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에 올라온 맹설은 스카프를 풀고 목을 드러냈지만 마스크는 벗지 않았다. 그리고 화난 눈빛으로 능연을 바라봤다. 스케줄이 엄청나게 빡빡했다. 누구라도 전국 콘서트를 하게 되면 내내 지치게 된다. 파도처럼 몰려오는 피로를 느끼면서 말이다. 그렇게 바쁜 상황에 일부러 운화에 들르게 만들다니. 일정을 조정하긴 했지만 여전히 기분이 나빴다.
그러나 더 기다리기도 싫었다. 며칠 전에 시원함을 느꼈던 것에 비해서 요즘 목, 등이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싶을 정도로 아팠다. 사무실에서 어떻게든 능연을 설득하리라 믿었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맹설은 할 말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꺼냈다.
“저기요, 비록 제가······ 아······.”
장갑을 낀 능연의 손이 맹설의 목을 잡자, 한순간에 맹설의 두 눈이 초점을 잃었다.
누르고.
문지르고.
당기고.
끌고.
능연은 편안하게 추나 수법을 쓰면서 한 손으로 맹설을 거의 기절할 것처럼 만들었다. 가끔 두 손을 쓸 땐 홍홍대는 콧소리도 들렸다.
1분도 안 되는 사이, 맹설이 코 고는 소리를 내자 이뢰는 민망한 듯 대신 변명했다.
“요즘 일정이 너무 몰려서 며칠 동안 네다섯 시간밖에 못 자요.”
능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요양원에 있는 노인에 비하면 맹설의 경추 문제는 가벼운 편이었다. 단지 피로 누적과 스트레스라서 마스터급 추나 기술로 식은 죽 먹기로 해결할 수 있었다. 노인의 근육과 뼈 상태는 쇠약해져 있어서 추나 요법으로 청춘을 돌릴 수는 없지만 말이다.
이제 스물 남짓한 맹설은 추나로 치료할 수 있는 일반적인 범위 안에 있었다. 거기다 오랜 시간 트레이닝도 받아서, 근육을 정상 상태로 돌리기 수월했다.
능연이 문지르기 기법으로 맹설의 경추 근육을 풀어준 다음 휙 목을 꺾으니 우두둑 소리가 울렸다.
“목은 다 됐습니다.”
능연은 자신을 뚫어질 듯 바라보는 이뢰의 시선을 느끼며 맹설의 어깨를 툭툭 쳤다.
“다 됐어요. 일어나요.”
“좀 더 자게 두면 안 되나요? 너무하네요. 어렵게 잠든 사람을 깨우는 법이 어디 있어요.”
“언니, 괜찮아요.”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발을 구르는 이뢰의 모습에 몽롱하게 눈을 뜬 맹설이 웅얼거렸다.
“앉아서 자면 목에 안 좋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능연은 쉽게 재울 수 있다고 덧붙이더니 두 손을 어깨에 올리고 가볍게 문질렀다. 그러자 막 정신 차린 맹설이 다시 눈을 껌뻑였다.
능연은 맹설의 어깨를 살짝 밀어 테이블에 엎드리게 하고는 시계를 봤다.
“20분 드릴게요. 20분 자고 일어나면 개운할 겁니다.”
말을 끝낸 능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핸드폰을 꺼냈다.
“저기요. 누워서 잘 만한 곳을 골라주면 안 되나요?”
이뢰는 할 말을 잃었다는 듯 화를 눌렀다.
“침대 시트 가지고 왔나요?”
“아니요······.”
이뢰가 고개를 흔들자 능연은 할 말 없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딸깍.
계단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황무사가 흔들거리는 나무판을 밟아서 낸 소리였다. 능연은 별생각 없이 핸드폰을 만졌지만 이뢰는 바짝 긴장했다. 황무사는 꼬리 밟힌 고양이처럼 펄쩍 뛰어올랐다.
“뭐 하는 사람이에요?”
이뢰가 황무사를 바라봤고, 다 들켜 버린 황무사는 감출 것도 없어 우당탕 계단을 밟고 올라가 웃어 보였다. 그는 앞으로 돌아가서 얼굴을 볼 생각으로 맹설의 뒷모습을 주시했다.
“이봐요. 멈춰요. 누구냐고요.”
이뢰의 목소리는 변함없이 낮았지만, 매우 엄숙했다. 매니저로서 절대로 피해야 할 상황이 눈앞에 펼쳐진 셈이었다. 물론 진료소가 큰 병원보다 나았고, 큰 병원이 남자 집보다 나았다. 이뢰는 벌써 스캔들 문제를 걱정했다.
“저는 창서 제약 회사 영업 매니저입니다.”
황무사는 조용히 자신의 직급을 말하고는 계속 걸음을 내디뎠다. 이뢰가 말릴 틈도 없이 황무사는 마스크를 낀 맹설의 얼굴을 멍청하게 바라봤다.
“어쩐지 낯이 익더라니! 맹설이죠? 정말 맹설 맞아요?”
황무사는 복잡한 마음으로 그렇게 물었다. 그는 모델 일을 했던 사람이고, 그래도 그 바닥에서 조금 이름을 알렸었다. 그러니 맹설 같은 대스타를 당연히 인정했고, 심지어 숭배하는 마음도 있었다.
황무사는 맹설의 얼굴을 조금 더 자세히 보려고 테이블 옆에 의자를 살며시 끌어당겨 맞은편에 앉았다.
“야! 일어나. 전화 한 통에 너 잘라 버릴 수 있어. 알아?”
이뢰는 더는 예의를 갖추지 않고 팔을 내밀어 황무사를 가로막았다. 황무사는 하하 웃음소리를 내며 내키지 않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타는 모두 보디가드를 대동하니, 버티고 싶어도 버틸 수 없다는 걸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맹설이 어디 아픈가요? 무슨 병인데요?”
“경추 질환이요. 그래서 능 선생님한테 추나 받으러 온 겁니다.”
황무사가 묻는 말에 이뢰는 잠시 망설이다가 솔직히 대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대답은 해야 했다. 아니면 무슨 소문이 어떻게 퍼질지 모르니까.
“능 선생님 추나 기술이 좋은가 보군요. 심각한가요? 사실 제가 유명한 한의사 한 분을 압니다. 추나 경력만 몇십 년이세요.”
황무사가 홍홍 웃으며 하는 말에 이뢰는 저도 모르게 콧방귀를 뀌었다. 능연만큼 되는 한의사가 있다면 뭐 하러 일부러 여기까지 왔을까? 게다가 숨은 인재를 알고 있다는 그의 말은 더욱 믿지 않았다. 조금 전에 호출벨을 눌렀기에 보디가드들이 올라오길 기다리는 참이었다.
발걸음 소리와 함께 검은 양복 차림의 남자 둘이 재빨리 2층으로 올라와 좌우로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고 섰다.
“이보세요, 이제 자리를 비켜 주시죠.”
황무사의 몸집도 그들과 비슷했지만, 성격은 완전히 달랐다. 눈을 부릅뜬 건장한 남자 둘이 다가가자 그는 저절로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미련이 남아 바로 그 자리를 뜨지는 않았다.
“잠깐.”
결국 잠에서 깬 맹설이 어깨를 문지르면서 몇 시나 됐는지 물었다.
“10분도 안 됐어. 차에서 조금 더 잘래?”
“됐어요. 목만 안 아프면 됐지. 능 선생님 감사해요.”
목을 이리저리 움직이던 맹설의 얼굴에 벌써 미소가 피어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컵을 던지고 접시를 내동댕이치기는 했으나 공공장소에서는 이미지 생각을 꽤 하는 편이었다.
능연은 그저 살짝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맹설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려 황무사를 바라봤다. 그러곤 웃으며 고개를 까딱했다.
“저, 저는 황무사라고 합니다. 팬이에요.”
모델 시절에도 이렇게 대단한 스타를 만난 적 없는 황무사는 다소 흥분한 상태였다. 그 바닥에 있던 여자들은 하나같이 얼굴만 반지르르했고 당연처럼 청순하지도, 맹설처럼 진실하지도 않았다.
“안녕하세요.”
“같이 사진 찍어도 될까요?”
“오늘은 안 돼요. 아직 스케줄이 남았어요. 나중에 싸인 보내줄게요.”
황무사는 온몸이 붕 떠오를 것처럼 행복해져서 물었지만 이뢰가 먼저 나서서 거절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황무사는 보디가드 둘에게 겨드랑이가 들려 다리가 허공에 붕 뜬 채 아래층으로 끌려 내려갔다.
“선배님 무슨 일이에요?”
낭창낭창하게 다가온 당연이 조금 전보다 더 놀란 얼굴로 황무사에게 물었다.
“아무 일도 아니야. 아무 일도.”
황무사의 얼굴에 아까를 회상하는 미소가 가득했다. 그러자 당연은 더욱 의아해졌다.
“선배님, 위에 무슨 일인데요. 그래서 어디 회사 사람이래요?”
“회사? 아, 제약 회사 아니야.”
“아니라고요?”
“응.”
“그럼 더 이상하네요. 위에서 뭐 하는데요?”
“수다?”
황무사는 그렇게 얼버무리면서 당연을 바라봤다. 맹설과 비교해보니 갑자기 평범하기 짝이 없게 느껴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맹설은 몸을 움직이면서 보디가드 두 명에게 가도 좋다고 신호를 준 다음 이뢰를 향해 고개를 까닥였다. 그러자 이뢰가 사전에 준비해온 내용을 이야기 하려고 능연을 바라봤다.
“능 선생님, 맹설이 지금 전국 콘서트를 하느라고 꽤 지친 상태예요. 며칠 같이 다녀주시면 안 될까요? 추나 치료만 해주시면 됩니다. 비용은 얼마든지 원하시는 대로 드릴게요.”
“선생님, 정말 선생님이 필요해요.”
맹설도 자세를 고쳐 앉아 간청했다. 며칠에 한 번씩 운화에 오는 것보다 일정 비용을 지급하고 능연이 수행하도록 하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능연은 잠시 꽤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결국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미소가 가득하던 이뢰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선생님, 아직 조건도 말씀 안 드렸는데요? 이러면 어떨까요? 같이 가주신다고만 하면 계약금으로 백만 위안 드리고요, 그리고 따로 일당도······.”
“당분간 병원을 비울 수 없습니다.”
능연이 이뢰의 말을 끊고 들어갔다. 그는 이런 광경에 익숙했다. 아주 오래전 연예 기획사에서 아역 배우를 해보자고 큰돈으로 유혹한 적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능 씨 일가는 거절해왔다. 아들이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음을 이미 증명한 도평 여사는 돈을 위해 일하는 건 의미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능연이 그렇게 시원스럽게 거절하리라 예상 못 한 이뢰는 헛웃음을 지었다.
“지급 능력이 걱정이라면 계약금이든 그 이후 비용이든 사전에 지급할······.”
“내일 수술 일정이 잡혀 있습니다. 새벽 3시에 시작해서 오후까지 이어질 겁니다. 모레 수술도 지금쯤이면 잡혔을 테고. 그리고 추나 치료도 있어요. 앞으로 사흘 동안 한 10명? 그리고 논문 두 편도 써야 하고요.”
아무래도 멀리서 온 사람이니 능연도 진지하게 설명했다. 그는 예의 바른 말투로 자세하게 설명했으며 그 내용도 진실했다. 이뢰와 맹설은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몰라서 서로 얼굴을 마주 봤다.
수술을 포기하고 따라오라고? 그렇게 말할 상황은 아닌 듯했다. 돈을 더 준다고? 백만 위안도 필요 없다는 사람한테 도대체 얼마를 제시해야 한단 말인가.
잠시 생각하던 맹설은 마스크를 벗고 간절하게 부탁했다.
“능 선생님. 연예계에 목, 허리 아픈 사람들 많아요. 선생님 기술을 잘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전문 클리닉을 열 수 있게 제가 도와드릴 수 있어요.”
맹설은 의료계 일을 잘 몰라서 떠오르는 대로 건의했다. 그는 자기 클리닉을 열 수 있다는 말이 충분히 유혹적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능연은 맹설을 힐끔 보더니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거절했다.
“괜찮습니다.”
진료비를 받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적잖은 사람들이 능연을 기다렸다. 그렇기에 능연은 하구 진료소만으로도 정신없이 바쁘다고 할 수 있었다. 그 정도면 충분히 능력을 발휘한 셈이고, 전문 클리닉을 열 의미도 없었다.
더는 방법이 없어진 이뢰와 맹설은 아쉽지만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늘씬한 맹설은 이뢰보다 2, 30cm 정도 더 컸고, 뒤에서 보니 쭉 뻗은 척추가 섹시했다. 나올 데 나오고 들어갈 데 들어간 몸매는 더욱 유혹 지수가 높았다.
“척추 마사지해 드릴까요?”
능연이 불러 세우자 맹설의 눈이 번쩍 뜨였다.
‘맞네, 비행기까지 타고 힘들게 왔는데 왜 목만 받고 가.’
“등이 안 좋긴 하네요.”
“그래 보입니다. 아래층에 침대가 있어요.”
“위에서 하면 안 될까요? 아, 가서 침구 사 올게요.”
이뢰가 하는 말에 능연도 더는 반대하지 않고 2층 손님방을 쓰면 되겠다고 했다.
잠시 후, 맹설은 2층 손님방 침대에 엎드렸고, 이뢰는 곁에서 긴장한 표정으로 능연을 주시했다.
“마사지하실 때 프로 의식 가지고 하셔야 해요.”
“아······.”
능연이 척추를 따라 문지르자, 맹설은 프로 의식 없이 콧소리를 냈다. 할 말을 잃은 이뢰는 방구석으로 가서 개인 신분으로 방 안의 순결성을 확보했다.
기간 한정 퀘스트가 끝나서 이제 능연에게 고통 해소 시간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몇 분 정도만 마사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마사지를 끝냈을 때 맹설은 코를 골고 있었다.
“다 됐습니다. 테이블 옆에 물 있어요.”
휴대용 알콜겔로 손을 닦은 능연은 더는 볼일 없다는 듯 방에서 나갔다. 그러자 이뢰가 놀란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요?”
몇 분이나 됐다고 끝이 났단 말인가.
“네. 끝났습니다.”
언제나 시간을 꼼꼼하게 따지는 능연은 걸음을 걸으면서 핸드폰을 꺼내 게임을 켰다.
10분 후, 갑자기 핸드폰을 내려놓은 능연은 노트북을 꺼내 어제 막 쓰기 시작한 논문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지기만 하는 게임보다 논문이 더 재미있었다.
능연은 논문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가, 키보드 위에 놓인 손가락을 서서히 움직였다.
그는 우선 <탕 법 봉합 요점— 탕 수술 XXX 사례 탐구>라는 제목의 논문을 꺼내 내용을 보충했다. 연문빈과 마연린에게 보여줘야 할 논문이라는 걸 생각하면서 글자 수를 따지지 않고 매우 자세히 기록했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논문을 써 내려갔더니 진정한 근건 봉합 부분에 이르기 전에 이미 1,000자를 돌파했다.
기지개를 켠 능연은 목을 몇 번 돌리고 다시 비장하게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쓰지 않으면 말로 설명해야 했다. 차라리 쓰는 게 나았다.
게다가 논문 작업을 하면서 생각도 정리하고 맥락을 추려낼 수 있어서 능연 자신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
논문을 너무 길게 쓰면 발표할 때 불리하지만, 능연은 그런 고민은 하지 않았다. 글이 술술 써지는데 글자 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는 자신의 체험과 생각을 온 힘을 다해 써 내려갈 뿐이었다.
마스터급 탕 봉합 기술에 몇백 건 넘는 실전 경험이 있는 능연은 쓸 내용이 차고 넘쳤다.
몽롱하게 손님방에서 나온 맹설은 스탠드 불빛 아래 신나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능연을 발견했다. 티테이블 위의 스탠드 불빛이 부드러웠는데, 능연의 옆모습은 더욱 부드러웠다.
맹설은 귀신에 홀린 듯이 저도 모르게 핸드폰을 꺼내 들어 사진을 한 장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