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평은 빵빵하게 부푼 배낭 안의 작은 포켓에 티슈 한 팩을 필사적으로 밀어 넣으면서 신신당부했다.
“연아, 밖에 있을 때는 모든 게 집이랑 다르니까 절대로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음식 함부로 먹지 말고, 너무 늦게까지 일하지 말고. 몸 안 좋으면 바로 병원 가고.”
“엄마, 나도 의사야.”
능연이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
“넌 처방을 내릴 자격도 없잖니!”
진료소에서 서당 개 노릇을 오래 한 도평은 단 한마디로 우세를 점령했고 능연은 고분고분 고개를 숙였다.
“알았어요. 아프면 바로 병원 갈게요.”
“아프기 전에 좀 이상하면 가야지! 아니면 네가 아픈지 아닌지 어떻게 알겠니?”
도평은 선생님이 수업하면서 한참 서술문으로 설명하다가 마지막에 갑자기 의문문으로 질문을 던져 중요 내용을 복기시켜주는 말투로 말했다.
“네, 좀 이상하면 갈게요.”
“밖에선 스스로 잘 돌봐야 해. 젊다고 막 밤새우고 그러지 말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맞아, 새벽에 택시 타지 마. 상해는 정말 위험하다더라. 잠시만, 고민 좀 해보자. 아예 네 아버지더러 네 차를 운전해서 가라고 할까?”
그 말에 능결죽의 얼굴이 누렇게 떴다.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능연이 그 똥차로 어떻게 상해까지 태워 간단 말이오. 번호판도 다시 내야 하고, 주차할 곳은 있는지도 모르잖소. 너무 귀찮아요.”
“그럼 어쩌란 말이에요. 당신 아들 좀 보라고요. 낮에는 몰라도 밤엔 있던 도덕 관념도 다 사라지게 생기지 않았어요? 남자 기사도 위험하지만, 여자 기사라고 안전하란 법이 없다고요.”
“대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자리에서 일어나 까치발을 들고 아들의 머리를 톡톡 치며 하는 도평의 말에 능결죽이 어이없어했다.
“흥! 안 돼. 능연! 너 그 병원 기숙사에 들어가.”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엔 기숙사가 없어.”
“그럼 운화 병원보다 못하다는 거잖아.”
“중시하는 게 다른 거지. 운화 병원은 종합 병원이라 병상도 많고 의사도 많고, 해마다 실습생이랑 새로운 의사가 들어오니까 기숙사가 있지만, 축 원사님 연구 센터는 단독 진료과나 마찬가지라서 병상도 100개 정도에 의사도 30명밖에 없어서 기숙사가 필요 없거든.”
도평은 지금 그런 문제를 토론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능결죽 씨?”
능결죽의 눈이 번뜩 뜨였다. 아내가 ‘능결죽 씨’하고 부를 때 이유는 단 하나, 기분이 언짢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에 대해 매우 예민했다. 특히 도평 여사가 가족의 일로 기분이 언짢으면 그는 도무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능결죽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흠, 그럼 이러지. 상해에 차를 빌려줄 만한 친구가 있는지 한번 알아보자고.”
“빌리는 건 좀 그래요.”
도평이 불만을 표시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차를 살 수는 없잖소. 돈도 없지만, 돈이 있다고 해도 그럴 순 없지. 진료소도 이제 겨우 좀 돌아가는데 차를 사고 싶다고 바로 살 수는 없잖소.”
“렌트는요?”
능결죽은 깊은숨을 내뱉었다.
“렌트도 비싸지. 게다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말이요. 감당할 수 있냐 말이지. 못해도 1, 2주는 있을 텐데 말이오. 당신 유럽 가고 싶다면서요. 대영 박물관이니 루브르니, 젊을 때부터 당신이랑 가고 싶은 곳이 많았는데 계속 그럴 여유가 없지 않았소. 둘 다 돈이 아까워서 말이요. 이제 겨우 갈 만한 돈을 모았는데, 그 돈으로 차를 렌트하라는 말이요?”
“당신 말도 일리는 있네요. 렌트는 좀 그러네. 동료들이 보기에도 좀 그렇고.”
도평이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말이요. 얜 남자잖소. 위험할 게 뭐가 있다고. 새벽에 택시 안 타면 되지 않겠소. 새벽까지 있어야 할 일이 있으면 그냥 병원에서 하루 자면 되지. 병원에 숙직실 같은 데 있을 것 아니냐?”
그래도 능결죽은 병원 시스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네, 있어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해라. 너무 일찍 일어날 것도 없이 느긋하게 자면 좋지.”
능결죽은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돌려 아내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렇지요?”
“아들, 그럼 상해 가면 병원 말고는 아무 데도 가지 마. 그럼 나도 안심이지.”
능연은 부모님이 결론을 낸 후에야 커다란 배낭을 메고 28인치 캐리어를 끌고 출발했다. 익숙한 시트, 커버, 수건 같은 것도 챙겨야 했고 병원 동료들에게 받은 작은 선물도 챙겨야 했다. 그들이 사전에 상의한 건지 몰라도 선물은 칫솔부터 양말, 안대까지 겹치는 것이 하나도 없이 얼마나 다양했는지, 능연이 두 번이나 답례를 보내야 커버할 수 있는 양이었다.
아들이 떠난 후 도평은 2층으로 올라가 멀리서 바라보면서 티슈를 꺼내 한 장 한 장 뽑아서 눈물을 닦고 콧물을 닦으면서 자신을 위로하는 능결죽을 밀어냈다.
“비행비 표나 사러 가요.”
도평은 훌쩍이며 그렇게 고함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