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능연은 항상 그랬던 것처럼 MRI 사진을 본 다음에 마연린을 불렀다.
“선생님이 메스 댄다면 어디부터 가르겠어요?”
“내가 해도 돼?”
“일단 얘기나 해보세요.”
마연린은 순간 흥분해서 눈을 크게 떴다. 능연은 제법 그럴싸한 상급 의사의 모습을 보였다. 사실, 상급 의사라는 표현은 일부는 직책이고 일부는 실력이었다.
기술 없는 상급 의사는 그냥 이름만 상급일 뿐이지, 수술대의 권위는 내보이기 어려웠다.
탕 수술을 몇백 번이나 한 능연에게는 탕 법에 정통한 전문가의 권위가 넘쳤다. 다만 시간이 짧아서 아직 명성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마연린은 정신을 집중해서 MRI를 바라봤다. 그가 사진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별로 없었다. 그러나 곁에 능연이 있으니 꽤 담대해져서 과감하게 수장근(thenar muscles)을 가리켰다.
“나라면 여기부터.”
상당히 대담하다고 할 만큼 비표준적인 방법이었다.
능연은 가부를 논하지 않고 듣기만 했고 딱히 설명할 의도도 없어 보였다. 마연린은 능연 밑에서 퍼스트 어시스턴트를 한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참여한 수술은 벌써 2백 건 가까이 될 만큼 제법 많았다.
그것이 바로 수술광 밑에서 일하면 좋은 점이었다. 2백 건 넘는 수술 경험은 치프 레지던트나 세울 수 있는 기록이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능연 밑에서 일해온 마연린도 탕 법에 대해 자기 생각이 생겼다.
메스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연린은 조금 흥분해서 비표준적인 위치를 먼저 떠올리게 됐다. 그는 다소 불안하여 안절부절못하며 능연을 바라봤다.
“좋아요. 그럼 선생님이 메스 잡아요.”
“진짜로?”
능연이 집도의 위치를 내주는 모습에 마연린은 믿을 수 없어 다시 확인했다.
“네.”
피식 웃음을 터트린 마연린은 바로 입을 다물고 손을 덜덜 떨었다. 메스를 잡은 경험이 있긴 하지만, 탕 법 같은 고급 수술은 기대감이 달랐다.
마연린은 수부에 선을 그은 후 능연을 바라봤다. 능연은 변함없이 엄숙한 표정이어서 마연린은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메스.”
마연린은 입술을 깨물고는 간호사에게 메스를 요구했다. 칼날이 장착된 메스가 ‘찰싹’ 마연린의 손바닥에 놓였다.
마연린은 핑거팁 그립으로 메스를 잡고 미리 그려놓은 선을 따라 조금 힘을 주어 칼을 그었다. 능연은 여전히 끽소리 내지 않았고, 마연린은 오히려 자신감이 생겨서 정신을 집중하고 서서히 메스를 움직였다.
피부, 근육, 지방. 조직이 한층 한층 드러났다.
능연은 마연린 옆에서 10분 동안 조수 노릇을 하면서 필요한 수술 시야를 확보했다. 마연린이 집도의 자리를 내놓았을 때는 벌써 흥분해서 콧잔등에 땀이 가득했다.
“집중해요.”
능연이 한마디 하고는 근건을 꺼내 봉합하기 시작했다.
능연은 이젠 탕 기법엔 상당한 실력을 갖췄고 테크 트리의 정상에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이제 더 높이 올라가려면 비전형 케이스와 누적 경험이 대량으로 필요했다.
단지 이식 기술까지 생겼으니 능연도 수술 기회를 어시스턴트들에게 나눠줘야겠다는 생각이 생겼다. 외과 의사의 전수는 바로 그런 식이었다. 이론에서 실천, 얕은 것에서 깊은 것, 어시스턴트에서 집도의, 그리고 집도의가 미친 듯이 연습하고 경험을 누적하면서 더 복잡한 수술 방식을 시도하고 테크 트리 정상에 오른 다음엔 기회를 다시 초짜 의사에게 양보한다.
그러나 능연이 지금 넘겨줄 수 있는 것은 칼을 대는 것과 마무리 봉합 정도였다. 그 두 스텝을 직접 하면 20분 정도 걸리는데 조수에게 넘기면 수술 시간을 적잖게 아낄 수 있었다.
탕 수술을 한 건 마친 능연은 마무리 작업을 마연린에게 넘겨주고 다른 수술실로 넘어갔다. 연문빈이 벌써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쉴 새 없이 수술, 수술, 수술. 그것이 그들에게 익숙한 리듬이었다. 요 며칠 하루 수술량이 줄어들자, 능연만 적응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연문빈과 마연린도 어색해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이야기도 나누지 않고 미친 듯이 수술에 몰두했다.
연문빈과 마연린은 모두 칼을 잡을 기회를 얻었고, 탕 법에 대해 한층 더 이해하게 되어 더욱 흥분해서 수술에 임했다.
퇴근 시간이 되자 두 사람은 심지어 아쉬워하기까지 했다. 능연은 시계를 보면서 내일 아침 3시에 출근하라고 말했고, 두 사람은 수술을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을 당장 버렸다.
능연은 자신의 소형 제타를 타고 하구 진료소로 돌아왔다.
밤이 깊었는데 치료실엔 아직 환자가 6명이나 남아 있었다. 그중 4명은 수액을 거의 다 맞아 가는 단골손님이었고, 나머지 2명은 외상을 입은 환자로 묘 선생이 미용 바늘로 봉합하고 있었다.
연자가 접의식 의자에 앉아 육중한 팔뚝으로 재료를 건네다가 능연을 불렀다.
“연아, 누가 널 찾아 왔더라.”
“모르는 사람이야?”
능연은 손을 씻으면서 물었고, 동시에 안쪽에서 나오는 이뢰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고, 능 선생님. 드디어 오셨네요. 한참 기다렸어요.”
이뢰는 구찌네 구두를 신고 가방 가득 물건이 담긴 셀린느네 비닐백을 든 채 능연네 정원에 서서 다급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능 선생님. 위챗 보냈는데 답장도 안 하시고. 전화도 안 되고. 병원으로 가야 하나 했다고요.”
능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이뢰를 바라봤다. 능연은 대화에 능숙한 남자는 아니었다. 지금까지 경험에 따르면 상대방은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알아서 필요한 정보를 뱉어냈다. 그 때문에 쓸데없는 인사를 주고받을 필요가 전혀 없었다. 이뢰 역시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능 선생님. 왕진 한 번 해주셨으면 하는데, 괜찮을까요?”
그 자리에 있던 환자와 한창 정신없던 묘 선생, 그리고 연자까지 모두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상황을 지켜봤다. 요즘은 왕진은 거의 하지 않는 시대다. 거기다 특별히 부탁하러 오는 경우는 더욱 드물었고.
하구의 오래된 이웃은 벌써 앞으로의 일들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능연은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바로 깔끔하게 대답했다.
“아뇨.”
“누구 때문에 왕진해 달라고 부탁하는지는 아시죠?”
이뢰가 얼빠진 듯 묻는 말에 능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능연은 여전히 맹설의 승모근과 그가 준 경험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미녀 기준이든, 인간 모양 보물 상자 기준이든 맹설은 합격 기준에 있었다.
이뢰는 더욱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이 되었다.
“그런데 왜 싫대요?”
능연 같은 젊은 남자는 미녀와 접촉할 기회가 있으면 돈이 아니라도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맹설은 전국을 뒤흔드는 대스타인데.
나이든 한의원 의사의 안마 효과가 능연보다 못하지만 않았더라도 그를 찾아오지 않았으리라. 최근 콘서트 일정이 너무 빽빽해서 근육이 지나치게 쑤신 것만 아니었어도 모셔갈 시도를 하지 않았을 텐데.
종이로 불씨를 감쌀 수 없다고, 잘생긴 미남 의사를 맹설의 집이나 사무실로 데리고 가는 것은 아무래도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블루스타 매니지먼트 사람들은 이해관계를 살피는 과정에서 말다툼까지 했는데 그들이 유일하게 고려하지 않은 항목은 바로 능연의 거절이었다.
이뢰는 능연을 한참 노려봤다.
“밀당할 생각이라면 안 그러는 게 좋아요. 선생님이 비록······.”
매니저 생활을 오래 한 이뢰가 일반인을 상대할 때 제일 많이 쓰는 방법은 연예계에 선남선녀가 얼마나 많은지 알리는 것이었으나, 능연과 눈이 마주치자 허튼소리라는 생각에 말끝을 흐렸다.
“왕진료 때문인가요? 얼마면 되는데요?”
“시간이 없습니다.”
능연이 고개를 살짝 흔들자 이뢰는 떠보는 듯 물었다. 이뢰가 헛다리 짚는 것을 피하고자 능연은 바로 대답을 내놓았다.
“시간? 무슨 시간이요?”
“잘 시간이라서요.”
“아직 8시도 안 됐는데, 잘 시간이라고요?”
이뢰는 ‘어느 별에서 왔니?’라는 말을 삼키며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평소에 밤에 놀러 갈 때 9시가 피크이고 새벽 1~2시까지 놀다가 집으로 가는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취침이 저녁 8시라니······.
“내일 3시에 수술이 있어서요. 할 말이 더 있으면 내일 하죠. 게임해야겠어요.”
능연은 조금 짜증 나는 말투로 덧붙였다. 이뢰는 ‘내일 3시’를 ‘새벽 3시’로 겨우 해석하고 조금이나마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능 선생님. 왕진비 0 다섯 개 어때요? 그리고 단발성 장사가 아니라 앞으로 일주일에 한 번, 왕복 차비도 다 우리가 낼게요. 어때요?”
이뢰는 처음엔 그렇게 많이 부를 생각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능연은 이미 자신의 안락의자에 기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많이 필요 없어요. 그냥 직접 오라고 하세요. 마사지해도 고작 몇 분인데 시간 나는 대로 하면 되죠. 그냥 진료비만 내면 되고요.”
“맹설 돈 아껴주려고 그러세요?”
이뢰는 화도 나고 우습기도 했다.
띠리링.
능연의 핸드폰에서 게임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관심이 분산되는 게 느껴지자 이뢰는 다급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굴렀다.
“선생님, 환자가 죽을 것 같은데 왕진 하나 못 해주세요?”
“죽을 것 같은 환자가 병원에는 왜 안 오는데요?”
능연이 의아하다는 듯 흘깃 보자 이뢰의 말문이 막혔다.
“시주님, 화내지 마시고 수박 드시고 열 좀 식히세요.”
동자승 동한생이 저녁에 먹고 남은 수박 한 접시를 담아 눈을 비비며 1층 주방에서 나왔다. 엉망진창으로 잘린 수박에 입맛이 다 떨어졌지만, 귀여운 동한생의 모습에 이뢰는 그의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스님, 그게요······.”
“보살님, 이제 잘 시간이 되어서요.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하품을 참지 못한 동한생은 허리를 굽히고는 비틀비틀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곁에서 줄곧 귀를 쫑긋 세우고 가십거리를 찾던 연자가 푸웁 웃음을 터트렸다.
“동한생이 절에 있을 땐 매일 아침 5시면 일어나서 공부하거든요.”
아이는 잠이 많으니 아침 5시에 일어나려면 적어도 저녁 7시엔 잠들어야 했다. 이뢰는 멍하니 서 있다가 고개를 들어 하구 진료소 간판을 바라봤다.
요즘은 동자승도 이렇게 특이한가?
“능 선생님, 그럼 위챗으로 다시 연락해요.”
이뢰는 더는 할 말이 없었다. 능연은 바빠 죽겠다는 듯 대충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핸드폰 액정을 미친 듯이 만지던 엄지 두 개의 움직임이 갑자기 멈췄다. 그는 핸드폰을 다리 위에 살짝 내려놓고 이뢰를 바라봤다.
“필요한 거 대부분이 병원에 있으니까, 병원으로 오시는 게 좋을 겁니다.”
병원에 사람도 많고 눈도 많은데 맹설이 어떻게 거길 가니?
이뢰는 그저 생긋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