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는 부원 체육관 옆에 있는 4층짜리 L자형 건물이었으며 중간에 작은 체육관이 따로 있었다.
능연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설호초의 손에 이끌려 체육관으로 갔다.
능연의 수술 기록을 보고 원위의 영상과 차트를 본 설호초는 조금 감탄하는 마음이 들었다. 물론, 아주 조금이지만.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에 돌아온 설호초는 자신감이 넘쳤다. 전국 최강 정형외과 연구 센터의 일원으로 그는 스승인 축동익 원사 밑에서 여러 케이스를 맡았으며, 논문도 여러 편 발표하면서 조금씩 이름을 알렸다. 임상 경험이 조금 부족하고 그의 기술이 연구 쪽에 편향되긴 했어도 의학계에서는 원래 연구 쪽이 임상보다 중시 받았다.
강력한 연구 능력은 의학계 발전의 동력이며, 기술 연구가 없었다면 지금의 정형외과는 어쩌면 아직도 어떻게 절단하면 피를 덜 흘릴지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의학 기술 연구에 열정이 넘치는 설호초는 능연이 기술로 연구에 공헌할 수 있다면 그를 따듯하게 대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능 선생, 여기가 우리 상해에서 유명한 부원 체육관입니다. 국가대표 육상, 농구, 배드민턴, 소프트볼 선수들도 다 여기에 와서 훈련하죠. 우리 연구 센터에서는 운동 보건 임무도 책임지고 있습니다.”
설호초가 자신감에 넘치는 목소리로 설명했다.
“능 선생, 좋아하는 스포츠 스타 있나요? 내가 사인받아 줄 수 있는데.”
“특별히 없습니다.”
능연은 사람들에게 떠받들어지는 기분을 너무 잘 알아서, 남을 떠받드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자기가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말아야 하는 법이니까. 그러나 설호초는 능연이 체면 차리느라 그러는 줄 알고 웃어넘겼다.
“에이, 여기 오래 있다 보면 알게 되겠지만, 어차피 스타들도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너무 바쁘지 않을 때는 사인 잘 해주거든요. 운동 보건을 잘하면 스타들이 고용하기도 한다고요.”
능연은 전혀 기대되지 않는 얼굴로 ‘아, 네.’ 하고 대답했다. 그는 깨끗하게 정돈된 수술실을 좋아한다. 언제나 섭씨 23도로 설정된 온도, 언제나 타월을 깔고 누운 전신 마취 환자, 늘 같은 자리에 있는 봉합사와 기구들······.
땀 냄새 범벅에 혼란스럽고 소란스러운 체육관은 결코 그의 호감 대상이 아니었다. 수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없는 것이 없는 면적이 광대한 체육관이라고 해도 능연에게는 익원현 병원보다 못한 공간일 뿐이었다.
하지만 설호초는 그 체육관을 아주 좋아했다. 체육관 안의 뜨거운 공기를 마시며 푸르른 잔디를 바라보면서 젊은 운동선수들의 근육 수축을 느끼고 있으면 마음도 체육관의 광활함처럼 팽창한다.
그는 노련하게 사방을 둘러보며 금세 익숙한 실루엣을 찾아내고는 능연을 끌어당겼다.
“저기 좀 봐요, 저 사람이 바로 우리 상해 배드민턴팀 메인 선수예요.”
“건강해 보이는군요.”
설호초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능연은 선수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한마디 던졌다. 설호초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를 흘끔 봤다.
“건강하죠. 이상한 말 하지 말고요. 당연한 거 아닌가요. 운동선수한테 그런 말은 금기라고요.”
“건강한 사람인데, 의사가 왜 필요합니까?”
능연의 물음에 설호초는 할 말을 잃고 입을 쩍 벌렸다가 한참 만에 겨우 대답했다.
“운동선수인데, 당연히 건강할 때 챙겨야죠.”
“스포츠 스타 수술하라고 저 부른 거 아니었나요? 오늘 안 왔나요?”
“일단 며칠 쉬면서 여기 환경에 적응 좀 하시고······.”
“쉰다고요?”
능연은 언짢아져서 설호초를 바라봤다. 어디 쉴 곳이 없어서 상해까지 와서 쉬라는 건지. 하지만 그는 더이상 따지지 않고 체육관 가장자리 벤치를 찾아서 아킬레스건 수술에 대한 정보를 정리했다.
“사인 정말 필요 없어요? 그럼 내 것만 받습니다.”
설호초는 헤헤 웃는 얼굴로 사인받을 트럼프 카드를 꺼냈다. 보아하니 그런 쪽에 매우 익숙한 것 같았다. 능연은 고개를 흔들고는 벤치에 앉은 채 손가락을 움직이면서 수술 방안에 대해 고민했다.
“저기요, 혹시 배우신가요?”
그때 한 소녀가 용기를 내서 능연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우아해 보이는 젊은 부인이 예의 바르고 교양 넘치는 모습으로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설호초는 갑자기 자리를 벗어날 생각이 사라져서는 트럼프 카드를 손에 쥔 채 멋있어 보이는 포즈를 취했다.
연문빈은 시뻘건 에어 조던을 신고 부원 체육관의 타탄 트랙 위를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그가 신은 에어 조던은 새로 나온 디자인으로 전날 나이키 매장을 지나다가 마음에 들어서 산 것이다. 몸짱인 연문빈은 농구화에도 상당한 관심이 있었는데 운화에 있을 때는 주머니 사정 때문에 신발을 살 수 없었을 뿐이다.
그는 상해에 오기 전에 5천 위안이 넘는 출장비를 이미 받았다. 덕분에 한동안 족발과 조림 채소를 팔면서 번 돈이 있어서 간 크게 매장 안으로 들어가 할인도 없는 에어 조던을 구매했다.
정가 에어 조던을 신고 트랙을 밟고 있으니 모든 이의 시선이 자기에게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시뻘건 농구화 아닌가. 이렇게 눈에 띄는데, 이렇게 멋진 신발인데,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타탄 트랙도 매우 편안했다.
밟고 뛰고 있으니 글로벌한 느낌이 팍팍 풍겼다.
탁 트인 공간도 마음에 들었다. 세 가지 색으로 구분된 의자들이 나뭇잎처럼 촘촘하게 줄지어 있었는데, 그 끝을 셀 수 없을 만큼 빼곡했다. 하늘 색깔도 아주 예뻤다. 그야말로 정통적인 미세먼지에 뒤덮인 하늘은 온통 회색에 푸른빛이 조금 보였다. 하지만 흐린 파란색이 아니라 진한 파란색이라 사람 마음을 설레게 했다.
절망적인 미세먼지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오아시스를 잃은 사막에서 도망치는 것처럼 미세먼지 범위를 벗어나려고 애를 쓸 것이다.
미세먼지에는 생명력이 깊다. 미세먼지는 가장 강렬한 역병과도 같아서 세상을 휩쓸 기세를 부리더라도 많은 구멍과 허점을 일부러 남겨서 숙주가 한 번에 죽지 않고 계속해서 번식할 기회를 남겨 준다. 그리스에서 예전에 발생한 역병처럼 말이다. 그리스 사람들을 병들어 죽게 한 유사 이래 기록된 가장 강렬한 역병은 결국, 그 자신도 살아남지 못했다. 그 바람에 사람들은 지금까지 대체 무슨 바이러스가 그토록 무시무시했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연문빈은 서서히 호흡했다.
스모그를 들이마시고, 깨끗한 이산화탄소를 내뱉었다.
운화 병원에서 온 젊은 의사는 글로벌 정신으로 즐겁게 상해의 미세먼지를 들이마셨고, 주변에서 산책하던 노인들이 모두 그를 힐끔댔다.
“그렇게 뛰시면 안 됩니다. 발바닥 중간으로 바닥을 짚으려고 노력하셔야 무릎에 부담이 덜 가요.”
귓가에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문빈이 깜짝 놀라 돌아보니 허리에 금테 벨트를 찬 근육남이 조금 바깥쪽 트랙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땀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가, 감사합니다.”
“운동 얼마나 하셨어요?”
머쓱해진 연문빈이 고개를 돌리자 금테 벨트 근육남이 그의 팔뚝을 쿡쿡 찌르며 물었다.
자랑거리인 38인치 팔뚝 둘레 이야기가 나오자 그 남자 말투가 너무 부드럽긴 해도 갑자기 대화할 흥미가 생겼다.
“그냥 몇 년이요.”
“어깨는 좀 더 하셔야겠네요.”
품종이 다름을 알아차린 금테 벨트 근육남은 실실 웃으면서 연문빈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니까요.”
연문빈은 순간 동질감과 좌절감을 느꼈다. 금테 벨트 금육남은 싱긋 웃어 보이고는 돌연 속도를 올려 오른쪽에서 연문빈을 앞질러 나갔다.
“신발 멋지네요.”
근육남은 한참을 나간 다음 살짝 고개를 돌려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연문빈은 입이 다 찢어질 지경이었다.
‘말 참 예쁘게 하시네, 저 형님.’
트랙을 밟는 연문빈의 발걸음이 더욱 경쾌해졌다. 그렇게 40분 넘게 쉬지 않고 달리면서 몸을 푼 그는 체육관 뒤에 있는 헬스장으로 바로 달려갔다.
일반 체육관에 비해 부원 같은 대규모 체육관은 내부 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다. 웨이트 기구만 해도 200평 가까이 됐고 선반에 놓인 바벨이 자동판매기에 파는 쿠키보다 훨씬 많았다.
연문빈은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 신분증으로 안으로 들어가서 덤벨을 들고 전신 거울 앞에 서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잠시 후, 운동선수 몸매를 한 남녀들이 줄지어 들어오자 묘하게 긴장되면서 동작도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등은 더 당겨 줘야죠.”
거대한 남자가 지나가다가 그의 척추를 툭툭 쳤다. 연문빈은 흠칫 근육을 수축했다가 긴장해서 고개를 돌렸다가 숨을 내쉬었다.
“감사합니다.”
“운동선수 아니죠?”
거대한 남자가 물었다.
“의사입니다.”
연문빈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어디?”
남자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요.”
연문빈은 바로 옆에 있는 연구 센터 이름을 댔다.
“아, 원사네구나.”
“그런 셈이죠.”
무슨 뜻인지 몰라 잠시 멈칫했던 연문빈은 그제야 알아차리고 대답했다.
“어깨에 인대가 좀 늘어난 거 같지 않아요? 저 운동 계속해도 돼요?”
거대한 남자가 갑자기 몸을 돌려 연문빈 앞에 섰다.
“여기서 어떻게 보라고요.”
연문빈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신체 진찰하면 되잖아요.”
“그런 것도 알아요?”
“자주 받으니까요. 원사네 의사들 다들 실력자잖아요. 만난 김에 물어봐야죠.”
남자가 교활한 표정을 지었다. 헬스를 오래 한 사람은 항상 근육통을 겪으니까 자주 의사를 찾는 것도 정상이지만, 이런 식으로 자주 묻는다는 건 조금 문제였다. 연문빈은 의심스러운 듯 상대를 바라봤다.
“에이, 의사들이 헬스 와서 우리한테 은근슬쩍 묻는 건 되고, 우리가 은근슬쩍 진료받는 건 안 돼요?”
남자의 일리 있는 말에 연문빈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운동선수 아닌가요? 팀 닥터 없어요?”
“팀 닥터는 못 미더워서요. 이렇게 할까요? 내가 자세 봐 줄게요, 이따 검사 콜?”
“제가 미더운지 아닌지 어떻게 알고요.”
“믿음직해 보이네요. 게다가 그냥 가볍게 보는 거잖아요. 뭐 어때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연문빈을 벤치에 앉히고 아령을 들게 했다.
연문빈은 그렇게 하루를 즐겁게 보냈다.
다음날도 마찬가지로 즐겁게.
그리고 사흘째, 연문빈은 근육통으로 밥 먹을 정신도 없어졌다.
모처럼 휴일을 얻은 능연은 호텔로 돌아갔을 때 다 죽어가는 연문빈을 보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목욕했어요?”
“바로 할게.”
연문빈은 그 말의 의미를 바로 알아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꽥꽥 울부짖으면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이따 알콜겔 준비하고 불러요.”
능연은 한마디 남기고 방으로 돌아갔다.
몇 분 후, 깨끗하게 씻은 연문빈이 헐렁한 옷을 입고는 알콜겔을 들고 신이 나서 능연을 불렀다.
“엎드려요.”
흰 수건을 손에 든 능연이 연문빈 목에 알콜겔을 바르고는 목에 손을 올렸다. 경추를 문지르는 순간, 연문빈은 저도 모르게 흐응흐응 앓았다.
“이상한 소리 내지 말아요.”
능연이 바로 신음 금지령을 내렸다.
“아니, 그게······.”
“참아요.”
연문빈은 할 수 없이 2분 동안 참고 있다가 능연이 손을 떼자 크게 숨을 내쉬었다.
“헬스장에 가보지 그러냐. 그 기술로 저기 헬스장에 있는 근육통으로 신음하는 근육남들 몇 번 문질러 주면 바로 아버지 소리 들을 텐데.”
“그딴 아들 어디다 쓰게요.”
“다들 운동선수니까, 이상한 병 같은 거 있을 수도 있잖아?”
“에?”
“신체 진찰해보면, 일반인하고 다르지 않을까?”
“에?”
“어디서 운동선수를 이렇게 많이 볼 수 있겠어. 다들 국내 일류 선수들이잖아. 아시아 중에 능력자들!”
“에?”
“신기한 병이 있을지도 몰라.”
“일리 있네요.”
능연은 자신의 신체 진찰 비전형 도감을 늘릴 수 있다는 생각에 재미있겠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