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115화 (99/877)

원위는 손을 뻗은 채 간호사가 드레싱용 두꺼운 거즈를 천천히 푸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간호사가 침착하게 거즈를 한 꺼풀씩 벗겨내자 원위의 봉합 후 상처가 조금씩 드러났다. 원위와 하금수는 긴장하여 봉합 상처를 주시했고 안겨 있던 딸이 그 바람에 몸을 버둥거렸다.

“가만히 있어.”

하금수가 딸의 엉덩이를 툭 내려치자 아이는 억울한 듯 아프다고 고함쳤다. 잠시 멍해졌던 하금수는 그제야 딸을 풀어줬다. 미안하긴 했지만, 사과는 하지 않고 아이의 팔뚝을 잡아끌었다.

“자, 아빠 손 잘 꿰매졌나 같이 보자.”

토라진 딸은 입을 내밀었지만, 눈은 저도 모르게 아버지의 손으로 향했다. 봉합 후의 손가락 표면은 붉었고 부어 있어서 지문도 잘 보이지 않았다. 검은 봉합선이 가장 눈에 띄었고, 맨눈으로도 매듭 위치가 보였다. 손가락이 살짝 안으로 굽어 있어서 기이할 정도로 흉하고 이상했다.

“아파?”

하금수가 묻자 딸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버지를 바라봤다.

“조금······. 아, 아프지 않아, 그냥 느낌만 있어.”

원위는 손가락을 구부려 보려고 했으나 뜻대로 할 수 없자 다소 당황했다.

“왜 안 움직이죠?”

탕 봉합과 비교해서 단순하지 않은 단지 이식 수술은 수술 후 열흘이 지나도 못 움직이는 사람이 많았다.

“온도가 중요합니다. 매우 중요해요.”

“절대로, 절대로 담배는 안 됩니다. 기억하세요, 담배는 절단 위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걸요. 반드시 금연하셔야 합니다. 아니면 나중에 손가락을 잘라야 해요. 냄새도 안 됩니다.”

“너무 흥분하시면 안 돼요. 편안함을 유지하시고요.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감정 기복이 너무 심하면 안 된다는 말이에요. 감정 기복이 심하면 혈압이 높아질 수 있거든요. 평소엔 그냥 안 좋은 정도겠지만, 손가락 수술 후에는 매우 위험하답니다. 앞으로 몇 개월은 최대한 평상심을 유지하셔야 해요.”

간호사는 의사가 전에 했던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당부했지만 원위와 하금수는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여기서 더 잘못됐다가는 그야말로 큰일이었다. 치료란 단순히 진료비 문제가 아니었다. 그 기간에 생활비에 아이 학교 문제도 있었다. 주변에 부탁할 수 있는 친척에게는 모두 부탁했었다. 다시 한번씩 더 부탁해야 한단 말인가.

더 중요한 건 여기에서 원위의 손가락을 잘라야 할 일이 생긴다면 안 그래도 생활 원천을 잃은 가족은 무너질지도 모른다.

“담배 끊겠습니다.”

원위는 원래 담배를 자주 피우지 않았다. 가끔 동료들끼리 쉬면서 담배를 주고받을 때나 피우는 수준이었다. 간호사의 당부를 한두 번 들은 것도 아니고, 진작에 금연 결심을 내린 바였다. 돈도 걱정이었다. 치료하는 데 돈이 들었고, 수술하는 데도 들고, 입원도 들지만, 밥 먹고 오가는 교통비 같은 것도 모두 돈이었다.

요 며칠 돈 걱정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 담배라니, 그는 아내가 밥 먹을 돈으로 담배를 사거나 할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냄새도 안 됩니다. 전에 그런 환자분이 있었어요. 얼마 전에 단지 이식 수술을 끝낸 아내 앞에서 담배를 피운 남편 때문에 하마터면 손가락을 자를 뻔했어요.”

간호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네, 금연하겠습니다. 냄새도 안 맡겠습니다.”

간호사가 위협을 하는 건지 정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건지 몰라도 원위에게는 반항의 여지가 없었다.

“단지라는 건, 회복하는 데 한두 달 걸린다고 하던데, 구체적으로 얼마나 지나야 일을 할 수 있을까요?”

하금수가 낮은 목소리로 간호사에게 물었다.

“일이요? 어떤 일인데요?”

“인테리어요.”

“육체노동인 셈이네요. 그럼 1년 후는 되어야 해요. 2년 후에 다시 일을 생각하는 게 제일 좋고요. 당분간은 몸을 쓰지 않는 일이 좋습니다.”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서, 몸 쓰는 일 아니면 일자리를 찾기도 힘들어요.”

원위가 머쓱한 듯 웃었다.

“심하게 쓰는 거 아닌 건 괜찮아요.”

원위의 딸을 본 간호사가 고개를 까딱 움직이며 조금 더 상세하게 설명했다.

“재활 잘해서 한 3, 4개월 후에 택배나 배달 아니면 경비일 같은 거 찾아보세요. 아니면 작은 좌판 장사 같은 것도 괜찮고요.”

간호사의 말에 하금수는 고맙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능연이 병실로 들어갔다.

“어떤가요?”

마침 간호사를 본 능연이 바로 물었다.

“꽤 좋아요.”

간호사는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환자를 능연에게 넘겼다. 시각 검사만 따지면, 진료과의 주력 수술을 파악하는 건 간호사가 의사보다 나을 때도 있었다.

단지 이식 수술 후 첫날 환자의 모습은 어때야 하는지, 드레싱을 막 풀고 나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20일 뒤에는 어때야 하는지, 이는 의사보다 훨씬 많은 환자를 봐온 간호사가 훨씬 유리하다.

비수술 간호사는 보통 병실 간호사로 오래 근무하고, 왔다 갔다, 갔다 왔다 하면서 쉴 새 없이 약을 바르고, 헤파린을 바르고 손을 긁는 등 시시각각 환자와 접촉한다. 그런 간호사가 좋다고 하면 정말로 좋은 것이다.

능연도 고개를 숙이고 살피기 시작했다. 수술 후 일주일이 지난 원위의 손가락은 부기가 아직 남아 있지만 검은색도 흐려졌고 양호한 상태였다.

“갑(甲)급이네요.”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능연은 검사를 중단했다.

의학에서 회복 정도는 전문적으로 분류되는데 갑, 을, 병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전문적인 의사는 회복 상태만 봐도 환자의 수술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능연은 슬쩍 뒤를 돌아보다가 상대방이 너무 가까이 있는 모습에 저절로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더니 비슷한 나이의 의사 하나가 튼튼한 상반신 위로 고개를 쭉 펴고 있었는데 꼭 일어선 거북이 같은 모습이었다.

“누구신가요?”

“설호초입니다. 의학 참관 왔습니다.”

거북이 의사는 능연의 얼굴을 잠시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내심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그러고는 악수하려는 듯 손을 내밀었다. 능연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사회 풍습에 맞춰 그와 악수하고는 주머니에서 알콜겔을 꺼내서 공손하게 필요하냐고 물었다.

“아, 아니요. 필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머뭇거리던 설호초는 눈을 껌뻑이며 능연이 조금 전에 자신과 악수한 오른손에 알콜겔을 짜서 꼼꼼히 바른 후 가볍게 문지르는 노련하고 자연스러운 동작을 지켜봤다.

설호초는 자신이 뭔가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조금 전에 능연이 알콜겔을 자신에게도 주려고 했던 걸 떠올리고는 혼란스러워졌다.

“원사님하고 함께 오신 건가요?”

능연은 답을 알면서도 질문을 던졌다. 다른 참관팀이 있을 리가 없는 날이었다.

“나는 축동익 원사님의 박사생입니다. 응급 의학과에서 능 선생이 단지 이식 수술을 혼자 여러 건 했다는 소문을 듣고 궁금해져서······.”

설호초는 자신이 왜 그런 해명을 늘어놓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능연에게서 위압감을 느껴서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능연의 손가락을 내려다봤다. 누군가 단독으로 어떤 수술 방식을 전개한다는 건 진료과 주력 수술을 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이론을 배우는 박사 생활을 몇 년이나 한 설호초로서는 나이대가 비슷한 수술 달인이 부럽지 않을 수 없었다.

설호초의 간절한 눈빛을 느낀 능연은 한숨을 내쉬면서 알콜겔을 다시 꺼냈다.

“쓰고 싶으면 쓰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

해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던 설호초는 문득 이 녀석은 악수하고 소독하는데 나라고 못 할 거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려던 말을 삼키며 알콜겔을 받아 들었다. 그는 보복성으로 크게 꾸욱 눌러서 잔뜩 뽑아낸 다음에 자신의 손에 문지르면서 거칠게 비벼댔다.

훅 줄어든 알콜겔과 껍질을 벗길세라 문지르는 설호초의 모습을 본 능연은 동정하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쉽지 않죠?”

“하아? 난, 난······.”

설호초가 다시 당황했다.

“손이 차가운가요?”

그러나 능연의 관심은 다시 환자에게 돌아갔다.

“아뇨. 그러면 안 되나요?”

두 사람의 대화를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원위는 갑자기 화제가 자신에게 돌아오자 덩달아 당황했다가 찬찬히 느낌을 되살리면서 대답했다.

“아니요. 손은 따듯해야 좋아요. 그러니까 온도 유지 주의하세요.”

“아까 간호사 선생님도 여러 번 말씀하셨어요. 한 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잔소리쟁이들.”

“그러니까, 그만큼 중요해서 그런 거지.”

원위의 딸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능연은 어린 소녀가 귀엽든 귀엽지 않든 똑같이 대우했고, 다시 고개를 돌려 원위를 바라봤다.

“체온이 떨어지면 혈액 흐름이 느려집니다. 그렇게 되면 혈액 순환에 영향 주니까, 온도 유지는 주의하셔야 해요.”

“네네, 알겠습니다.”

원위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설호초는 홀대당하는 느낌을 받으면서 능연이 이야기하는 틈을 타 환자의 손가락을 유심히 관찰했다.

“첫 회진인가 보군요. 수술한 지 열흘 됐나요? 이 정도 회복된 거면 괜찮은 편이네요. 다만 부기를 조금 더 제어해야 합니다. 환부를 조금 더 높게 두시고요······.”

“일주일입니다.”

설호초의 발언을 고쳐준 능연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원위와 하금수를 바라봤다.

“부기는 정상 수준이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설 선생님, 제 환자에게 오더 내리지 말아 주세요.”

능연은 상당히 날카로운 말투로 내뱉었다. 강렬한 영역 표시에 박사생 설호초의 체면이 다 없어질 지경이 되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그가 얼굴을 찌푸렸다.

“일주일? 일주일하고 얼마나 됐는데요?”

“딱 일주일입니다.”

설호초가 뭘 궁금해하는지 잘 아는 능연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가능한 한 완벽한 봉합을 위해 그는 모든 스텝에 심혈을 기울여 수술을 진행했다. 따로 보면 별거 아니지만, 그런 것들이 모여서 환자의 회복 정도를 훨씬 좋게 만든다.

지금 상황으로 보면 앞으로 일주일 뒤에는 손가락 재활 성공을 선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설호초는 말도 안 된다는 듯 껄껄 웃음을 터트렸지만, 별말은 하지 않았다.

‘허풍 떨 땐 통쾌하겠지. 수술 기록이랑 환자 기록은 어쩔 건데? 이제 망신당할 일만 남았군. 능연.’

조낙의는 굳건한 눈빛으로 전방을 주시했다.

그는 결국 듀티 5번에 족발 10개, 허벅지 살 2개로 주 선생과 시간을 바꿔서 원사 일행을 맞이하는 환영단의 일원이 되었다.

지출한 대가가 조금 뼈아프긴 했지만, 주 선생을 제외한 응급 의학과 주치의 중에는 그런 좋은 기회를 포기할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곽 주임 뒤에 한 줄로 서서 원사 일행이 도착하길 조용히 기다렸다.

곽 주임 이하 주임 의사와 부주임 의사는 그래도 침착함을 유지했지만, 주치의들은 안절부절못했다.

“아직인가.”

“너무 늦는데요? 수부외과에서 시간을 끌었나 봅니다.”

“아, 이제 수술 들어가야 하는데. 시간을 너무 안 지키는 거 아냐?”

조낙의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해했다. 의사는 모두 바쁘지만 특히 주치의는 더 바빴다. 그는 미리 시간을 조정해 둬서 여유가 있었지만, 여기 있는 다른 의사들은 모두 시간에 쫓길 만큼 바쁜 사람들이었다.

조낙의는 그 순간 농땡이 의사 주 선생이 요구한 대가가 싼 편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이번에 기회를 잡게 된다면 나중에 가벼운 선물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아름다운 상상이 그의 머릿속이 꽉 찼다.

이번 참관단의 규모는 거대했고, 정형외과는 축동익의 진료 플랫폼에 참여하여 앞으로 글로벌 과학 연구 항목을 받게 될 수혜자가 되었다. 주치의들은 축동익이 내놓은 표준화 훈련 TO에 가장 주목했다. 대수롭지 않은 곳에서 제공하는, 대수롭지 않은 표준화 훈련과는 완전히 다른 축동익의 표준화 훈련은 짧으면 두 달에서 길면 2년까지 걸린다. 단기 트레이닝은 축동익의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에서 이뤄지고, 장기 트레이닝은 곧바로 미국 메이요 클리닉으로 보내지니, 의사들이 오매불망하는 기회였다.

운화 병원은 창서성과 운화 정상급 병원이기에 순수하게 학력 혹은 실력만으로 운화 병원, 그것도 정형외과 같은 진료과에 들어가는 건 석사로는 힘들었다. 박사라도 해도 고르고 고른 사람이 아니면 어려웠다. 해마다 이력서를 보내는 해외 의대 박사도 점점 늘고 있었기에 최근 몇 년 사이, 외국에서 딴 박사 학위가 있다고 해도 반드시 운화 병원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부주임급이 되는 의사들은 그나마 노련함을 뽐낼 수 있어도 주치의급 의사는 적잖게 압박을 받았다.

조낙의는 진작에 다른 곳으로 가 연수를 받고 싶었지만, 사실 운화 병원 의사쯤 되면 연수 갈 만한 병원도 많지 않았고 정확한 분야까지 고르려면 더 쉽지 않았다.

그러니 메이요 병원만큼 적당한 곳도 드물었다. 특히 정형외과는 메이요 병원이 세계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정말로 2년 연수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끝내주는 기회였다.

“원사님 오셨습니다.”

누군가의 목소리에 조낙의는 바로 매무새를 가다듬고 가슴을 활짝 폈다. 원사 축동익은 그와 마찬가지로 가슴을 편 자세로 나타났다.

일흔에 가까운 축동익은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하고 몸을 곧게 편 채로 서 있었다. 그는 요즘도 매일 4시간 이상 근무하며 적어도 한 번은 회진하고, 교육성 수술을 하고, 게다가 정기적으로 강의도 하고 있었다.

그밖에도 그는 해마다 새 책을 냈고 중화 브랜드 간행물 편집 위원과 심사위원도 담당했다. 가장 대단한 것은 물론 그의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였고, 그의 센터는 세계적으로도 크게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그 덕분에 그의 밑에 있는 제자들에게도 탄탄한 기반이 되었다. 그런 모든 것이 그가 공정원 원사가 되는 데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위풍당당하게 나타난 축동익을 바라보며 조낙의는 얼굴에 미소를 지은 채 속으로 제발 얼굴을 알릴 기회를 한 번만 달라고 기도했다.

“곽 주임, 맞지요?”

축동익이 솔선해서 인사하며 훌륭한 매너를 선보였다. 갖가지 회의 활동에서 종종 불벼락을 뿜는 곽종군도 오늘은 훌륭한 매너를 드러내며 백합처럼 찬란하게 웃었다.

“축 원사님. 저희 운화 병원 응급 의학과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자네 응급 의학과에서 단지 이식 항목을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궁금하구먼. 한 번 볼 수 없겠나?”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짓는 축동익의 말에 이미 예상하고 있던 곽종군은 다급하게 앞으로 나서 길을 열면서 소개하기 시작했다.

축동익은 조낙의의 곁을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곧게 뻗은 탄탄한 몸과 희끗희끗한 백발의 70세 노인은 위엄을 선보이며 사라졌다. 그 뒤를 바짝 따른 곽종군도 몸을 쭉 펴고 흑발을 빛내며 뿌듯함이 가득한 숨결을 뿜뿜 내뱉었다.

조낙의 등은 참관단 일행이 모두 사라진 후에야 천천히 그 뒤를 따랐다.

“아니 왜 바로 단지 이식을 보는 건데.”

조낙의는 마음속 불만을 그대로 드러냈다.

“능연 단지 이식 성공률이 좋아도 너무 좋잖아. 요즘 젊은 의사들 대단하다, 대단해.”

곁에 있던 주치의가 툴툴댔다.

‘적당한 환자가 없다지만, 내가 응급으로 진행한 정형외과 수술도 있는데. 젠장. 어디 뼈 부러뜨릴 만한 사람 없나.’

조낙의는 입을 삐죽거리며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참관단의 뒤를 따랐다. 잠시 후, 그는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의사 하나를 골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직접 축동익을 노릴 수 없다면 측근을 공략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조낙의는 생각이 많은 남자였고, 그 순간 아내와 나눴던 이야기가 빠르게 떠올랐다.

여보, 새로 산 백 좀 봐요.

여보, 새 옷 어때요?

여보, 오늘 돈이 좀 남아서 목걸이 하나 샀어요.

매월 신용카드 청구서를 볼 때마다 그는 속으로 자신이 정형외과 의사면 좋겠다고 묵념했다.

“여기 병실 전부 단지 이식 환자란 말이오?”

축동익은 관찰 병동 반을 차지한 침대를 보며 매우 놀라서 물었다. 소수 병원 몇 군데를 빼고 중국 국내 대부분 병원의 병상은 몇백에서 2, 3천 개 사이에 있으며 그 수를 넘기는 병원은 손에 꼽혔다.

진료과 하나만 따졌을 때 수십 개면 많은 편이고 1, 2백 개는 정말로 많은 축에 들었다.

축동익이 운영하는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도 고작 180개 병상뿐이었고 병상 추가도 드물었다.

진료과 건설에 힘을 아끼지 않는 곽종군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단지 이식은 현재 우리가 매우 중시하는 새로운 아이템입니다. 게다가 환자도 정말 많고요. 그래서 어떻게든 방법을 생각해서 병상 수를 늘렸답니다.”

“단지 이식 환자는 평균적으로 얼마나 입원하나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라 정확한 통계를 낼 수 없지만, 지금까지는 40일에서 45일이었습니다.”

축동익은 대번에 핵심 질문을 던졌고 곽종군은 숨김없이 대답하며 껄껄 웃었다.

“장기 입원 방안을 택했군요.”

곽종군은 대답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요즘에 운화 병원처럼 할 수 있는 곳도 많지 않소.”

축동익이 한숨을 내쉬었다. 정형외과 환자는 모두 장기간 요양과 재활이 필요한 환자였다. 하지만 현재 각 대형 병원은 침대 회전율을 핵심 지표로 보고 있어서 다들 환자가 빨리 퇴원하길 바라고 있었다.

응급 의학과는 병원에서 유일하게 침대 회전율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진료과였고 그래서 관찰 병실에 소위 ‘개기기’ 환자가 계속 머무를 수 있었다. 곽종군이 응급 의학과 명의 아래 ‘단지 이식’ 아이템으로 안치해둔 환자도 마찬가지로 침대 회전율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 방면으로 탁월한 것 같군요.”

대충 병실을 둘러 본 축동익은 다시 한번 찬사를 내뱉었고 그와 함께 온 의사들도 미소를 드러냈다.

“이 항목을 개시하기 전에 미리 충분히 검증을 진행했습니다. 모든 것은 때가 맞아야 한다고······.”

곽종군은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사람들을 데리고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 좀 볼까요?”

타이밍을 잡은 설호초가 앞으로 나서서 원위의 병상을 가리켰고, 곽종군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앞장서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축동익의 제자임을 떠올린 곽종군은 그가 다소 무례한 것을 무시하고 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간 설호초는 바로 원위를 찾았다. 부부를 찾아낸 그는 싱긋 미소 짓고는 뒤따라 들어온 의사들을 바라봤다.

“이 환자, 차트 좀 볼 수 있을까요?”

“차트 좀 가지고 오게.”

지시를 내린 곽종군이 다시 설호초를 바라봤다.

“아까 시간 있을 때 좀 둘러보다가 여기 있는 환자분 수술과 회복에 관심이 좀 생겼답니다. 그래서 차트를 좀 보고 싶어서요.”

설호초는 반쯤 진심을 감추고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축동익은 그를 말리지 않고 가만히 지켜봤다. 어차피 이번 참관은 시찰의 의미도 있어서 랜덤으로 케이스를 뽑아볼 의도도 있었다.

잠시 후, 원위의 차트를 건네받은 설호초는 제일 먼저 수술 시간을 확인하고 빙긋이 보란 듯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꼽으며 계산했다.

‘미친, 7일 전?’

“7일 전에 수술한 게 맞습니까?”

설호초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원위에게 물었고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드렸잖아요.”

설호초는 하하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거북이처럼 고개를 쑥 밀어 넣었다.

“교수님, 이것 좀 보십시오.”

그는 원위의 다친 손의 붕대를 풀어 버렸다. 축동익은 미소 가득한 얼굴로 그에게 다가가서 목을 빼고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원위의 단지 봉합 부위를 바라봤다. 그리고 한참을 정신 팔린 듯 지켜봤다.

“사진 좀 찍어 볼까요?”

곽종군은 허리를 문지르며 몸을 일으킨 축동익의 제안을 당연히 단번에 승낙했다. 그러자 원위와 하금수 부부가 바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

“아닙니다. 손가락은 아주 잘 회복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훨씬 좋아요. 구체적으로 어떤지 좀 궁금해서요. 사진은 제가 보자고 했으니, 비용 걱정은 마시고요. 그냥 사진만 찍어 주시면 됩니다. 이따 저희가 다 함께 진단도 내려 드리겠습니다.”

축동익은 빙그레 웃으면서 환자에게 해명하고는 특별히 설명까지 덧붙였다.

걱정과 기쁨 사이에 무료 진료가 있었다.

원위와 하금수는 병원에서 하는 검사는 그게 뭐든 비싼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아까 설호초가 붕대를 뒤집었던 불쾌감도 잊고 발걸음도 가볍게 간호사를 따라 검사받으러 갔다.

X-ray.

MRI.

도플러(혈류) 초음파.

CT.

참관하느라 지쳤던 축동익은 응급 의학과 의국에 앉아있다가 차를 내오자 길가에서 바둑 구경하는 노인처럼 느긋하게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아까 그 환자 수술한 의사는요? 왜 안 보입니까?”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슬슬 검사가 끝났으리라 시간을 계산한 축동익이 궁금한 듯 물었다.

“능연은 지금 수술 중입니다.”

“아.”

축동익은 유감이라는 듯 짧게 탄식했다. 그러자 조낙의는 묘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큰 대가를 치르고 얻은 얼굴을 내비칠 기회는 그다지 쓸모없게 됐지만, 능연은 수술 시간대를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아예 기회를 잃었다는 생각에 흐뭇해졌다.

“가서 수술 상황 좀 보고 능연 좀 불러오게. 능연은 수술을 빨리하는 편입니다. 슬슬 끝날 시간이지요.”

곽종군은 시계를 보고는 축동익을 향해 해명하듯 덧붙였다.

“잠깐은 기다릴 수 있겠군요.”

그는 언제까지 기다겠다고 선을 긋지 않았다. 정형외과 출신이라 수술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을 알고 있던 터였다. 의외의 상황에 부딪히면 더 오래 걸릴 수 있으니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었다.

축동익이 능연을 지명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곽종군은 내심 거부감이 들어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흐르는 대로 가자고 생각했다.

“오늘 능연은 두 손가락 수술을 하는 중이니 아마 곧 나올 겁니다.”

“흠흠.”

“연 선생, 할 말 있으면 그냥 하지, 웬 헛기침인가.”

“두 손가락은 벌써 끝났습니다. 그런데 세 손가락 환자가 생겨서 지금······.”

눈썹을 치켜드는 곽종군의 모습에 연문빈은 잘 아시지 않냐는 표정을 지었다. 곽종군도 금세 알아차렸다.

원래 그날 수술은 두 손가락 절단 환자 하나뿐이었고 두 손가락이나 한 손가락 환자는 바로 수부외과로 보낼 예정이었다. 그런데 세 손가락 절단 환자가 나타났다? 능연이 신이 나서 수술실로 들어갔음을 곽종군은 턱으로 생각해도 알 수 있었다.

곽종군은 유감 반, 다행 반인 마음으로 하하하 웃으면서 원사를 바라봤다. 축동익도 담담하게 미소 지었다. 그 역시 반드시 능연을 봐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달걀이 맛있다고 해서 꼭 그 달걀을 낳는 닭을 볼 필요는 없었으니까.

검사 결과가 전달되었다. 곽종군은 건네받아서 슬쩍 훑어보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축동익에게 넘기고는 연문빈을 향해 흠흠 헛기침을 했다.

연문빈은 내심 신이 나서 눈썹을 치켜들었다.

‘할 말 있으면 그냥 하시지, 흠흠 대긴 뭘 흠흠 대시나?’

물론, 하고 싶은 말은 삼킨 연문빈은 80km를 당길 수 있는 튼실한 허리를 굽혀 굽실거리며 곽종군 가까이 다가갔다.

“수술은 자네가 능연과 같이했나?”

“예.”

“구체적인 상황이 어땠나?”

“그러니까······ 정상적인 수술이었습니다. 소가복 선생을 부르고, 저, 그리고 여원도 참석했고요. 스크럽은 왕가가······.”

연문빈은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떠듬떠듬 대답했다.

“누가 그런 걸 물었나?”

곽종군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사람들 앞이라 대놓고 묻기도 그랬다. 귀를 쫑긋 세우고 듣던 축동익도 별 내용이 없자 사진을 하나하나 넘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보다가 축동익이 사진을 뷰박스에 놓고 보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자, 설호초가 다급히 나서서 세팅하기 시작했다. 곽종군은 아무 말 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정형외과 전문가인 축동익은 현장에 있는 모두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였고, 그가 하고 싶은 대로 못 할 일은 없었다.

“수술이 참 잘됐군요.”

“재주 있는 젊은이입니다.”

갑자기 고개를 들고 자신을 바라보면서 웃자 곽종군도 가볍게 호응했다.

“이 능연이라는 의사, 아직 수술 중입니까? 얼마나 더 걸릴까요?”

뒤이어 묻는 말에 곽종군이 사람들을 쳐다봤고 바로 뒤를 따르던 연문빈이 한 시간은 걸릴 거라고 대답했다.

“잘됐군요. 잠시 쉬면서 기다리지요.”

축동익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백발이 가득한 머리를 흔들자 설호초가 사진을 정리했다. 곽종군의 머릿속에 아까 축동익도 떠올렸던 말이 떠올랐다.

‘달걀이 맛있어도 굳이 그 달걀을 낳는 닭을 볼 필요는 없잖아.’

축동익은 여기서 닭이 알 낳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함이 분명했다. 곽종군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심정으로 창밖을 봤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너무 제멋대로 아닌가.

초짜 의사들은 기뻐하며 이때다 싶어 앞으로 달려나가 온갖 질문을 해댔고, 원사가 뭐라고 대답하든, 얼굴을 내밀 기회가 있음에 만족했다. 축동익도 기분이 좋은 편이라 좌담회라도 온 듯 질문 몇 개에 대답을 해주었다.

“축 원사님, 제가 최근에 팔꿈치 관절 쪽 수술을 자주 하는데 내측 절개구에 몇 가지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음, 설호초, 자네가 대답 좀 하게.”

제일 흥분했던 조낙의가 갑자기 이야기를 꺼내자 축동익은 제자를 불러 대응하게 했다. 그는 조낙의의 질문으로 본인 제자를 테스트도 할 겸 대답을 넘기고 차를 홀짝였다.

지명 당한 설호초는 잠시 냉철하게 고민하다가 대답하기 시작했다. 나이가 비슷한 그를 바라보며 조낙의는 풀이 죽었다. 원사가 신경 써서 고른 박사생 설호초는 탄탄한 기초 이론을 유감없이 선보이고 있었다. 설호초의 대답이 별거 아니라는 듯, 원사 뒤에 있는 다른 수행원들의 표정도 하나같이 덤덤했다.

현실에서 부딪힌 리얼한 문제점이 누군가는 그렇게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조낙의는 아무 말 없이 뒤로 물러났다. 그는 점점 더 뒤로 물러나더니 회의실 구석까지 간 다음 입을 다물어 버렸다.

공리심이 사라진 조낙의는 회의실 안의 대화를 듣다가 축동익의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축동익은 의자에 기댄 채 손으로 턱을 받치고 흐릿한 눈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듯 앞을 주시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수술이 어디까지 진행됐을까요?”

한참 만에 축동익이 다시 입을 열었을 때 그의 입에서 결국 재촉의 말이 떨어졌다.

“지금 세 번째 손가락 진행 중입니다. 곧 끝날 겁니다.”

수술실 상황을 계속 주시하던 연문빈이 곽종군을 힐끔 바라보고는 대답했다.

“오, 제법 빠르군요.”

축동익은 간단하게 평가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곽종군은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축 원사님, 다른 진료과 참관을 다녀오시는 건 어떨까요?”

“응급 의학과가 오늘 마지막 참관 진료과입니다.”

“이제 저녁 식사 시간······.”

“좀 늦게 잡아 놨습니다. 급할 것 없어요, 없어.”

세상 이치를 다 깨달은 것 같은 축동익의 모습에 곽종군은 어쩔 도리 없이 눈썹만 꿈틀거렸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더 기다리다가 축동익은 드디어 하얀 가운을 입은 능연을 만났다.

원사를 만나는 것이라, 문 앞에서 기다리던 병원 행정 간부가 내린 지시에 따라 능연은 새로운 가운으로 갈아입었다. 다림질이 빳빳하게 된 길이가 딱 맞는 완전한 새 가운을 걸친 능연은 기품이 남다르고 풍채가 당당했다.

“스타 의사 기질이 있구먼.”

눈이 번뜩 뜨인 축동익은 감탄했다. 경계심이 든 곽종군은 불벼락 표정으로 변한 상태였다.

“곽 주임님, 축 원사님, 안녕하십니까.”

능연은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그들에게 인사했다. 온갖 찬사를 듣는 그는 칭찬이 별로 대수롭지도 않았다. 능연의 당당한 모습에 축동익은 더욱 감탄했다. 자신의 칭찬을 받은 젊은이는 하나같이 황송해하기 마련이었는데, 능연처럼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게 구는 사람은 굉장히 드물었다.

“아까 자네가 수술한 환자를 봤다네. 원위라는 환자인데, 기억하는가?”

“기억합니다. 잘 회복되고 있을 겁니다.”

“좋아, 아주 좋아. 어떻게 수술한 건지, 말해주겠나?”

축동익이 환하게 웃으면서 능연을 바라봤다. 완벽한 봉합을 시도한 손가락을 축동익이 보게 되었다. 능연은 순간 속으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완벽한 봉합은 봉합 후 결과일 뿐이고 봉합 과정 중에 딱히 특수한 기술을 사용하진 않았다. 굳이 다른 점을 말하자면, 수입 자재와 기구 정도일까.

하지만 수술을 해본 사람은 다 알듯이 자재와 기구가 중요하긴 해도 이미 안정적인 수술 방식에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특히 단지 이식 같은 수술은 국내에서 많이 하는 만큼 자재도 많이 쓰기 때문에 국산 브랜드의 수준이 떨어진다고 할 수는 없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정상 조작했습니다. 정규적 봉합 방안을 채택하고 데브리망을 조금 신경 썼다고 해야 할까요. 환자의 혈관 경색이 심한 편이라, 그게 조금 의외였거든요.”

능연은 특별히 신경 썼다는 말 없이 담담하게 묘사했다. 수술대 앞에 서는 외과의는 누구라도 최대한 수술을 잘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노력은 노력이고, 실제로 영향을 주긴 힘들다.

실제로 실력 좋은 의사는 멋진 수술을 하고 실력이 떨어지는 의사는 떨어지는 수술을 한다. 의사의 인격, 성격, 돈을 밝히고 말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축동익은 단지 이식 수술을 잘 모르는 사람처럼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중국 국내에서 현재 진행되는 단지 이식 수술의 수술 방식 중에 과정 자체가 축동익의 영향을 받은 것도 있고 심지어 축동익이 개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냥 정상적인 단지 이식 수술이었군.”

축동익은 10분 넘게 능연의 설명을 듣다가 그가 말을 끝내자 그제야 긴 한숨을 내쉬면서 판단을 내렸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결론은 이거군.”

축동익은 능연을 바라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자네가 실력이 좋고 기술이 좋아서 이런 수준 높은 단지 이식 수술을 해냈다는 것.”

“능연은 운화 응급 의학과 핵심 인물입니다. 실력, 기술 당연히 좋아야지요.”

곁에 있던 곽종군은 시어머니표 심술궂은 표정을 지었다.

“너무 잘하잖습니까.”

“너무 잘하는 것도 문제입니까?”

곽종군은 곁에서 바라보는 병원 간부의 눈빛도 무시한 채 눈을 부릅뜨고 축동익을 바라봤다. 그는 손을 휘휘 내저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하는 게 무슨 문제겠습니까. 잘하면 문제를 해결하겠지요.”

그렇게 말한 축동익은 능연을 바라보며 웃었다.

“능 선생, 나한테 이런 케이스가 하나 있네. 운동선수인데 수술 방안은 완벽하게 세워뒀거든? 그런데 집도의가 문제야. 아직도 결정을 못 내렸다네. 어떤가, 자네 한 번 시도해 보겠나?”

능연이 대답하기도 전에 머릿속에 시스템 제시어가 먼저 나타났다.

- 퀘스트 완성: 완벽한 봉합

- 퀘스트 내용: 그랜드마스터급 단지 이식 수술을 발휘해서 환자 원위의 손가락을 완벽하게 봉합할 것

- 퀘스트 보상: 중급 보물 상자

“축 원사님, 지도 수술 말씀인가요?”

능연이 영문도 모르고 팔려갈까 봐, 곽종군이 능연보다 먼저 질문을 던졌다.

“그렇지요. 방안은 다 준비했는데, 집도할 만한 의사를 못 구했지요.”

축동익은 직접 수술을 하지 않은 지 10년이 넘었지만, 수술 방안을 설계하면서 수술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는 집도의보다 높은 지위에서 집도의가 수술을 완성하도록 전체 지휘했다. 그런 방식은 집도의가 수술실을 완전히 제어하는 방식과 충돌했고 집도의의 권위를 갉아먹기 때문에 권위가 월등히 높은 의사만 가능했다.

다시 말하면, 나이 들어 수술할 수 없는 외과 의사 중에 그럴 만한 지위가 있는 의사만 지도 수술을 진행할 자격이 있다는 말이다. 아시아 병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방식이었다.

당장 능연을 뺏기는 것이 아니라면 여지가 남아 있다는 생각에 곽종군은 우선 한숨을 돌렸다. 그렇긴 해도 축동익의 성격을 잘 모르니 그가 나중에라도 능연을 훔쳐 갈까 걱정이었고, 능연이 그에게 밉보일까 봐도 걱정이었다.

“능연은 전에 그런 수술을 해본 적이 없어서요. 적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기술은 좋지만, 어시 경험이 별로 없답니다. 그래서 지도 수술에 적합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실력이 중요하지요, 적응은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자네, 탕 법도 매우 잘한다며? 우리 센터 트레이닝 중에 근건 수술 준비 중인 게 있는데, 어떤가? 생각 있나?”

“저는 수부 근건 수술만 했었습니다.”

능연이 그를 마주 보며 대답했다.

“기초가 탄탄하니 강화 훈련만 조금 하면 몇 달이면 가능할 걸세. 연습하면서 우리 센터에서 수술도 하고 얼마나 좋은가. 환자도 많고, 조건도 좋다네.”

축동익이 미소 지은 채 말하는 동안 곽종군의 안색이 점점 변했다.

‘센터 트레이닝은 개뿔. 우리 병원도 환자 많고 조건 좋거든요.’

“저는 운화 병원에서 연습하고 싶습니다.”

긴장한 채 능연을 바라보던 곽종군은 만족할 만한 대답을 듣는 순간 얼굴 전체에 미소가 드러났다. 그러나 축동익은 상심하지 않고 온화하게 왜냐고 물었다.

“운화 병원의 조건이 아주 좋습니다. 환경도 익숙하고요. 타지에 갈 생각이 없습니다.”

능연은 익숙한 느낌이 좋았다. 그는 어떤 환경에도 잘 적응하고 만족하는 그런 유형이 아니었으므로 주거 환경은 특히 중요했다.

그뿐 아니라, 능연도 병원 상황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실습생인 자신이 수술을 집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고, 심지어 어시가 세 명이나 되는 건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축동익 연구 센터에 가면 어시 한 명도 감지덕지할 테고 잘못하면 자신이 어시가 될 일도 많으리라 생각했다.

익원현 같은 준 삼갑 병원에서 온 주치의 혹은 부주임도 운화 병원 수술실에서는 알바 같은 잡일을 해야 하는데 축동익이 능연을 센터로 데리고 간다고 해도 운화에서 받던 대우를 고스란히 끌고 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출장 수술 한 번이라면 모를까, 몇 달이나 머무르는 건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게다가 그곳은 창서성처럼 단지 환자가 그렇게 많지 않을 수도 있고 병실과 재활 조건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축동익은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그를 설득했다.

“의사라면 트레이닝 과정은 당연하지 않은가. 우리 골관절 & 운동 센터 트레이닝은 국내 정형외과 분야에서 손에 꼽히는 실력을 갖췄다네. 근건 복구는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말일세. 아니면 유명 스포츠 스타가 왜 일부러 우리를 찾겠나. 능연, 우리 센터에 몇 달만 와 있어 보게. 같은 환자라도 우리는 진단부터 병력 처리까지 완전히 다르다는 걸 곧 알게 될 걸세.”

축동익은 자신감에 넘쳐 말이 다소 길어졌다. 그와 함께 온 학생과 의사들도 마찬가지로 자신감에 넘쳐 보였다.

운화 병원 정형외과가 어떤지는 오늘 제대로 확인한 셈이었다. 막강하다고 할 수는 있어도 정상급이라고 하기엔 한참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리하여 운화 병원 의사들은 조금 망연해졌다. 축동익 연구 센터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자신감을 전부 믿어야 할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능연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중급 보물 상자를 열었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볼 수 없는 세상에서 커다란 갈색 책 하나가 튀어나와 능연의 눈앞에 떨어졌다.

-아킬레스건 보건술, 그랜드마스터급

책 제목이 번쩍이더니 자동으로 페이지가 열렸고 능연의 머릿속에 정보가 대량 주입되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갑자기 아킬레스건 보건 수술에 대해 신나게 떠들어 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스포츠 스타, 다친 부위가 아킬레스건인가요?”

능연은 혹시나 해서 물었다. 지금까지 시스템이 제공하는 기술은 모두 바로 쓸 수 있는 것들이었다. 시스템의 맥락에 대해 조금씩 가닥이 잡혔다.

축 원사는 말없이 고개만 천천히 끄덕였다.

“아킬레스건 파열이라면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제가 집도하길 바라신다면 몇 개월까지 걸릴 건 없는데, 운화 병원에서 한동안 연습은 해야 합니다. 그래서 환자를 좀 구해 주셔야 하는데요. 다른 유형의 아킬레스건 파열 환자면 좋고요.”

능연이 입을 열자마자 조건을 내거는 모습에 설호초를 비롯한 학생들이 입을 쩍 벌렸다. 축동익의 지도 수술에서 조건을 걸다니. 게다가 조금 전에 수부 근건밖에 안 해봤다고 직접 말해놓고. 이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거야.

그러나 축 원사는 고민도 하지 않고 승낙했다.

“아킬레스건 환자도 회복 기간이 좀 걸리지. 자네가 말 안 해도 환자를 찾을 생각이었네.”

축동익은 능연이 운화 병원을 떠날 생각은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하지. 우선 나랑 같이 센터로 가서 우리가 어떻게 수술을 진행하는지 상황을 보고 운화 병원으로 돌아와 연습할지, 아니면 우리 센터에서 연습할지 결정하면 어떻겠나?”

받아들이기 더 좋은 조건이 되었다. 능연은 바로 동의하지 않고 곽종군을 바라봤다. 그에게 둥지를 바꾸는 건 어려운 일인 만큼, 잠시라고 해도 쉽게 결정 내릴 일이 아니었다.

곽종군은 감동한 얼굴로 의국에 있는 다른 의사들을 둘러봤다.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이기 위해 수학 문제까지 들고 나와서 축동익에게 묻던 의사들 말이다. 그러나 능연은 어떤가. 이미 얼굴을 알렸는데도 곽종군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는가. 역시 사람이 잘생기면 처세술도 잘생긴 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능연 자네 혼자 가는 것도 그러니 한 사람 데리고 가게. 연문빈, 능연과 함께 상해로 가서 일체 조율을 맡게.”

곽종군은 멋진 모습으로 사람들 사이를 뚫고 나왔다. 그러자 축동익은 미간을 좁히다가 싱긋 웃었다.

“실력 좋은 의사를 붙여줄 생각이었소만.”

“연 선생 비용은 제가 부담하지요.”

최근에 돈을 제법 많이 만진 곽종군은 그 정도 여비를 전혀 개의치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축동익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 시간을 밖에서 보내는 그는 각지 의사의 상황이 복잡한 걸 잘 알고 있었고 곽종군이 마음을 바꾸리라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죠. 능 선생 가서 준비하고, 모레 어떤가? 모레 일정이 끝난다네. 그때 같이 가세나.”

“음, 능연 마음 놓고 다녀와. 여기 집안일은 걱정하지 말고.”

곽종군이 간절하게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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