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날.
바람은 온화하고 햇살은 아름다운 청명한 날씨에 하늘엔 구름 한 점 없는, 운동회를 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연문빈이 열심히 졸인 족발, 허벅지, 닭 날개를 가지고 수술실 휴게실로 가자 의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반 이상 가져갔다.
그는 그릇을 품에 꼭 안고 있다가 능연이 나타나자 공물을 바치는 것처럼 내놓으며 활짝 웃음 지었다.
“능 선생. 이거 내가 수천 개 족발 중에 신경 써서 고른 족발 두 개야. 이 두께, 탄력 보라고. 새벽 2시에 직접 공판장 가서 산 거야.”
“그래도 족발이지 뭐.”
“의사라고 다 같은 의사가 아닌데, 족발이라고 다 같은 족발이겠냐?”
주위에 있던 의사가 웃으면서 하는 말에 연문빈은 진지하게 반박했다. 그러자 곁에 앉아 있던 주치의 조낙의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그 족발이 곽 주임님인 셈이네?”
“그럼 하나는 곽 주임님이고, 나머지 하나는?”
똑같이 손에 족발을 들고 있는 레지던트 정배가 도발하듯 물었다.
“그럼 육군 병원 유 주임님이겠네.”
“그럼 저 족발은 좀 늙었겠네.”
주 선생이 잠시 생각하다가 하는 말에 조낙의는 푸학 웃음을 터트렸다.
찹찹.
찹찹찹찹.
의사 몇 명이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다들 고개를 돌려 보니 능연이 단정하게 의자에 앉아 양손에 장갑을 끼고 족발을 들고 뜯고 있었다.
“맛있냐?”
정배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공룡이 돼지를 집어삼키는 것처럼 입안에 든 족발을 삼키던 능연은 고개를 들어 잠시 생각하다가 맛있다고 대답했다.
찹찹.
찹찹찹찹.
의사들은 모두 서로의 얼굴을 마주 봤다.
“고기가 조금 실하고 발굽 근육이 좀 더 단단할 뿐 족발은 족발이지 뭐. 하지만 졸이면 부드럽고 탄력 있어서 식감이 좋아. 게다가 공판장에 가서 직접 사 온 거라 신선하고. 내가 고른 족발, 아마 200kg 넘는 큰 돼지일 거야. 게다가 두 살짜리 돼지지. 그보다 더 늙은 돼지는 이것처럼 맛있을 리 없어.”
연문빈은 미소를 드러내며 열변을 토했다.
꿀꺽.
연문빈이 졸인 족발을 먹어본 적 있었기에 다들 침을 삼켰다. 그리고 능연을 다시 바라봤을 때 그는 똑같은 표정, 똑같은 동작이었지만 손에 든 족발은 조금 전보다 작아져 있었다.
묵묵히 자신의 족발을 흔들던 정배는 의도한 바가 있는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말을 들어 보니까, 능 선생 족발은 꽤 무거워 보이네.”
“생 족발 하나 1kg 정도겠지.”
연문빈은 말은 그렇게 해도 뿌듯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일반 족발은 보통 1kg 정도고, 근으로 팔거나 개수로 파는 졸임 고깃집의 족발은 1kg이 넘거나, 그보다 못 미쳤다. 돼지고기 산업 체인이 이토록 발전한 시대에 표준을 넘는 족발을 발견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이건 하늘이 내린 족발이다.’였다.
자주 족발을 먹는 정배는 손에 든 족발을 내려놓고 콧방귀를 뀌었다.
“차별 대우네.”
“어쩔 수 없지. 나 능 선생 퍼스트인데?”
연문빈은 그렇게 말하면서 능연에게 살짝 기댔다. 의사들은 모두 경악해서 그를 바라봤다. 사실이 그렇긴 해도 본인 입으로 그런 소리를 듣고 있자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의사들은 능연을 바라봤으나 그는 변함없는 표정으로 족발 하나를 거의 다 먹고 있었다.
“능 선생. 우리 오늘 단지 이식하나?”
연문빈이 그렇게 물으면서 다가가 그릇 뚜껑을 닫으려 했다.
탁. 능연이 연문빈의 손을 눌렀다.
“저기, 뚜껑 닫아둬야 따듯하지.”
“지금 먹을 건데요.”
잠시 멈칫하던 연문빈은 온순한 미소를 지었다. 능연은 바로 나머지 족발을 집어 들었다.
“이따 단지 이식하고 탕 법을 할 겁니다. 탕 수술을 몇 건 할지는 시간 좀 보고 정할게요. 다 못하면 내일 하죠.”
“내일이라면, 내일 새벽?”
잠시 후 얼굴과 손을 깨끗이 씻은 능연이 하는 말에 연문빈이 다시 물었다.
“당연하죠. 오늘 늦게까지 할 텐데, 휴식이 부족하면 안 되니까 새벽 4시로 하죠.”
능연이 자연스럽게 하는 말에 주변에 있던 의사들은 동정하는 마음으로 연문빈을 바라볼 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집도의가 수술을 언제 한다면 말하면 무조건 그 시간에 하는 것이다. 그 점에서 퍼스트 어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환자도 마찬가지고. 물론 환자는 수술을 안 해도 되지만, 수술하겠다고 결정하면 구체적인 수술 시간은 병원에서 정한다.
그런데 큰 병원에서는 새벽에 하는 수술을 선호하는 의사가 매우 많다. 새벽에는 조용해서 수술 도구와 기기를 잡기 쉽다는 것도 한 가지 이유였다. 또 다른 이유로는 의사들의 개인 습관 때문만이 아니라, 일정 때문이기도 했다. 의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갖가지 겸직을 하게 되는데, 의대에 강의하러 나가는 의사의 경우 아침 10시에 수업이 있으면 9시엔 나가야 했다.
병원에서 늦은 시간에 수술하도록 장려하기도 했다. 낮에만 수술하게 되면 수술실과 의료기기 자원 낭비가 심하다는 이유였다. 물론 낡고 오래된 작은 병원은 상관없다. 새벽에 수술하는 의사도 없고. 장비도 구비되지 않았고, 환자도 별로 없으니까.
연문빈은 벌써 각오를 마친 상태였다. 시간을 ‘새벽 4시’로 미뤘다는 능연의 말에 심지어 홀가분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럼 난 3시에 와서 사전 준비할게.”
탕 법이 정형외과 전문 근건 봉합술 중 막강한 수술 방법이라면 단지 이식은 외과의 막강 수술이었다. 강력한 외과의가 꼭 단지 이식을 배울 필요는 없지만, 단지 이식을 배우면 더욱더 강력한 외과의가 된다.
능연 같은 의사가 바로 그랬다.
“그럼 이제 단지 이식 수술 준비할까?”
연문빈은 능연이 고개를 끄덕이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물었다.
“네. 환자는 마작 기계에 손가락이 잘린 거니까 헷갈리지 마세요.”
“마작 기계? 특수한 케이스네.”
핸드폰을 만지던 주 선생이 정신이 퍼뜩 들어 말했다.
“마작방 사장인 중년 남성인데 기계 청소하다가 검지 끝이 끼어서 응급 센터에서 바로 왔어요.”
“아이고, 손가락 끝 혈관이면 엄청 가늘 텐데.”
주 선생은 자신의 중지를 펼치면서 움직였다. 그 모습에 조낙의는 어이가 없어 고개를 흔들었다.
“주 선생, 손가락 주의.”
“아, 미안, 미안. 능연, 잘린 부위는?”
주 선생은 호기심이 충족되지 않은 듯 물었다.
“제1 관절 1/2 안 되는 위치요. 뼈가 드러났고 손가락이 완전히 잘리진 않았습니다.”
“좀 까다롭겠는데?”
“혈관 문합이라, 크게 어려울 건 없습니다.”
능연은 담담하게 말했다. 혈관 굵기로 난도를 판단한다면 손가락 끝쪽 봉합 난도는 매우 높은 편으로 현미경으로 하는 외과 수술 중에 어렵기로 손꼽혔다. 손가락 끝쪽 혈관 둘레는 손가락 중간 부분 혈관의 절반이고 손이라도 떨면 바로 찢어져서 24바늘 꿰매기는 극한으로 어려웠다.
그러나 능연은 그랜드마스터급 단지 봉합술을 가지고 있는 건 접어두더라도, 마스터급 봉합과 수부 해부 지식이 있어서 충분히 자기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니 손가락 끝쪽 혈관이 얇든 말든, 능연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안 되겠다. 네가 꿰매는 거 한번 봐야지.”
주 선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털고는 핸드폰을 꺼내 곽종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곽 주임님, 저 오후에 능연 단지 이식 수술 보고 싶습니다. 오늘 당 총부 활동은 참석하지 않겠습니다.
잠시 후, 주 선생 핸드폰이 딩 울렸다. 그렇게 하라는 곽종군의 메시지였다.
주 선생은 뿌듯한 듯 웃으면서 물이 찰랑찰랑한 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