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95화 (84/877)

곽종군은 묵묵히 레지던트 자료를 뒤적이며 누구를 능연에게 붙여줄까 고민에 빠져 있었다.

우선 건장한 놈이어야만 했다.

고분고분하고 인내심 있는 연문빈도 고작 두 달 견뎠다. 그런데 그보다 경력이 낮고 온순한 사람을 찾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숫자를 늘릴 수도 없었다.

한정된 응급 의학과 인원에서 스물 남짓한 레지던트는 모두 주임들 밑에 있었고, 부주임에게 주기도 모자랐기에 주치의들은 손이 비는 레지던트를 찾아다니며 구하는 실정이었다. 단숨에 두 명을 능연에게 붙여준 것도 사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곽종군 같은 군인에 능연의 실력이 대단했기 때문에 그나마 가능했었다.

건장한 놈은 물론, 거기다 똑똑해야 했다.

의사들은 레지던트 시절에 가장 실력이 늘기도 하지만, 여러 습관이 몸에 붙기도 한다. 곽종군 같은 의사를 따르면 말을 거침없이 하고 몸을 아끼지 않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주 선생 같은 의사 밑에서는 말조심하면서 매일 매일 신나게 보내게 될 가능성이 크다. 능연 같은 의사는 기술로 대성하는 가장 정통적 유형인데, 연공서열을 따져도 주임까지 충분히 될 수 있고 자신이 바란다면 더욱 발전할 가능성도 있는 유형이다.

곽종군이 꿈꾸는 대형 응급 의학과에는 정형외과 의사가 빠질 수 없었다. 정형외과의 고수익 없이 대형 응급을 어떻게 해나간단 말인가.

곽종군은 한 사람 골라내고 고개를 젓고, 또 골라내고 다시 고개를 저었다.

레지던트들이 스카우트되는 것도 걱정이었다. 일반적인 레지던트라면 이직해도 그만이지만 한동안 키운 다음에 이직하면 손해가 너무 컸다.

거기까지 생각한 곽종군은 후보 한 사람을 다시 X를 그었다. 결국, 그의 책상엔 마지막 이력서 하나만 남았다.

여원.

동제 의대를 졸업한 석사 학력의 레지던트 3년 차였다. 진료팀 3팀을 따라다니면서 기회를 잡을 요소가 있었을 텐데, 보아하니 각 팀 팀장의 총애를 못 받은 것이 분명했다.

곽종군도 키 작고 온종일 커다란 둥근 안경을 끼고 있던 이 여자 의사를 기억하고 있었다. 여원은 항상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사람을 주시했다.

과 주임인 곽종군이 레지던트를 접할 일은 드물었지만, 이력을 보면서 흥미로운 점 하나를 발견했다. 8개월 해외 연수를 다녀왔기 때문에 여원은 병원과 6년 계약이 되어 있었다.

그를 확인하자 곽종군은 안심했다.

일단 불러보고 안 되면 다른 사람을 구하면 그만이었다. 곽종군은 바로 여원을 불러와 한바탕 지시를 내리고 그를 친히 수술실로 보냈다.

능연은 요즘 수술실에 살면서 ‘4시간 작업, 10분 수면’이라는 개념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간호사들이 적극적으로 능연을 위해 혈압, 심박 등을 재고 있는 걸 알고 있기에 곽종군도 그냥 그대로 내버려 뒀다.

여원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곽종군 뒤를 따르면서 검은 플라스틱 안경테 뒤에서 쉴 새 없이 능연과 그의 치료팀을 관찰했다.

그렇다. 집도의 한 명에 조수 두 명. 기본적으로 치료팀이라고 불릴 만한 조직이었다. 마연린이 훈련의라 좀 눈에 띄어서 그렇지, 이제 여원까지 추가된다면 부족하지 않은 조합이었다. 작은 진료과 부교수의 치료팀도 이 정도 수준이었다.

“능연, 우리 과 수재를 데리고 왔다네. 여원 선생이야. 여원 선생은······ 여 선생, 자기소개 직접 하겠나?”

곽종군은 머리통을 내리치며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늙었네, 늙었어. 이력을 두 번이나 봤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군.’

“능 선생, 안녕. 직장(直腸) 전공 여원이야. 동제 대학······.”

“응?”

“뭐?”

“직장?”

능연을 제외한 수술실에 있는 모두가 여원을 바라봤다. 한창 자고 있던 소가복은 눈을 번쩍 뜨고 곽종군을 바라봤다.

소가복은 눈을 비비고, 또 비비고는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허리춤의 벨트를 조이면서 둥근 의자 위에 있는 버튼을 찾았다.

“전공이 왜······ 직장인가?”

이력서에 직장이라는 두 글자가 있었다는 걸 전혀 기억하지 못한 곽종군의 목소리가 어색했다.

여원은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석사 때는 응급 의학과 전공이었습니다. 다만 직장에 흥미를 더 느껴서 연수 기간에 주로 직장 분야를 연구했고요. <여학생 행위 방식과 직장 질환 관계 조사 분석>이라는 논문으로 졸업했습니다.”

“응?”

“뭐?”

이번엔 수술 중이던 능연도 고개를 들어 여원을 바라봤다.

150cm 정도 되는 여원은 심지어 능연의 앉은키보다 작았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동그란 눈에 뜨거운 학구열이 활활 타고 있었다. 그리고 농후한 수술 욕구도.

“지도 교수가, 그걸 통과시켜 줬나?”

곽종군은 귀를 의심했다. 자신의 연구생이 이렇게 엉터리로 연구를 한다면 아마도······.

여원은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도 교수가 발표하라는 논문도 발표했습니다. 1구역 정기 간행물로요.”

“병원 내 감염에 관한 내용이었던가?”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곽종군이 물었고, 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곽종군은 탄식했고, 연문빈과 마연린은 경악했다.

소위 1구역, 2구역 간행물이란 간행물 등급의 분류 중 하나였다. 같은 SCI급 간행물도 상위 5%에 드는 간행물은 JCR에서 1구역에 분류하고, 6%에서 20% 간행물은 2구역으로 분류한다.

과학 분야든 임상의든, 논문이 2구역에 분류되면 거들먹거리기 충분하고, 1구역에 분류되면 다른 사람들도 대단하다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지금 비몽사몽 잠든 소가복도 중문 핵심에 드는 게 가장 큰 소원일 정도로, 대부분 간행물은 SCI에 들 가치도 없다. 다시 말하면 하위 50% 4구역 간행물보다 못하다는 말이다.

2구역, 1구역은 수많은 연구자가 꿈도 못 꾸는 구역이었다.

여원이 6, 7년 전 석사 졸업증과 논문 한 편을 가지고 운화 병원에 들어온 건 곽종군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턴 생활 3년 동안 여원은 더는 논문을 발표하지 않았고 임상 실력도 발휘하지 않았다. 흙탕물에 떨어진 잉어처럼 평범한 인간으로 전락한 느낌이었다.

“단지 이식을 하는 건 좋은 시작이 될 수 있을 걸세. 제대로 배워 두게.”

곽종군은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몰랐다. 하지만 하나만은 명확했다. 아무리 잘난 레지던트라도 과의 규정대로 일해야 한다는 것. 능연처럼 잘나지 않은 이상 말이다.

여원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본 곽종군은 다정하게 능연에게 말을 걸었다.

“능연, 자네도 너무 무리하지 말게. 수술하고 나면 좀 쉬고, 잡다한 일은 조수한테 넘겨.”

연문빈과 마연린은 눈꺼풀이 튀었지만, 얼굴엔 미소를 짓고 있어야만 했다.

능연은 ‘네’ 라고 대답하고 수술에 집중했다.

“여원, 능연 밑에서 잘 배우게. 많이 보고 적게 묻고 지시에 따르고.”

능연이 직함이 없으니 자신이 나서 줘야 한다고 생각한 곽종군은 좀더 심각한 말투로 말했다. 여원은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손으로 안경을 밀어 올렸다. 플라스틱 안경테가 너무 싸구려틱하지만 않았다면, 미모 지수에 가산점을 받을 만한 동작이었다.

수술실에서 오래도록 외로웠던 연문빈은 저도 모르게 대화를 시도했다.

“여 선생, 그 졸업 논문, 마지막 분석 결과가 뭐였어?”

“무슨 뜻이야?”

“그 여학생 직장 질환 말이야.”

“아, 재학 중인 여학생 발병률은 44%, 그중 치질이 17%, 치열, 항문 음와염, 변비는 기본적으로 50%, 그 외에도 치루 2건, 폴립증도 한 건 있었지.”

여원이 머리를 리드미컬하게 끄덕이며 외우듯 내용을 읊었다.

“여······ 학생이 말이야?”

연문빈은 제가 잘못 질문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마연린은 호기심에 떠밀린 나머지 더욱 잘못된 방향으로 질문을 던지면서 왜냐고 물었다. 여원은 양손을 세우고 능연의 동작을 살피면서 논리적으로 대답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운동, 아침 식사, 음료, 간식 그리고 배변 습관이 큰 영향을 주었지. 그리고 좀 재미있는 건, 고등학교 화장실이 재래식 변기가 많은데 여고생들이 항문을 씻어 내는 습관이 없어서······.”

“누가 화장실에서 그렇게 해.”

연문빈이 어이없다는 듯 한마디 던졌다.

“하지만 인류는 배변 활동을 마친 후 항문 주변 피부가 방사성 접이 배열이 된단 말이지. 휴지로 닦는 것만으로는 깨끗하게 닦을 수 없어. 그러다 보면 잔변이 피부 오염을 일으키고, 장기적으로 자극하게 되면 국부 저항력을 갉아먹어서 직장 질환 발생 확률을 높인단 말이야.”

“아, 왜 이런 주제로 이야기하는 거냐, 우리. 됐다, 올해 동창회 안 갈래.”

“선생님은 양변기 쓰시잖아요. 목욕도 자주 하고, 그러니까 괜찮아요.”

연문빈이 깊게 한숨을 내쉬며 하는 말에 수술에 지쳐 있던 간호사가 한마디 던졌다.

“됐습니다. 연 선생님. 가서 쉬세요. 마 선생님이 퍼스트 해주시고, 여 선생님 세컨 해주세요.”

조수들이 이야기를 마치길 기다렸던 능연이 새로 작업을 분배했다. 안 그래도 쓰러질 것 같던 연문빈은 쉬라는 말을 듣자마자 냉큼 얼마나 쉴 수 있는지 물었다. 능연이 종일 쉬게 할 리가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랬다간 마연린이 쓰러질 테니까.

“일어나면 오세요.”

능연은 구체적인 시간을 정하지 않았다. 그는 연달아 스태미너 포션 두 병을 마시고 연속으로 40시간 넘게 일했다. 몇 시간만 더 하다가 세 번째 포션은 마시지 않고 가서 쉴 생각이었다.

의사가 몸으로 약물 테스트를 하는 것도 심한 일인데, 너무 과하게 복용하는 것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으니까.

능연의 말에 연문빈은 미적거리다가 상황이 변할까 봐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 마연린은 부러운 듯 연문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포셉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그가 앉아 있던 위치로 가서 현미경에 대고 잠시 관찰하다가 손을 내밀어 링 플라이어(ring pliers. 둥근 포셉)를 요구했다.

여원은 한쪽에서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수술복을 입었다. 150cm밖에 안 되어서 S 사이즈 수술복도 조금 길었지만, 표정만은 지나칠 정도로 진지했다. 여원은 양손을 가슴 앞에 내민 채 발끝을 세우고 능연 곁으로 다가가 고개 숙여 봉합 부위를 살폈다.

“글라인딩 컨튜전(grinding contusion)이네. 연조직 손상이 심각하면 성공하기 어렵겠는데? 회복된다고 해도 손가락 기능이 회복되긴 어려울 것 같고.”

“환자와 보호자가 강력하게 요구해서요. 전에 정형외과에 계셨나요?”

한눈에 알아보는 여원의 말에 능연이 되물었다. 글라인딩 컨튜전은 정형외과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증상이었다.

“응급 의학과에서 이런 증상을 자주 겪어서 관심이 생겼지. 근데 그때는 다리 쪽 글라인딩 컨튜전을 주로 살폈어. 자주 봤거든.”

여원은 커다란 플라스틱 안경테를 밀어 올리며 대답했다.

“얼마나 많이 아는데요?”

능연이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새로운 조수의 상황을 이해하려면 상급 의사처럼 묻는 것도 불가피했다. 사실 상급 의사가 하급 의사에게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대부분 재미로 그러는 거지만, 10% 정도는 조수의 상황을 이해하고 유용하게 부리려는 목적도 있었다.

여원은 어느 정도 경력 있는 레지던트였지만, 능연 앞에서 여전히 진지함을 유지했다.

“많이 아는 것도 아니야. 일반적으로 다리 쪽 글라인딩 컨튜전은 대부분 교통사고나 공장, 건축 현장 사고에서 일어나지. 그래서 진료할 때 손상 기제를 알기 위해 사고 과정을 파약해야 하고. 동시에 전신 상태도 신경 쓰면서 구체적으로 다친 부위까지 살펴야 하지. 발등과 후경골 주요 동맥 박동을 우선 진단하고······ 데브리망, 배농 같은 기초 치료하고 근막실의 측압과 감압, 항생제 예방 감염, 그밖에도 상처 표면을 덮어야 하고. 내고정으로 효과적으로 족부 해부 구조를 회복할 수 있다고 보는 학자도 있어. 무바라크는 족부를 네 부분으로 나눴고, 압력 4Mpa는 임계치가 되어야 역전되지 않는 근육 신경 괴사를 일으키지 않을 수 있지. 그리고 계속 발생하는 비타민 화······.”

“저기, 죄송한데요. 좀 멈추면 안 될까요? 예의가 아닌 건 아는데, 그런데 이러다가 정말 잠들 거 같아서요.”

마연린이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여원의 말을 끊었다. 그는 저절로 감길 것 같은 눈을 억지로 뜨고 있었다. 작은 마을 출신 젊은이인 마연린은 언제나 말을 예쁘게 했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조금 더 늦게 말을 끊었다가는 정말 최면에 빠질 듯했기 때문이었다.

여원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멈추고 미소 지었다.

“사실 내가 아는 것도 별로 없어서, 여기까지야.”

“충분합니다.”

능연이 평가를 내렸다. 그랜드마스터급 단지 이식 기술을 터득했지만, 글라인딩 컨튜전에 대한 지식은 여원보다 확실히 떨어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원의 설명이 논리적이고 내용이 구체적인데, 사전에 준비한 것도 아닐 테니 그의 지식이 탄탄하다고 볼 수 있었다.

비몽사몽 하던 소가복도 그 소란에 잠에서 깼다. 케이스를 직접 준비했기 때문에, 연문빈과 마연린이 번갈아 자는 동안에도 그는 그러지 못했다. 기껏해야 능연이 탕 수술로 두뇌 회전을 할 때 30분에서 한 시간 자는 정도였다.

잠은 자도 방에 돌아가서 푹 자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능연이 수시로 1, 2분 마사지를 해줬기 때문이었다. 그게 훨씬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라, 그 호사를 누리려고 소가복은 잠을 수술실에서 잤다.

그렇게 30시간 넘게 버티는 동안 의식이 몽롱해졌지만, 마취과 의사는 원래 항상 그래와서 견디려고 들면 못 견딜 것도 없었다. 소가복은 오히려 여원의 말소리에 잠이 깨서 마른세수를 하고 그 틈에 리포트를 쓰면서 데이터를 관찰했다.

수술실 온도는 언제나 섭씨 23도를 유지했기에 편안하고 쾌적했다. 그리고 사방 구석에 달린 작은 스피커에서 들리는 듯 마는 듯 경음악이 흘러나왔다.

능연이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간호사들은 불가피하게 음악을 들으면서 즐기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간호사의 취향에 따라 트는 음악은 달랐지만, 집도의를 방해하지 않도록 다들 음악을 최대한으로 낮췄다. 능연도 음악에 대해서는 전혀 간섭하지 않았다.

그의 집중력은 극도로 높았고, 각종 정신 테스트를 할 때도 그 방면에 기이할 정도의 높은 수치를 나타내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일반 생활할 때도, 능연은 어릴 때부터 진료소가 소란스럽든 말든 숙제를 했고, 시장통에서도 제 할 일을 잘했다.

수술실에서는 더욱 물 만난 물고기 같았다.

“단지 이식 해봤나요?”

“아니.”

능연의 질문에 여원이 예상된 대답을 했다. 직장 전문의가 응급 의학과에서 일하는데, 단지 이식을 해봤을 리가. 보통은 없는 게 정상이기에 능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훅 들고 시야 잡아 주세요.”

그는 우선 단순한 작업을 넘겼다. 2배율 현미경은 이미 사용하고 있으니, 여원은 안경식 현미경을 쓰거나 맨눈으로 작업해야 했다. 세컨 어시는 개인 취향에 따라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마이크로 글래스에 익숙하지 않은 여원은 차라리 고개를 더 수그리는 쪽을 택했고, 지루한 듯 능연의 동작을 지켜봤다.

“동맥 찾는 거야?”

“어떻게 아셨어요?”

여원이 갑자기 묻는 말에 능연이 놀라 되물었다.

“정동맥을 역행 박리 하길래, 그런가 보다 했지.”

간단하게 대답하는 여원의 말에 마연린이 당황했다.

“미리 준비하지도 않고 그런 걸 안다고요?”

여원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능 선생이 지혈대를 푸는 걸 봤거든. 동맥을 다 꿰맸다는 뜻이니까, 이제 당연히 정맥을 찾겠지.”

“이론은 그렇지만······.”

마연린은 몹시 놀라 하하하 웃음을 흘렸다.

‘이것이 1구역 논문 집필자의 위력인가? 너무 막강하잖아! 내 자리가 위험해. 외할머니한테 건어포 보내 달라고 해야겠다······.’

“세척 좀 해주세요.”

능연은 잠시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목을 돌렸다. 순환 간호사가 곧바로 준비해뒀던 헤파린 식염수를 들고 왔다. 플레이트 안에 습윤 전용 헤파린이 포함된 생리 식염수가 담겨 있었다. 혈관 봉합 시간은 매우 길어서 혈관 노출 시간이 너무 오래되고 건조한 것을 피하려고 자주 헤파린 식염수로 세척해야 했다.

간호사는 랙을 사이에 두고 플레이트를 세컨 어시 여원에게 건넸고, 여원은 조심스럽게 받아들고 수술 시야에 겨냥해서 와르륵 쏟았다.

“렌즈에 닿지 않게 조심해요.”

마연린이 재빨리 한마디 했다. 여원이 다급하게 방향을 틀었는데 너무 많이 틀어서 물이 반이나 바닥에 떨어졌고 그 바람에 튄 물에 소가복이 잠에서 깼다.

“물도 제대로 못 부어?”

힘들게 얻은 휴식 시간에 몇 번이나 잠이 깬 소가복이 툴툴거렸다. 여원은 고뇌하는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리고 다급하게 사과했다.

“이따 한 번 더 부으세요.”

능연은 뭐라고 하지 않고 고개를 숙여 정맥을 봉합하기 시작했다. 몇 분 후, 첫 번째 정맥 봉합을 완료한 후 다시 한번 헹구라고 미리 말했다.

여원은 다급하게 간호사가 건넨 플레이트를 받아들여 살짝 기울이고는 정확하게 수술 구역에 느릿느릿 부었다.

“좀 더 빨리요.”

“아.”

능연이 미간을 좁히자 여원이 조금 더 기울였다.

“더요.”

“아.”

“더.”

촤악.

여원은 남은 물을 다 붓자 수술 시야에 흥건하게 홍수가 났다. 사람들은 모두 넋이 나간 채 여원을 바라봤고, 연문빈은 웃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알고 보니 곰손이구만!’

능연은 예상외로 욕을 하지 않았다. 집도의는 욕쟁이라는 인식이 사람들의 뇌리 깊숙이 박혀 있지만 능연의 수술실에서 욕이 들리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었다.

순환 간호사가 억울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젊은 집도의였다면 간호사는 지금쯤 난리를 부렸을지도 모른다. 수술실 욕 배틀을 따지자면, 초짜 의사가 유일하게 이길 수 있는 건 전신 마취된 환자밖에 없을 것이다.

다행히 능연의 명령이라 간호사는 별말을 하지 않았지만, 여원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는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놀란 마음을 달래며 재차 사과하는 여원의 표정도 시무룩했다.

새로운 팀에 온 만큼 출발이 좋길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모든 게 엉망이 된 느낌이었다. 여원은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능연은 큰 표정 변화 없이 여전히 그에게 훅을 쥐게 했고 한참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여 선생님, 장갑 갈아 끼세요.”

“응? 장갑?”

“장갑에 피 묻었어요.”

훅을 쥐고 있던 여원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마연린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제야 여원이 손을 뒤집어 보다가 손등 관절 쪽에 핏자국 몇 개를 발견했고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현미경 수술은 디테일이 아주 중요했다. 혈액은 봉합실과 잘 들러붙기 때문에 장갑과 기구에 피가 묻지 않도록 하는 건 기본이었다.

언제 혈액을 묻힌 건지 기억이 나지 않아 여원은 더욱 긴장했다. 그녀는 다소 당황한 듯 수술 구역을 벗어나 장갑을 벗고, 순환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장갑을 끼고 돌아왔다. 넋이 완전히 나간 모습이었다.

“여 선생님, 디바키(Debakey) 하나 받으세요.”

능연의 명령이 다시 떨어졌다.

“아, 응. 저, 디바키 주세요.”

당황한 여원은 실습생으로 돌아간 것처럼 허둥댔다. 진작에 디바키를 손에 들고 있던 순환 간호사는 여원의 말이 떨어지자 곧바로 그녀의 손바닥에 무겁게 내려놓았다. ‘무손상 포셉’이라고도 불리는 ‘디바키’가 차갑게 손바닥으로 떨어지자, 여원은 서서히 냉정을 되찾았다.

여원의 뇌리에 순간적으로 디바키의 전생, 현생을 떠올렸고, 제일 중요한 그것의 용도를 떠올렸다. 디바키는 혈관을 집기 위한 특제 포셉으로, 끝부분이 둥글고 미세해서 혈관이나 다른 취약 조직을 집을 때 눌리는 면적을 최소화했다.

능연이 여원에게 디바키를 들라고 한 건 의심할 여지 없이 혈관을 잡으라는 소리였다. 순식간에 다시 긴장감이 몰려들자 여원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쓰는지 아세요?”

능연은 실습생을 대하는 것처럼 여원에게 물었다. 그런데 마침 여원에게 필요한 질문이었다.

여원은 논문을 쓰느라고 임상 경험이 적었고, 무시무시한 1구역 논문을 가지고 운화 병원으로 온 후로는 일일이 손잡고 가르쳐줄 임상의를 만날 수 없었다.

물론 이론적 지식은 걱정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조금만 생각하면 답이 나왔다.

“포셉으로 혈관 내막을 집으면 절대로 안 된다. 외막도 필요할 때만 아주 살며시 집는다.”

“음, 지금 들고 있는 디바키는 수술을 여러 번 거치면서 선택한 겁니다. 압력이 그다지 세지 않아요. 그러니까 힘을 너무 주지 않아도 헐거울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능연은 변함없이 제 할 일을 하면서 여원에게 설명했다. 그랜드마스터급 단지 이식술에 조수 지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수술은 절대로 혼자 힘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고, 큰 수술일수록 많은 의사가 협력한다. 그러므로 완벽한 수술을 원하면 조화와 관리 능력도 필요했다.

능연은 성격상 조화와 관리에 서툴렀다. 만약 엔지니어 혹은 제품 매니저 같은 직업을 가졌다면, 능연은 이미 지쳐 쓰러졌을 것이다.

그러나 수술실 집도의로서 그는 자신감에 넘쳐 명령을 내렸다. 능연은 여원이 손이 둔한 걸 나무라지 않았고, 여원의 외과 기술을 평가하거나 건의를 하지 않고, 그저 실습생으로 취급하면서 하나하나 해설했다.

저력이 있는 사람이니, 조금만 익숙해지면 능연의 기준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니까 세컨 어시에 대한 기준 말이다. 그건 일반적으로 누구든 이를 수 있는 기준이니 특별한 주의와 설명을 한 상황이라면 곰손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능연은 더할 나위 없이 민첩하게 혈관을 하나 봉합하고는 또 하나를 봉합했다. 여원은 포셉을 들고 계속 그를 따랐다.

“세척.”

능연이 다시 명령을 내렸다.

여원은 자신만만하게 입구가 좁은 병을 집어 들었다.

촤악.

“다음, 신경 속막 문합술.”

물이 다시 사방으로 튀었다. 막 한숨 돌리려던 여원은 다시 긴장했다.

능연의 리듬은 너무 빨랐다.

“응? 왜 신경 속막이야? 신경 외막 아니야?”

잠시 후, 여원이 눈을 휙 치켜떴다.

“전 신경 속막이 더 능숙합니다.”

“하지만 신경 속막이 더 힘들잖아. 시간도 더 오래 걸리고······.”

당연하게 말하는 능연의 말에 대꾸하던 여원의 말꼬리가 점점 흐려졌다. 능연의 동작이 점점 더 빨라졌기 때문이다. 세컨 어시가 할 일도 딱히 없었다.

여원은 손에 들고 있던 포셉을 내려놓고 간호사에게 마이크로 글래스를 씌워 달라고 한 다음 렌즈를 통한 수술 시야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능연은 마이크로 기구를 사용하면서 손쉽게 신경 끝단의 외막을 분리한 후, 5mm를 절단하고서는 신경 다발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여원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신경 한 가닥은 여러 가닥을 꼬아 만든 로프처럼 신경 다발로 이뤄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닥마다 기능을 구분하는 건 누가 봐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여원이 보기에 능연의 얼굴엔 어려움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실, 능연은 신경 속막 위에 글자라도 적힌 것처럼 한 가닥 한 가닥 이어붙이고 있었다.

“신경 해부 구조는 다 비슷한데 그걸 어떻게 구분하는 거야?”

“해부 경험입니다.”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여원의 질문에 능연은 생각하지도 않고 바로 대답했다.

“얼마나 경험이 쌓여야······ 이게 되는데······.”

능연은 이번 질문엔 대답하지 않았다.

3천 번 넘는 해부 경험을 얻은 능연은 수부 외과 수술을 식은 죽 먹기로 하면서 여유를 부렸다. 환자들의 손은 조금씩 다르지만, 양손 모두 무작위 3천 명과 모두 다를 확률도 지극히 낮았다.

“일반적으로 신경 속막 문합술은 신경 외막 문합술보다 효과가 좋다. 그러나 시간도 더 오래 걸린다. 일반적으로 단지 이식에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신경 속막 문합술은 속막을 잘못 고를 가능성이 크다. 일단 속막을 잘못 고르면, 외막 문합술을 선택한 것보다 못하다. 게다가 속막 봉합은 까다롭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외막 문합술보다 적어도 30분 정도는 더 허비한다. 단지 이식 수술에서 속막 문합술을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건 가성비가 높지 않다······.”

여원은 넋이 나가서 중얼댔고 수술실에 있던 간호사, 마취의 그리고 마연린 모두 이상한 듯 여원을 바라봤다. 여원은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신경 외막 문합술과 신경 속막 문합술의 치료 효과에 관한 논문이 발표된 적 있다. 비교 결과 신경 속막 문합술의 신경 전이 속도가 더 빠르고 복합 근육 동작 전위 진폭이 외막팀보다 높고, 성공률도 높다. 하지만 그 비교 대상은 척골신경이었다.”

여원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중얼댔다.

“척골신경은 단지 부위 신경보다 봉합하기 쉽다. 시간도 덜 걸리고 난도도 낮다. 같은 시간이면 시간 내에 단지 부위 신경을 봉합할 수 없으므로 신경 속막 문합술이 더 좋다고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음, 다 꿰맸습니다.”

능연이 눈을 현미경에서 떼며 바로 장갑을 벗었다. 한창 신나서 중얼거리던 여원은 다시 멍해졌다. 여원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능연은 벌써 제 목을 누르면서 마연린을 불렀다.

“마 선생님, 나머지 봉합, 문제없죠?”

“없지. 가서 쉬어.”

오래 버티다가 결국 마무리 봉합을 얻어낸 마연린은 조금 흥분했다. 마무리 봉합은 그야말로 기쁜 일이었다.

능연은 몸에 걸친 수술복을 떼어내 둥근 통에 던지고는 수술실 밖으로 나갔다. 그는 요즘 수술이 끝날 때마다 잠시 휴식을 취했는데, 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얌전해 보이던데, 아부를 그렇게 심하게 할 줄은 몰랐네요.”

수술실 문이 닫히길 기다렸던 마연린이 그제야 여원을 위아래로 훑으며 말했다. 아직도 극도로 놀란 상태에 있는 여원은 마연린의 말에도 별 반응 없이 단순하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우리 능 선생이 수부 해부에 도통하고 신경 속막 봉합에 능수능란한 걸 잘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어렵다, 어렵다 그런 거 아니에요? 대단한데요?”

마연린이 피식 웃음을 터트리자 여원은 그제야 그가 저를 조롱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도 내가 능 선생 밑에 들어오게 될지 몰랐지.”

“익숙해질 겁니다. 능 선생은 수술할 때 말이 없고 리듬이 좀 빠른 거 말고 다른 의사들보다 훨씬 수월한데, 문제가 딱 하나 있죠.”

마연린이 느긋하게 마무리 봉합을 하며 하는 말에 여원은 자연스럽게 그게 뭐냐고 물었다.

“수술을 계속한다는 거.”

“계속? 수술을 한다고?”

둔한 제 기술을 떠올린 여원은 순간 상황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능연이 내렸던 명령들을 문득 다시 떠올렸다. 능연의 지휘하에 제법 능숙하게 일했던 것 같았다.

멍하니 수술실에 잠시 서 있던 여원의 동글동글한 얼굴의 동글동글한 두 눈에 타는 듯한 지식에 대한 욕구와 농후한 수술욕이 활활 타올랐다.

“여 선생. 여 선생.”

그때 소가복이 여원 앞으로 다가가 열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싱긋 웃었다.

“여 선생, 1구역 논문을 쓴 사람이잖아? 내 논문 좀 봐주면 안 돼? 이게 말이야······.”

소가복은 둥근 의자에 앉아 살짝 고개를 들고 여원을 바라봤다.

마취의도 마취의 나름의 프라이드가 있었다. 순조로운 수술이라도 환자의 혈압 안정을 유지하고 쉴 새 없이 약품을 보충하는 마취의의 노력이 빠질 수 없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마취의는 대부분 시간 동안 할 일 없이 앉아 있는 것 같아도, 소가복처럼 시간을 내서 자신의 논문을 집필하는 마취의도 있었다.

소가복은 수술대에서 매일 바쁜 외과 의사에 비해서 자신이 논문을 쓴 경험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그는 1구역 논문을 쓴 적 있던 여원이 놀랍기는 했지만, 자신의 논문도 아주 훌륭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내 논문은 중화 브랜드에 발표할 준비를 하는 논문이니까.’

문장 난도만 따지면, 중화 브랜드에 발표할 논문이 3, 4구역 SCI에 등재될 논문보다 쉽다고 할 수도 없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2구역으로 갈 수 있고 운이 조금 더 좋으면 1구역에 이를 수 있지 않은가. 소가복은 시험에 강한 수험생의 마음으로 최고의 결과를 기대하고 있었다.

여원은 꽤 진지하게 소가복의 논문을 읽고 있었다. 직장과를 가장 좋아하기는 해도 마취과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각지 병원은 외과의에게 마취를 조금씩 배우도록 호소하는 추세였고 여원은 호소에 호응하는 그런 류의 사람이었다.

그녀는 대충 천 편이 넘는 중국 논문, 외국 논문을 읽었고, 그에 대한 총론을 몇 편 발표하기도 했다. 다만 1구역 논문과 비교해서 너무 차이가 나서 그다지 주목받지는 못했다. 병원에서 논문 발표는 중요한 부분이고 논문이 없는 의사는 직업 평가에서 곤란함을 겪기도 했지만, 일반적인 논문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전공이 아닌 논문은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돈 주고 사온 논문이 아닌가 오해를 받기도 했다.

의사가 논문을 쓰는 건 희한한 일도 아니었다. 중간에서 소개하는 것도 대부분 제약 회사 영업 사원이었다. 물론, 정말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은 의사에게 사 온 논문은 본인이 쓴 것보다 쓸모가 없었다.

“중문으로 내실 생각이세요?”

“응. 영어는 잘 못쓰거든.”

한참 만에 논문을 다 읽은 여원이 묻자 소가복은 머쓱한 듯 웃었다. 그제야 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핵심 간행물에 발표할 정도는 되겠어요.”

“겨우?”

소가복은 미간을 찌푸렸다.

“단지 이식 후 혈관 이상이 나타난 환자 통계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 같은데요? 그리고 더 좋은 마취 방식을 토론하고요. 이게 다라면······ 사실 비슷한 논문을 본 적 있거든요.”

“본 적 있다고?”

소가복이 놀라서 물었다.

“완전히 같은 건 아니고요. 그래도 선생님 논문은 성별, 나이, 흡연 비율, 외상 상황에 따라 통계를 내서 분류한 건 신선해요.”

여원의 아랫사람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말투는 수술대에 있을 때보다 훨씬 안정적이었다.

“아니, 내 말 들어 봐. 생각해 봐, 단지 이식 케이스 50개면 말이야······.”

“더 높은 급 간행물에 발표하려면 사후 처리에 신경 쓰셔야 할 거 같아요.”

여원은 소가복이 거북한 듯 꺼내는 말을 자르면서 바로 해답을 내놓았다. 소가복은 눈을 깜빡거리며 기대하는 듯 물었다.

“사후 처리란 게 무슨 뜻이야?”

“이상 발생 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말이에요. 굴근건 건초 안에 약을 쓸 건지, 아니면 절단처에 쓸 건지. 파파베린을 쓸 건지, 리도카인을 쓸 건지. 약은 언제 쓸 건지······.”

“그건 더 어려워지는데.”

담담하게 묘사하는 여원의 말에도 소가복의 안색은 심각했다.

“쉬운 게 어디 있어요.”

“그건 그래. 그렇지, 그렇지. 그럼, 저기 여 선생. 좀 앉아 봐. 이것도 좀 봐봐.”

소가복은 앉아서 이야기 나누기 좋도록 여원을 향해 둥근 의자를 밀어주었다. 그러면서 다급하게 노트를 꺼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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