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선생님, 연 선생님 차례예요.”
연문빈을 걷어차던 마연린은 곧바로 옆 침대로 풀썩 쓰러져서 끽소리도 내지 않았다. 물론, 연문빈도 마찬가지로 끽소리도 없었다.
칸막이 옆 침대에 있던 의사가 할 수 없다는 듯 일어나 우선 손가락을 마연린의 목에 가져다 대고 맥이 뛰는 걸 확인하고는 연문빈을 흔들었다.
“연 선생! 연 선생! 일어나. 연 선생, 족발 탄다.”
“말도 안 돼!”
연문빈이 순식간에 튀어 올랐다. 그 모습에 깜짝 놀란 레지던트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급사하기 전에 내가 먼저 급사하겠다.”
“하루에 6시간 자면서 무슨 급사한다고.”
연문빈이 자조하듯 웃음 짓자 옆 침대 레지던트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 레지던트들은 4시간 겨우 잔다더라. 우리도 배워야지.”
그러고는 침대로 돌아가 이불을 돌돌 만 채로 기지개를 켜고는 계속해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연문빈은 잠에서 깨서 부스스한 모습으로 마연린을 걷어찬 다음 슬리퍼를 질질 끌며 나섰다. 그는 얼굴에 물을 묻히고는 칫솔과 양치 컵을 들고 수술 구역으로 뛰어갔다.
수술 구역에 도착한 연문빈은 샤워한 후 수술복으로 갈아입었더니 제법 멀쩡한 사람 꼴로 바뀌었다.
의사들은 응급 의학과에 달린 수술실을 대형 수술 층에 있는 수술실보다 자유롭게 느낀다.
“능 선생. 나 왔다.”
“네.”
연문빈은 수술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또 하품했고, 막 절개구를 연 능연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상처 부위에 집중했다. 쌩쌩한 여원은 이러한 플로우에 익숙해져서 즉각 브리핑을 시작했다.
“67세 환자, 넘어진 다음 오른손으로 지탱하다가 손가락 세 개 골절 발생. 손가락 반 절단 상태.”
“어이구, 심하게 다치셨네. 빌딩에서 뛰어내려서 다친 손가락은 본 적 있다. 지난번에 우산을 들고 뛰어내려서 손가락 다진 환자 있었거든. 캠핑 갔다가 다친 것도 있고, 자기 집 옥상에서 넘어진 사람도 있고. 재수도 없지. 나라면 말이야······.”
“연 선생. 오늘은 반신 마취 환자야.”
둥근 의자 위 소가복이 헛기침하며 끼어들었다.
“젠장! 왜 반신이야? 우린 늘 전신이었잖아!”
“반신 마취면 안 되나요?”
깜짝 놀라 소리치던 연문빈은 갑자기 입을 여는 환자의 모습에 켁 소리를 냈다.
요즘 능연을 따라 탕 법과 단지 이식을 하면서 계속 마스크로 주입하는 전신 마취를 했었다. 그런데 환자가 갑자기 말을 하자, 해부용 시신이 벌떡 일어나 수술 솜씨를 평가하는 것처럼 느껴져 소름이 끼쳤다. 의대 시절 가장 공포였던 악몽이 다시 습격하는 기분이 들었다.
“움직이지 마세요. 몸에 힘 다 빼시고요. 반신 마취 상태에서 움직이면 큰일 나요. 다 헛수고가 됩니다.”
소가복이 다급하게 환자를 상기시켰고 여원은 웃느라 안경이 다 흔들렸다.
“환자가 전신 마취를 거절하고 반신 마취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해서 능 선생이 OK 했어.”
연문빈은 저도 모르게 입을 삐쭉였다. 전신 마취에 익숙해져서 반신 마취는 정말 하기 싫었다. 능연의 수술실은 고요하긴 해도 말실수할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었는데.
“포셉.”
연문빈은 자리를 잡고 앉아 마이크로 글래스를 꼈다.
“왜 의사를 바꾸는 거요?”
환자의 관심도가 폭등하자 여원이 싱긋 웃었다.
“더 실력 좋은 의사예요.”
“아, 그래도······.”
“다른 포셉 줘.”
연문빈은 쓰던 포셉을 플레이트에 던지면서 환자의 질문을 막고는 화제를 돌렸다.
“소 선생님, 논문 어떻게 되어가요? 잘돼요?”
“아직 케이스 모으는 중이라니까.”
소가복은 시뻘건 눈으로 켕기는 게 있는 듯 둥근 의자를 만지작거렸다.
“여원, 너는? 너도 논문 쓴다며? 다 썼냐?”
“케이스 리포트 말이야? 썼지. 온라인으로 에 벌써 보냈어.”
여원은 연문빈이 자신과 환자가 대화하길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채고 가볍게 대답했다. 연문빈보다 조금 일찍 병원에 들어오긴 했지만, 여원은 연문빈의 수술실 경험을 인정하고 따랐다.
그러자 연문빈이 놀란 듯 되물었다.
“영어로 쓴 거야?”
“당연하지.”
“임펙트 팩터(Impact factor, IF 연구 가치를 평가하는 점수)는?”
“0.3 정도일걸.”
“케이스 리포트는 대부분 IF도 없는데 몇백 자짜리 리포트로 0.3 받았으면 잘 받은 거지.”
연문빈이 한숨 돌리기 전에 소가복이 입을 열었다.
“사진을 더 엄격하게 요구하더라고요.”
“저기, 반신 마취한 것 때문에 나중에 무슨 후유증 있을까?”
여원이 웃으면서 대답하는데 환자가 고개를 들고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머쓱해진 소가복이 대답했다.
“아까 후유증 말씀드렸잖아요.”
“기억이 잘 안 나.”
“마취에 쓰는 약품은 바로 배출됩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전신이든 반신이든 다 빨라요.”
연문빈은 소가복이 후유증 리스트를 읊기 전에 수다 떠는 말투로 대답했다.
“배출돼?”
“네. 몇 주만 지나면 아무런 영향을 남기지 않는다고요.”
“다들 기억력에 영향을 주고 어쩌고 그러던데.”
“어르신, 나이가 들어서 기억력이 감퇴하는 거죠. 마취약이랑 상관없어요.”
연문빈이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
“겨우 예순일곱이야!”
환자가 강조하는 말투로 버럭대자 잠시 멍해졌던 연문빈은 과감하게 말투를 누그러뜨렸다.
“지금 부작용이 문제가 아니라 환자분 손가락이 부러졌으니 수술은 해야죠. 마취를 안 할 수도 없잖아요.”
“맞아. 사람이 재수가 없으면 찬물 마시고 체할 수도 있잖아. 아이고, 이번에 얼마나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얼마나 있어야 좋아지려나.”
연문빈은 어쩔 수 없이 환자의 말 상대가 되어 주면서 조수 노릇을 했다. 그러자 골치가 아파 머리가 지끈거렸다.
능연은 시종일관 봉합에 집중했다. 그는 항상 게임을 하듯 수술을 했고 일단 시작하면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아예 신경 쓰지 않았다.
67세 환자는 나이가 많은 편이라 젊은 사람과 비교하면 회복 능력 문제뿐만 아니라 골조송증이나 근육 약화, 혈액, 혈관 등의 문제가 필연적으로 따라붙었다.
골량이 감소하면 내고정도 쉽지 않고, 혈관이 취약하면 봉합하기 어렵고, 혈액 점도가 높으면 혈액 순환에 영향을 준다. 그러니 능연은 조심조심 웅덩이를 하나하나 피해야만 단지 이식을 완벽하게 완성할 수 있었다.
의사에게 성공이란 고난도 수술 게임을 완성한 것을 의미하며, 실패란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된 것을 의미한다.
“됐습니다. 연 선생님.”
능연은 연문빈에게 스킨 봉합을 시키고 자신은 계속해서 남은 두 개 손가락 골절을 처리했다.
전문적인 골절 스킬북을 얻지는 못했지만, 단지 이식 스킬에 손가락 골절은 가볍게 상대할 수 있는 뼈를 처리하는 기술도 있었고, 전에도 비슷한 케이스를 접한 적 있는 능연은 금세 드레싱까지 마쳤다.
환자가 병실로 이동한 후, 연문빈은 소가복의 둥근 의자를 뺏어 앉고는 능연을 향해 목을 내밀었다. 능연이 목을 잡자 그는 길게 숨을 내뱉었다.
“능 선생, 전엔 반신 마취는 안 했잖아. 오늘은 웬일로 했어?”
“적당한 환자가 없더라고요.”
연문빈이 묻는 말에 능연은 명확하게 대답했다.
“곽 주임님이 여러 병원 연결해 준 거 아니었어? 오늘 안 왔어?”
연문빈은 의아한 듯 물었다. 요즘 응급 의학과엔 매일 단지 이식 환자가 넘치게 들어와서 수부외과로 보낼 정도였다.
“저녁에 너무 빨리해서 남은 환자를 다 해 버렸어요. 환자가 나이도 많고 반신 마취를 강하게 요구해서 그냥 그렇게 했죠.”
“저녁에 손가락 몇 개나 했는데?”
“5개요.”
“어쩐지 마연린이 축 늘어졌더라니.”
능연의 대답에 울지도 웃지도 못하던 연문빈은 동정한 듯 혀를 찼다. 그러자 소가복이 낄낄 웃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웃어요?”
“능 선생, 벌써 추가 주문했거든. 곽 주임님한테 전화했어.”
“추, 추가······.”
불안한 듯 묻던 연문빈은 소가복의 동정 어린 시선을 받았다. 그는 손이 다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시간도 이렇게 늦었는데, 이제 좀 쉬엄쉬엄해야 하는 거 아니냐?!”
“이 시간이 조용하잖아요.”
염문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묻자 능연은 당연하지 않냐는 듯 대답했다.
한 건에 이어서 다시 한 건. 한 침대 나가면 다시 한 침대.
연문빈은 손이 무감각해지자 마연린과 교대하고 자러 갔고, 자다 일어나서 회진하고 차트를 입력했다. 마연린이 하다가 지치면 다시 연문빈으로 바꾸고 회진하고 차트 쓰러 갔다. 여원은 주로 세컨 어시를 했지만 가끔 퍼스트도 맡으면서 탕 법 수술을 하고 회진을 돌고 차트를 입력하면서 초짜들이 하는 실수를 잊어갔다.
능연은 연달아 스태미너 포션 4병을 마셨고, 강제로 휴식을 두 번 취하는 동안 퀘스트는 50/50에 이르렀다. 그러자 퀘스트 제시어가 나타났다.
- 퀘스트 완성: 단지 이식 수술 50건
- 퀘스트 보상: 중급 보물 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