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원현 병원의 입원 병동은 작은 화단에 둘러싸인 중간 건물이었다. 때는 갖가지 꽃이 만개한 계절이라 사방을 가득 채운 알록달록한 식물을 보고 있자니 능연은 편안하고 쾌적한 기분이 들었다.
입원 병동 양측엔 수십 년 넘은 나무가 있었는데, 건물 3층 정도의 높이라 멀리서 봐도 빽빽했다.
한구석엔 작은 농구장이 있었고, 환자복을 입은 환자들이 주위에 빙 둘러서 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농구하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공향명은 능연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병원 소개를 핑계로 말을 걸었다.
“우리 병원에 의료 중등 전문학교가 있었는데 나중에 일반 학교로 전환했죠. 농구장도 그때 만든 겁니다. 지금도 학생들이 찾아와서 농구를 하죠. 우리 병원도 환영하고. 사실 한동안 농구장을 폐쇄했었는데, 반대가 많아서 다시 개방했죠. 농구하러 온 아이들이 자유롭게 마실 수 있게 입원부서에서 정수기까지 놓았어요.”
능연은 그제야 농구장 구석에 정수기와 물통 몇 개가 있는 걸 발견했다.
“병원엔 음기가 넘치니까, 혈기왕성한 아이들이 와주면 좋지요.”
풍수지리학적인 왕해양의 말에 능연은 빙긋 웃었다. 다른 사람들도 말문이 트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정형 2 외과 병실은 입원 병동 4층에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다음, 의사들은 점차 웃음을 거두고 공향명의 안내에 따라 왕해양을 선두로 단독 병실의 환자와 보호자를 만났다.
왕해양의 각지고 작은 얼굴은 어두워졌고, 온화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위엄만 남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 환자와 보호자도 엄숙해졌다. 특히 상처에 붕대를 감은 환자는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지만, 그래도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사 선생님, 사모님. 하나만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전에도 말씀드렸던 거지만, 왕 주임 일행은 운화에서 오셨답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오려고 점심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오신 모양입니다. 이제 두 분이 오셨으니까, 너무 초조해하지 말고 먼저 수술 전 진단, 분석 그리고 연구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칼을 오래 간다고 장작 패는 데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저 혼자 ‘발등에 불 떨어진’ 환자를 하도 많이 봐와서, 공향명은 상대가 언짢아할까 봐 바로 설명을 덧붙였다.
“직접 운화 병원 혹은 성립 병원에 가셨다면 더 복잡하고 돈도 많이 들었을 겁니다. 전문가를 이쪽으로 모신 건 시간을 절약하기 위함도 있었지요. 그렇지만 맹목적으로 절약하는 게 대수는 아니죠. 잠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테니 너무 초조해하지 마십시오.”
환자와 보호자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와 환자 관계에서 환자는 언제나 약자였다. 특히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는 수술 동의서에 어떤 말이 쓰여 있어도 결국엔 사인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수술 후엔 또 달라진다.
“사 선생님 손가락 사진을 다 살펴봤습니다. 의사로서 말씀드리자면 성공률이 제법 높아 보입니다. 다만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이, 수술이 성공한다고 해도 손가락은 예전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기능 면에서도 아무래도 제한을 받겠지요.”
공향명의 설명이 끝나길 기다린 왕해양이 말을 꺼내면서 수술 후 통증, 온도 유지 등 후유증 같은 문제도 설명했다.
환자와 환자 가족은 들으면 들을수록 초조해졌다.
“왕 주임을 모셔온 것도 사실 더 좋은 수술로 합병증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희망을 품고 최선의 결과를 추구하자는 거죠. 하지만 수술엔 위험이 따르는 법입니다. 특히 단지 이식은 리스크가 큽니다.”
왕해양의 설명이 적당히 끝날 때쯤, 공향명이 다시 나서서 마지막으로 정리하고는 왕해양을 바라봤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수술 시작을 선포했다.
환자는 바로 수술실로 보내졌고, 왕해양과 능연은 공향명을 따라 옷을 갈아입었다. 수술이 결정되자 정형 2 외과 의사들도 분주히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참관 준비를 했다.
“출장 수술인 만큼 우리 병원에서 하던 것보다 훨씬 리스크가 낮은 방안으로, 최대한 깔끔하게 끝내야 하네.”
“알겠습니다.”
둘만 있게 된 틈을 타 왕해양이 속삭였다. 출장 수술 경험이 없는 능연은 당연히 그의 지휘에 따라 행동해야 했다.
단지 이식에서 리스크가 낮은 방안이라는 건 일단 혈관을 많이 연결하는 것임을 의미했다. 단지 이식의 핵심 요소는 혈액의 흐름이었다. 혈액이 통하면 잘린 손가락도 살릴 수 있다. 혈액은 신체의 보급 라인이라 혈액 흐름이 없는 신체는 당연히 괴사한다.
그러나 혈관을 많이 연결한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수술 시간을 연장하거나 아니면 시간을 절약할 방법을 생각해내야 한다는 소리였다. 한 손가락이면 그나마 간단하지만 여러 손가락이 되면 다른 손가락과의 연결 시간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왕해양과 능연에게 잘린 손가락을 어떻게 연결하는지는 큰 문제가 아니었고, 어떤 방안을 선택하느냐도 그저 그들의 습관과 방안의 가능성에 달려 있었다. 어차피 실력이 충분한 그들은 어떤 것을 선택하든 나머지는 운에 달렸다.
“왕 주임, 능 선생. 우리 기계 쓸 만한가요?”
다시 수술실에서 모인 다음, 공향명은 조금 자랑하는 느낌으로 웃으면서 물었다. 풀 세트 현미경 수술 기구의 가격은 확실히 만만찮았다. 특히 공향명이 선택한 2인용 현미경 세트는 몇십만 위안은 들었을 것이다.
수술실도 정압력으로 공기를 보내는 층류 수술실이었다. 현미경을 테스트해 본 왕해양은 수술대에 걸린 모니터를 확인하고는 웃었다.
“난 이게 정말 좋더라니까.”
“대단한 선생들은 다 좋아하죠.”
공향명이 하하 웃다가 한마디도 없는 능연을 바라봤다.
“능 선생, 뭐 특별히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요. 최대한 맞춰 줄 테니.”
“괜찮습니다.”
능연이 싱긋 웃어 보였다. 수술 습관과 필요한 건 모두 오기 전에 이야기가 된 상태였으니 공향명도 그저 사교 멘트를 던진 것일 뿐이었다.
잠시 후, 환자가 수술실로 들어왔고 대조 작업을 마친 후 마취의가 마스크를 씌우자 금세 마취되어 잠들었다. 곧바로 정형 2 외과 의사들이 연달아 수술실로 들어와 구석마다 서서 관객 역할을 했다.
공향명이 계속해서 사교 멘트를 날리니 수술실 분위기는 엄청나게 부드러웠다. 왕해양도 다시 온화해졌고 사람들은 날씨 이야기를 하다가 맛집 이야기, 맛집 이야기하다가 수술 이야기, 그러다가 경제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편안하게 대화했다.
오로지 능연만 순회 간호사를 시켜 더 많은 MRI 사진을 뷰박스에 꼽게 한 다음 묵묵히 읽기 시작했다. 어쩌면 어릴 때부터 하도 말을 거는 사람이 많아서 반항 심리가 생긴 것인지도 몰랐다. 그는 사람들과의 대화보다 MRI가 주는 수많은 정보가 더욱 즐거웠다.
공향명은 능연이 긴장하는 줄로만 알고 별말 하지 않았다. 어차피 퍼스트 어시일 뿐이고, 왕해양이 데리고 온 사람이니 너무 심하지만 않으면 일을 망치지는 않으리라 싶었다.
다른 의사들도 같은 생각이어서 젊디젊은 능연을 향해 다들 너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새로 분리된 정형 2 외과는 지금 수술실에 있는 가장 어린 레지던트도 3년 차였다. 3년 차 레지던트는 자기가 능연보다 나이가 더 많다는 생각에 어느 정도 우위를 느꼈다. 어쨌든 외과의는 경력이 중요하니까 말이다.
그들의 미소가 채 가시기도 전.
왕해양이 메스를 휘두르자 능연의 능력이 맹렬하게 폭발했다. 운화에서 익원현으로 오는 길에 능연은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오로지 장시간 MRI 필름만 들여다봤다. 익원현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판독 능력과 MRI가 제공한 수많은 정보로 능연의 머릿속엔 환자의 잘린 손가락에 대한 모든 정보가 정리되어 있었다. 거기다 능연의 상태는 운화 병원 수술실에 있을 때보다 더 좋았다. 이제 수술은 그저 하나의 과정일 뿐이었다.
현대 의학 기술은 자원이 넘친다고 할 수 있는데 단점은 의사들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기술을 전혀 터득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기술이 늘어난다는 건 더 촘촘한 체로 새로 기술을 선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온 병원을 통틀어도 DWI(핵공진 확산 강조 영상)의 고차원 영상을 읽을 수 있는 의사는 찾기가 어려웠다. 그런데도 정상급에 속하는 병원들은 다들 앞다퉈 핵공진 수술실을 지으려고 한다.
집도의 왕해양은 근육을 메스로 그었고, 나머지는 능연이 슉슉 벌렸다. 왕해양이 뼈를 꺼내면 능연은 맞추면서 적당한 바늘을 준비했다. 왕해양이 근건을 꺼내자마자 꿰맬 수 있도록 능연은 깨끗하게 데브리망 했다. 찰떡궁합이었다.
왕해양은 손발이 춤추는 것처럼 편안했다. 나이든 의사에게 옷을 주면 받아 입고, 밥이 오면 받아먹고, 다리를 올리고 차를 홀짝이는 것보다 편안한 게 뭐가 있느냐고 물으면 그건 바로 능연이 시중드는 수술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는 남에게 안겨서 마라톤에 참여한 듯한 쾌감을 느꼈다. 42.195km를 달리는 매력적인 풍경, 수천수만 명이 호응하는 환호성, 상쾌한 바람, 그리고 할 일 없이 손을 흔드는 자유로움, 지나가는 김에 생수를 잡아채는 여유로움, 거기에 테이프를 끊는다는 기대에 명예까지······.
공향명과 다른 여섯 명의 의사들은 입을 쩍 벌리고 바라봤다. 그들은 세상에 이런 고차원 의학적 조공 기술이 있으리라고는 머리를 깨고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공향명은 조용하고 말수가 없는 능연을 다시 바라보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놈이 아부 떨 필요가 없었구나. 이런 의학적 조공 기술이 바로 최고차원의 수술실 아부인데. 그리고 이런 기술을 저항할 서전이 이 세상에 존재하기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