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문빈과 통화를 끝낸 설호초는 한참 동안 넋이 나가 있었다.
설호초는 완전한 의사라고 할 수 없어서 병원 생활에 대해서는 일반 레지던트보다 잘 알지 못했다. 그는 병원에서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고,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병원 당직의 고통을 알 리 없었다. 또한, 의사와 환자 관계 등 일반 의사들이 고통스럽게 느끼는 걸 모두 떨어져서 지켜보는 쪽이었다.
하지만 설호초 자신은 병원에 대해 그래도 꽤 많이 안다고 생각해 왔다. 원사의 박사생인 그는 해마다 많은 병원을 돌았고 스승을 도와 이런저런 병원 사무를 처리하면서 비서 역할을 해왔다. 말하자면, 그는 대부분 병원의 주임과 부주임보다 더 많은 병원장과 알고 지냈다.
설호초는 능연에게 최대한 많은 휴일을 배정한 건 완벽했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은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었고. 그런데 능연이 수술이 없다는 이유로 운화로 돌아가겠다고 협박하다니,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연문빈의 말투는 공손했고 뜻은 완곡했다. 그러나 그는 박사생의 존엄을 걸고, 연문빈의 말에 위협이 있었음을 장담할 수 있었다.
그는 핸드폰을 들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겨우 웨이보를 다시 열고 단숨에 여러 메시지를 보냈다. 스승님을 귀찮게 할 수 없으니 혼자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참을 바삐 움직이다가, 더는 앉아 있지 못하고 서둘러 주변 사무를 처리하고 상의할 사람을 찾아갔다.
스타 의사는 병원에 큰 효과를 불러온다. 스포츠 스타, 연예인도 마찬가지였다. 불러온 의사가 축동익 원사의 지도 수술에서 집도의를 한다는 것은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 내부에서도 논쟁거리였다.
하지만 언제 능연에게 환자를 만나게 해야 좋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탁탁탁.
설초호의 구두 굽이 병원 복도에 또렷한 울림을 냈다. 마치 그의 인생 역경처럼 말이다.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의 규모는 조금 작은 삼갑 병원과 견줄 만했으나, 센터에 있는 병상의 수는 그보다 훨씬 적었다. 그 탓에 내부가 휑해 보였고, 얼핏 보면 일본 드라마에 나오는 일본 대형 병원 같은 느낌이 났다.
축동익은 애초에 병원을 지을 때 일본 병원 느낌이 나기를 바랐다. 그가 연수하던 시대에 학습할 수 있는 선진국은 주로 일본이었다. 미국 의료가 더 발달했지만, 미국 의료 스타일이나 자본, 가격 등은 중국에서 감당할 수 없었다. 미국에서 연수한다는 것은 의사들에게 굉장히 값비싼 선택이었다.
설호초는 그런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의 광활함이 제일 좋았다. 센터에 익숙해진 그는 삼갑 병원의 비좁음과 바쁨을 이젠 적응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 같은 연구 센터는 국내에서 드물고 드물었다.
“곡 선생님.”
설호초는 특별 외래 진료실 문을 노크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족히 20평은 되는 방에 마흔쯤 된 마른 몸매의 의사가 있었다. 그의 두 눈은 형형했고 오뚝 솟은 콧날에 대머리에 열 손가락 관절이 길고 하얬다. 킨들을 들고 한참 재미있게 글을 읽던 그는 설호초를 보고 빙긋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임님 돌아오셨나?”
축동익은 원사인 동시에 연구 센터의 주임이었고, 곡 선생은 언제나 그를 주임이라고 불렀다.
“오늘은 주임님 때문에 온 게 아닙니다. 주임님이 데리고 온 운화 병원 능 선생 기억하시죠?”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어찌 잊겠나. 실습생을 데리고 와서 수술을 시킨다니.”
곡 선생은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오랫동안 임상보다 연구 쪽에 몰두하긴 했어도 외과 의사이기도 하니, 그도 외부에서 오는 의사를 자주 맞이했다. 하지만 실습생은 정말 처음이었다.
“선생님, 저희가 가지고 온 영상 못 보셨어요?”
능연의 수술 장면을 본 적 있는 설호초는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얼핏 봤지. 대단할 것도 없던데? 근데, 걔가 왜?”
곡 선생은 안색이 변해서 킨들을 내려놓고 물었다. 눈썹을 치켜들던 설호초는 이내 표정을 풀었다.
“수술하고 싶답니다.”
“유위신 수술? 안 돼. 내가 담당 의사인데, 유위신은 아직 수술 방안도 안 정했다고.”
“교수님은 이미 결정하셨습니다.”
“주임님이 결정한 방안은 집행할 수 없어. 유위신은 일반 아킬레스건 보건 수술이 필요한 게 아니야. 100m, 200m 달릴 수 있는 아킬레스건이 필요하다고. 지금 봉합 방안으로는 일반인은 몰라도 유위신은 안 돼. 유위신한테 그 방법을 쓰면 쓸데없이 복잡해져서 리스크만 늘어. 난 동의 못 해.”
“교수님은 능연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해봐야 알죠.”
설호초도 사실 능연 편에 서고 싶지 않았지만, 그의 처지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곡 선생은 콧방귀를 뀌다가 고개를 저었다.
“동영상 얘기라면, 그래 나도 인정해. 잘하더라. 근데 그건 수부잖아. 능연이 족부 해봤어? 아니지?”
“수술 기록 보셨네요.”
설호초가 미소를 짓자 곡 선생은 마지못해 그렇다고 대답했다.
“보셨으면 성공률이 어떤지 아실 거 아닙니까. 단지 이식은 현미경 수술 중에 최첨단 수술이잖아요. 발은 더 쉽겠죠.”
축동익 비서 노릇을 하는 설호초는 다른 의사들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곡 선생은 침묵을 지켰다.
족부 수술은 확실히 수부 수술보다 쉽다. 손보다 발이 크기 때문에 현미경 수술에서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 다른 한편으로, 족부 기능은 수부 기능과 비교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족부에 잉여 공간이 더 많다.
능연이 40대 의사였다면 곡 선생도 이렇게 강하게 반대하지 않으리라. 족부 수술 경험이 없다고 해도 연습은 해봤을 테니. 그렇지만 다시 말하면, 현미경 수술에 능통한 의사라면 족부 경험은 하나도 없고 수부 수술만 했을 리도 없다.
“곡 선생님. 그럼 이러면 어떨까요? 일단 능연을 불러서 선생님 수술방에 두어 번 서게 한 다음에 다시 이야기할까요?”
설호초가 그럴싸한 의견을 내놓자 곡 선생은 잠시 고민하다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설호초는 크게 기뻤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 인사하고 나갔다.
돌아가는 복도에서 설호초는 얼굴에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곡 선생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대놓고 능연을 쓰자고 했다면 십중팔구는 거절당했으리라. 곡 선생을 대하는 데는 곡선이 제격이었다.
“굽이굽이 굽은 굴곡진 길을 가시오, 어차피······.”
가사를 중얼중얼 대던 설호초는 그 뒤 가사가 떠오르지 않자 그냥 허밍으로 흥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