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79화 (68/877)

할 일 없는 의사 몇이 능연을 따라 수술실에 들어갔다. 조금 망설이던 조낙의는 처치실에서 어슬렁거리다가 결국 능연의 수술실에 들어갔다.

병상에 마흔 살 정도 되어 보이는 환자는 어깨가 넓고 굵은 팔뚝에 배가 튀어나온 거구였는데, 마취된 상태로 온몸에 각종 기기를 꼽고 있었다. 병상 위 모니터로 확인하니 데브리망을 막 시작한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많이 투여하지 않아서, 이따 우유를 더 추가할지 고민해 봐야겠어.”

소가복이 능연을 향해 말했다. 그가 말하는 우유란 프로포폴이었다.

족히 100kg가 넘어 보이는 거구는 소가복도 자주 마취해 본 적이 없어서 양 부족과 호흡 정지 같은 문제가 걱정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작업하던 능연은 간단하게 알았다고 대답했다.

조낙의는 조용히 가까이 다가가 팔꿈치로 주 선생을 쿡쿡 찔렀다.

“어디까지 했어?”

“놀라운 부분이지.”

“왜 놀라?”

“거구의 손가락 혈관은 겨우 0.15mm야. 안 놀라워?”

주 선생이 하는 말에 조낙의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일반인의 손가락 끝 동맥 둘레는 대략 손가락 혈관의 절반, 즉 0.2에서 0.3mm이다. 0.15mm은 확실히 얇은 편이었고 거구의 남자에게 어울리는 수치도 아니었다.

“게다가 마작방 사장이잖아? 커다란 금붙이를 하고 있다고.”

그 말에 조낙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트렸다. 그러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깝다, 업계 유머라. 마누라한테 이야기하면 좋아 죽을 텐데.”

“그리고 눕히시려고요?”

마침 두 사람 곁에 있던 간호사가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매우 수술실 풍경다운 대화였다.

“그러니까, 오늘 마누라랑 하느냐 마느냐는 저기 중년 마작방 사장한테 달린 거네? 차라리 똥 가방 선물하는 게 낫겠다.”

주 선생이 침울하게 한마디 덧붙였다. 반박하려던 조낙의는 똥 가방이라는 소리에 순간 수술실 대화의 재미를 잃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루이비똥 싫대.”

“왜?”

“개나 소나 든다고. 요즘은 샤넬 사달래.”

소가복도 낄낄댔다. 능연의 수술실에 들어오면 장점이 많지만, 확실한 단점도 있었다. 바로 이야깃거리가 없어서 수술 과정이 따분하다는 것이었다. 집도의가 수다를 떨지 않으니 조수들도 전전긍긍했고, 간호사도 조용했다. 이는 마취의에겐 최면룸이나 마찬가지였다.

관전하는 의사가 많으니 분위기가 확실히 달랐다. 다들 웃고 즐기는 사이 시간도 빨리 흘렀다.

뒤로 갈수록 소가복의 둥근 의자를 노리는 사람이 생겼지만, 그는 무표정으로 거절했다. 그렇다고 정말 화를 내지는 않았다.

“혈관 OK.”

능연이 고개를 들어 던진 한마디에 수술실의 들뜬 분위기가 날아갔다. 주 선생이 시계를 확인해 보니 겨우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저 녀석!”

시간을 본 조낙의는 순간 떠들 의지를 잃었다.

0.15mm 혈관은 그조차도 아직 꿰매보지 못했다. 일반 응급 의학과 의사는 그런 혈관을 꿰맬 기회가 잘 없었다. 손가락 끝이 아닌 유사한 혈관이라면 의사들은 그냥 자연스럽게 두곤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혈관이 알아서 길을 찾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낙의는 0.15mm 혈관을 한 시간만에 꿰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의사가 다 알았다. 그래서 다들 어깨가 축 늘어져서 대화할 마음도 생기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그 자리를 떠날 생각도 들지 않아서 수술실 분위기가 다시 무거워졌다.

그런 분위기에 가장 민감한 것은 소가복이었다. 그는 공포스러운 광경을 떠올렸다. 능연이 단지 이식을 장기적으로 한다면, 그의 수술실은 5시간, 6시간에서 8시간, 더 길면 10시간 동안 침묵을 유지한다는 말과 같았으니까.

새벽 3시에 하는 수술실에서 서로 한마디도 없이 인체를 해부한다? 소가복은 그런 광경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핀셋.”

“가위”

“워싱.”

능연의 수술은 초 싸움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언제나 초긴장 상태였다. 그런 수술 방식은 지켜보는 사람마저 긴장하게 했다.

수술이 끝나자 수술에 참여한 연문빈뿐만 아니라 관전하던 의사들도 크게 숨을 돌렸다. 주 선생은 특히나 마음이 가벼워져서 이마를 훔치면서 마음속으로 너무 힘들었다고 생각하면서 다시는 능연의 수술을 보지 않겠다 다짐했다.

수술실을 나온 주 선생은 능연에게 설교라도 좀 할 생각으로 복도에 우뚝 서 있었으나 능연은 나오자마자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어디 가는 거지.”

“탕 수술하러 가세요.”

주 선생이 의아한 듯 중얼거리는 말을 들은 간호사가 대답했다. 주 선생은 멍해졌다. 능연이 하루에 수술을 엄청나게 많이 하는 건 알고 있어도 에너지 소모가 큰 단지 이식 수술 후에 바로 탕 수술을 하러 갈 줄은 몰랐다.

“열심히도 하네. 어쩐지 많이 먹더라.”

“그게 뭐 많이 먹는 거예요. 능 선생님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아세요?”

주 선생이 혀를 끌끌 차자 간호사는 두 손을 허리에 걸치고 눈을 부릅떴다.

“알지, 알아. 나도 그렇게 말했잖아.”

“선생님이 어떻게 알아요?”

주 선생이 용서를 구해도 간호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주 선생은 골똘히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수부외과 의사가 제일 힘들잖아. 그런데 능 선생이 몸 바치고 있으니 얼마나 열심이니? 대단해, 대단해.”

간호사는 눈을 흘기다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입을 크게 벌렸다.

“능 선생님이 많이 먹는다고 하셨죠? 보통 뭐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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