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쉬다가, 하나 남은 수술 끝내면 집에 갈 수 있어요.”
수술실 문을 밟고 나간 능연은 복도에서 옷을 벗으며 말했다. 연문빈은 저도 모르게 우는 소리를 냈다.
“탕 하나, 단지 이식 하나 남았는데?!”
“끝나고 가자고요. 얼마 안 걸리잖아요.”
능연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마침 옆 수술방에서 수술을 마치고 주머니에 손을 걸치고 나오던 주 선생이 두 사람을 보자 웃으면서 인사했다.
“또 만났네.”
“이틀에 한 번씩 수술실 오시는 거 같네요.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
연문빈은 부러운 듯 주 선생과 용모가 평범해서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레지던트를 바라봤다. 주인을 닮아간다고, 레지던트는 전에 능연을 따라 당직을 서면서 분투하고 노력하던 모습이 싹 사라진 나른한 모습이었다.
“나는 편작(扁鵲. 중국 전국 시대 전설적인 명의) 둘째 형이잖아. 작은 병 전문.”
“그게 뭔데요?”
주선생이 껄껄 웃으면서 하는 말에 연문빈은 멍해져서 물었다.
“편작하고 위나라 문왕 대화예요. 큰 형은 전쟁에 능한데 혁혁한 공은 없고, 둘째 형은 작은 병을 발견하는 데 능해서, 큰 병으로 발전되는 걸 막았습니다, 라는.”
곁에 있던 여원이 술술 늘어놓는 말에 연문빈은 감탄하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주 선생님 유식하시다.”
“평소에 틈나면 책을 좀 읽었으니까.”
주 선생은 뿌듯한 듯 수염이라도 쓰다듬을 기세였지만, 고개를 돌려 능연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능연, 너 너무 바쁘게 보내는 거 아니냐? 틈틈이 잘 쉬어줘라. 몇 시간 일하고 10분 쉬고 어쩌고 하는 방법으론 오래 버틸 수 없어.”
“저도 못 버티겠어요. 오늘은 가서 쉬려고요.”
능연이 단지 이식 수술 50건 퀘스트를 마치자, 응급 의학과 병실은 발 디딜 틈 없이 다시 가득 채워졌다. 지금은 복도까지 추가 병상을 놓은 상태라 계속하려고 해도 불가능했다.
“나라면 연차받아서 쉬겠다. 곽 주임님 찾아가서 휴가 좀 달라고 하면, 휴가까지는 못 줘도 보상은 조금 해주시겠지.”
주 선생은 그동안 터득한 인생 사는 법을 수다스럽게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연문빈은 한가해서 좀이 쑤실 정도인 주 선생을 한참 만에 보낸 후 터져 나오는 하품을 참지 못하고 크게 했다. 그 다음 재빨리 일선 휴게실로 달려가 잠을 청했다.
능연은 그 가련한 4인실로 가지 않고 직진해서 이선 휴게실로 들어갔다.
부주임급으로 대우하겠다던 곽 주임의 말은 착실하게 집행되었고 능연은 이선으로 배치되었다. 그야말로 강력한 특권이 아닐 수 없었다.
일선은 며칠마다 당직을 서야 했다. 이선도 당직은 서지만, 일선 의사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만 없으면 깨우는 사람이 없어서 밤새 잠을 자도 상관없었다. 이선 의사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만 연락받는 삼선은 더 편안하게 생활했다.
응급 의학과에서 삼선은 곽종군 하나였고, 이선 급은 주임과 부주임급, 그리고 능연보다 적어도 열 몇 살은 많은 극소수 선임 레지던트였다. 그러니 능연이 지금 이선 휴게실을 쓴다는 건 곽종군 덕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휴게실은 비어 있었다. 능연은 문을 잠그고 중급 보물 상자를 열었다.
짙은 금빛이 순간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잠시 후, 파란색 시험관이 허공에 붕 떠올랐다. 순간 능연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설마, 중급 보물 상자에서도 스태미너 포션이 나오는 건 아니겠지?’
스태미너 포션이 나쁘다는 건 아니었다. 중급 보물 상자에서 나온다면 그 효능이 더 대단할 테니, 열 배 넘는 효과 심지어 조금 과해서 백 배 넘는 효과가 있다면 반년 넘게 못 자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됐다.
잠에 집착하는 건 아니었지만, 낭비는 질색이었으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복잡하게 하면서 능연은 손을 뻗어 파란색 시험관을 손에 넣었다.
- 스킬 포션 : 모든 스킬 +1, 2시간 효과 지속
능연의 눈이 저절로 휘둥그레졌다. 스태미너 포션이 아니었다. 게다가 엄청나게 대단한 놈 같았다.
“스킬이라는 건 내가 가진 스킬 말이야? 아니면 모든 스킬?”
능연은 곧바로 시스템에게 질문을 던졌다.
- 모든 스킬입니다.
“그럼 내가 모르는 스킬은 어떻게 계산되는데?”
- 입문급이 됩니다.
“그랜드마스터급 스킬은?”
- 레전드급입니다.
시스템은 매우 단호하게 대답했다. 레전드급은 어떤 것일지, 정말이지 당장에라도 체험해 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그러나 중급 보물 상자는 지금까지 겨우 세 개밖에 못 얻은 걸 생각하고는 참기로 했다.
“그럼, 내가 이미 레전드급 기술이 있으면 어떻게 되는데?”
꺼지지 않는 호기심에 능연은 다시 물었다.
-레전드 +1입니다.
시스템은 머뭇거리지도 않고 대답했고, 능연은 하, 하, 하, 하, 하고 네 번 웃었다.
능연은 푸른 포션을 챙겨 넣고, 핸드폰 벨소리를 조절한 다음 15분 정도 짧은 휴식을 취했다.
스태미너 포션을 마시긴 했지만, 벌써 10시간 전이었고 앞으로 단지 이식 하나, 탕 하나를 하고 나면 체력이 소진될 것이다. 그러니 수술 전에 잠시 눈을 감았다가 일어나야 했다. 그럼 수술 초반 집중력도 높아지리라.
그렇게 세 시간 동안 나머지 단지 이식과 탕 법을 끝낸 능연은 하루 휴가를 선포했다. 연문빈, 마연린과 여원은 환호할 기운조차 없었다.
게다가 일선 의사는 다음 날 휴가라고 해도 병상에 본인 담당의 환자가 아직 있으면 정상대로 회진을 돌고 오더를 내려야 했다. 그리고 퇴원 조건에 달한 환자도 상급 의사 사인을 받아야 퇴원시킬 수 있었다.
능연이 최근에 수술을 촘촘하게 하는 바람에 레지던트 두 명, 훈련의 한 명 밑에는 환자가 가득했다. 게다가 추가 병상만 원래 병상의 두 배여서 내일 휴가라고 해도 오전 내내 바삐 움직여야 오후에 돌아갈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레지던트끼리 사적으로 도울 수도 있지만, 도움받은 건 언젠간 갚아야 하니 그들처럼 바쁜 상황엔 도저히 다른 선택이 없었다.
그래도 휴가가 있는 건 없는 것보다 나았다. 적어도 쉬는 날엔 정상 듀티 때보다 쉬는 시간을 엄격하게 따지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연문빈은 아침 7시까지 자고 일어나서 더는 잠이 오지 않아도 바로 병원으로 가지 않았다. 그는 우선 졸임 고기와 족발을 두 솥 끓여내고 졸임 국물을 걸러 낸 다음에 느긋하게 병실로 향했다.
점심까지 회진하고 그사이에 오더를 잔뜩 내려 전자 시스템에 기록한 다음, 간호사들에게 잔소리 몇 번 듣고 나니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쌓여 있는 차트는 어차피 하루 만에 다 채우지도 못할 양이라 연문빈은 더 쓸 생각도 없었다. 그는 수술 구역으로 가서 남은 족발을 새로 줄 세운 다음에야 겨우 숨을 돌렸다.
마연린과 여원도 비슷한 일과를 보냈다. 점심때까지 바쁘게 움직인 그들은 함께 마주쳤을 때, 무시무시한 사실을 깨달았다.
“능 선생 오늘 안 왔다고?”
“정말로?”
“망했네. 내일 그럼 또 얼마나 수술을 해댈 거야.”
갖가지 가능성을 생각하던 그들은 마음이 텅 비는 게 아니라 몸에 구멍이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집에 가자.”
“가서 자자.”
“쇼핑 안 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