 상태로 대뇌가 유지되다 보니 땀이 계속해서 흐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능연이 땀을 싫어해서 그런 명령을 내린 것이기도 했다. 그는 운동 후에 철철 흐르는 땀을 매우 좋아했다. 운동할 때는 머리카락과 볼을 타고 땀이 흘러야지, 그렇지 않으면 어딘가 초조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수술은 달랐다.
수술실은 항온이 유지되어 등을 타고 땀이 흐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기껏해야 땀구멍에 아주 약간의 땀이 스며 나올 뿐이었다. 그런데 가장 짜증 나게 하는 건, 이마 위쪽에 흐르는 땀이었다. 본인이 괴로울 뿐만 아니라, 루페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문제점도 있었다.
다른 의사였다면, 능연처럼 하고 싶은 대로 하지도 못한다. 집도의 아래 의사들은 간호사 누님들이 땀을 닦아준 경험도 없었을 것이고, 땀이 흐르면 구석으로 가 알아서 닦고 와야 한다. 간호사 누님들이 기분이 좋으면 한 번씩 닦아 줄 것이고, 그것도 당연한 일이 아닌 큰 복이며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상황은 달라진다.
능연은 어릴 때부터 인간관계에 대해 크게 고민한 적이 없었다. 땀을 닦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말만 꺼내면 간호사 누님이 알아서 닦아 줄 것이다. 그로 인해 수술은 더 순조로울 것이고, 그의 기분이 좋아질 것이고, 그러면 간호사 누님들의 기분은 더 좋아지고, 일은 더 순조롭게 진행된다.
“오늘은 상황이 그렇게 순조롭지 않은데요.”
능연의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소철이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왜 그래?”
핀셋을 잡고 있던 연문빈이 크게 하품하며 물었고, 능연도 하품이 옮은 듯 따라 하품했다. 그 모습에 왕가를 비롯한 간호사들이 눈을 번뜩이면서 서로를 마주 봤다. 이렇게 귀여운 능 선생의 모습이라니, 너스 스테이션으로 돌아가 자랑할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한이었다.
소철은 긴장한 모습으로 능연을 바라봤다.
수술대에 누워 있는 건 다름 아닌 번 주임의 매형이었고, 그 매형은 번 주임이 친히 자신을 지명하여 부탁한 사람이었다.
소철은 갑자기 왜 사전에 곽 주임을 찾아가지 않았는지 후회가 됐다. 곽 주임을 통해서 부탁했더라면, 능연이 감히 정기의 수술을 네 번째로 잡았을까.
앞에 수술이 빨리 끝났다고 해도, 지금쯤이면 진이 다 빠졌을 것이다. 보통 일반적인 의사가 하루에 수술 10건을 한다면 분명 지쳐 떨어질 것이다. 아니, 지쳐 떨어지는 건 둘째 치고 10건을 할 수도 없겠지.
정기의 수술을 하기 전에 집중할 수 있도록 능연을 푹 쉬게 해야 했다. 소철은 후회가 가득한 마음으로 지금 당장 능연에게 레드불 두 캔을 먹일까 고민했다.
“더 크게 당겨요.”
능연의 명령이 들리자 소철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빼고 바라봤다. 핀셋을 잡은 연문빈의 동작이 더욱 커졌다.
“석션. 잘 안 보여요.”
능연이 미간을 찡그리자, 연문빈은 당장 석션기를 집어 들고 피를 빨아들였다.
“거즈로 눌러 봐요. 아직 피나요?”
미간을 찡그린 능연은 질문하며 바로 손을 뻗어 안쪽을 더듬었다. 아마 출혈량을 체크하는 것이리라.
“미세 혈관이 터진 모양이네. 힘을 균일하게 써 봐요. 전기 메스.”
“어.”
그 과정이 너무 익숙한 소철은 속으로 큰일 났다고 외쳤다. 집도의가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뜻일까?
수술이 순조롭지 않다는 뜻이다.
수술은 운전이나 마찬가지라, 순조롭다면 운전하는 사람은 노래를 흥얼거리지 욕을 할 리가 없다. 수술이 순조롭지 않은 건 차가 막히는 상황이나 마찬가지라, 10분은 참을 수 있고, 30분까지는 어떻게든 참는다고 해도 계속해서 차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면? 거기다 힘겹게 조금 움직였더니 끼어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때 운전하는 사람 심정이 어떻겠나? 집도의의 심정도 바로 그런 것이다.
의사가 수술대 앞에서 화를 내는 무시무시함은 운전자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능연의 상태를 본 소철은 이제 비바람이 휘몰아칠 것을 예감했다. 그는 애써 침착한 척하는 연문빈을 동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수술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수술실에서 퍼스트, 세컨드 어시스턴트는 집도의의 조수지만, 순조롭지 않은 때는 모두 집도의의 감정 쓰레기통이었다. 그리고 조수보다 감정 쓰레기통의 역할이 훨씬 더 중요했다.
미친 듯이 폭주하는 운전자의 감압 벨브처럼 조수는 수술실 안전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구성원이다. 소철은 연문빈이 충실히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해내길 바랄 뿐이었다.
수술대 위의 환자는 어느새 신경 문합 단계까지 이르렀다. 소철은 수부외과 주치의였지만, 신경 문합도 주로 큰 부분을 담당했고, 예후도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다. 수부의 작은 신경은 더욱 자신 없는 부위였다.
“손에 좀 안 익네. 더 얇은 실로 줘요.”
능연이 니들홀더를 던지자 왕가가 즉시 알았다고 대답했다.
“석션.”
“네.”
연문빈도 더할 나위 없이 착실하게 굴었다.
“잠시만요.”
결국 한숨을 내쉰 능연이 수술을 멈췄다.
“점심 때 족발 때문에······.”
“족발에 문제 있을 리가 없어!”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연문빈이 허리를 곧추세우고 벌떡 일어났다. 그의 힘찬 목소리가 수술실 안을 맴돌자 능연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봤다.
연문빈은 습관적으로 다리가 풀렸다가 금세 다시 꼿꼿하게 섰다. 그러고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능연을 바라봤다.
“내가 오늘 새벽에 동호 시장에 가서 직접 고른 족발이야. 사장님이랑도 친하다고. 한 번에 서른 개씩 사는데 내가 일일이 다 검사하면서 신선한 앞다리만 골랐어. 졸일 때도 몇 번씩 테스트했고. 국물도 냉장고에서 신경 써서 보관했어. 아무리 늦어도 사흘에 한 번은 다시 끓여서 식힌다고. 아무리 힘들고 고단해도 안에 찌꺼기를 깨끗하게 거르고······.”
“저기······.”
얼굴이 시뻘게진 연문빈의 모습에 무슨 사고라도 칠까 봐 소철이 다급하게 나섰다.
“저기 그러지 말고, 이야기를 좀 나누면서 하는 게 어때? 다들 진정 좀 하라고.”
그 말에 연문빈이 씩씩거리며 숨을 골랐고 능연은 아연한 듯 입을 열었다.
“아니, 내 말은, 점심때 족발을 너무 적게 먹어서 저혈당이 온 거 아닌가 그 말이었는데······.”
연문빈은 순간 멍해져서 거칠었던 숨소리가 바로 잦아들었다. 쫑긋 세운 귀까지 축 처졌다.
“곽 주임님이 족발을 손님들한테 대접하신다길래, 흥분해서 너무 많이 드렸나 봐.”
“포도당 좀 주세요.”
능연은 간호사에게 마스크를 내려 달라고 부탁한 다음 간호사가 내민 포도당을 쪽쪽 빨면서 수술을 계속했다. 정신을 다시 집중하자 능연의 동작은 더욱 안정되고 신속해졌다.
소철도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지켜봤지만 보면 볼수록 머리가 어질거렸다.
신경속막 문합은 원래 국소부인 속막을 겨냥한 것이라 현미경 아래에서는 몰라도 맨눈으론 도저히 구분할 수 없었다. 그러나 수부외과 밥을 10년이나 먹은 주치의인 소철은 능연의 모습만 봐도 그가 얼마나 숙련됐는지 알 수 있었다.
젊디젊은 초짜 외과의가 신경속막을 저토록 숙달되게 꿰맨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소철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소철은 초반에 근건을 다루던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생각하면 할수록 두려워졌다.
‘번 주임이 정말 매형 생각에 능연을 찾은 것일까?’
소철은 저도 모르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번 주임은 매형 때문에 체면 불고하고 부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수부외과 의사에게 부탁해도 충분한 일이었다. 운화 병원 수부외과는 엘리트과라고 불릴 정도니 고수들도 당연히 많았다. 탕 봉합법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실습생의 탕 법과 주임 의사의 Kessler 법, 혹은 부주임 더블 TSUGE법 중 무엇을 선택해야 마땅할까.
정 안 되면 번 주임이 아는 탕 고수를 대타로 요청해도 충분했다. 북경에서 동학해를 불러온대도 본인 매형이라는 명분에다가 돈까지 준다면 몇 시간 안에 직접 나타날 것이다.
동학해는 교과서에 나오는 사람으로, 그의 제자들은 대부분 능연의 조상급 실력자였다.
그런데도 번 주임님은······.
능연의 동작을 바라보면서, 소철은 그 이상 생각을 잇지 못했다.
소철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신경 문합을 마친 능연이 자리를 뜰 준비했고 그는 그제야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능 선생. 직접 봉합해주면 안 되겠나? 손으로 먹고사는 사람이라, 흉도 중요하거든.”
얼굴을 세게 두드려 정신을 차린 소철이 체면도 고려치 않고 그렇게 부탁하자 능연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직접 니들홀더를 붙잡았다. 그러고는 연문빈의 도움도 받지 않고 날렵하게 손을 움직였다.
현미경 아래에서 하는 작업에 익숙해지자 마무리 봉합은 더욱 수월했고 능연은 옛날에 데브리망을 하던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어서 자연스럽게 큰 흉터가 좋은지, 작은 흉터가 좋은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