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화 시, 백세탄 요양원.
백세탄은 운화 시 남부 교외에 백세산을 등지고 바다를 마주하는 위치에 있다. 산 정상에서 작은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시냇물이 요양원을 지나고, 요양원 앞에는 파도를 가로막는 방파제가 모래사장을 보호했다,
모래사장의 모래는 외부에서 운반해 온 것이었다. 예전엔 북재하의 모래를 썼는데, 돈이 생긴 다음엔 필리핀에서 모래를 수입했고 나중엔 마카오에서 사 왔다.
가늘고 영롱한 황금빛 모래가 백세탄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가득 깔려서 1km가 넘는 모래사장을 이루었다. 썬배드, 파라솔이 놓인 모래사장은 휴양지의 느긋함이 물씬 느껴졌다.
요양원에 있는 나이든 간부들은 모래사장의 퀄리티를 매우 중시해서, 모래양이 부족하거나 청소가 깨끗이 되어 있지 않으면 바로 사무실로 달려가 사무직원에게 크게 호통쳤다. 그래서 모래사장은 건강 보도, 언덕 위 찻집, 화원, 게임룸, 정원 연못, 의무실, 식당 등과 나란히 요양원이 중시하는 8개 항목 안에 포함되었다.
사실 간부들은 거의 모래사장에 들어가지 않았다. 백세탄 요양원에 들어갈 자격이 되려면 최소 55세는 되어야 하고, 과학원 회원이어야 했다. 일 년에 열흘에서 보름 얼굴을 내미는 그것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은 간부는 바람만 살짝 불어도 다리, 허리가 쑤신다고 난리인데, 모래사장에 누워 바닷바람을 쐴 리가 있나.
하지만 요양원에 오는 젊은 사람은 백세탄 모래사장을 좋아했다. 한 번 올 때마다 열흘에서 보름 묵는 사람도 있고 매일 노인 곁에 있으면서 모래사장을 즐기며 SNS도 올리고 편안하게 지냈다. 주말엔 자녀를 데리고 오는 사람도 있어서 며칠 동안이지만 모래사장이 떠들썩해졌다.
아이들의 마음을 끌기 위해서 요양원은 옛 부두도 개조하고 낚싯배도 3대 구매했다. 그렇게 낚싯배를 몰고 나가 낚시도 하고 모래사장에서 구워 먹게 해서 요양원의 매력을 높였다.
위생 보건 위원회에서 조직한 건강 검진팀은 목요일에 백세탄 요양원에 찾아가는데 그때도 아이 대여섯 명은 요양원에서 뛰어놀고 스무 명도 넘는 어른이 그 주위를 에워싸고 껄껄 웃곤 했다.
건강 검진팀에 모습을 드러낸 주 선생은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익숙하게 능연에게 그곳을 소개했다.
“여기가 정원이고 주변이 다 방이야. 사방이 뚫린 곳이라, 혹시 길을 잃으면 여기로 오는 표지판을 따라가면 길을 찾을 수 있어.”
“네네.”
“할 일 없으면 여기 오지 말고. 괜히 윗분들한테 잡혀서 질문 공세 당한다. 쉬고 싶을 땐 모래사장에 가거나 산에 가도 좋고. 백세탄 뒤에 그 무슨 산이더라, 별로 안 유명한 산인데 계단이 잘 되어 있어. 길 따라 올라가면서 땀 흘리면 기분도 좋아질 거야.”
주 선생은 제집 소개하듯 자세히 설명하면서 귀한 경험담을 아낌없이 늘어놓았다. 능연은 같이 온 내과 의사들과 외모가 평범해서 지금까지도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 같은 과 레지던트를 바라보면서 저도 모르게 머리를 긁적였다.
“의사가 이렇게 많으니까 건강 검진은 하루면 충분하지 않나요? 며칠씩이나 묵을 필요 있어요?”
“요양원 사람들이 그러길 바라니까. 그냥 평범한 건강 검진이 아니거든. 나이든 간부들을 위해서 의료 진단을 하길 바란다고. 입원을 해야 하는지, 약물을 바꿔야 하는지, 아니면 계속 조용히 요양해야 하는지, 뭐 그런 방안을 내야 해. 하다 보면 질문을 얼마나 많이 받는 줄 알아? 우리가 그 질문을 해결해 주면 요양원이 좀 수월해지지. 그리고 문제 있는 환자를 사전에 발견해서 병원으로 보내는 것도 요양원 부담을 줄여 주게 되고.”
능연은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는 모든 게 시간 낭비 같아서 주 선생의 설명을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
“병원도 좋아하고.”
한 레지던트가 껄껄 웃으며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
“내가 처음에 왔을 땐 나이든 간부들이 간부 병실에 줄을 서고 다 찼다고 하면 화를 냈어.”
“백세탄은 우리 운화에서 제일 큰 요양원이야. 여기서 건강 검진을 제대로 하면 병원 부담도 많이 줄어.”
주 선생은 파티에 참석한 듯 신나는 모습으로 심호흡하며 신선한 공기를 마셨다.
“자, 그럼 이제······.”
“이제 쉬어야지. 신체검사는 보통 아침에 하는데 벌써 10시 다 되어가거든. 좀 쉬다가 점심 먹자. 백세탄 식당에 나오는 채소도 다 여기서 심은 거야. 농약을 안 쓰고 거름을 써서 건강에 좋지. 그래서 올 때마다 아주 많이 먹게 돼.“
“거름을 사 오는 건 아니겠죠?”
“그럴 리가.”
“거름을 요양원에서 직접 만든다고요? 이곳의 장내 세균 평균 연령이 높은 편인데, 직접 만든 거름이 영향을 주지 않을지 모르겠네요.”
“발효된 거라 별 차이 없겠지. 아니, 왜 너랑 이런 토론을 하는 거냐.”
그 질문에 주 선생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
능연은 정원을 가로질러 로비로 들어가 카드키를 받는 무리에 줄을 섰다.
백세탄 요양원은 외부 사람도 받았다. 관련된 부처라던가 오래된 간부 가족 등에게는 다른 가격을 받으며 운영했고, 운화 병원 건강 검진팀에겐 3일 숙박 우대를 주었다.
숙박 기준도 등급으로 나눠서, 주임급 의사는 스위트룸, 부주임은 스탠다드룸, 주치의와 그 밑은 두 사람이 한 방을 썼다.
주말에 이틀 연달아 쉬기 힘든 의사에게 건강 검진 작업은 그야말로 요양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와 비슷한 것은 대형 제약 회사가 여는 회의 정도뿐이었다.
“아직 실습생이세요?”
로비에 앉아 카드키를 나눠주는 일을 하는 직원은 나이는 젊어도 여러 병원 의사를 만났었다. 그러니 능연의 나이와 경력에 의아함을 품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능연이 간단하게 ‘네’라고만 대답하자 젊은 사무원은 바로 그를 믿었다.
무슨 계략이 있겠어!
실습생도 우수할 수 있지!
운화 병원에서 실습생을 하는 것만 봐도 대단한 사람일 거야!
삼수하며 2년 동안 공무원 고시를 복습하고 어렵게 운화시 노간부처(퇴직한 간부들이 일하는 곳)에 붙은 명문대학 생물학 전공 아가씨는 능연을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의사분이 홀수로 오셔서 한 사람이 비네요. 혼자 방 쓰셔도 되겠죠?”
“되죠.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능연의 웃음에 아가씨도 달콤하게 미소 지었다.
‘교양 있는 의사 선생님이네. 매너도 있고. 잘생겼어.’
다음 날 아침 일찍, 정식으로 건강 검진을 시작했다.
의대 시절 신체검사와 달리 운화 병원에서 제공한 건강 검진은 예약제였다. 게다가 협화의 형식을 따서, 환자가 아닌 의사가 움직이는 형식으로 최대한 환자의 편리를 추구했다.
능연과는 그동안 다소 접촉이 적었던 내과 의사들이 신체검사를 주도했다. 내과 의사 몇 명이 환자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심하게 환자를 살폈다.
잠시 지켜보던 능연은 현장에 있는 내과 의사 중 적어도 네 명이 자신의 체격 검사 실력을 넘는다고 확신했다.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체격 검사는 원래 내과 의사의 기본 진료였다. 능연이 부지런히 연습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설사 열심히 연습했다고 해도 내과 의사보다 더 부지런히 체격 검사를 할 수는 없었다.
“능연, 서포트 준비해.”
주 선생이 갑자기 앞쪽을 가리키면서 지시했다. 어린아이 두 명이 엄마 품에서 벗어나 ‘할아버지’를 외치며 앞으로 뛰쳐나왔다.
“죄송해요. 아이들이 오겠다고 해서.”
엄마는 해탈한 듯 웃으면서 사과했다.
“어린이들, 앞에 가면 안 돼요.”
“거짓말!”
레지던트 한 명이 재빨리 앞으로 달려나갔지만, 그중 아이 하나가 레지던트의 팔을 뿌리치고 계속 앞으로 달렸다. 레지던트가 그중 한 아이를 잡자, 이번에는 다른 아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주 선생의 지시에 능연이 앞으로 나갔다. 아이를 돌본 적 없는 그는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검진 구역 앞에 서 있었다. 그 모습에 신나게 뛰어다니던 남자아이가 갑자기 멈췄다. 아이는 조금 두려운 듯 커다란 능연을 올려다봤다.
“아저씨도 의사예요?”
능연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할아버지한테 갈래요.”
“검사 끝나면 가도 돼.”
“아.”
능연의 말에 아이는 착하게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잠시 후, 다른 사람들의 포위를 뚫은 다른 아이도 능연의 맞은편에 섰다.
아침 햇살 아래 능연은 허리를 곧추세우고 검진 구역 라인 안에 서 있었고, 한 무리의 아이들은 라인 밖에서 가슴을 펴고 배를 내밀면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