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114화 (98/877)

능연은 시스템 제시어에 영향을 받지 않고 처방을 내리면서 연문빈 등에게 수술을 준비하라고 연락했다.

환자를 보기 전에 하는 예측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환자가 도착한 다음엔······ MRI를 보면서도 무엇이 완벽한 봉합인지 여전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흉터가 남지 않는 봉합? 그건 불가능했다. 단지 이식은 그런 걸 신경 쓰지 못하는 건 둘째 치고, 신경 쓸 수 있다고는 해도 흉터가 아예 남지 않을 수는 없었다. 정 거슬리면 차라리 나중에 성형 수술을 하는 게 훨씬 나았다.

그럼 손가락을 절단하지 않는 걸 가리키는 것일까. 하지만 잘린 손가락은 반드시 일정 부분을 잘라내야만 한다. 거대한 충격을 받으면 손가락이 잘리는 동시에 절단면에 필연적인 손상이 생기기 때문에 접합을 아무리 정확히 해도 원래와 똑같이 붙이는 건 기대할 수가 없었다. 조립 로봇도 아니고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능연은 심미적 방면으로는 완벽하게 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완벽이란 기능상 문제일지도 모른다.

환자의 수부 기능을 원래대로라는 의미일까.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능연은 그 정도 단지 이식은 선례를 찾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동시에 완벽하게 할 수 있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관점을 바꿔서 생각하면 퀘스트 자체도 100% 완벽을 추구하지 않으리라 여겨졌다.

능연은 먼저 스킬 +1 파란 포션을 떠올렸다. 그러나 바로 그 생각을 접었다. 파란 포션을 쓸 만한 곳이 무궁무진한 것을 접어두고라도, 퀘스트 설명을 생각해 보면 그랜드마스터급 단지 이식 수술 기술을 발휘하라는 것이었으니까.

능연은 혀를 차면서 +1 된 다음 전설급은 어떤 것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파란 포션은 무슨 맛이려나.’

“능 선생, 환자 도착했어.”

여원이 달려와 보고했다. 능연 팀 가장 연장자이나 가장 작은 여원은 자신의 수술 스킬이 부족한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이런저런 잡일을 하는 것으로 팀에 도움이 되려 했다. 능연은 그에게 수술 기술을 가장 많이 가르친 의사인 데다가 수술 실력도 엄청나게 뛰어났다. 응급 의학과에서 능연은 여원에게 가장 적합한 의사였다.

소가복도 달려왔다.

“능 선생, 친척이라도 온 거야?”

능연이 직접 전화해서 소가복을 부르자 그는 듀티를 바꿔서 수술실에 들어왔다.

“환자는 인테리어 하는 사람이라 수부 기능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최대한 잘하려고 선생님을 오시라고 했어요.”

힐끔 쳐다보면서 능연이 하는 말에 소가복은 하마터면 소리를 내서 웃을 정도로 기분이 통쾌해졌다.

“안목이 참 괜찮아. 응? 내가 다른 건 태클 안 걸게.”

능연은 의아한 듯 소가복을 바라볼 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능 선생은 그냥 익숙한 사람이 좋은 거겠죠.”

뒤따라온 연문빈이 일부러 소리 내서 웃으며 말하자 능연은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한 수술을 하려면 익숙한 마취의가 필요했다. 마취의가 항상 쓸모 있는 건 아니지만, 쓸모 있게 일하는 날엔 그 가치가 느껴지는 법이었다.

그러자 소가복은 크게 언짢아졌다.

“그냥이라니? 능 선생은 당연히 내 실력을 중시한 거지.”

“마취의 중에 제일 대단하다고 자신하는 겁니까?”

연문빈이 던진 미끼를 소가복은 물지 않았다. 위에 부주임과 주임도 있는데 그런 식으로 말했다가 그쪽에서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큰일이었다.

“수술 전에 잠시 합동 진단 좀 하죠.”

능연이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말을 잘랐다. 팀 구성원이 모두 최고여야 한다는 생각은 중학교 때 이미 버렸다. 합창단원 개개인이 모두 가수 수준으로 노래를 잘 부를 필요는 없었다. 어떨 때는 노래를 시작하는 사람의 미소 하나로 수많은 구멍을 채울 수도 있었다.

“오늘 수술 많이 복잡해?”

연문빈이 다소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전에는 수술 전에 합동 진단을 하는 일이 드물었다. 외과 의사는 모두 그런 식이었다. 수술실을 바꿔가며 메스를 잡는 일이 흔했고, 진료과의 주력 수술은 집도의 하나가 젊을 때부터 나이들 때까지 하곤 하며, 20년 동안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럼 일 년에 1, 2백 번이라는 낮은 빈도로 수술한다고 해도 집도의 한 명이 같은 수술을 2천 번은 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2,001번째 수술을 할 때, 병상에 있는 것이 정상적인 해부 구조를 가진 인간이라면, 심지어 해부 구조가 그렇게 특별히 이상하지 않은 인간이라면, 수술 전 합동 진단이 필요 없다.

수술 자체가 매우 복잡할 때가 유일한 예외였는데, 특히 인간이 아직 충분히 연구해내지 못한 수술 유형은 더 많은 합동 진단과 검사가 필요했다.

“최대한 잘하고 싶어서요.”

능연이 대놓고 하는 말에 연문빈은 고개를 끄덕였고 마취 준비를 하던 소가복이 헤헤 웃었다.

“문빈아, 좀 이상하지 않냐?”

“뭐가 이상해요? 누구나 더 맛있는 족발을 만들고 싶은 거 아닌가요? 새벽 2시에 일어나서 시장 가본 적 없죠? 인생 너무 재미없게 사는 거 아니에요?”

연문빈은 무시하는 눈빛으로 소가복을 바라봤다.

“난 새벽 2시면 사람한테 약 쓰고 있겠네. 조미료 쓰는 거보단 좀 재미없지?”

소가복은 침착하게 연문빈의 무시를 반격했다.

“아무튼, MRI 좀 볼게요.”

능연이 두 사람의 말을 자르며 사진을 가리켰다.

“연 선생님, 뭐 보이는 거 있나요?”

“그게······.”

요즘 MRI 보는 법을 배우라는 말을 듣고 열심히 노력 중이지만, 능연의 질문은 여전히 모호하게 느껴졌다.

“나중에 책 읽으세요.”

능연은 선배 의사 같은 말투로 한마디 했고 연문빈은 순종적인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급 의사가 MRI 판독 능력이 있으니 저도 목숨 걸고 배워야 했다. 국내 환경에서 그런 학습 조건이 있는 것만 해도 로또 당첨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여원이 까치발을 들고 연문빈 뒤에서 손을 내밀었다.

“여원 선생님?”

“절개가 가지런한 게 보이네. 뼈가 많이 이동하지 않았을 거야. 골밀도도 높고, 신경 좌상이 좀 심하네.”

여원은 아는 걸 우선 이야기했다.

“우리 수술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가 포인트죠.”

능연은 한마디로 여원의 쓸데없는 말을 자르면서 연문빈을 바라봤다.

“연 선생님. 우선 환자 해부 구조를 확인하세요. 혈관 문합에 쓸 수 있는 걸 몇 개 골라서······.”

연문빈이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명확하게 지시를 내려주니 속이 시원해졌다. 능연도 연문빈이 직접 알아내길 포기하고 바로 동맥과 정맥 위치와 현재 상황 위주로 혈관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단지 이식 수술을 할 때 동맥 문합은 필수여서 적합한 동맥이 없으면 수술은 실패한다. 장측(掌側) 동맥이 있다면 예외이다. 동맥 상황이 좋지 않으면 동맥으로 정맥을 이어 타협해도 된다.

동맥만 아니라면 정맥은 결정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제대로 빠르게 봉합한다면 수술 회복에 매우 유리하다. 특히 혈관 위급의 경우 정맥은 시간을 조금 끌 수 있고 배수로 역할을 한다.

능연은 우선 MRI 사진에서 혈관의 위치를 집어내고, CT를 통해서 다시 한번 설명한 다음에 어떤 혈관을 우선 봉합하고 어떤 혈관을 이어서 할지, 실패한 경우엔 어떻게 할지 같은 수술 방안을 토론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그런 것들은 모두 능연의 머릿속에만 있었고 말로 설명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금 능연이 설명을 해주자, 연문빈은 평소에 봐온 수술을 떠올렸고 바로 감을 잡았다.

“시작해도 되겠어.”

“오늘, 잘해 봅시다.”

연문빈이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적극적으로 나서자 능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연문빈도 단지 수술을 많이 해왔으니 시도해 보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혈관 문제를 설명한 능연은 다른 부분의 설명도 마친 다음 수술을 시작했다. 수술은 어차피 그가 해야 했고 완벽을 추구하기 위해서 기본 조작을 무시할 수 없었다. 무영등이 켜지자 수술실이 다시 조용해졌다.

“마취됐어.”

모니터 기기를 바라보던 소가복은 그렇게 말한 뒤, 갑자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새벽 2시에 족발? 나는 그 시간에 늘 사람 발바닥 긋는다.”

“오늘 수술, 목표는 최대한 환자의 잘린 손가락 기능을 살리는 겁니다.”

능연은 수술대 앞에서 그렇게 선포한 다음 메스를 댔다.

그동안 봐온 의사가 많은 소가복은 능연의 모습에 연문빈을 향해 눈을 찡긋했다.

“저게 무슨 뜻인지 아냐?”

“무슨 뜻인데요?”

“넌 오늘 데브리망 기회도 없다는 거야.”

“헛소리 말아요.”

연문빈은 갑자기 뜨끔해져서 능연을 바라봤다.

“능 선생, 소 선생님 좀 보라고. 이러는 거 사기를 떨어뜨리는 거 아니냐?”

“맞습니다.”

“맞지?”

“네.”

능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연문빈은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니까 말이야, 네가 직접 데브리망 한다는 게 말이 돼?”

“그럴 생각입니다.”

능연은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소 선생님이 사기를 떨어뜨리는 건 맞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말은 맞지만,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능연은 직접 데브리망을 하면서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그동안 내가 잘못한 것도 없잖아.”

“그래도 데브리망은 제가 합니다. 뭐, 진실이든 아니든 소 선생님이 사기를 떨어뜨리긴 했네요. 연 선생님, 훅 잡으세요.”

“그래.”

다시 훅맨으로 떨어진 연문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는 소가복을 흘깃 노려봤다. 마취를 끝낸 소가복은 한가하게 둥근 의자를 문질렀다. 그러곤 한 손으로 항복이라는 포즈를 취하며 장난을 쳤다.

“내 잘못이야. 진상을 밝히는 게 아니었는데.”

“훅, 잘 당기세요.”

연문빈은 수술 시야를 노출하는 역할만 제대로 해주면 된다고 생각한 능연이 한마디 했다. 연문빈은 괴롭힘당한 강아지처럼 낑낑거렸지만, 고분고분 훅을 잡았다.

데브리망은 마지막 결과에 영향을 준다. 크진 않아도 어쨌든 영향은 준다. 그래서 완벽한 결과를 바라면 직접 하는 게 나았다. 물론 연문빈의 데브리망 실력엔 전혀 문제가 없었고 대부분 의사보다 훨씬 나았다. 그리고 효과도 능연보다 떨어지지 않았고, 가끔은 능연만큼 해냈다. 단순한 데브리망뿐만 아니라 현미경 아래서 하는 데브리망도 마찬가지였다.

능연이 직접 데브리망을 하는 건 오로지 믿음 문제였다. 외과 의사는 언제나 자신만 믿었다. 그건 일종의 병이었다. 불치병.

연문빈은 낑낑 앓으면서도 순순히 훅을 당길 수밖에 없었다.

평소라면 그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수술은 집도의가 하라는 대로 하는 거니까. 똥을 꺼내라면 꺼내고, 오줌통을 달라면 달고. 지금은 그저 소가복과의 실랑이에서 진 게 원통할 뿐이었다.

세컨드 어시인 여원도 그 점을 눈치챘다. 그는 받침대에 올라서서 키 180cm, 팔뚝 둘레 38인 연문빈을 바라봤다.

“연문빈, 소 선생님 말은 신경 쓰지 마. 능 선생은 지금 수술을 잘하려고 하는 거니까, 우린 잘 보고 배우면 돼. 평소보다 훨씬 배울 게 많을걸?”

“학습 위원이었냐?”

“어떻게 알았어? 학교 다닐 때 줄곧 맡았어.”

“좋은 학교 나왔겠구나.”

“어떻게 알았어?”

싱긋 웃으면서 하는 연문빈의 말에 여원은 놀라서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러다가 갑자기 무언가 떠올리고는 이마에 핏줄을 터트리면서 이성을 잃었다.

“뒷조사했냐? 어디서 어떻게 한 거냐?”

“누가 널 뒷조사하냐. 추측이지, 추측.”

“추측? 어떻게?”

“안 좋은 학교였다면, 너 같은 학습 위원은 엄마도 못 알아볼 정도로 혼쭐났을걸? 이렇게 꽉 막힌 꼴로 크기 전에 싹이 밟혔을 거라고.”

연문빈은 거침없이 말을 우다다 쏟아내자 기분도 좀 좋아졌다. 마음의 상처를 받은 여원은 마음속으로 다음에 논문 쓸 땐 제2 저자는 국물도 없다고 다짐했다.

“혈관 청소.”

능연은 수술대 끝에서 옥신각신하는 어시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데브리망을 끝낸 후 도구를 던졌다. 단지 이식 수술은 혈관을 청소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시간이 오래된 경우 혈관인 이미 무수한 혈전이 생겨서 꼼꼼히 청소해야 할 뿐 아니라 혈관이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이론적으로 혈관 청소도 데브리망의 일부분이다. 하지만 안쪽을 청소하는 건 바깥쪽 청소보다 훨씬 힘들었고, 겉 간지러움은 쉽게 멈춰도 안 간지러움은 멈추기 어렵다고 스킨을 다치지 않게 하는 건 더 힘들었다.

능연은 자세를 바로 하고 단정하게 앉아서 혈관을 청소할 준비를 했다.

현미경 아래에서 하는 수술은 무척 섬세했기에, 대부분은 의사의 기술 때문에 실패하는 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의사의 기술이 떨어지면 현미경 수술을 하지도 못하니 말이다.

외과 수술 중에 가장 힘든 유형인 현미경 수술은 의사의 피로도나 정신력 때문에 실패하곤 한다. 장시간 수술은 오랜 시간 동안 퍼즐을 맞추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고되기도 하고 한순간에 실수를 하기도 한다. 그래서 적응도를 알아서 조절할 필요가 있다.

능연은 자신의 상태를 판단하면서 다음에 어떻게 조작할지 궁리했다.

환자 원위의 상처는 기본적인 찰과상이라 단순했다. 늘 하는 스텝대로 하면 되어서 기본적으로 크게 바꿀 필요는 없었는데 그게 바로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했다. 더 좋은 소모재와 기구를 사용하면 완성도를 조금 높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왕 간, 전화 한 통 해주세요. 내 핸드폰으로요. 제약 회사 황무사라고 있을 거예요.”

곽종군에게 전화하려던 능연은 생각을 바꿨다. 순회 간호사로 들어와 있던 왕가가 재빨리 능연의 핸드폰을 가지러 갔다. 왕가는 조금 흥분한 모습으로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건 다음 그의 귓가에 가져다 댔다.

통화음이 잠시 가다가 전화가 연결되자 더할 나위 없이 흥분한 황무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능 선생님? 능 선생님 안녕하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한 달에 4급 수술을 50건 이상 하는 수술광인 능연은 제약 회사 영업 사원 마음속엔 각 치료팀 팀장 바로 아래 순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어떻게 능연과 관계를 유지해야 하나 전전긍긍하던 황무사는 전화번호가 뜨는 순간 ‘능 선생이 나한테 전화했어요.’ 하고 사무실 전체가 들리도록 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단지 이식에 필요한 가장 좋은 현미경 수술 자재와 기구가 필요한데, 혹시 제공해 줄 수 있나요?”

“물론이죠. 우리 창서 제약 회사에서 만드는 현미경 수술의 재료는 탑 중의 탑이랍니다. 제일 자주 사용하시는······.”

“의료 보험은 상관없고요, 가격도 상관없습니다. 지금 가지고 올 수 있는 제일 좋은 자재와 기구가 뭔가요? 한 시간 안에 병원에 가지고 올 수 있나요?”

능연이 황무사의 자화자찬을 칼같이 끊으며 물었다. 대부분 제약 회사와 마찬가지로 창서 제약 회사도 자사 메이커도 있고, 다른 회사 제품을 팔기도 한다. 의료 보험 리스트에 있는 것이 당연히 제일 잘 팔리지만, 가장 좋은 것과 가장 잘 팔리는 것이 늘 일치하진 않는다.

능연의 말을 들은 황무사는 더욱 기뻐했다. 한 시간 안에 병원에 가져다 놓으라는 건 일도 아니었다. 더 심한 의사도 훨씬 많으니까.

황무사는 2초 만에 더 높아진 목소리로 또랑또랑 대답했다.

“테스트하시려고 그러시나요? 그럼 메드트로닉 걸 추천해 드릴게요. 수입품이라서 정밀도가 높고 명확도도 확실하고 가격도 그렇게 많이 비싸지는······.”

“지금 수술 중입니다. 한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나요?”

혈관 청소하는 데 2, 30분 걸릴 테고 조금 천천히 하면 3, 40분 정도 걸릴 수 있었다.

그제야 침착해진 황무사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한 시간이요? 제가 최대한······.”

“시간 안에 못 오면 의미 없습니다.”

“압니다. 맞추겠습니다. 지금 바로 물건 가지러 갈게요.”

황무사는 벌써 자리에서 일어나 뛰기 시작했다.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황무사는 계단이라도 뛰는지 다소 헐떡거렸다. 능연은 계속해서 혈관을 청소하다가 입을 열었다.

“돈이 없습니다.”

“예? 아이고.”

계단에서 미끄러지기라도 했는지, 황무사의 숨소리가 더욱 거칠어졌다.

“괜찮으면 한 시간 뒤에 뵙겠습니다. 문제 있으면 전화 주시고요.”

능연은 핸드폰에서 귀를 떼고 왕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왕가는 즉시 전화를 끊고 감탄하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러자 그가 씨익 웃어 보였다.

능연은 수술 전에 기구나 자재를 바꿀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생각하지 못한 것도 당연했다. 수입 자재나 기구의 문제는 바로 가격이니까.

원위는 부채를 잔뜩 짊어진 상태라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다. 수입 기구 이야기를 꺼내 봐야, 아무리 효과가 더 좋다고 한들 그가 부담할 수 없을 것이 뻔했다. 물론 수입 기구라고 해도 꼭 명확한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단지 이식 효과만 보자면 해외 대형 메이커 기구와 자재는 아무래도 국산보다 장점이 많았다.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할지 고민하던 능연은 조금 전에 직접 제약 회사 것을 써보자는 해결 방안을 떠올렸다.

제약 회사에서는 절대적으로 열세에 처한 약품이나 의료 기구를 추천하고 거기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다. 모든 제약 회사에서 개발한 신제품은 의사들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준다. 능연처럼 전화를 걸어서 바로 테스트하겠다는 사람은 드물어도, 테스트부터 하는 경우는 흔했다.

황무사가 상황을 파악한다면 당연히 상품을 들고 오리라.

그리고 한참 후에도 능연의 핸드폰은 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간호사가 깔끔하게 청소된 메드트로닉 기구와 소모재를 들고 들어왔다.

“무료랍니까?”

능연이 일부러 묻자 간호사가 그렇다고 대답하고 돌아갔다. 수술실에서 사용하는 모든 재료와 소비재를 관리하는 간호사라서 그곳에 오래 머무를 여유가 없었다.

고개를 빼고 바라본 능연의 눈에 한 줄로 선 마이크로 수술용 포셉, 가위, 혈관 집게, 니들 홀더, 모스키토 등 한 세트가 세 개씩 주르륵 늘어져 있었다.

능연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제약 회사 영업 사원은 이럴 때 쓸모가 많았다.

원위가 눈을 떴을 때, 아직 꿈속에 있는 것처럼 달콤함을 느꼈다. 그는 한동안 지금처럼 푹 잠들지 못했었다.

“여보, 여보.”

하금수는 남편을 부르면서 멀쩡한 그의 한쪽 손을 쓰다듬었다. 그가 살며시 눈을 떠보니 새하얀 천장이 보였다. 그러자 자신이 겪은 일들이 연달아 기억났다.

“내가······.”

원위는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올렸지만, 손은 묶여 있었다. 몸을 일으키려 해도 하금수가 급하게 다시 눕혔다.

“일단 진정 좀 해 봐요. 아파요?”

하금수는 그동안 한반도 보인 적 없는 다정한 모습으로 남편을 향해 물었다. 하금수는 농자재를 팔 때, 허리춤에 손을 얹고 세 시간 동안 싸움을 할 수 있고, 마을 동쪽 끝에서 고함을 질러 서쪽에서 잠든 노인네를 깨울 수 있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약해진 남편의 모습에 하금수의 음성마저 따라 약해졌다.

“나······.”

원위의 목소리는 갈라졌고 입술도 바짝 말라 있었다. 그는 조금씩 수술과 수술 전 상황을 떠올렸고, 둥글게 붕대가 감긴 왼손을 바라보다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난 괜찮아.”

하금수의 눈에서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몇 시간 동안 하금수의 가슴엔 울분이 가득했다. 주위 모두, 주변 모든 일이 원망스럽기만 했고, 세상이 원망스럽고 일과 사회 모두 원망스러웠다. 그러다 갑자기 두려워졌다.

남편에게 장애가 생기면 어쩌지. 남은 빚은 어쩌지. 앞으로 어쩌지.

생각도 못 한 일이었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었다.

원위의 손가락이 망가졌다면 앞으로 일을 못 한다. 제가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고, 동네에 이런저런 말이 퍼지는 것도 불가피했다. 본인은 견딜 수 있고 남편도 아마 견디겠지만, 아이들은 달랐다.

하금수는 온몸에 힘이 다 빠져나간 기분이 되어 그렁그렁한 눈으로 딸을 바라봤다.

병이 나서, 돈을 써야 하고, 딸도 돌봐야 하는데, 일을 할 수 없어.

이런저런 생각이 하나하나 쌓였고, 하금수는 우물 안에 깊이 빠져서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환자분, 일어나셨군요.”

곽종군이 싱긋 웃는 모습으로 병실로 들어왔다. 능연이 제약 회사에 전화했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와본 것이었다.

“곽 주임님은 우리 응급 의학과 과 주임이십니다. 마침 시간이 나셔서 환자분 보러 오신 겁니다.”

다급히 뒤를 따른 연문빈이 보호자에게 곽종군을 소개했다. 하금수는 조금 당황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주임이니, 과 주임이니, 하는 것이 뭐가 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본 곽종군은 원래 계획을 수정하고는 친절한 말투로 환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느낌이 어떠십니까?”

“괜찮습니다.”

“음. 불편한 곳 있으면 바로 간호사를 부르세요. 아니면 회진 도는 의사에게 말씀하시거나요.”

머뭇거리면서 하는 원위의 말에 곽종군은 미소 지은 채 진지하게 말했다. 아직 마취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원위는 반응이 조금 느렸지만, 하금수는 완전히 정신 차렸다.

“곽 주임님. 제 남편 손 나을 수 있나요? 앞으로 손가락 쓸 수 있을까요?”

“수술은 성공적입니다. 그러니 이제 최선을 다해서 재활을 해야 합니다. 재활만 잘하면 손가락을 쓸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곽종군은 여전히 친절하게 대답했다.

“수술 끝나면 그만 아닌가요?”

하금수는 소박한 기대로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수술이 끝나면, 회복기가 시작되죠. 회복기는 아주 중요합니다. 심지어 수술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지요. 우린 그 과정을 회······. 음, 치료는 말입니다, 수술 전후 주기에 달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며칠이 아주 중요하죠. 통과할 관문이 두 가지 있답니다.”

곽종군은 부드러운 말투로 보호자를 위로했다.

“관문이요?”

“네. 하나는 감염기라고 하는 기간이고, 두 번째는 경련기라고 합니다. 감염은 아시죠? 염증이 생기고 고름이 생기는 거죠.”

환자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잘 아는 곽종군은 온화한 노인처럼 굴었다. 하금수는 바짝 긴장해서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경련은 쥐가 났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혈관에 경련이 오면 혈관이 망가지고, 그러면 손가락이 망가지기 쉽죠.”

무시무시한 합병증을 입에 올린 곽종군은 다시 싱긋 웃어 보였다.

“그렇다고 걱정할 건 없습니다. 입원해 있는 동안 우리가 그런 현상에 대처할 테니까요. 하지만 여러분의 협조도 중요합니다.”

곽종군은 한참 애를 쓰면서 회진을 마치고 자리를 떠났다. 하금수는 감사한 마음으로 곽종군을 병실 밖까지 배웅했고, 딸까지 불러 인사하게 했다. 곽종군은 다급하게 그들을 말리면서 잰걸음으로 병실을 떠났다.

“능연 친척인가?”

엘리베이터 쪽까지 간 곽종군은 긴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연문빈은 낮은 목소리로 아니라고 대답했다.

“환자 상황이 안 좋은 걸 보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나 봅니다.”

“의료 보험 안 되는 자재들만 사용해서 자비로 하려면 환자가 파산할 텐데, 그래도 다행히······.”

“제약 회사에서 테스트용으로 보낸 거 아닙니까? 이론적으로는 비용이 안 들잖습니까?”

순간 곽종군은 무섭게 연문빈을 노려봤다.

“나중에 리스트 작성할 때, 환자 보호자는 둘째 치고 보험 공단에서 통과시켜 줄 거 같은가? 돈 계산만 하지 않으면 다인 것 같나? 그 사람들은 규정에 맞는지 아닌지 살핀다고. 테스트 용품을 쓴다고 해도 가끔 한두 개 하는 거지, 그렇게 한 번에 다 쓰는 사람이 어디 있나? 그리고 기기는 또 어쩐단 말인가. 손에 익으면 앞으로도 써야 할 것 아닌가.”

어쨌든 몇 년이나 의사 생활을 해온 연문빈도 그제야 곽종군의 의미를 알아들었다. 그는 능연이 앞으로도 수입 기기를 쓰려고 하면 어쩌나 걱정인 게 분명했다.

같은 마이크로 포셉이라도 수입품은 가격이 국산품의 10배는 된다. 그리고 그런 물건은 쓰다가 실수로 딱딱한 물건에 부딪히기만 해도 망가질 가능성 있는 소모품이었다.

능연의 수술 빈도로 볼 때 모두 수입 기구를 쓴다면 지출이 보통이 아닐 테고,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의사들도 따라 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능 선생은 아직까지 수입품이 완전히 손에 익지 않았을 겁니다. 특별히 선호하는 건 없어 보였습니다.”

“제발 그러길 바라야지. 아니면 내가 감당 못 한다. 아, 맞다. 누가 이 일을 물으면 능 선생이 기술 비교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말하게.”

곽종군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잠시 멈칫했던 연문빈은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 환자 신경 좀 써서 살피고. 그렇게 좋은 자재를 썼는데,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두고 보자고.”

그 말을 마친 곽종군은 의국으로 돌아갔다. 연문빈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입을 삐죽였다.

‘직접 능연에게 말씀하면 되잖습니까? 능연이 싫어할까 봐 이러시는 거죠?’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도 그랬다. 만약 자기가 제약 회사에서 테스트 용품을 좀 썼는데 추궁당한다면 짜증이 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테스트 용품을 쓴 게 본인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순간 연문빈은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스트 용품을 쓴 건 능연이고, 결정을 내린 것도 능연인데, 추궁당한 것은 자신이라니. 어째서?

그러나 추궁은 이미 당했고, 곽종군도 할 일을 한 것이다.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는 연문빈은 묵묵히 병실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하얀 벽에 푸른 무늬가 있는 병실 안에 여원이 침대 곁에 앉아 있었다. 커다란 검은 테 안경을 쓴 여원은 손에 노트를 들고 환자 원위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진지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누가 회진을 저런 식으로 하지. 연문빈은 어리둥절해졌다. 효율은 둘째 치고 하루 동안 회진 돌면서 환자의 상태를 모두 기록한다고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단지 이식 수술은 단순해서 환자의 손가락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는 의료인이 아닌 가족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변화라고 해봐야, 부기 아니면, 손가락 색깔, 포만도 등이었다.

“아, 이제 네가 맡아.”

마침 노트를 챙겨 넣던 여원이 연문빈을 보고 웃으면서 일어났다.

“잠깐 보러 온 거야. 뭐 하고 있었냐?”

“비교 논문을 좀 쓸까 해서.”

여원이 숨기는 것도 없이 대답하자 연문빈은 멍해졌다. 곽종군이 아까 기술 비교 어쩌고 했었는데, 여원은 이미 논문을 쓸 준비를 하다니.

“그런 논문도 SCI에 낼 수 있어?”

이미 논문 능력을 직접 본 적이 있는 연문빈은 여원이 지난번 논문을 영문 간행물에도 보내고 케이스 리포트도 통과한 걸 알고 있어서 그런 질문을 던졌다.

“SCI에 보낼 필요는 없고, 핵심 간행물에 보내기만 하면 돼.”

“핵심 간행물······이면 되는구나. 하, 하, 하, 하.”

연문빈도 앞으로 주치의가 되기 위해서 논문을 써야 할 사람이었다. 당연히 핵심 간행물을 통과해야 하는데, 쉽게 말하는 것을 보니 다른 세상 이야기 같았다.

여원은 고개를 끄덕일 뿐, 딱히 설명하지 않았다. 발 받침대가 필요 없는 상황에서 여원의 눈빛엔 언제나 상대방을 무시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연문빈은 입가가 실룩였다. 그런 시선에 익숙했다. 그가 병원을 지나 뒷골목 졸임 고기 집을 지날 땐 항상 그런 표정을 지으니까.

드르렁.

병상에 원위가 코를 드르렁 골았고 하금수와 딸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의사들을 바라봤다. 의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더욱 놓였다.

수술이 어떻게 된 건지는 아무래도 알 수 없었고, 지금도 손가락이 두꺼운 거즈에 싸여 있었다. 하지만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자주 오가는 것만 봐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며칠 동안 여원이 회진을 도맡아 하자, 연문빈과 마연린은 뛸 듯이 기뻐했다.

회진은 매일 적어도 두세 시간을 소비해야 하는 막중한 작업이었다. 특히 침대 관리 의사는 더욱 그랬다. 그런데 누군가 알아서 환자를 챙긴다는데, 그걸 막을 사람은 없었다.

능연은 여전히 수술을 많이 하지 않았고, 초반에 단지 이식 수술을 받았던 환자들이 하나둘 퇴원하기 시작했다. 초반에만 해도 수술량이 많지 않아서 그렇다고 해도 침대가 비는 속도는 여전히 제한되어 있었다.

게다가 침대를 늘리는 건 채무와 마찬가지라서 많이 쓰면 쓸수록 압박도 심해졌다.

그래서 원위 수술을 마친 며칠 동안이 연문빈과 마연린이 가장 편안한 시간이기도 했다. 하루 평균 2건이 안 되는 수술을 했고, 회복기에 접어든 환자의 회진은 간단했고, 차트도 점점 수월해져서 ‘위와 같음’이라는 말로 넘길 수 있었다.

- 오늘 회진: 환자 상태 위와 같음, 신체검사 위와 같음, 진단 위와 같음, 치료 위와 같음, 지속 관찰······.

그런 즐거움은 병원에 ‘공정원(국립 공학 학술 단체) 원사 축동익 님 일행 참관 방문 예정’이라는 새로운 공고가 뜨기 전까지 이어졌다.

정형외과, 수부외과, 척추외과, 골종양 의학과, 류머티즘 관절 의학과, 응급 의학과 등 정형외과와 스포츠 의학에 관련된 진료과들은 적극적으로든, 소극적으로든 움직이기 시작했다.

명예만 따지면 공정원 원사는 중국 의사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명예 위치에 있었다. 그 외의 모든 전문가, 교수, 공로상 등은 모두 그에 미치지 못한다. 수많은 명예성 직위가 정치색을 띠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정원 원사는 운화 병원 같은 곳에 미치는 위암감은 상당했다.

“뭐 어쨌든, 우리 병원엔 공정원 원사가 없으니 축동익 원사가 남아준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지요. 물론, 높은 목표에 속하지만요. 잠정적으로 축동익 원사가 우리 병원에 이름만 걸어 주기라도 바랄 뿐입니다.”

원무 회의에서 심각한 표정의 원장이 바람을 전달했고, 곽종군을 포함한 주임들은 어두운 얼굴로 듣고 있었다.

운화 병원 급 정도라면 거의 매일 참관 일정이 있다는 건 오버일지 몰라도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참관이라고 다 같은 참관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작은 구 정부에서 온다고 하면 안 될 건 없지만 높은 수준의 접대를 받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그러나 공정원 원사는 달랐다. 병원 입장에서 보면 공정원 원사 하나가 언제든 병원의 레벨을 두 등급쯤 올릴 수 있고, 진료과를 전국 정상급 수준으로 올릴 수 있었다. 쓸모만 있다면 1억 위안짜리 핵공진 수술실도 가볍게 만들 정도였다. 실력만 있으면 병원이 깊은 산속에 있어도 침대가 찬다고, 사람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야 병원은 대수롭지 않게 그럴 만한 환경을 구축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공정원 원사의 방문은 더욱 흥분할 만한 일이었다. 축동익 손으로 편찬한 교과서와 논문 간행문은 접어두고, 그가 한두 마디 말만 꺼내도 의사들이 얻을 수 있는 수확은 무궁무진했다.

더 까놓고 말해서, 축동익 앞에서 얼굴을 비출 기회만 잡는다면 앞으로 병원 생활엔 꽃길만 펼쳐질 것이다. 곽종군 주임조차도 공정원 원사가 아주 조금만 도움을 줘도 그가 꿈꾸는 대규모 응급 의학과를 원하는 대로 이룰 수 있다.

길고 긴 회의실 양쪽에 가득한 주임들은 각자 생각을 가지고 겉으로는 미소를 지은 채 내심 초조해하고 있었다. 특히 정형외과와 관련된 과실에서는 더욱 갖가지 생각으로 정신이 없었다.

조낙의는 응급 의학과에서 책상을 몇 번이고 닦고 또 닦으면서 좌우에 붙어 있는 수술 시간표를 수시로 힐끔거렸다.

내일 아침에 병원에 도착하는 원사는 우선 회의실에서 좌담회를 가지면서 리더들과 친밀하게 대담을 나눌 예정이었다. 그 후로 원사의 스케줄은 자유로워진다.

그는 중점적으로 수부외과와 골종양 의학과를 살필 것이고, 정형외과, 척추외과, 응급 의학과가 그의 다음 참관 목표가 될 가능성이 컸다. 물론 그저 슬렁슬렁 지나치며 참관하겠지만, 그마저도 기회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낙의의 눈빛이 수술 시간표에서 배회했다. 아침 9시에 연속으로 수술이 두 건 있었다. 정상적인 수술 시간표였지만, 만에 하나 수술에 문제가 생기면 점심까지 지연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원사가 천릿길을 달려오며 보내는 기회의 신호를 잃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 기회를 놓칠 조낙의가 아니었다. 그는 몸을 움직이는 척 의국 안을 한 바퀴 휭 돌다가 주 선생 앞으로 다가갔다.

“주 선생, 우리 내일 수술 시간 좀 바꾸면 안 될까? 하아, 내 허리가 말이야 갑자기 또 고질병이 도졌지 뭐야. 내일 연달아 수술 두 건을 못 버틸 거 같아. 물론 버티려고 하면 버틸 수 있겠지만······.”

“듀티 4번.”

주 선생이 누군가. 그 속셈을 단번에 간파한 그는 눈빛을 초롱초롱 빛냈고 조낙의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의사는 휴일이 드문데 대리 근무라니. 게다가 4번이라면 다 갚을 때까지 몇 주가 걸릴지 모를 일.

“한 번이면 충분하지.”

조낙의는 흥정하기 시작했다. 주 선생은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싱긋 웃고는 등받이에 깊숙이 기대면서 편안하게 기지개를 켰다.

“너도 원사님 시중드는 거 싫잖아. 기회는 내가 주는 거라고.”

“누가 값을 부르기 시작했네? 다른 사람도 바꿔 달래. 듀티 4번보다 더 불러야겠는데?”

주 선생이 갑자기 핸드폰을 휘둘렀다.

“어, 얼마나?”

조낙의의 입이 벌어졌다.

“5개는 되어야지.”

주 선생은 신나서 말했다. 거래가 성공하면 나중에 여행을 가도 될 정도로 휴일이 늘어나게 된다.

“저, 저기 고민 좀 하고 올게.”

연속 근무가 5주 이상 이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낙의는 순간 절망에 빠졌고, 마지노선도 없이 덤비는 이 거래가 경멸스러웠다.

대리 근무 5번이라니, 정신 나간 짓이지.

주 선생은 낄낄거리며 낚싯대를 드리운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레지던트들도 비슷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원사를 접대할 자격은 주임과 부주임 정도 되는 의사에게나 주어졌다. 주치의는 일반적으로 그냥 시중이나 들 뿐이고, 레지던트는 낄 틈도 없었다.

그러니 능연의 임무는 제때 회진하는 일만 남았다. 이리저리 생각하던 능연은 아예 재활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추나 기술이 재활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동안 그럴 틈이 없었는데 여유가 생겼으니 입증해 볼 생각이었다.

재활실에 도착한 능연은 의사의 지시에 따라 활동 중인 재활 환자 몇 명을 발견했다. 그중에 뒷모습이 익숙한 의사가 하나 있었다.

“손 높게 드세요. 더 높이! 힘껏, 잡으세요. 제 손을 더 힘껏! 자, 만져 보세요. 더 세게!”

목소리를 들은 능연은 더욱 익숙하단 생각을 하고 걸음을 옮기다가 저도 모르게 고함쳤다.

“왕장용? 너 언제 재활실에 왔냐?”

“여원 선생님이 재활실이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 나도 그게 좋을 거 같았어. 저기요, 다른 데 보지 말고요. 자, 힘껏 제 손을 잡으세요. 제 손을 들어 올려 보세요.”

고개를 돌려 웃는 얼굴로 능연을 본 왕장용은 다시 환자를 재촉했다. 능연은 그 모습을 보며 제법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어딘가 그 리듬에 불협화음이 느껴졌다.

“손가락 쥐어 보세요. 절 보세요, 따라 하세요. 엄지와 중지를 같이 쥐고요.”

왕장용은 완벽히 재활 가이드에 따라 교육을 했다. 재촉당한 환자는 왕장용을 씩씩거리며 바라봤다.

“자자, 손가락을 그렇게 쥘 수 있어야 회복이 잘된 거예요. 자자, 할 거예요, 말 거예요?”

환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왕장용은 학교로 돌아간 느낌으로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었다. 그러곤 가슴을 활짝 편 채 재활실 안에 서서 쉴 새 없이 고함쳤다.

“내 손을 잡고 내 신호에 따라서 손아귀를 잡아요. 잡아요! 힘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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