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122화 (875/877)

곡 선생은 수술 시간 20분 전에 수술실로 들어가 필요한 모든 물건을 진지하게 살폈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그 수술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척 ‘가장 전형적인 수술’이라고 간단하게 말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웠다.

보통 집도의가 수술 시간 10분 전에 나타나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마취의가 환자 마취하는 걸 구경하고, 스크럽 간호사가 기구 체크하고, 초짜 의사가 대조하는 걸 구경하는 게 집도의의 일이었다.

20분이나 일찍 온 것도 제대로 능연을 눌러줄 생각에서였다.

어렵게 손에 떨어진 스포츠 스타의 수술이었기에 곡 선생은 온갖 신경을 다 썼다. 직접 수술하기 위해 더욱 노력했으나 그가 설계한 수술 방안은 족족 축동익 손에 막혔다. 스포츠 스타 유위신의 아킬레스건 회복도 하루하루 늦어져서 이제는 더 끌지도 못할 상황에 이르렀다.

그는 이성적으로는 포기할 때가 됐음을 알았지만, 감정적으로는 아무리 해도 포기할 수 없었다.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에 원사가 자리 잡고 있고 대단하기 짝이 없다고 해도, 스포츠 스타가 오면 연구 센터 전체가 큰 손님을 맞이한 것처럼 스포츠 스타 수술을 맡는다. 수술한 의사의 이름을 알릴 좋은 기회도 될 수 있고, 병원이 간판을 확장할 최고의 기회이기도 했다.

어찌 됐든, 현대 의학은 대중 의학 기초에서 설립된 것이라 고차원 의료 서비스라고 해도 특정 소수가 아니라 많은 사람이 받길 바랐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어떤 병원에서든 시선을 끄는 것을 가장 큰 임무로 생각했다. 사람이 많아서 탈인 일선 도시 삼갑 병원이라도 해도, 윗선들은 여전히 사람이 많아서 탈인 그 상태를 유지하길 바랐다. 물론, 비싼 병원비를 지불할 수 있는 특수 환자를 선별할 수 있으면 더 좋은 일이고.

곡 선생이 직접 스포츠 스타 유위신의 수술을 마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단숨에 이름을 알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끊임없이 환자가 알아서 찾아올 것이다.

마흔을 넘긴 나이에, 대머리에, 이제 막 경력을 쌓아나가는 서전인 곡 선생은 평생 아킬레스건 보건 수술을 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해당 분야의 권위자가 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능연은 7분 전에 수술실에 도착했다.

“시간 잘 지키네요.”

곡 선생이 콧방귀를 뀌며 하는 말에 능연은 힐끔 시계를 볼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오늘 우리가 할 수술은 아킬레스건 보건 수술입니다. 환자, 여성 38세. 폐합성 아킬레스건 단열. 보조 검사에서 아킬레스건의 연속성 중단을 확인했고, 우린 일단 수술 탐사를 한 후에, 어떤 방안으로 진행할지 결정할 겁니다.”

곡 선생은 그의 기준에 완벽하게 부합할 정도로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수술실에서는 그렇게 설명하는 의사가 드물었다. 하지만 능연은 오히려 그런 방식에 익숙했고, 명확한 스타일을 좋아했다.

“메스.”

세컨 어시인 부하 레지던트에게 소독을 시킨 다음, 곡 선생은 손을 내밀어 메스를 요구했다. 지금까지는 능연의 태도가 만족스러웠다.

젊은 의사고, 머리카락도 촘촘했지만, 태도가 단정하니 곡 선생 눈에도 그렇게 나쁜 자식으로 보이진 않았다.

병을 치료하고 사람을 구하는 의사 정신에 근거해, 곡 선생도 이제 능연을 노려보지 않고 노련하게 환자의 피부를 그어 수술을 시작했다.

“훅.”

“알리스 포셉(Allis Forceps: 조직 겸자).”

곡 선생과 능연이 거의 동시에 말했지만, 스크럽 간호사는 도구를 능연 손에 쥐여 주었다.

“거즈.”

능연이 다시 소리쳤고, 거즈를 받아 피부를 감싸고 알리스 포셉으로 집어 공간을 만들어냈다.

흠잡을 데 없는 동작이었고,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딱 곡 선생이 원하는 동작이었다. 그의 오랜 의사 생활 중에 이토록 딱 맞게 협조하는 노련한 의사는 많지 않았다.

곡 선생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채, 통쾌한 듯 불쾌한 마음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능연은 표정 변화 없이 제 할 일을 했다.

“실 정리.”

곡 선생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능연이 실을 감아 한쪽에 놓았다.

“좀 적시고.”

곡 선생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능연은 벌써 식염수를 가지고 왔다.

“석······ 션······.”

곡 선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능연이 이미 석션을 시작했다.

곡 선생이 피부를 절개하고 피하조직을 처리한 다음 건간막(mesotendon), 비복신경(sural nerve) 등을 보호하면서 온몸이 편안해졌다. 그러나 몸은 편안해졌어도 마음은 여전히 껄끄러웠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수술 시작부터 지금까지 화도 한 번 내지 않았다. 수술이 너무 순조로우니 화낼 생각도 나지 않은 것이다.

곡 선생이 무슨 생각을 하든 말을 꺼내기도 전에 능연이 이미 끝내놓았다. 그런 수술은 극한의 행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평범한 외과 의사인 곡 선생은 이토록 편하게 수술을 할 수 있다는 걸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밥 먹을 때 먹고 싶은 음식을 누군가 떠먹여 주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편안한 수술은 수술이고, 마음은 거북했다. 그가 바란 건 편안한 수술 따위가 아니었다. 그는 난도가 있는, 그래서 자신이 정복할 만한, 성취감이 있는 수술을 바랐다.

올해 마흔 몇인 곡 선생은 대머리지만 꿈이 있었다. 왕해양과는 달랐다.

왕해양은 늙고 쇠한 몸이라 짓이겨진 먹잇감을 좋아한다. 그는 수술 내내 짓이긴 먹이를 먹여줘도 신나게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곡 선생은 적어도 씹을 맛이 있는 수술을 기대했다. 심지어 능연이 그날 수술에서 작은 실수를 하길 기대하고 있었다. 상급 의사의 위엄은 바로 그런 때 나타나니까.

하급 의사가 실수할 때가 바로 상급 의사가 욕을 하고 화풀이를 할 좋은 기회였다. 하급 의사가 수술 내내 조금의 실수도 하지 않는다면? 그건 상급 의사가 부릴 권위가 없다는 뜻이었다. 혹은 두 사람은 이미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곧 역전될 상황이거나.

실력 차이가 없다면, 옳은 수술 방식이 없다면, 수술실을 통제하는 상급 의사의 ‘상급’은 의미가 없어진다. 아무리 그래도 어이없는 횡포를 부릴 수는 없지 않은가.

외과의가 성질이 더럽기는 해도 어이없이 횡포를 부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곡 선생은 고개를 들어 능연을 힐끔 봤다.

“이제 수처 합시다.”

“네.”

능연은 2인용 현미경 렌즈에서 눈을 떼지 않고 포셉을 잡았다. 그러곤 언제든 아킬레스건을 꺼낼 준비를 하는 포즈를 취했다.

곡 선생은 그 모습에 미간을 좁혔다. 이 다음에 아킬레스건 봉합을 할 생각이었으므로. 게다가 강화 봉합 방식을 채택할 계획이어서 수축된 아킬레스건을 어시가 꺼내줄 필요도 있었고.

곡 선생은 자기가 시작만 하면 능연이 아킬레스건을 꺼낼 것이라 확신했다. 강화 봉합은 그런 순서로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강화 봉합을 하지 말까? 그러면 어떻게 되지?’

그의 머릿속에 잠시 다른 생각이 떠올랐지만 금세 고개를 저었다.

다른 봉합 방식으로 아킬레스건을 봉합할 수는 있다. 그러나 수술 중에 임의로 계획을 바꾸려면 다음 스텝도 줄지어 바꿔야 한다. 그것 때문에 혼란스러워질까 걱정이었다.

방법이 여러 가지인 아킬레스건 수술을 말로 묘사하려면 많이 복잡하지 않지만, 그걸 실행하기엔, 특히 여러 불확실성이 있는 살아 있는 사람 몸에서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문제 풀이로 비유해 보자면, 해법 4개인 올림피아드 수학 시험 문제에 관해 선생님이 아무리 여러 번 설명해도 푸는 사람은 한두 가지 방법밖에 터득하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곡 선생은 단순 끝단 보건 수술과 강화 보건 수술, 이 두 가지 아킬레스건 보건 수술 방법을 터득했고 그중 후자가 이미 전자의 복잡한 버전이라 거기서 임시로 더 어려운 방법으로 바꾸기엔······.

아무리 능연이 얄미워도 그런 선택할 정도로 무너지진 않았다.

“아킬레스건 꺼내세요.”

곡 선생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능연이 순식간에 아킬레스건을 꺼내는 것을 바라봤다. 그는 눈가가 실룩이는 걸 느끼면서 끽소리 없이 봉합을 시작했다.

곡 선생은 운화 병원 수부외과 의사들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근건 봉합법인 개량 케슬러(kessler) 법을 사용했다. 아킬레스건은 인체에서 가장 거대한 근건이었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근건 봉합법으로도 충분히 대응 가능했다. 오히려 능연이 익숙한 탕 봉합법은 이런 두껍고 딱딱한 근건엔 별 효과를 보지 못한다.

능연은 곡 선생의 움직임을 보면서 그의 속도와 진도에 따라 적시에 어시했다. 그랜드마스터급 아킬레스건 봉합법을 터득한 지금, 그는 당연히 개량 케슬러 법도 완벽하게 조작 가능했다. 사실 이런 기초적인 근건 봉합법은 시스템 도움 없이도 슬렁슬렁 연습하는 것만으로 입문급에 들 수 있었다.

지금은 실제로 행하는 것도 아니니 더 간단했다. 퍼스트 어시의 수술 압박은 원래 집도의보다 훨씬 덜해서, 능연은 곡 선생의 습관을 관찰하고 이해하며 그의 움직임의 목적을 고민하고 그의 조작 순서를 정리할 시간이 충분했다.

정상적인 의료팀이라면 퍼스트 어시는 원래 등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집도의의 리듬을 따라가기만 해도 대단한 정도라 판단한다. 집도의의 동작을 예측할 정신 따윈 없는 것이다.

곡 선생은 고개를 들어 능연을 보지 않아도 그의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가볍고, 느긋하고, 여유만만한.

집도의로서 퍼스트 어시를 충분히 써먹지 못하는 건 죄악이었다.

“근건 박리기.”

곡 선생은 스크럽 간호사 손에서 기구를 받아들고 능연에게 용도를 아느냐고 물었다.

“탁근건(拓肌腱)을 떼어냅니다.”

능연은 간단하고 힘있게 대답했다.

“음. 쓸 줄 압니까?”

“네.”

“직접 해봐요.”

곡 선생은 능연이 한가하게 노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집도의로서 상황을 역전시킬 방법은 바로 퍼스트 어시에게 수술을 맡기는 것이다. 퍼스트 어시가 제대로 하지 못하면 욕할 이유도 생기고 권위도 되찾을 수 있으니까.

만약 제대로 해낸다면, 그건 당연한 일이라 칭찬하고 말고는 집도의에게 달렸다.

능연은 손을 뻗어 근건 박리기를 받아 들고는 곡 선생의 기대하는 눈빛 아래 찰칵찰칵, 탁근건을 구분해냈다. 한참 미친 듯이 손을 움직이던 그는 근건 끝단을 절단하고 젖은 거즈 안에 넣어 보관했다.

그런 동작들을 교과서에서 보는 것만 해도 4, 5페이지는 되는데, 능연은 슉슉 몇 분 만에 끝냈다.

“4/0 나일론.”

간호사가 건네주는 실을 받은 능연은 아킬레스건의 건속(腱束. tendon bundle)을 꿰매기 시작했다. 그는 4/0 단속 봉합법으로 말꼬리같이 남은 건속을 정리하여 근건 박리를 완성했다.

능연은 기구를 플레이트에 내려놓고 곡 선생을 바라봤다.

“음, 괜찮네요.”

곡 선생은 잠시 침묵하다가 손을 내밀어 2호사를 요구했고 스크럽 간호사가 2호사를 연결한 니들홀더를 곡 선생에게 넘겼다.

곡 선생은 원단(遠端) 탁근건을 파열된 아킬레스건에 봉합하고 마지막엔 말꼬리 같은 건속을 매끈한 면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정식 봉합을 시작했다.

곡 선생에겐 화려한 기술도 필요 없이 착실하게 하나하나 봉합하면서 환자의 아킬레스건 강도를 보장하면 되는 익숙한 과정이었다. 물론 능연에게도 매우 익숙한 과정이었다.

곡 선생은 목숨 걸고 마라톤을 달리는데 능연이 앞서 달리면서 쉴 새 없이 물통까지 건네는 꼴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곡 선생은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에서 중심을 탄탄히 잡은 사람이라 ‘옛다’ 하고 던져 주는 먹이를 그대로 받아먹기엔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나 그는 속도를 내서 봉합하고, 속도를 줄여서 봉합하고, 순서대로 조작하고, 역순으로 조작하면서 서서히 능연의 먹이 투척에 익숙해졌다. 원래 검소하던 사람이 사치하긴 쉬워도 사치하던 사람이 검소해지긴 어려운 법이다.

모든 스텝마다 누군가 사전에 준비해주고, 후속 처리를 해주고 디테일까지 신경 써주니, 집도의는 점점 그런 느낌이 흡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그는 3/0 흡수 가능한 봉합사를 받아 직접 스킨 봉합을 시작했다. 능연은 한마디도 없이 퍼스트 어시 노릇을 하면서 다투지도 나서지도 않고 착실하게, 곡 선생이 바란 대로 모든 것을 표준에 맞춰 진행했다.

마지막 바늘을 꿰맨 곡 선생은 니들홀더를 내려놓고 상처 쪽의 가는 선을 한참을 말없이 바라봤다. 그는 마음속으로 기묘한 감정을 느꼈다. 기술이 진화한 것 같고 강해진 것 같고 퀄리티가 높아진 것 같았다.

그러나 이성이 곡 선생을 끌고 나왔다. 모순된 심리에 그의 얼굴이 흐려졌다.

“여기까지.”

얼마나 지났을까, 곡 선생은 수술실 문을 밟아 열어 밖으로 나갔다.

“어이쿠, 조심하세요.”

막 안으로 들어오려던 설호초가 곡 선생과 부딪혔다. 그러자 곡 선생은 인상을 쓰고는 바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안에 있던 능연과 레지던트, 그리고 간호사 몇을 본 설호초는 친절한 웃음을 지었다.

“능 선생, 아까 수술 장면 녹화한 거 원사님한테 보냈고요, 선생님 이메일로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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