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수염에서 장폐색으로 변한 수술을 마친 능연과 주 선생은 응급실에 남아 있을 의지를 다 잃었다. 특히 주 선생은 오진한 것만 생각하면 민망해 죽을 지경이었다.
따지자면 급성 복통은 오진할 확률이 높다. 게다가 엄밀히 말하면 완전한 오진도 아닌 것이 사진을 본 다음 자신의 판단을 수정하는 건 의사에게 정상적인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기분이 언짢은 건, 초짜 의사 앞에서 쪽팔려서겠지.
“소가 식당 가서 롱샤 먹을래? 그 탕 수술받은 환자가 너한테 롱샤 까주던 뉴스, 소 사장이 프린트해서 가게에 붙였더라. 지금 커플들이 가서 사진 찍는대. 남자들이 롱샤 까주는 사진.”
주 선생은 롱샤로 실망스러운 기분을 달래기로 했다. 잠시 고민하던 능연은 고개를 저었다.
“논문이나 쓸래요.”
“밥은 먹어야지.”
“라면 먹으면 돼요.”
“뭔 라면이야.”
능연을 설득하던 주 선생은 그가 고집을 피우자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
“됐다, 그럼 나도 돈 아낄 겸 같이 라면 먹지 뭐.”
“집에 안 가세요?”
“당직이야.”
“당직인데 롱샤를 먹으러 가자고요?”
“당직이 감옥이냐?”
주 선생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배달을 시킬까, 하고 덧붙였다.
“오늘은 라면 먹고 싶네요.”
“라면 안 먹은 지 오래됐네. 가끔은 괜찮지 뭐.”
다소 제멋대로인 능연의 말에 주 선생은 이해한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먼저 논문 쓰고 이따 먹죠.”
의국으로 돌아간 능연은 다른 일은 제쳐두고 노트북을 열어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본인 논문 두 편은 거의 완성했고 이제 수정 작업만 남았는데 여원과 소가복이 쓴 논문은 디테일을 같이 정해야 해서 시간이 좀 걸렸다.
능연은 그날 집에 가지 않을 생각으로 얼마 전 받은 스태미너 포션 20병 중 하나를 따서 마시고 논문을 수정했다.
연문빈과 마연린은 차트를 반쯤 채우고 재빨리 돌아갔다. 여원도 뒤통수에 흡족한 웃음을 남기고 바삐 돌아갔다.
주 선생은 오진을 내렸던 환자 차트를 잠시 보다가 다른 케이스를 찾아서 읽었다. 슬슬 시간이 됐다는 생각에 “라면 물 붓는다.”라고 말하고 자동판매기로 가서 컵라면과 졸임 달걀을 두 개씩 사서 돌아왔다.
그는 자기 컵라면에 물을 붓고 책상 위에 올려둔 다음, 컵라면과 달걀을 능연에게 건넸다.
“핫바는 몸에 안 좋으니까, 안 샀어.”
“네, 제가 면 삶을게요. 선생님 건요?”
“벌써 물 부었지.”
말수가 적은 능연은 컵라면을 들고 사라졌다.
주 선생은 자리에 돌아가서 단골 가게 짠지 냄새를 맡다가 점점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능연이 왜, 사무실에서 물을 안 붓지?’
‘능연이 왜, 면을 삶는다는 말을 했지?’
‘그 안에 무슨 깊은 뜻이 있는 건가?’
5분이 지났는데, 능연은 돌아오지 않았다.
10분이 지나도, 능연은 돌아오지 않았다.
20분이 지난 다음, 컵라면을 다 먹고 용기까지 치운 주 선생은 능연이 머리보다 더 큰 법랑 냄비를 들고 돌아오는 걸 목격했다. 해리포터와 불덩이가 그려진 법랑 냄비는 따듯해 보였다.
능연이 뚜껑을 열자 코를 찌르는 향기가 퍼졌다. 주 선생은 저도 모르게 다가갔고 그게 뭔지 똑똑히 보고 미칠 것 같았다.
“이, 이게······.”
주 선생이 냄비 안을 가리켰다.
“새우요.”
능연은 그의 손가락을 따라 대답했다.
“이건······.”
“고기.”
“이······.”
“배추요? 상추? 청경채?”
능연은 얼굴을 찡그리며 뭘 묻는 거냐고 덧붙였다.
“너, 이게 라면이냐?”
“당연하죠.”
목소리가 다 떨리는 주 선생의 말에 능연은 수란, 어묵, 옥수수, 미역, 두부 사이에서 면을 한 가닥 끌어냈다.
“꾸불꾸불하잖아요.”
안 구부러진 건 국수, 구부러진 건 라면. 주 선생은 한참 머리를 굴리다가 답을 찾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더니 능연이 벌써 채 썬 닭고기를 치즈에 찍어 깨끗하게 먹어 치우고는 냄비 바닥에서 채소와 소고기를 꺼내고 있었다.
췌엣!
주 선생은 분통을 터트리며 문을 박차고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