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85화 (74/877)

“능연, 자네 왼손 무명지 계속하게.”

왕해양은 능연을 다른 사람이 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도록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게다가 단지 이식 수술은 시간을 다투는 수술 중 하나였다. 이날의 수술은 더욱 그랬다.

5세 아동의 손가락 8개를 모두 쓸 수 있게 하려면 최대한 빨리 봉합해야 했다. 잘되고 빠른 수술, 그것이 단지 이식 수술 회복 포인트였다. 그러니 혈액을 빠르게 공급할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했다.

완전히 절단된 손가락이 얼마나 지나야 괴사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20시간, 8시간, 혹은 12시간일 수도 있다. 중국 내 소아 단지 케이스의 혈액 미공급이 가장 길었던 기록은 56시간이다. 무석(無錫) 수부외과에서 이식 수술을 성공했지만, 그 기록에 도전하겠다고 나설 사람은 분명 없으리라.

사람에 따라 상황도 달라지지만, 혈액 흐름을 최대한 빨리 회복하면 손가락 회복도 빨라지고 기능도 강해진다는 것은 틀림없었다.

1팀, 2팀, 3팀 모두 단지 이식이 절반 정도밖에 진행되지 않았으며, 가장 중요한 혈관 문합은 모두 아직이었고, 복잡한 신경 문합이 모두를 똑같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속도로는 한 시간 반이 걸려도 끝내지 못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의사를 능연과 교체할 이유가 없었다. 능연이 제일 빠르고 제일 젊어 에너지도 충만했으니 그가 이어서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대기하고 있는 의사 모두 속도든 퀄리티든 지금 수술 중인 주임과 부주임에 못 미치는데 무슨 근거로 능연을 대체한단 말인가.

왕해양은 이것저것 가릴 틈도 없이 순식간에 빠른 결정을 내렸다. 전체 수술을 책임져야 하는 만큼 누군가의 체면을 책임질 이유가 없었다. 수술을 제대로 못 하는 외과의에겐 체면이랄 것도 없다.

특히 운화 병원 같은 성급 삼갑 병원의 대부분 외과 의사는 기술로 버티고 있었다. 실력이 없으면 무시당한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정치적 정당성이었다.

이미 주임 자리에 오른 왕해양은 더욱이 다른 사람 안색을 살필 이유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능연도 타인의 안색을 살피느라 자신이 잘하는 수술을 거절할 사람이 아니었다. 능연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마 선생님. 계속 봉합하세요. 유 간, 무명지 MRI 사진 좀 가져다주세요.”

마연린은 할 수 없이 뻔뻔하게 피부 봉합을 계속했고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마연린 본인은 매우 불안해했으며 니들홀더를 쥔 손가락이 살짝 떨리기도 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능연을 바라봤다.

따듯한 상급 의사였다면, 지금쯤 800자는 되는 위로의 말로 마연린의 불안감을 풀어 줬으리라. 그러나 능연은 그저 힐끔 그를 볼 뿐, 평소처럼 제 할 일을 하며 MRI를 바라봤다. X-ray와 달리 MRI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량이 막대했다.

MRI 판독이 가능한 의사는 투시안을 가진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능연이 정신을 집중해서 필름을 읽는 모습에 마연린은 오히려 침착해졌다. 침착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의사는 별별 상황에 다 마주치기 마련이고, 사고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야말로 외과의의 자질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마연린은 무엇보다 예전에 해왔던 수술실 장면을 떠올렸다. 마무리 봉합, 데브리망을 제일 많이 했었고, 메스도 몇 번 잡으면서 인체 수부 구조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물론 5세 아동의 손가락은 가늘고 얇지만, 능연의 탕 봉합 수술 중엔 소아 근건 봉합도 10건 정도 있었다. 위치는 다 달랐어도 봉착한 문제는 모두 유사했다. 피부, 근육, 지방 등 촉감도 다 똑같았다.

마연린은 정신을 집중하고 구부러진 바늘로 살며시 어린 환자의 피부를 꿰뚫었다. 그는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모습으로, 더할 나위 없이 정확하게 바늘을 놀렸다. 응급 의학과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 조작을 하는 마연린은 얼굴을 보지 않으면 그가 인턴이라고 전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능숙했다. 참관하던 의사들도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끽소리를 내지 않았다.

봉합은 원래 하면 할수록 느는 작업인데, 다만 일반 의사는 단지 이식 수술 봉합을 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많은 건수를 접하지 못하다 보니 능숙해질 시간도 없는 것이다.

마연린은 탕 수술 퍼스트 어시스턴트를 백 번 넘게 해왔으니 숙련도는 선임 주치의에 뒤지지 않았다. 평소에 수술할 때도 마무리 봉합은 그에게 일반적인 업무에 불과했다.

사람의 집중도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퍼스트 어시스턴트의 가치는 바로 집도의를 보좌해서 잡다한 일을 처리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마연린은 이전에는 자신을 드러낼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기회로 수부외과 주임과 부주임에게 톡톡히 얼굴을 알렸다.

“능 선생, 봉합 끝났어.”

마연린이 슬며시 한숨을 내쉬었다. 대장 무리 앞에서 바늘을 잡고 움직이는데 떨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운화 병원 규모의 삼갑 병원의 레지던트 무리 중에 주목받는 레지던트는 단 한 명이고, 큰 수술에 참여할 수 있는 확률은 천 마리 말 중에 종마로 뽑히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마연린은 인턴 기간에 이런 기회를 얻은 데다가 잘해내기까지 했으니 흥분이 되어 종마가 되겠다고 나설 판이었다.

“이어서 왼손 무명지 데브리망 해주세요.”

능연은 그렇게 말하며 비집고 들어가 집도의 자리를 점거했다. 마연린은 몸을 비틀고 머리만 밀어 넣어 작업할 공간을 겨우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

어린 환자는 좌우 양손을 펼친 상태로 반듯이 누워 있었고 양쪽에 두 팀씩 서 있었으니 자리가 좁기도 했다.

능연과 비주가 각각 한쪽의 메인 위치를 차지했고, 기구 간호사가 그 중간에 있었으니 조수들은 틈새를 비집고 일할 수밖에 없었다.

능연은 환자의 상처 자리를 깨끗이 한 다음, 손가락 끝 관절을 누르면서 잠시 유심히 관찰했다. 그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손가락과 뼈 사이가 부러져서 뼈 단축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뼈 단축을 하면 손가락이 정상보다 짧아질 수밖에 없지만, 지금 상황에 보기 좋고 나쁘고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인류는 선천적으로 손실을 싫어하고 ‘원가침몰’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지만, 그런 때야말로 의사의 지식과 이성이 작용을 발휘할 타이밍이기도 했다.

뼈를 줄이면 상처가 아문 다음 손가락이 흉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절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손실은 뼈 단축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손가락 8개가 문에 끼어 절단됐을 때 이미 일어난 것이다.

의사는 가능한 한 손실을 줄이는 역할을 하지만, 손실이 추호도 없게끔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처음처럼 회복된다는 말도 근본을 따져보면 미사여구에 불과했다.

확률로 따져도 단지 이식 수술의 평균 성공률은 고작 80% 정도였고, ‘우수’까지 평가받는 것은 더 어려웠다. 수부 기능 평가가 ‘우수’로 나와도 손가락이 잘린 상태에서 우수하다는 것이지, 정상적인 손가락과 같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장기간 복약과 재활은 더욱 빼놓을 수 없겠지.

5세 아동이 이런 상황이 된 건 분명 안쓰러운 일이지만, 현장에 있는 의사 중에 완벽을 추구하기 위해 속도를 늦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속도를 올리기 위해 모두 동맥 한 가닥과 부분 신경을 봉합하는 책략을 선택했고, 능연도 마찬가지였다.

능연을 제외한 집도의들은 모두 2, 30년 수술을 해온 의사이고 오래전부터 완벽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모든 선택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빠름을 선택한 대가로 어쩌면 손가락 하나 혹은 여러 개의 기능이 불완전할 수 있다. 그러나 완벽을 선택한다면 그 대가는 어쩌면 손가락 하나, 혹은 세 손가락의 괴사일 수도 있었다. 최악의 경우는 다른 손가락까지 영향을 주는 것이었다.

외과 의사는 매분 매초, 리스크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의과 의사와 파일럿의 가장 큰 차이인지도 모른다. 외과의와 파일럿 모두 극강의 수부 능력과 충분한 지식을 갖춰야 하고 적절한 판단력이 필요하다. 다른 점은 파일럿은 모든 위험을 피하려고 시도하는 반면 외과의는 각종 위험 중에 제어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니들 홀더.”

“고정.”

“12-0 주세요.”

능연은 평소의 조작법과 기본적으로 일치한 방법으로 한 스텝씩 밀고 나갔다.

그는 평소에 한 시간 반이면 손가락 하나를 이어 붙였다.

“왼손 무명지 끝났습니다.”

능연은 고개를 들어 시계를 봤다. 사실 그가 따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모두 그의 속도를 주목했다.

다른 세 팀은 단지 이식을 한 건도 해내지 못한 상황이라, 능연의 빠른 속도를 본 모두의 심경이 복잡미묘해졌다.

“계속할 수 있겠나?”

왕해양은 자신의 몫을 끝내지 못했지만 변함없이 담담하게 물었다.

“할 수 있습니다.”

“왼손 새끼손가락을 맡게.”

왕해양은 원래 비주에게 배당된 손가락을 능연에게 넘겼다.

‘내가 한 단지 이식은 퀄리티가 더 높아. 내가 한 단지 이식이 퀄리티가 더 높아······.’

비주는 모르는 척 고개를 숙인 채 머릿속으로 쉴 새 없이 스스로 위로했다.

능연이 세 번째 손가락을 절반 정도 진행했을 때 비주가 드디어 첫 번째 손가락 이식을 끝냈다. 나머지 손가락 두 개는 모두 오른쪽이었고, 끼어들래야 끼어들 틈이 없어서 그는 별수 없이 화를 꾹꾹 누르면서 수술대에서 비켜났다.

능연은 고개도 들지 않고 묵묵히 제 할 일을 했다. 타이트한 일정에 익숙한 그였지만, 4시간에 걸친 정밀 작업에 정신이 점점 피폐해졌다. 철인 삼종 경기에 참석한 선수가 평소에 아무리 훈련을 해도 3/4 혹은 절반쯤엔 지쳐서 혀를 빼무는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힘들기는 능연보다 주임 왕해양이 더 심했다. 네 팀 의사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데다 전체 수술 과정을 제어해야 했으므로 막중한 스트레스까지 더해진 상태였다. 자신에게 배당된 손가락까지 처치하고 나니 그는 진이 다 빠졌다.

왕해양은 얼마 전 비슷하게 지쳤던 기억을 떠올리고 고개를 돌려 능연을 바라봤다. 능연이 자신의 조수로 진행했던 단지 이식 수술 경험을 왕해양은 내내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 왕해양은 단지 이식 수술 기록을 세웠다. 물론 그건 본인에게만 의미 있었고, 다른 사람에겐 아무런 의미 없는 속도 기록이었다.

“왕 주임님, 제가 오른손 중지를 할까요?”

비주는 계속 기다리면서 중지 X-ray도 보고, 언제 자리가 비어 다시 한번 할 수 있을까 노리고 있었다.

운화 병원에서 단지 이식을 가장 많이 한 비주는 이제 한 번 정도 더 하면 속도는 더 빨라지고 퀄리티는 여전히 안정적이리라고 자신했다.

“직접 하겠네.”

그러나 왕해양은 비주에게 기회를 넘기지 않았다. 전체 수술 책임자인 그가 수술대를 떠날 이유가 없었다. 그러자 비주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주임 의사인 왕해양은 그에게 상급 의사였고 외과 의사끼리는 언제나 기분 나쁠 정도로 솔직하게 교류했다.

시무룩해진 비주는 한쪽으로 가서 왕해양을 보고, 곽건명을 보고, 능연을 봤다.

사람들은 대부분 능연의 동작을 보고 있었다.

마스터급 대접 봉합술.

마스터급 신경 속막 문합술.

그랜드마스터급 단지 이식.

3000건 수부 해부 경험.

마스터급 MRI (사지) 판독법.

그 모든 기술을 혼합해서 사용할 때는 한순간의 폭발적인 기교가 아닌, 강한 기교를 끊임없이 전개했다.

근건 문합은 강도가 높고 안정도도 높았다.

혈관 문합은 특급 세사로 봉합해서 문합에 성공하면 큰 혈관이 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신경 문합은 정확히 대합(對合)하여 빠르게 봉합했다.

모든 스텝을 특이한 난도가 없는 것처럼 손쉽게 처리했다. 한참 동안 지켜보던 참관 의사들은 심지어 자신이 처치실에서 데브리망 하는 걸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도 일으켰다. 그만큼 능연의 표정이 편해 보였고, 수술 진도도 안정적으로 쭉쭉 나갔다.

다른 사람들이 단지 이식을 하면서 부딪히는 난관이 어째서 능연에게는 일어나지 않을까?

그 생각이 든 의사들은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기술 자체도 물론 중요했다. 하지만 능연이 내리는 임상 결정에 의사들은 더욱 할 말을 잃었다. 인간의 결정은 모두 책임이 따른다. 외과의는 특히 책임과 직접 부딪힌다.

데브리망할 때 혈관을 너무 많이 자르면 혈관 길이 부족 문제를 끌어안은 채 이식하는 결과를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점을 고려해서 너무 적게 자르면 혈관 감염 혹은 혈관 문합 실패라는 결과를 맞을 수도 있다.

정확한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말은 쉬워도 실행하기엔 어려운 일이다. 시간을 무한대로 되돌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완벽한 수술을 할 수 있을까?

당연히 불가능하다.

일단, 외과의는 수술대에서 1분, 수술대 아래에서 10년 공을 쌓는다고 한다. 한 가지 결정의 영향력은 어쩌면 2분 뒤, 어쩌면 2년 뒤에 나타날 수도 있다. 수술대에서 마시는 후회 약은 배 터지도록 먹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리고 완벽한 수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들의 눈에 능연이 하는 수술이 완벽한 것처럼 보일 뿐이고, 능연도 가능한 한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할 뿐이었다. 그때 왕해양이 갑자기 능연을 불렀다.

“다 해가나?”

“지금 신경 문합 중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피판 이식도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능연은 열심히 봉합하던 상태에서 정신을 차린 듯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피판 이식이란 바로 피부 이식이었다. 환자 자신의 몸에서 피판을 얻어 부족한 부분에 이식하면 양쪽 모두 새 살이 돋아 회복에 유리하다.

그러나 일반 피부 봉합에 피판 이식까지 하려면 작업량과 난도가 모두 올라간다. 그런 작업은 마연린이 하기에 적당하지 않았다.

왕해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 문합 끝나면 피판 이식은 강 선생에게 넘기고 자네는 와서 날 돕게.”

지금까지 왕해양의 퍼스트 어시스턴트를 하던 강구량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능연을 힐끔 보고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신경 문합을 마친 능연은 주치의 강구량과 자리를 바꿨다.

실력이 출중한 강구량은 평소에 조금 쉬운 수술은 집도도 충분히 해낸다. 그래서 그런 그가 퍼스트 어시스턴트를 하는 것도 억울한데 그마저도 내쳐질 줄을 어찌 알았을까. 게다가 자리를 차지한 능연은 더 젊고, 더 멋지고, 더 키가 컸다.

그러나 반항할 거리가 없었다. 능연이 탕 수술을 몇백 건이나 한 건 둘째 치고 단지 이식도 능숙한 탓이었다. 왕해양이 그런 능연을 조수로 쓰겠다는데 강구량이 뭐라고 할 수 있을리가.

수술실은 회의실처럼 고요했고 윗사람의 연설 소리같이 웅웅대는 드릴 소리만 울려 퍼졌다.

능연은 집도의에서 왕해양의 퍼스트 어시스턴트로 전환하여 권력자에서 훅맨이 되었지만 불편해하지도 지나치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능연에게 이는 그저 단순한 공간 위치 변화일 뿐이었다. 능연은 의사의 지위 같은 것도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런 생각 자체를 거부했다.

어릴 때 합창단 활동 때도 선생님은 당연히 그를 맨 앞줄 정중앙에 세웠다. 심지어 그가 노래하기 싫다고 명확하게 표현한 다음에도 선생님은 차라리 립싱크를 시킬망정 합창단을 그만두는 걸 바라지 않았다. 그때부터 능연은 공간 위치의 중요성은 사람 자체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퍼스트 어시스턴트 위치에 선 능연은 사실 단순하게 바늘을 꿰거나 선을 당기는 역할이 아니었다. 왕해양과 협조한 적이 있던 능연은 이제 왕해양의 움직임에 적응하여 결점 보완 역할까지 해냈다.

왕해양이 죽을 것처럼 힘들어하는 동안 능연은 더 부지런하고 힘차게 움직였다.

중국 역사상, 첫 번째 아동 단지 이식은 79년 10월 24일에 401 병원에서 성국량의 집도로 이뤄졌다. 그러나 42시간 동안 연속 수술을 한 탓에 손가락 네 개를 이식하고 마지막 약지는 실패했다.

왕해양은 42시간 동안 수술을 이어갈 체력도 없을뿐더러 4시간 수술로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능연을 부른 것도 순조로운 항해를 위해서였다.

30분이 더 흐른 후, 왕해양은 기운이 완전히 빠져서 능연에게 동맥을 꿰매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가 마지막 부분까지 진행했기 때문에 단순히 속도를 올리는 건 의미가 없었다. 그보다는 손가락 혈관을 최대한 많이 봉합하는 게 나았다.

능연은 알겠다고 대답하고 니들홀더를 요구했다.

그리고 겨우 몇분 만에 혈관 하나를 꿰맸다.

“하나 더 꿰맬까요?”

능연은 아이의 오른손 중지를 만져 보았다. 손가락 하나둘 잃은 환자에 비해서 한 번에 8개나 잃은 바람에 대상작용(代償作用: 생체 기관의 일부가 장애를 받거나 없어졌을 때, 나머지 부분이 커져서 부족을 보충하거나 다른 기관이 그 기능을 대신하는 일)을 제공할 손가락이 없으므로 회복이 더 어려울 테지.

그는 앞으로 아이의 재활 활동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지 상상할 수 있었다. 지금 혈관을 많이 봉합할수록 환자의 회복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고 수부 기능도 더 잘 보증할 수 있었다.

그러니 왕해양은 당연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능연은 혈관 4가닥 문합과 더 어려운 신경 속막 문합도 진행했다.

거기까지 진행했을 때 수술은 이미 5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능연은 왼손 중지, 무명지와 새끼손가락 봉합을 완성했고, 왕해양을 보조해서 오른손 중지 봉합을 마무리했다.

모든 과정이 침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수술실 및 휴게실에 모여 수술을 지켜보는 의사는 점점 많아졌다.

단지 이식은 원래 수부외과의 고차원적인 수술 중 하나였고 수술 빈도도 꽤 높았다. 운화 병원 수부외과 의사는 영화를 보는 것보다 단지 이식 수술을 더 많이 했다.

영화를 몇 년 동안 보다 보면 자유롭게 영화 평론을 쓰는 것처럼, 직접 수술을 경험한 임상의들은 단지 이식에 대한 감상도 점점 많아졌다.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앞다퉈 자신의 감정과 소견을 내쏟았다.

“멋지다!”

“진짜 멋져!”

“끝내주게 멋져!”

“완전 멋짐.”

“진짜 진짜 멋짐.”

“와, 멋져!”

- 성과: 칭찬

- 성과 설명: 같은 의사의 칭찬은 의사에게 가장 큰 보상

- 보상: 초급 보물 상자

능연은 수술실에서 걸어 나오는 순간 잇따른 시스템 알림을 받았다. 마지막에 모든 상자를 열었는데 놀랍게도 모두 9개였다. 모두 스태미너 포션이 나왔지만, 같은 의사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기준을 고려해보면 꽤 많은 수량이라 의외라고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배고파 죽겠네.”

“식당에 밥 있겠지?”

“배달시킬까?”

의사들은 광장에 비둘기처럼 웅성웅성 모였다가 흩어졌고, 수술실의 엄숙한 분위기도 모두 사라졌다. 왕해양도 빵긋 웃는 얼굴로 부주임들에게 함께 식사하자고 권하면서 능연의 팔을 끌어당겼다.

“능 선생 바로 돌아가지 말고, 우리 수부외과에서 유명한 요리 장중보(掌中宝. 닭발 중간에 볼록한 부분만 모은 요리. 손바닥 중간의 보물이라는 뜻) 좀 먹고 가.”

“오, 오늘 장중보 나오나요?”

“물론이지. 오늘 이렇게 큰 수술을 했는데 대표 요리도 안 먹어주면 되겠어?”

능연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곁에 있던 의사들이 먼저 환호했다. 왕해양은 그의 팔을 놓지 않고 식당으로 갔다.

운화 병원은 응급 의학과 수술 구역에 작은 식당이 있을 정도니 수술 층에 있는 식당은 당연히 규모가 더 컸다.

40개 가까운 수술실에 매일 진행하는 수술량이 2백 건이 넘는다는 건 매일 의사와 간호사가 수백 명이나 그 안에서 바쁘게 움직임을 뜻했다. 당연히 그들에게 음식을 찾아 헤맬 시간과 에너지를 줄여주는 게 필요하다.

수부외과 대표 요리라는 것도 사실 진료과 안에서 자체적으로 인정한 것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과의 대표 음식이 되었다.

장중보는 수부외과 회식 때 반드시 시키는 음식이었다. 처음으로 단지 이식을 한 의사들은 장중보 한 접시를 시켜서 수술 과정을 묵묵히 회상하곤 했다.

능연은 왕해양의 손에 끌려 자리에 앉았다. 왕해양은 하하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능 선생은 그 실력에 얼굴도 잘생겼어. 이따 기자 올 건데 같이 가세. 괜찮지?”

“무슨 기자요?”

“운화 일보. 5살짜리 아이의 손가락 8개 단지 이식 수술은 그쪽에서도 탐내는 기사거든. 창서성 전체를 봐도 손에 꼽히는 큰 수술이었으니.”

물론 수부외과 수술 중에서 말이다. 능연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 알겠다고도 바로 거절하지도 않았다. 그도 기자를 만난 적은 있었다. 어릴 때는 매일매일 뒤를 쫓으면서 사진을 찍는 기자도 있었다. 대학생이 된 이후로는 각종 인터넷 사이트 대문을 장식한 적도 많았다.

능연은 그런 것들에 별로 관심이 없었고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사람이 되자’ 같은 인생 목표도 없었다. 그러나 만약 기자가 나타난 것 때문에 앞으로 병원에서 일하기 편해진다면 이를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맞다. 능연 자네 로테이션 아직 안 끝났나? 어때, 수부외과로 오지 않겠나?”

왕해양은 좋은 분위기를 틈타 싱긋 웃으면서 건의했다. 운화 병원 수부외과는 병원 엘리트 과 중의 엘리트 과였다. 사람이 많고 세력이 클 뿐만 아니라 고수들도 넘쳐서 벌써 몇 년이나 본과 졸업생을 뽑지 않았다.

수부외과에서 해마다 내는 한두 명 모집 T.O.에 전국이나 해외 의과대학 박사 졸업생이 줄을 설 정도였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단순히 탕 봉합만으로 수부외과 흥미를 끌 수는 없다. 굴근건 봉합은 어찌 됐든 작은 부분이고, 탕 봉합을 주력 수술 방식이라고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수술에 정통한 것이 번 주임 하나뿐인 것도 있다.

그러나 단지 이식은 다르다. 단지 이식은 어느 수부외과를 가든 보물급이었다. 운화 병원에서 단지 이식을 할 줄 아는 의사를 탈탈 털어서 겨우 10명을 모았는데 실력이 모두 능연보다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창서성 최강 수부외과였고 북경 이외 어느 도시에 던져놓아도 손에 꼽힐 실력자들이었다.

능연이 단지 이식에서 보인 실력은 왕해양 등 의사들이 그를 보는 가치 평가를 한순간에 8000m나 더 끌어 올렸다.

“곽 주임님이 한동안 로테이션 안 해도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자네가 원한다면 우리 금서 주임이 원무 회의에서 제안만 하면 된다네. 능연, 아직 전체 진료과 로테이션을 하지 않아서 잘 모를 수 있는데, 우리 운화 병원 수부외과는 병원을 통틀어서 1등 진료과라네. 핵심 진료과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라니까. 규모, 대우, 비전, 그 어느 걸 따져도 응급 의학과보다 훨씬 낫지. 응급 의학과에 뭐가 있단 말인가? 지금 수술실도 겨우 4개 아닌가. 우리 수부외과는 바쁠 때 동시에 수술실 10개도 굴린다고. 그리고 병원에서도 보통 우리가 먼저 쓰게 해주지.”

왕해양은 이어서 수부외과 역사와 운화 병원 수부외과가 전국에서 어떤 위치인지에 대해서 설명했다.

운화 병원 수부외과는 확실히 응급 의학과보다 여러 차원에서 위에 있었다. 응급 의학과는 운화 시에 성립 병원과 육군 병원 같은 경쟁 상대밖에 없지만, 수부외과는 경쟁 범위가 여러 성으로 펼쳐진다. 더 나아가서, 전문 진료과는 애초에 응급 의학과 같은 진료과보다 의사가 깊이 파고들고 연구하기 적당한 과였다.

능연이 응급 의학과에서 하는 일도 사실 전문 진료과에서 하는 일이었다. 그가 수부외과 일을 끊임없이 뺏어올 수 있는 것도 수부외과의 수술량이 차고 넘쳐서 다른 곳에서 환자를 데려가는 것을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아예 수부외과에 들어간다면 능연은 더 많은 수술 기회를 얻을 수 있으리라.

“장중보 맛있네요.”

능연은 수부외과 대표 음식이 나오자, 냉큼 하나 집어 들어 맛을 보며 음미했다. 왕해양은 멍해졌다가 다시 웃음 지었다.

“주방장한테 말해뒀거든. 우리 수부외과에서 나오는 장중보는 진짜 장중보가 아니면 안 된다고. 닭발 중간에 볼록 나온 살 말이야. 외부 식당에서 파는 장중보는 대부분 닭 오돌뼈를 쓰지. 닭 무릎뼈 말이야. 비슷한 거 같아도 완전히 다르거든. 우리 수부외과는 그런 디테일을 추구하지 않냔 말이야.”

“저는 응급 의학과에서 족발을 자주 먹습니다. 연 선생님한테 한 접시 가지고 오라고 할게요.”

능연은 핸드폰을 꺼냈다. 왕해양이 미처 말리기도 전에 그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잠시 후, 연문빈이 접시 가득 족발을 들고 나타났다.

“허벅지 살도 두 덩이 가지고 왔습니다. 수부외과 회식이라는 말을 듣고, 곽 주임님이 본인 것도 양보해 주셨거든요.”

연문빈이 접시를 테이블에 내려놓자 묵직한 소리가 났다. 수부외과 모든 의사를 배불리 먹이고도 남을 만큼 족발이 쌓여 있었다. 반지르르, 오동통한 족발은 코를 자극하는 향기를 냈다.

“하나 맛보자.”

의사 하나가 사양치 않고 앞으로 나와 족발 하나 집어 들고 돌아섰다. 체면을 차리면서 돈을 내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능연이 쏘는 거라고 하자 사양하지 않고 족발을 들고 갔다.

수술 층에 있는 작은 식당에 곧 ‘촙촙’ 족발을 뜯는 소리가 웅성웅성 댔다. 수부외과가 아닌 의사들도 자연스럽게 그쪽을 주목했다.

“저기, 족발 얼마인가요?”

동작 빠른 의사는 연문빈 앞에 섰을 때 벌써 지갑을 꺼내 들고 있었다. 연문빈은 소심하게 능연을 쳐다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돈은 벌써 능연이 냈다고 말했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인 능연은 핸드폰을 꺼내 몇 번 만지더니 상대에게 내밀었다.

“QR코드로 계산하죠. 하나에······ 25위안 하죠. 계산하기 편하게.”

연문빈은 재빨리 일어나 돈을 낸 의사에게 족발을 건넸다.

‘그동안 나는 10위안 원가로 돈 받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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