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웅.
능연은 발아래 액셀이 웅웅 울리도록 밟아서 쏜살같이 운화 병원으로 내달렸다.
하루 온종일 휴식을 취한 능연은 병원이야말로 재미있는 곳이라고 다시 한번 확신했다. 진료소의 무료한 분위기는 아무래도 잘 안 맞았다.
“능 선생님!”
“능연, 능연······.”
“능 선생님 오셨어요?”
8시, 응급실에 의사는 많고 환자는 없을 시간이라 간호사들이 앞다퉈 능연에게 인사했다. 능연도 화목한 분위기를 느끼면서 일일이 대답했다. 이곳이야말로 정상적인 세상이라고 생각하면서.
“능 선생님 어제 출근 안 하셨어요? 환자가 준 건데 아주 달아요. 드셔 보세요.”
“어제 오프였어요.”
뒤에서 휙 나타난 왕가가 작은 사과 하나를 건네자 능연은 웃으며 대꾸했다.
“어쩐지, 선생님 수술 리스트가 안 보이더라고요. 오늘은요? 오늘도 없는 거 같던데.”
왕가가 말하는 리스트란 수술 구역 앞에 붙이는 수술실 듀티 리스트였다. 거기엔 보통 수술 명칭과 참여 의사 이름 같은 기본 정보가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능연의 이름은 장기적으로 수술 리스트에 걸렸는데 오늘도 곽 주임에게 수술 배정 요청을 하지 않았다.
“단지 이식은 회복이 오래 걸리잖아요. 이제 침대도 얼마 없어서요.”
“맞아요. 복도까지 꽉 찼잖아요. 능 선생님. 어제 약제과 직원이 올라왔더라고요.”
왕가가 주변을 살피면서 목소리를 낮췄다.
“응?”
“우리 응급 의학과 용약량이 두어 달 사이에 확 늘었잖아요. 시간 나면 한번 살펴보세요.”
왕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해 못 하는 듯한 그의 표정을 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약제과 과장님 권력이 막강하거든요. 승진하고 싶으면 그분한테 잘 보이면 돼요.”
“아.”
능연은 딱히 반응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일하는 일반 의료진은 병원에 들어와 업무를 배정받으려면 보통 이리저리 사람에게 부탁하곤 한다. 하지만 그런 경로는 능연에게 적용되지 않았고, 그런 길을 갈 생각도 없었다. 습관적으로 수술실로 향하던 그는 갑자기 방향을 바꿨다.
“회진하러 갈게요.”
왕가는 저도 모르게 입을 가리고 웃고는 그의 뒷모습 사진을 찍어 ‘귀여운 능 선생님’이라는 글과 함께 SNS에 올렸다.
병실엔 연문빈, 마연린 그리고 여원이 벌써 도착해 있었다. 각자 스무 개 넘는 병상을 관리해서 한 바퀴 순회하려면 적어도 한두 시간 걸렸다. 다행히 세 사람 모두 충분한 경험과 이론 지식이 있어서 단순한 단지 이식 예후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적당한 처리 방안이 생겼다.
긴병에 명의 난다는 말도 있듯이 의사는 보통 몇 달이면 같은 증상 환자를 수백 수천 명 만나기 때문에 판단력도 자연히 높아진다.
능연은 우선 레지던트들의 보고를 듣고 특별한 일은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환자들을 잠시 살폈다.
신문에 난 적도 있고 SNS에서 벌써 유명한 운화 병원 꽃미남 능연은 어딜 가든 환자와 보호자의 환영을 받았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의사의 실력은 상당히 민감한 문제였다. 학생과 학부모가 선생의 수업 스킬을 중시하는 것처럼 말이다.
다른 사람은 별 관심 없는 문제도 환자들의 중점 관심 포인트가 될 수 있으니, 그들은 당연히 이런저런 방법으로 본인의 의사에 관해 잘 알아보려고 들었다.
단지 이식을 받으러 온 환자들은 대부분 수술에 오르기 전에 집도의에 관해 알아볼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수술대에서 내려오면 상대적으로 시간이 널널해진다.
인터넷에도 능연의 소식이 적지 않게 퍼져 있는 데다가 대부분 칭찬이 많았다. 능연의 탕 법과 단지 이식 실력 수준은 상당히 높지만 일반인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긴 했다. 하지만 수박 겉핥기 식이라 해도 그들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
이렇게 실력이 뛰어난 의사가 회진하면 환자들의 태도도 훨씬 좋아진다. 능연이 미소를 드러내며 ‘잘 회복되고 있다’라고 말이라도 하면 환자와 보호자의 얼굴에 미소는 더욱 활짝 핀다.
연문빈은 자기한테는 기분 내키는 대로 하는 환자와 보호자가 능연만 보면 함박웃음을 짓는 모습에 내심 우습기도 하고 화도 났다.
‘회진은 내가 돌고, 오더도 내가 내리는데, 스킨도 내가 다 봉합했는데 이런 식으로 나를 대해? 연예인 같은 의사가 악수 좀 한다고 신나하기는.’
능연의 안색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그가 익숙한 세상은 바로 고개를 치켜들면 환하게 빛나고, 미소를 지으면 소원이 이루어지는 이런 세상이었다.
능연은 익숙한 자신의 세상을 충분히 만끽하며 웃는 얼굴로 ‘진심 어린 감사’ 보물 상자를 거둬들였다. 그 곁을 따르는 간호사들은 홀린 듯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여댔다.
“능 선생님, 평소에 차가워 보여도 환자한테는 따듯하시다.”
“웃는 거 너무 이뻐.”
“능 선생님 실력이 좋으니까.”
병실을 한 바퀴 돈 능연은 ‘진심 어린 감사’ 보물 상자를 모두 8개 얻었다. 며칠 전에 얻은 12개를 합치면 딱 20개가 됐다. 그 안에서는 의심할 여지 없이 모두 스태미너 포션이 나왔다. 능연도 그에 대해 별 불만이 없었다.
스태미너 포션은 상당히 쓸 만했다. 포션을 씀으로써 절약한 시간만 따져도 아깝지는 않았지만, 다른 작용이 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도 있긴 했다.
“능 선생. 수술은 몇 시부터 해?”
“새 병실은 언제 완성된대요?”
마연린이 불안한 듯 물었다. 그러자 능연은 복도에 추가 침대를 보면서 되물었다.
“한 일주일? 그래도 겨우 10개 정도래.”
연문빈은 효율 문제를 따지고 싶어서 입을 삐죽였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병실을 세 개나 리모델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단지 이식 10건은······ 하지만 다른 의사에게 부담일지 몰라도 능연에게 수술 10건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 새 병실 생기면 다시 이야기하죠.”
단지 이식 환자는 보통 한 달 이상 입원해야 했고, 특히 손가락 세 개가 잘린 환자 같은 경우는 더 오래 입원해야만 했다.
다른 병원이라면 단지 이식할 의사가 한 명밖에 없는 상황에서 침상 10개가 있다면 환자 회전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게 분명했다. 아무리 많아도 15개면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능연은 침대 70개도 부족했다. 게다가 기분 전환으로 하는 탕 수술까지 합하면, 이제는 정말로 침대가 비어야만 새로운 수술을 할 수 있었다.
복도에 계속 침대를 늘리는 것도 환자 관리에 영향을 준다. 간호사들의 업무량도 어쨌든 덩달아 늘어나니까.
연문빈과 나머지 사람들도 한숨을 돌렸다. 능연이 수술을 고집하면 그들은 달리 어쩔 도리없이 묵묵히 견디며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병원엔 수술광이 많아 혼자서 침대 수십 개를 잡아먹는 의사도 종종 있었다. 일부 심장외과는 1년에 3, 4백 건 수술을 하면서 단지 이식 수술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수술에 투자한다.
“그럼 며칠 동안 쉬는 건가?”
마연린은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네, 일반 듀티대로 움직이면 됩니다.”
회진을 마친 능연은 알콜겔로 손을 씻고 응급 의학과 처치실로 달려갔다. 어제 봉합을 못 해서 손이 근질근질했다. 그는 데브리망을 두어 건 뺏어서 한 다음, 초짜 의사들의 원망스러운 눈빛을 받으며 자리를 떠났다.
“능연, 이리 와서 손 좀 풀어.”
그때 주 선생이 다급하게 손짓했다.
“무슨 환자인데요?”
주 선생 스타일을 훤히 꿰고 있는 능연이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캐물었다.
“어떤 환자를 원해?”
잠시 고민하던 능연은 트리플 매트리스 봉합법은 아직 사용한 적이 없다는 것이 생각났다.
“선생님은 복강 수술 잘하세요?”
“일반 외과 5급 정도? 할 수도 있고, 트랜스 보낼 수도 있고.”
주 선생도 진지하게 대답했다. 응급 의학과 의사는 병을 치료 못 해도 이상할 게 없었고 적절하게 트랜스 시킬 수 있으면 합격이었다.
“그럼 복강 수술 기다려 볼까요?”
봉합만 할 줄 알고 수술 방식은 하나도 모르는 능연이 고분고분하게 물었다.
“복강경 할 줄 알아?”
“못 합니다.”
“못 해?”
“못 합니다.”
“하하하하. 너도 못 하는 게 있냐?”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린 주 선생은 머쓱해져서 흠흠대며 헛기침하고는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현미경 수술도 하는데 복강경은 금방이지, 뭐. 근데 오늘은 안 되고, 다음에 복강경에 관해서 설명해 줄게. 솔직히 지금 일반 외과에서 꽤 많이 하거든? 너도 배워야 할 거야.”
“네.”
“급성 충수염 같은 건 요즘 거의 수술도 안 한다니까.”
“네.”
“좀 큰 거 기다렸다가, 수술하자.”
“좋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물에서 얼굴을 내민 잉어처럼 응급실 문을 바라봤다.
몇 분 후, 능연이 말을 꺼냈다.
“주 선생님. 오늘 저는 수술 없는데 선생님은요?”
“나? 나도 한가해.”
주 선생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몸에 찌든 농땡이 냄새를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