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연은 연문빈을 따라 부원 체육관 안을 한 바퀴 도는 동안 그와 인사를 나누는 운동선수를 수시로 만났다.
“다 내가 헬스장에서 친해진 사람들이야.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은 다 자주 오는 단골들이거든. 하루에 세 번씩 오는 사람도 있어. 먹고 운동하고, 운동하고 먹고. 대단해.”
연문빈은 뿌듯한 듯 소개했다.
“선생님도 이제 단골이네요.”
능연은 저도 모르게 웃음 지었다. 그는 대학 다니기 전까지는 헬스장에 가본 적이 없고, 의대에서도 매주 있는 체육 시간 말고는 러닝 정도밖에 안 했지만 젊음과 유전자만으로 그 몸매를 유지했다.
격렬하게 운동하는 선수들을 사방에서 보다 보니 갑자기 운동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우리도 가서 좀 뛸까요?”
“응? 헬스장 안 가고? 헬스장에도 러닝 머신 있어.”
“일단 트랙 좀 밟고요.”
능연은 곧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가 트랙을 따라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단거리는 싫어했지만,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장거리는 뛰면서 영감을 얻을 수 있고 생각도 정리할 수 있어서 그렇게 싫어하지 않았다.
연문빈도 어쩔 수 없이 그 뒤를 따라 뛰었다. 헬스에 익숙한 그는 근육을 만드는 동안은 유산소 운동을 피했지만, 지금은 상관없었다. 게다가 건장한 체격치고 뜀뛰기가 빠른 편이라 가볍게 능연을 앞지르고 나니 묘하게 통쾌한 기분도 들었다.
“능 선생, 우리 좀 더 빨리 뛸까?”
연문빈은 엄동설한에 난로에 들어간 것처럼 들떠서 저도 모르게 떠보듯 그렇게 물었다.
“선생님은 그러세요.”
능연은 흔들리지 않았다.
에어 조던을 신고 있으니 정말 날아오르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발바닥 중간으로 땅을 밟는 게 좋아요.”
연문빈이 속도를 올리려는 참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연문빈의 머릿속에 금테 벨트를 두른 근육남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가 휙 하고 고개를 돌려보니, 나올 데 나오고 들어갈 데 들어간 여자가 소매 없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새빨간 얼굴로 능연을 보고 있었다.
“젠장!”
거의 매일 이런 일을 목격하는 연문빈이 무슨 상황인 건지 모를 리 없었다. 가장 슬픈 건, 금테 벨트 근육남이 지금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능연 같은 스타일은 싫은 거냐?’
능연이 3,000m 조금 넘게 뛴 다음 천천히 멈춰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자 소매 없는 트레이닝복을 입은 여자가 금세 곁에서 수건과 생수, 자신의 컵을 들이밀었다.
“이거 써요. 아직 안 쓴 거예요. 회복용 아미노산도 들었어요.”
“괜찮아요. 그렇게까지 많이 운동한 것도 아니라서요.”
능연이 미소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래요, 그럼. 저는 혜만산이라고 해요. 수영팀. 그쪽은 선수 아니죠?”
트레이닝복을 입은 여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컵을 거둬들였다.
“옆에 연구 센터에서 왔어요. 능연입니다.”
능연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나는 장거리 선수예요.”
“사이클팀이에요.”
“높이뛰기 선수랍니다.”
아까 뒤에서 같이 달린 운동선수들이 앞다퉈 능연과 악수했다.
“능연 씨, 그럼 의사겠네요? 그럼 나 좀 봐 줄래요?”
혜만산은 다급하게 물었다. 이런 흐름에 익숙한 연문빈은 묵묵히 주머니에서 알콜겔을 꺼내 옆에 두고 준비했다. 그리고 체육관 안으로 들어가 수건 더미를 들고 나왔다. 수건은 원래 유명한 운동선수들만 쓸 수 있지만, 헬스장에는 체면이 좀 되는 근육남들이 있어서 전화 한 통이면 체육관 직원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수건을 가져다준다는 걸 전날 이미 확인해 두었었다.
연문빈이 4륜 리어카에 수건을 잔뜩 쌓아서 돌아가자, 역시나 여자들의 신음이 들렸다. 더 가까이 가보니 능연이 벤치에 앉아 선수들이 가져온 수건을 쓰면서 마사지하고 놀고 있었다.
적어도 보기엔 노는 것 같았다. 운동선수들은 근육이 탄탄해서 평소보다 동작을 더 크게 해야 적당한 위치까지 근육을 밀어낼 수 있지만, 쓰는 신체 부위가 다를 뿐 딱히 더 힘든 건 없었다. 예를 들어 요양원에서 추나 할 땐 손가락을 많이 쓰고 운동선수 때는 팔꿈치나 주먹을 쓴다거나 하는.
여자 운동선수들이 냥냥 소리를 내는 동안 연문빈은 쓴웃음을 지은 채 곁에서 수건을 건넸다. 헬스장에서 마사지를 하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운동장에서 시작할 줄이야. 게다가 마사지만 하는 게 아니라 운동선수들 아킬레스건 검사까지 하고 있다니.
똑같이 땀 냄새 나는 선수지만 근육남보다야 훨씬 나았다.
“연 선생님, 노트 하나 가지고 와서 기록해주세요.”
한 여자 운동선수의 머리부터 아킬레스건까지 검사하던 능연이 지시했다.
“핸드폰으로 해도 돼?”
“네. 적으세요. 인대 손상. 그리고······.”
능연은 목소리를 낮추며 연문빈 가까이 다가갔고 곁에 있는 선수도 들을 수 없을 정도까지 목소리가 작아졌다.
능연이 터득한 수부 해부 경험은 3,500건이 넘지만, 족부는 상대적으로 빈약했다. 신체 진찰로 해부 경험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지금 환경으로는 조금이라도 많이 경험하는 게 나았다.
더 나아가서, 운동선수 근육 조직과 인대 구조는 일반인과 차이가 났다. 그러니 기회가 있을 때 체험해 보고 싶은 것도 당연했다. 운동선수들도 능연이 그래 주길 바랐고.
부원 체육관에서 훈련하는 선수들은 어린 축에 들었고, 서른 넘은 선수는 몇 가지 종목에만 있을 뿐 다들 한창 웃고 떠들 나이라서 능연은 짧은 시간 안에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능연은 뜨거운 시선 속에서도 느긋하게 제 할 일을 했다. 연구 센터에서도 할 일이 없으니 차라리 체육관에서 마사지하는 게 나았다.
“좌상.”
“국부 팽창. 경미합니다.”
“근건 손상.”
능연은 촉진으로 얻은 답을 연문빈에게 기록하게 하는 동시에 진단받는 선수에게 알렸다. 선수들은 대부분 자신의 몸 상태를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모르는 부분도 있었다.
능연은 끊임없이 아킬레스건의 상태를 숙지하면서 특히 운동선수들의 상태에 집중했다. 장기간 훈련을 받는 운동선수는 바이탈 사인부터 일반인과 다른 점이 많았고, 근육 상태가 다른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능연은 선수 하나의 발목을 잡고 머릿속에 아킬레스건 보건 수술 스텝을 떠올리면서 손가락을 더듬었다.
“연 선생님. 연구 센터에 가서 내일 수술 있는지 좀 물어봐 주세요. 내일도 없으면 그만 돌아가려고요.”
갑자기 연문빈을 부른 능연은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우다다 말을 내뱉었다.
“응? 운화로?”
“그럼요.”
“왜에. 능 선생아. 우리 연수 온 거잖냐. 할 일이 없긴 해도, 연수 이력도 다 써놓고 지금 돌아가면······.”
“이력만 있으면 뭐 하게요. 며칠 동안 수술을 못 했다고요. 더는 못 있겠어요.”
능연이 눈을 휘둥그렇게 뜬 연문빈을 흘겨봤다. 능연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바람에 그는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곧 생각을 바꿨다. 곽종군은 원래부터 능연을 축동익에게 뺏길까 봐 노심초사했으니 지금 그가 돌아간대도 두 손 들고 환영하리라. 그리고 축동익 쪽은, 애당초 무슨 속셈인지는 몰라도 능연을 놀게 한 것부터 잘못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연문빈은 흠칫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야, 잠만. 나 뭐래니. 사고 모드가 바뀌었잖아. 수술 안 하면 행복한 건데, 무슨 속셈이야, 속셈은.’
“알았어, 가서 물어보지 뭐.”
“지금 바로 전화해 봐요.”
잠시 신체 진찰을 하다 보니 능연은 수술이 하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했다.
연문빈은 그런 능연이 완전히 이해가 됐다. 인터넷에서 신발을 구경할 때, 보면 볼수록 사고 싶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돈만 있으면 보는 족족 질러 버리겠지.
‘지금 쟤 손엔 발이 있고 마음엔 메스가 있······ 이건 좀 이상한가.’
얼굴을 찌푸린 연문빈은 핸드폰을 꺼내 설호초에게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