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3급 보건 대상의 건강 검진이 시작되었다.
3급 보건 대상은 인원이 많았다. 요양원에 있는 대부분 입원자가 예순에서 여든 사이에 있는 3급 보건 대상이었다. 그들은 아직 2~3시간 여행길은 견디는 편이라 매년 다른 요양원을 골라 6개월 정도 제공되는 무료 한도를 사용하며 즐겁게 보냈다.
건강 검진도 그들이 깊은 관심을 보이는 항목이었다.
은퇴한 처급 간부는 예순 넘는 나이가 되면 부릴 수 있는 특권도 별로 없어진다. 초중학교 특급 교사, 대학교수, 기업의 고급 기술 인원 등은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도 병원에 갈 때 다른 사람과 똑같이 번호표를 받고 줄을 서야 하며, 기껏해야 입원한 다음 대우가 조금 좋고, 약값이 조금 싸다는 것뿐이었다.
그들에게 매년 있는 신체검사와 건강 검진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많은 이가 작은 노트를 준비해 즐비하게 적힌 질문을 의사에게 했고, 자녀 문제까지 묻는 사람도 있었다. 건강 검진에 참여한 의사들은 친절하게 대답해 줬다.
운화 병원은 거의 모든 진료과에서 인원을 차출해서 한 번에 백 명에 가까운 의사와 간호사를 보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검진하는 데 사흘 연속하기까지 하니, 일반 진료 때처럼 급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능연은 손바닥을 비비며 주 선생의 뒤를 따랐다. 응급 의학과는 이번에 비교적 낮은 등급의 의사를 차출했다. 실습생 하나, 레지던트 하나, 주치의 하나. 환자의 눈엔 믿을 만한 주치의고 아니고는 나중 문제라 주 선생은 자연스럽게 긴 테이블 맨 끝자리에 배정받았다.
사람 좋은 주 선생은 당연히 개의치 않았고, 사실 본인도 앞자리를 계속 거절하며 자리 위치를 중시하는 주치의들을 앞으로 보냈다.
앞에 놓인 이름표를 손가락으로 바로 세운 주 선생은 그제야 흡족한 듯 차를 홀짝였다. 작은 걸상을 들고 옆에 앉은 능연은 할 말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밖에서 아이들에게 포위당한 이름 모를 동료의 희생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이었다.
능연은 그런 생각을 하며 등 뒤에서 주 선생의 목덜미를 노려봤다.
주 선생은 의사들의 정상 체형으로,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고 헬스로 몸을 키우지도 않은 몸매였다. 몸에 근육은 대부분 바쁜 일상으로 다져진 것이고 그와 더불어 각종 직업병을 앓고 있었다.
예를 들어 경추, X-ray를 찍어 본다면 분명 정상 각도가 아닐 것이며 골 증식 현상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퀘켄스테스 시험(목정맥을 압박했을 때 두개내압의 변화를 재는 시험)도 아마 통과하지 못하리라.
노인 하나가 다가가 주 선생의 이름표를 보고는 몸을 돌렸다. 이유도 없이 응급 의학과 의사에게 검사받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요양원에서 무슨 무슨 전문의라는 이름표를 주려고 했지만, 주 선생은 이를 거절했다. 쓸데없이 일을 늘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느긋하게 차를 홀짝이던 주 선생은 문득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무협 소설에서 누군가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보통 2초 안에 목숨을 잃는다.
주 선생은 죽은 것처럼 눈을 감아버렸다. 남자는 누가 자기 목을 만지든 말든 개의치 않는다. 능연은 묵묵히 주 선생의 경추 구조를 살피며 뇌리에 있는 지식과 대조했다.
경추는 인체 구조 중 기억하기 쉬운 부분 중 하나였다. 의대 시험에서는 서비스 문제에 속할 정도였다. 경추 구조 자체는 매우 복잡하지만 제1 경추, 제2 경추, 제3 경추 순으로 세기만 하면 된다. 1부터 7까지, 원숭이도 해낼 수 있는 일이다.
인대는 아주 쉽게 기억할 수 있게 생겼다. 앞 인대는 고목 뿌리처럼 생겼고, 뒷 인대도 고목 뿌리처럼 생겼다. 횡돌간(橫突間) 인대, 황색 인대, 극간(棘間) 인대도 기억하기 어려울 것이 없었다.
신경 해부도 마찬가지로 수월했다. 제1 경추 신경, 제2 경추 신경, 그렇게 제8 경추 신경까지.
근육은 조금 복잡하지만, 능연은 사선 방향을 따라 내려가면서 우선 문지르면서 근육을 풀었다. 한 손으로 이마를 누르고 다른 손으로 경추를 누르면서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면서 동시에 경추혈을 누르고 손가락뼈로 어깨를 굴렸다.
능연이 리드미컬하게 힘을 줬다 뺐다 하자 긴장이 풀린 주 선생이 음음 소리를 냈다. 능연은 계속해서 마사지했다.
우두둑.
‘아’ 소리를 낸 주 선생이 목을 돌려보니 훨씬 편안해진 느낌이 들었다.
“능연, 손재주 뭐냐? 와······.”
주 선생은 감탄하며 목을 다시 휘휘 돌렸다. 두 달 동안 추가 근무하느라 쌓인 피로가 다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하듯 ‘마스터급 추나’라고 중얼거렸다.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주 선생은 그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인정! 마스터급! 이건 분명 마스터급이야.”
“경추 추나만 마스터급일 뿐입니다.”
능연은 몸을 돌려 알콜 겔을 짜서 양손에 문지르고는 겸손하게 대답했다. 주 선생은 진심으로 우러나서 엄지를 치켜들었다.
“한의원 추나과도 너처럼 잘하진 못할 거다.”
능연이 씨익 웃어 보였다. 마스터급인 만큼, 운화 시에서 손꼽히는 고수이리라. 운화 시 한의원은 추나법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아서 이 수준에 오른 사람이 있을지, 있다면 일선에서 일을 하고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능연은 마음속으로 시스템에게 자신의 경추 추나 수준이 운화 시 몇 등인지 물었다.
-당신의 경추 추나 실력은 운화 시 1등입니다.
“시스템 시스템, 그럼 창서성에서도 가장 높아?”
-그렇습니다.
“그럼 중국에서는?”
-당신이 터득한 경추 추나 실력은 중국 43등입니다. 정확한 추나요법을 몇 번 진행하면 한 단계 올라갈 수 있습니다.
운화 시 1등이라는 말에 놀라서 질문을 계속하던 능연이 입을 삐죽였다. 다른 진료과 의사와 마찬가지로 수준 높은 의사는 모두 북경이나 상해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경추 추나요법은 현재 능연이 터득한 마스터급 기술 중에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경추 한 부위에 국한됐지만, 추나 같은 기술의 보급성이 별로라는 뜻이기도 했다.
능연은 이상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추나요법은 임상에서도 의사들이 깔보는 하급 기술이었다.
일부 퇴행성 병변에는 상당한 효과가 있고 임상에 광범위하게 응용된다. 재활의학과도 한 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병원에서 재활과의 위치는 매우 낮았다. 신경과 같은 진료과에서 환자 재활 치료를 오더하면 재활 의사에게서 공제한다.
그에 비해 추나요법은 인지도는 있어도, 환자 역시 재활 치료만큼 기대하지는 않아서 당장의 불편함만 해소되면 만족해했다.
경추 때문에 일어나는 어지럼증, 통증, 피로감 등등을 환자가 가장 많이 호소하고 추나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임상 관점에서 보면 어지럼증, 통증, 피로감은 심각한 질병 축에 들지 못했고 약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래서 추나요법이 아무리 대단해도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임상의들이 심장 이식, 암 치료 같은 분야를 주목하는 것도 당연했다. 환경이 그렇다 보니, 체계적으로 추나 기술을 배우려는 의사도 얼마 없었다. 물론 그런 임상의들도 추나요법을 즐기기는 했지만.
“어디서 배운 거야? 이건 무슨 법이야?”
주 선생은 목을 흔들어 보면서 기쁘기도 놀랍기도 한 듯 물었다.
“이근정골법입니다. 아까는 누르고 문지르고 굴리는 방법을 썼고요.”
능연은 잠시 말을 멈췄다 집에서 배운 거라고 주 선생의 첫 번째 질문에 대답했다.
“집에서 전해지는 추나요법이라고?”
옆에서 주 선생처럼 할 일 없이 앉아 있던 서른쯤 된 여의사가 궁금한 듯 물었다. 주 선생은 헛기침 두 번 하고는 능연의 집이 진료소라고 설명했다.
“하구 진료소라는 곳이에요. 실력 있는 페이 닥터가 몇 명 있다나 봐요.”
주 선생이 설명할 수 있는 것도 거기까지였다. 옆에 있던 주치의가 잘 알겠다는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옛날엔 명의들이 다 그런 식으로 일했지. 우리 병원에도 그런 의사가 있었어. 능 선생, 나도 목이 안 좋은데 한 번 봐 줄 수 있어?”
능연과 따로 이야기해 본 적은 없지만, 운화 병원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능연도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르게 앉으세요.”
여의사가 바로 정좌하자 알콜겔의 시트러스 향을 뿜으며 능연이 손을 뻗어 덥석 목을 잡았다.
“으음······.”
몸이 편안해진 여의사가 절로 콧소리를 냈다. 능연은 아까처럼 문지르면서 실제 조작을 통해 추나요법을 직접 체험했다.
순위를 하나 올리기 위해 정확한 추나요법을 몇 번이나 해야 한다고 하지만, 능연에게는 천 번이고, 2천 번이고 문제가 아니었다. 탕 수술은 한 번에 한 시간 반이나 해야 하는데 추나는 고작 몇 분 아닌가.
순위 하나만 오르면 전국 43등에서 42등이 된다. 지금 44등이 2천 번 하면 자릿수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추나 받을 사람을 찾으러 거리를 헤맬 것이 틀림없다.
‘거리에 나가서 사람 찾는 거, 좋은 생각 같은데?’
우두둑.
능연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목을 꺾자, 의사의 경추에서 맑은소리가 울렸다.
“그래도 괜찮은 편인데요? 큰 문제는 없어요.”
“더 편해졌어.”
시술 후 내리는 능연의 오더에 의사가 온몸에서 ‘통쾌’ 두 글자를 발산하며 대답했다.
“능 선생님······.”
그쪽의 상태를 주목한 어린 간호사가 고양이처럼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뻗어 알콜겔을 집어 들다가 계속 소독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경추 쪽에 발라요.”
능연이 알콜겔을 건네주며 하는 말에 그의 맞은편에 앉은 간호사가 순순히 알콜겔을 짜서 바르기 시작했다. 제1 경추부터 제7 경추까지, 정면은 쇄골까지 쭉 바르고는 쇄골 아래도 얇게 펴서 발랐다.
“능 선생님, 준비됐어요.”
어린 간호사가 앳된 목소리로 말하고는 목을 치켜들었다.
능연의 의자 앞에 금세 긴 줄이 생겼다.
할 일 없는 어린 간호사와 초짜 의사들이 제일 많았다. 건강 검진은 즉각성 진료가 아니라서 의사들은 대부분 이전에 했던 신체검사 리포트와 현장에서 진행한 체격 검사에 의존해 진단을 내렸다.
수술실에서는 그나마 레지던트가 나설 때도 있지만, 진단을 내리려면 적어도 10년 이상 경험 있는 선임 주치의 정도는 되어야 했다.
큰 병이 진단되면 바로 병원으로 보내 입원시켰고, 작은 병은 약 처방 외에 간단한 정맥 수액 같은 건 요양원에 딸린 의무실에서 맡아서 했다.
운화 병원 같은 큰 병원에서는 근육 주사, 그러니까 소위 엉덩이 주사를 놓지 않았다. 지금은 아주 드문 상황에서나 처방을 내리며, 요양원에 있는 노인에게 주사를 놓을 일은 더더욱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할 일 없는 어린 간호사와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는 초짜 의사는 자연스럽게 뒤로 모여 줄을 섰다.
“아, 오!”
“으음, 오, 오. 아악!”
“홍홍홍.”
“아아아아아아아.”
각종 다른 고함이 적막한 분위기를 깼고, 온 요양원이 다 떠들썩해졌다.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를 켜다가 이 소리를 들은 요양원 원장은 자신의 스피커에서 나는 소리가 아님을 확인하고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씩씩거리는 원장의 눈앞에 엄청나게 잘생긴,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젊은 의사가 줄지어 선 의사와 간호사의 목을 손으로 잡고 비트는 것 발견했다. 그가 목을 만질 때마다 사람들이 앵앵 울어댔다.
실눈을 뜨고 더 자세히 살피니 요양원 직원도 보였다.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남자들은 매 발톱에 채인 거북이처럼 온몸을 비틀고 있었다. 여자들은 맹수에게 목이 뜯긴 백학처럼 울면서 몸을 비틀었고, 축 늘어져서 다리를 동동 굴리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간호사는 눈이 뒤집힌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지금 뭐 하는 건가요?”
올해 딱 마흔이 된 깡마른 요양원 원장은 딱 봐도 탐욕스러워 보이는 사람이었다. 원장은 노자를 추종하는 그런 부류였고, 요양원에서 ‘무위이치(無爲而治)(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스리는 것)를 강력시행하며 위생국 지도자의 깊은 총애를 받았다.
그런데 눈앞에 벌어진 상황은 완전히 요양원의 치료 정신에 위배되는 장면이었다.
2분 동안 시원하게 마시지를 받은 직원은 안과 밖으로 퍼지는 온몸의 편안함에 빠져 요양원의 정책 따위는 까맣게 잊고 멍청하게 웃으며 원장을 바라봤다.
“능 선생님 안마 솜씨가 끝내줍니다. 원장님도 어서 받아 보세요.”
“이게 무슨 짓인가! 안마받는데 왜 이런 괴상한 소리를 내!”
“시원하니까 내는 거죠.”
“시원해? 그래 봤자 얼마나 시원하다고! 일부러 이러는 거지?”
원장은 인상을 쓴 채 몇 걸음 만에 능연 앞으로 다가가서 마침 순서가 됐던 요양원 직원의 자리를 뺏었다. 그는 자신의 판단이 옳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표정으로 능연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자리를 뺏긴 요양원 직원은 화가 났지만 뭐라고 말을 못 했다. 능연은 의아한 듯 원장을 흘깃 바라보고는 알콜겔을 건넸다.
“목에 바르세요.”
“수건 쓰면 되지 않습니까?”
“소독해야죠.”
고개를 휙 돌리는 원장의 말에 능연은 단호하게 대답하고는 손목을 돌리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원장은 알콜겔을 조금 짜서 대충 목에 바르기 시작했다. 능연은 알콜이 날아가기를 기다렸다가 수건으로 손을 감싸고 원장의 목을 비틀었다.
비웃음으로 가득하던 원장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이곳이 하늘이요, 이곳이 땅이요.
이곳의 공기는 맑고 햇살은 찬란하다.
이곳은 나무와 풀이 푸르고 맑은 물이 흐른다.
“됐습니다. 경추에 골 증식이 좀 있긴 한데 큰 문제는 없습니다.”
능연이 일어나라고 어깨를 툭툭 치자 원장은 멍하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장의 눈에 몇몇 사람이 핸드폰을 들고 웃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다가가 보니 핸드폰에서 익숙한 듯 낯선 신음이 들렸다.
“내, 내가, 소리를 냈어?”
“냈죠. 보실래요?”
“돼, 됐어.”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원장의 말에 사람들은 핸드폰을 내밀며 고개를 들어 크게 웃었다. 한마디도 하지 못한 원장은 얼굴을 가리고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