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능연은 일찍 일어나서 체육관 타탄 트랙을 달렸다.
아침에 조깅하는 습관은 없었는데, 부원 체육관 때문에 관심이 생겼다. 부원 체육관은 표준적인 육상 경기장이었다. 타원형 타탄 트랙이 평탄하고 균일하지만, 중간에 공간이 들쑥날쑥 운치 있고 라인이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어 능연의 심미관에도 부합했다.
능연은 달리는 느낌이 제법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세 걸음에 한 번씩 호흡하는 방식으로 장시간 같은 속도를 유지하면서 뛰었고, 그런 속도로 뛰는 게 가장 기분 좋았다.
심장이 폭발할 듯 뛰거나 숨을 헐떡거리면서 너 죽고 나 살자 달리기보다 조용히 걸음을 내디디고 조용히 거두면서 더는 뛸 수 없을 때까지 조용히 달리는 것이 좋았다.
물론, 조용하다는 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었다. 능연 곁에는 항상 그와 함께 뛰는 여자, 그리고 남자가 있었고 대부분 뛰면서 수다를 떨 정도였다. 아니면 수다를 떨면서 껄떡대거나.
네 바퀴 돈 다음 능연은 땀을 흘리면서 걸음을 멈췄고, 같이 뛰던 여자들도 멈춰 섰다. 하지만 웃는 얼굴로 능연에게 손을 흔들면서 계속 달리는 여자가 더 많았다. 훈련에 익숙한 그들에게 네 바퀴는 애피타이저에 불과했을 테니.
능연은 가볍게 숨을 몰아쉬면서 단숨에 생수 반 통을 비웠고, 그가 물을 받으러 가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 물병을 건넸다.
“아, 고마워요.”
능연 앞에 나타난 혜만산이 고개를 까닥이며 웃어 보이고는 이해타산을 개의치 않는 듯 물통을 받아 곁에 뒀다. 물론, 여자들에게 받은 생수를 계산한다면 능연 쪽 계수기는 터질 지경이었다.
혜만산은 능연이 자신을 알아보자 매우 기뻐했다. 능연은 그가 현실에서 본 제일 잘생긴 남자였다. 나이도 비슷하고 말이다. 혜만산은 며칠 전에 집에 돌아간 다음 능연의 꿈도 꿀 정도였다. 그래서 오늘은 원래 수영장에 가야 하는 날이지만 일부러 부원 체육관에 다시 와서 운동을 했다.
“능연 씨, 수영할 줄 알아요? 수영이 러닝보다 훨씬 나은데.”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오른 혜만산은 그렇게 물으면서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활짝 폈다. 수영은 역삼각형 몸매 만들기에 가장 유리한 운동이고, 수영선수들은 보통 키가 크고 손발이 긴 체형이 많다. 수영을 오래 한 혜만산은 몸이 길쭉하고 늘씬했다.
수영팀에 있을 때 혜만산은 항상 훈련만 열심히 했을 뿐, 연애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마음의 소리를 매우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수영팀 애들이 너무······ 평범했던 거였어.’
능연은 물 한 병을 새로 열어 수분을 다시 보충했다.
“평영은 할 줄 아는데, 수영을 거의 안 해요.”
“왜요? 수영 싫어해요?”
“수영장이 싫어서요.”
혜만산이 다급하게 묻자 능연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이론적으로 수영장은 소독이 잘 되어 있고 일정 쳥결도를 유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 심리란 그렇게 이성적이지 않은 법이었다.
“수영장이 왜 싫어요?”
혜만산은 심하게 유감이라는 말투로 물었다.
“수영장이 얼마나 더러운데요. 수영장에서 임신한 사람도 있다던데요?”
기회를 잡은 여자 하나가 공격적인 말투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런 헛소리를 믿어요?”
혜만산이 무시하는 듯 툭 내뱉었다.
“어쨌든 수영장은 더러워요.”
끼어든 여자는 새하얀 얼굴에 브이라인에 눈도 커다랬다. 얼마나 공들여 화장했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수영장 물만 생각하면 언짢아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월요일에 만나요. 물 바꾸는 날이에요.”
진지하게 고민하던 혜만산이 말했다. 그러자 능연이 미처 대꾸하기도 전에 곁에 있던 여자들이 먼저 바짝 긴장했다. 능연은 아쉽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월요일에 수술 있을 거예요.”
“응? 의사예요? 외과 의사?”
그날 능연을 처음 본 여자 하나가 의사라는 말에 표정이 밝아졌다.
“네, 연수받으러 왔어요.”
“연수? 그럼 나중에 돌아가겠네요.”
“그렇죠.”
“그럼 원래 어느 병원인데요?”
“운화 병원이요.”
질문을 던진 여자가 바로 한숨 돌린 듯 생긋 웃었다.
“운화, 운화도 예쁜 도시죠. 운화 좋아해요, 나.”
“상해는 너무 복잡해.”
“사람도 많고, 차도 많고. 지긋지긋하다.”
“사실 어디에서 사나 다 똑같죠, 뭐.”
다들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느라 주변이 소란스러워졌지만, 능연은 그런 상황에 익숙하기만 했다. 조용하고 청정한 걸 좋아하는 성격이 된 것도 이런 탓인지도 모른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능연은 하는 수 없다고 여기면서 딴생각을 했다.
능연은 체육관 곁의 벤치에 앉아 전날 했던 수술을 세세하게 떠올렸다. 아킬레스건 수술은 손가락 근건 수술과 닮은 듯 달랐다. 비슷한 점은 모두 근건 수술이라는 점이고 스텝이 달라도 본질은 같았다. 다른 점은 손가락 근건이 아킬레스건의 근건보다 훨씬 얇다는 것이다.
얇은 근건에도 얇은 정도가 있었는데, 현미경 수술을 할 때 바늘이 겹치는 넓이도 문제가 되기 때문에 많은 시간 동안 연습해야만 했다. 아킬레스건 수술은 그렇게 디테일하지 않아서 봉합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고 현미경을 쓰지 않고 맨눈으로 봉합해도 큰 문제는 없었다.
아킬레스건 수술의 핵심은 강한 강도로 인한 파열 문제였다. 아킬레스건은 인체에서 힘을 가장 많이 받는 근건이었다. 특히 굳어 있는 상태로 달릴 때는 더욱 그랬다.
어제 수술 환자도 한동안 운동하지 않다가 격렬하게 움직인 바람에 근건이 파열됐다. 처음엔 다리를 삐끗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보다 훨씬 심각했던 것이다.
일반인의 아킬레스건 수술 성공률은 높은 편이었고, 의사의 주의 사항을 잘 따르면 대부분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었다. 거기다 봉합 효과도 굴근건 봉합보다 훨씬 높았다.
그러나 운동선수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운동선수는 일상생활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실력 있는 선수일수록 몸을 극한까지 사용했다. 일반인이 격렬하게 운동해도 아킬레스건이 끊어질 가능성이 있는데 운동선수가 격렬하게 움직이면 아킬레스건 부담은 더 커진다.
현대 의학이 지금까지 발전해오면서 막대한 연구 자본을 들인 덕분에 운동선수 아킬레스건 수술의 기초를 세운 것이다. 능연은 그런 도전에 꽤 흥미를 느꼈다. 그랜드마스터급 아킬레스건 수술을 일반 아킬레스건 봉합에 쓰면 충분하겠지만, 선수 아킬레스건 봉합은 어떨까? 상대방이 수술 후 극한에 도전하지 않으면 문제없겠지만, 그게 어디 가능한가.
능연은 생각에 잠긴 채 물을 홀짝였고 이내 물병이 텅 비었다. 여자들이 새로 가져다주는 생수를 거절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폴짝폴짝 뛰다가 다시 트랙을 따라 가볍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아킬레스건이 힘을 쓰는 걸 느끼면서 속으로 수술 방안을 고민했다. 그때 능연의 핸드폰 벨소리가 미친 듯이 울렸다.
- 능 선생, 축 원사님 오셨어요. 언제 오실 수 있나요? 우리 일단 수술 방법 고르고요. 집도할 수 있죠?
“30분, 음, 40분이요.”
설호초의 전화를 받은 능연은 전화를 끊은 다음에도 바로 멈추지 않고 열심히 한 바퀴 더 달린 다음에 느긋하게 연구 센터로 돌아갔다.
능연은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시간에 맞춰 느긋하게 연구 센터에 도착했다.
메시지를 받은 연문빈은 흥분할 대로 흥분해서 티셔츠 차림으로 뛰어왔다. 그는 손을 비비며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능 선생, 오늘 집도한다며?”
“설호초 씨가 그러더라고요.”
능연의 대답에 연문빈은 허벅지를 내려치며 웃었다.
“잘됐다! 고진감래네, 고진감래.”
“우리가 힘든 게 있었나요?”
능연이 힐끔 연문빈을 보며 물었다.
“운화에서 상해까지 천릿길을 왔잖아. 중간에 이름 없는 의사가 태클도 걸었고. 호텔에 물 끓일 때가 없어서 조림 국물도 며칠 동안 못 끓였다고. 운화 병원에서는 내가 졸여놓은 콩은 다 먹었다고 연락 왔지······.”
연문빈은 정말 대단히 고생이라도 한 듯 주절주절 끝이 없었고, 능연은 껄껄 웃으면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능 선생, 나 급하게 나오느라 깜빡했는데 이따 옷 좀 빌려다 주라.”
“예?”
“가운 말이야. 간호사한테 하나 빌려다 줘.”
“직접 빌리면 되잖아요.”
“내가 가면 안 빌려주니까 그렇지. 맞는 거 없다고. 지금 맞는 가운 없다면서 진료과에 가서 받으라고 그러더라고.”
연문빈이 투덜거리는 걸 듣기 싫어진 능연은 손을 휘휘 내저으면서 두리번거리다가 의국이 보이자 머리를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남는 가운 있나요?”
병원에는 의국뿐 아니라 어디든 하얀 가운이 넘치고 넘쳤다. 복도에 두고 아무나 가져가게 하는 진료과도 있고 조금 더 디테일한 진료과도 걸어놓는 정도라, 병원에서 하얀 가운 구하기는 난이도 하하 수준이었다.
능연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린 의사는 모두 바로 능연을 알아봤다.
“그, 있어요! 능 선생님이죠? 운화 병원에서 온 서전.”
여자 의사 하나가 앞다퉈 고함쳤다.
“네, 접니다. 제 동료가 가운을 안 가지고 와서 하나 빌리려고요.”
“바로 돌려드릴게요.”
“오실 거 없어요.”
연문빈이 다급하게 덧붙이는 말에 여자 의사는 입을 삐죽이면서 큰 사이즈 하얀 가운을 건넸다.
“가지고 가세요.”
연문빈이 감사 인사를 했지만 여자 의사는 그다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핸드폰을 꺼내 능연에게 내보였다.
“능 선생님, 우리 웨이보 해요. 저는 이산이에요. 재활 치료하거든요, 앞으로 같이 일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능연은 핸드폰을 꺼내 웨이보를 추가하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연문빈은 뿌듯한 듯 가운을 걸치고 배불리 먹은 거위처럼 능연 뒤를 따랐다.
한편 축동익은 회의실에서 굶주린 거위처럼 방 안을 빙빙 맴돌았다.
참가해야 할 사회 활동이 너무 많아서 선별하지 않으면 업무를 볼 시간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미 고르고 고르는 지금도 빠질 수 없는 활동이 많았다.
그러나 축동익은 자신의 근본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40년 정형외과 의사 생활을 기반으로 공정원 원사에 올랐다. 많은 사람이 공정원 원사를 직위처럼 취급하지만 공정원 원사는 명예일 뿐, 직업은 아니었다. 그러나 공정원 원사가 된 축동익은 본업에 무리가 갈 정도로 바빴다.
그의 경쟁자는 이제 동기가 아니었고, 병원 동료도 아니었다. 심지어 같은 의료계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지금 사회에서 인정받을 만한 성적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유위신을 잘 치료해서 트랙으로 돌려보내는 것 같은.
유위신은 전국 육상 대회에서 100m, 200m 금메달을 딴 적 있고, 세계급 육상 대회에서도 금메달을 땄으며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에서는 비록 금메달은 아니었지만 좋은 성적을 거둔 바 있었다.
국내 육상계에서 유위신은 손에 꼽히는 우수한 선수였다. 겉모습도 괜찮고 운도 좋아서 유위신의 인기는 승승장구하여 지금은 스포츠계 신흥 귀족 중에 눈에 띄는 일원이었다.
원래 유위신급 스포츠 스타는 부상을 당해 치료가 필요하면 대부분 외국으로 나갔다.
고차원 의료, 특히 스포츠 의학 분야는 외국의 경험이나 실력이 모두 국내보다 높았다. 그러나 유위신은 전부터 축동익 연구 센터에서 진료를 받아와서 축동익 원사와 그의 연구 센터에 대한 신뢰가 매우 높았다. 어떤 의미로는 축동익을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로 대하고 있었다.
유위신은 어디가 불편하기만 하면 바로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를 찾았다. 축동익이든 다른 의사든 모두 그를 위해 간단히 진찰하고 적합한 병원을 알려주거나 직접 의사를 불러 진료받게 해줬다.
이번에도 축동익은 외국 스포츠 의학 연구 센터와 연락을 주고받았으나 유위신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만족스러운 수술 방안을 끝내 얻지 못했다.
사실 아킬레스건 수술 방안은 크게 보면 몇 가지밖에 없었다. 끝단을 절개해 봉합하거나, 강화 봉합을 하거나, 아니면 이식, 그것도 아니면 치유될 때까지 깁스를 하는 것이었다.
운동선수에게 보수적인 방법은 당연히 쓸 수 없었다. 일반인도 깁스를 하고 치유되어도 다시 파열될 확률이 높은데 선수는 말할 것도 없었다.
수술 방안을 끊임없이 세분화해도 결과는 고작 난도가 올라가고 리스크가 올라가고 그리고······.
외국 의학 센터라고 해도 그런 수술을 그다지 원하지 않는다.
수술을 간소화해서 난도를 낮출 것인지 운에 맡기기로 하고 리스크를 끌어안을 것이지, 그런 균형은 축동익뿐 아니라 유위신도 끊임없이 고민해야 했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수술 방안대로 문제없이 해낼 수 있는 수준 높은 의사를 찾는 것이지만, 축동익이 바라는 ‘수준 높은’ 의사는 정말로 수준이 높아야 했다.
“이 능연이라는 분, 이제 스물둘인데, 정말 괜찮나요?”
휠체어에 앉은 유위신이 축동익 원사를 바라봤다. 수술을 더는 미룰 수가 없는데 의사와 방안이 계속 결정되지 않자 유위신 본인도 상당히 초조한 상태였다. 한번은 직접 외국 의료 기관에 문의하기도 했는데, 외국 의료 기관에도 비교적 괜찮은 의사가 있을 뿐 그가 기대하는 치료 방안은 얻기 힘들었다.
축동익은 다시 몇 걸음 서성거리다가 멈춰서 한숨을 내쉬었다.
“위신아, 수술 방법에 대해서는 우리 벌써 여러 번 상의했지? 잘 알잖니. 지금 우리는 실력이 뛰어난 의사를 찾아야 해. 맞지?”
“네.”
유위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필요한 실력 뛰어난 의사는 의대를 나왔다고 다 되는 게 아니야. 천부적인 재능이 매우 매우 매우 중요하다.”
거기까지 말한 축동익은 말을 멈추고 미소 지었다.
“스포츠 선수처럼. 마지막엔 결국 재능이잖니.”
“전 재능이 부족한 쪽이죠.”
유위신이 억지로 웃어 보였다.
“중국인 중에서 재능은 충분히 좋은 편이지. 나머지는 얼마나 지원해 줄 수 있느냐에 달렸고.”
유위신을 위로한 축동익은 고개를 돌려 다시 입을 열었다.
“물론 경험도 중요하지. 나도 처음엔 서른 살 정도된 외과의를 찾았어. 아니면 차라리 유명한 신경외과나 흉부외과 의사가 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니까. 그런데 스물 몇 살짜리 젊은이한테 그런 기술이 있을 줄은 몰랐지.”
축동익은 감탄하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다른 의사들처럼 능연의 빠른 속도, 안정적인 솜씨 혹은 노련한 손놀림만 주목한 것이 아니다. MRI 판독 기술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능연에게 점수를 높이 주었다. 단지 이식 수술할 때 봤던 자신감과 노련미는 말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환자의 회복 속도도 전광석화 같았다. 의사들은 갖가지 사고를 가지고 다른 판단을 내리면서 수술 흐름을 제어하지만, 마지막은 결국 환자의 회복이 중요했다. 그 점은 스포츠 의학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같은 수술이라도 일반인은 6개월이면 정상적으로 걷고 움직이지만, 프로 운동선수는 대회에 나가 상을 받을지도 모르는 6개월이라는 시간을 견딜 수 없었으니 말이다.
가장 중요한 건 프로 선수가 바라는 회복 정도도 일반인과는 다르다는 점이었다.
축동익은 설호초가 보낸 동영상을 떠올리고는 헛기침을 하며 말을 꺼냈다.
“위신, 우리 같이 그 의사 수술 동영상 보세. 자네가 직접 어떤지 봐보라고. 보고 나서 결정 내리세. 하지만 뭐가 됐든 공손하게 대해야 하네. 알겠지?”
“당연하죠.”
유위신은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재능있는 젊은이는 다 고양이 같아서 결대로 털을 쓰다듬어야 해.”
축동익이 거기까지 이야기했을 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러자 그는 바로 웃음을 거뒀다.
능연은 합동 진단실에서 유위신을 보고 조금 놀랐다.
거물 환자들은 합동 진단에 직접 참여한다는 말을 들은 적 있지만, 운화 병원에 있는 동안 아직 그런 환자를 만나지 못했었다.
물론 이것도 특수 상황이었다. 축동익 연구 센터에서 만난 유위신은 최근에 다리가 끊어진 거물 중 한 명이었다. 유위신보다 유명한 스포츠 스타도 있겠지만, 아직 다리가 끊어지지 않았으니 만날 기회가 없었다.
유위신도 내심 감탄하며 유심히 능연을 살폈다.
서른이 된 유위신은 평범한 운동선수가 아니었다. 지금은 한 발, 심지어 부러진 그 발은 스포츠계에, 나머지 한 발은 연예계에 들어가 있었다. 그는 스포츠계에서 세운 인기로 연예계에서 돈을 벌고 있었다.
최근 몇 년, 유위신은 연예계 스타, 혹은 신인, 아니면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연기파, 또는 해외파를 제법 만났다. 그러나 그들보다 능연의 잘생김이 훨씬 강력했다.
“능 선생님 정말 잘생겼네요.”
유위신이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는 요즘 조금만 더 잘생겼으면 좋았을 걸, 하고 아쉬워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조금만 더 잘생겼다면 더 많은 관심을 받고 돈도 더 많이 벌었으리라. 능연만큼 생겼더라면, CF 고르느라 팔이 저렸을지도 모른다.
고양이 털도 고를 겸 그렇게 말한 것도 있지만, 찬양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그런 말을 자주 듣는 능연은 스포츠 스타한테 들었다고 해서 특별할 것도 없어서 그저 담담하게 웃고 넘겼다. 그래도 유심히 유위신을 살펴보고는 상황이 괜찮은 걸 깨닫자 어느 정도 마음이 놓였다.
“능연, 위신이는 알지? 내가 말한 지도 수술이 바로 위신이 수술이라네.”
축동익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온화한 모습으로 인사했고 능연도 웃는 얼굴로 유위신을 바라봤다.
“왜 외국 의사한테 수술받지 않으십니까?”
“많은 점이 안 맞더라고요.”
유위신도 정중하게 대답했다.
“내가 세팅한 방법은 위신의 다리 기능을 최대한으로 회복시키는 방안이라 리스크가 조금 높다네. 어렵기도 하고. 외국의사들은 정규적인 방법을 더 원하지.”
축동익이 보충해서 설명했다. 수술 방안을 축동익이 아니라 집도의가 직접 세팅한다면 리스크가 높은 수술이라도 도전할 가능성이 있지만, 집도만 하는 건 유명한 의사들은 참여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건 국외뿐 아니라 국내 의사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축동익 원사는 지금까지 그의 방안대로 따르면서도 실력도 우수한, 시간을 내줄 의사를 단 한명도 찾지 못했다.
능연은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을 실패하더라도 아킬레스건이 다시 파열 되는 위험은 피하고 싶습니다.”
“수술이 실패하면 다시는 뛰지 못할 겁니다.”
유위신의 말에 능연이 상기시키듯 말했다.
“압니다. 그래도 일반인처럼 걸을 수는 있겠죠. 저한텐 실패한 수술이나 80% 성공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유위신은 확실히 결정을 내린 듯했다. 능연도 유의신이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해서 수술 합병증이나 후유증은 설명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축동익 원사를 바라봤다.
“전화를 받았는데요, 집도하라고······.”
“다른 환자일세.”
축동익은 능연이 오해할까 봐 얼른 대답했다. 능연은 표정 변화 없이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축동익은 한숨 돌린 듯 곁에 있던 레지던트를 시켜 슬라이드를 켰고, 예정됐던 소개와 잡담이 그대로 끝나버렸다.
“조비, 32세. 남성, 미혼. 교통경찰입니다. 4시간 전에 외상을 입어 오른발목에 심한 통증, 부종이 생겼고 움직이지 못합니다. 혼수상태나 의식 장애는 없고요, 미식거림, 구토나 가슴 답답함, 대소변 실금도 없습니다. 정신은 멀쩡한 상태고 지금은 응급실에 있습니다.”
레지던트는 능연에게 설명하기 위해 PPT를 읽어 내려갔다. 능연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4시간 전에 발생한 사고라는 걸 보면 축동익이 일부러 찾아온 건 아닌 것 같고, 마침 생긴 케이스로 능연을 테스트하려는 듯했다. 능연도 그게 마음에 들었다.
일부러 어려운 케이스를 골라 테스트한다면 환자한테 너무 불공평한 일이었다. 다른 업계라면 몰라도 의료계에서는 윤리 문제가 걸린 일이었다.
능연의 경력과 실력으로 그 수술을 집도하는 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신중하게 하려면 퍼스트 어시는 경험 많은 선임 레지던트로 빠진 걸 체크하고 모자란 걸 보충해야 했는데, 가장 중요한 건 능연의 수술을 멈출 능력이 있어야 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구석에 앉아 있는 중년 남자 쪽으로 돌렸다. 긴 손가락, 예리한 눈빛, 마른 몸매, 나른한 표정, 자신감에 넘치는 미소. 10년만 젊었다면, 딱 일본 드라마 풍 외과 의사의 모습이었다.
축동익이 미처 소개하기도 전에 능연은 이미 연구 센터 홍보물에 나와 있는 의사를 살펴봤다. 기천록, 복단 의대를 졸업한 유명한 정형외과 의사. 관절 치환은 국내 정상급 수준이었고, 지금 보니 스포츠 의학 방면으로 진출한 모양이었다.
능연은 그렇게 추측하면서 환자의 병력과 가족력을 설명하는 레지던트의 브리핑을 들었다.
이어서, 그는 신체 진찰 상황과 보조 검사한 영상의학 사진을 설명했다. 신체 진찰까지 들은 능연은 더 안 들어도 되겠다는 생각에 시선을 거두고 물었다.
“잠시만요, 이게 제가 집도할 수술인가요?”
“그렇다네.”
축동익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검사하겠습니다.”
허락을 구하는 게 아니라 명령조였다.
“영상의학과 MRI 판독은 안 듣고?”
“직접 보겠습니다.”
축동익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능연은 충분히 완곡하게 대답했다. 영상의학과에서 한 판독은 그에게 큰 의미가 없었다.
평범한 전문의라면 영상의학과의 판독이 매우 필요했으며 어떨 때는 아예 그 판독에 의지하는 일도 많았다. MRI 필름을 잘 아는, 조금 한다는 의사도 오독이나 발견하지 못한 문제를 피하기 위해 영상의학과의 기본 설명은 필요로 했다. 그 정도만 해도 MRI 판독 방면에서는 85점 짜리 의사이다.
나머지 15점은 1, 2년 전문적으로 영상의학을 전공해야 채울 수 있다.
능연이 터득한 마스터급 MRI 판독 기술은 사지에 국한된 것이다. 그런 제한이 있는 이유도 신체 부위마다 MRI 사진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는 국내 유수 스포츠 의학 전문 진료과였다. 하지만 축동익 원사의 서포트를 빼면 국내에서 일류 전문의라고 불릴 만한 의사는 고작 3, 4명이고 나머지 중년, 청년 의사는 아직도 한창 성장 중인 단계라 MRI 판독 가능을 신경쓸 겨를이 없을 것이다.
현장에 있는 레지던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능연을 바라보고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핸드폰을 꺼낼 수 있다면, 적어도 30마디 독설을 퍼부을 수 있으리라. 그러나 장소가 장소인만큼 그는 고분고분 MRI 사진을 넘기고 능연이 입을 열길 기다렸다.
구석에 앉아 있던 기천록은 오히려 흥미가 생겼는지 고개를 들고 능연을 바라봤다. 그는 MRI 판독 55점짜리 의사였다. 다만 그의 골관절 분야는 전신 여러 부위라서 MRI도 전신 여러 부위 판독이 가능했다.
그런 그도 지금까지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사전 판독이 필요하기에 직접하겠다는 능연의 요구가 얼마나 특별한지 잘 알고 있었다.
한쪽 벽을 가득 차지한 스크린에 MRI 사진들이 펼쳐졌다.
정형외과가 벼락부자라고 불린다면,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는 벼락부자 중의 만수르였다. PPT용 스크린 하나가 익원현 병원 수술과 맞먹었다.
그렇게 많은 MRI 필름이 한꺼번에 줄지어 있는 모습은 처음이라, 능연은 기분이 상쾌해져서 눈을 반짝이며 읽기 시작했다. 잠시 후엔 아예 리모콘을 달라고 해서 직접 조작까지 했다.
모든 이가 능연을 바라봤다.
능연은 스크린을 한참동안 필름을 바라보았다. 원래 판독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지만, 능연은 꼼꼼하기까지 했으니 시간이 더욱 오래 걸렸다.
정상적인 합동 진단이라면 의사가 그렇게 오래 사진을 읽을 시간은 없다. 보통은 그 전에 미리 봐뒀거나 아니면 보는 척하거나였다.
능연처럼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도 원사, 전문가, 스타 선수, 레지던트 앞에서 끈기 있게 읽는 사람은 드물었다.
“손상 정도는 I형 II형 사이에 있네요. 기본적인 끝단 봉합으로 여기에서 들어가죠.”
능연은 손짓을 하면서 본인의 방안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축동익은 개입할 의사가 없어 보였다. 평범한 아킬레스건 회복 수술이었고 처음부터 능연의 처리 능력이 포인트였다.
“기 선생, 자네가 오늘 퍼스트 어시 맡게. 기 선생은 우리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에서 젊고 유능한 주임 의사라네.”
능연의 설명을 다 들은 축동익은 총결도 내지 않고 바로 그렇게 말했다.
“기 선생은 수술 중지 권한이 있어.”
축동익이 특별히 설명하는 말에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연문빈을 불러 수술실로 향했다. 오히려 뒤에 남은 축동익 등이 시원스럽게 받아들이는 능연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자신감이 넘치네요.”
기천록이 씨익 웃으면서 밖으로 나갔다.
축동익과 유위신은 각각 기대감과 중압감을 안고 합동 진단실을 나서 수술 참관실로 향했다. 거기엔 수술실에 연결된 고해상도 영상기기를 통해 수술실을 자세히 볼 수 있는 모니터가 더 많았다.
뒷정리를 하느라 유일하게 합동 진단실에 남은 레지던트는 우선 핸드폰을 꺼내 단체 메시지 방에 미친 듯이 독설을 내뿜었다.
“그 능연이 수술한데. 집도의로.”
“헐, 스물 몇에 집도의?”
“남의 집 밥그릇이 커보이는 거 아니겠어? 집에 있는 은수저는 막 굴리면서 주워온 놋수저는 소중하고 말이야.”
레지던트 단톡방에 동기 레지던트들이 난리가 났다.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의 레지던트들은 출신이 다들 훌륭하고 하나같이 각 학교의 능력자였지만 그중에서도 위로 올라갈 기회를 잡는 건 일부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레지던트는 낮은 월급 때문에, 혹은 기술을 터득하는 게 너무 낮거나, 수술할 기회가 없거나 하는 이유로 계속해서 그만 두는 사람이 생겼다.
축동익 연구 센터는 대형 삼갑 병원과 달리 제공할 수 있는 승진 폭이 매우 좁았고, 치고 올라가지 못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외부의 도전도 마주쳐야 했다. 갑자기 나타나서 한 자리 꿰찰지도 모르는 능연 같은 의사가 바로 그런 예였다.
“보러 가야겠다. 같이 갈 사람?”
“가자, 가자.”
레지던트 하나가 글을 쓰자 몇 명이 동조했다. 그리고 잠시 후, 참관실에 20명 넘게 몰려들었다. 레지던트뿐만 아니라 한가한 주치의와 부주임도 그 자리에 있었다.
축동익이 맨 앞줄에 있어서 다들 이야기는 하지 않고 각자 자리를 찾아 수술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 참관실은 거액을 투자한 곳으로, 여러 수술실과 수술실 현미경을 연결할 수 있어서 일반 수술 시야와 현미경 수술 시야를 모두 볼 수 있었다. 손 쉽게 화면 전화도 할 수 있으며 실시간 소통도 할 수 있는 ‘기술 전시’에 딱 맞는 교육 현장이었다.
연구 센터 내부 의사들이 참관실에 연결된 수술실에서 수술할 용기가 있는지 없는지도 사람들이 의사의 실력을 평가하는 참고 항목이었다. 그러나 의사들은 환자 가족들이 참관실을 이용할 때 가장 두려워했다.
일반 병원 수술실은 블랙박스 비슷하다. 가족이 환자를 보내면 블랙박스가 수술이 끝난 환자를 되돌려 보내며, 가족들은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상황과 수술실에서 나온 다음의 상황은 알아도 수술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가족이 수술실에 직접 들어가는 건 의사의 수술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참관실을 이용하는 방식이라면 어느 정도 컨트롤이 가능했다. 물론 참관실에 들어가는 것도 현재 연구 센터에서는 쉬운 일은 아니었고, 특별한 경로를 통해야만 했다.
곡 선생이 살짝 문을 열고 들어가 묵묵히 참관실 구석으로 가서 섰다. 그는 휑하니 빈 머리 부분을 만지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다른 레지던트들보다 훨씬 더 이 수술이 신경 쓰였다.
어쨌든 그는 유위신의 수술 방안 세팅에 참여했었고 유위신과 수술 방안에 관해서도, 그 수술에 어떤 실력이 필요한지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
곡 선생은 자신에게 인사하는 의사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맨 뒤에 앉아서 시커먼 모니터를 주시하며 멍하니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잠시 후 모니터가 밝아졌다. 사람들은 수군거림을 멈추고 일제히 중간에 있는 모니터들을 주목했다. 수술 시야를 보여주는 모니터, 수술실 전경을 보여주는 모니터도 있었다. 2인용 현미경을 통해 전해지는 화면은 여전히 꺼져 있었지만 다른 이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 능 선생님, 수술복 갈아입으세요.
- 능 선생님, 기구 리스트 한 번 봐 주세요. 더 필요한 거 없으세요?
- 능 선생님, 수술 습관 있나요? 수술 중에 마실 물이 필요하다던가.
들리는 소리는 모두 순회 간호사와 스크럽 간호사의 목소리였다. 참관실에 있는 의사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봤다.
“언제 저렇게 싹싹해졌대?”
“꽃미남 앞에서는 그렇지. 남신 이야기할 때 못 봤어?”
레지던트 하나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내자 100kg 거구 레지던트가 자포자기하듯 내뱉었다.
“야, 그래도 저건 아니지. 저렇게 적극적으로 한다고 무슨 의미 있어?”
“넌 뭘 바라고 여신 가방 들어주냐?”
참관실이 다시 조용해지고 사람들이 모두 모니터를 다시 보기 시작했을 때, 묘한 적대감도 늘어났다.
정형외과엔 여자 의사가 극히 드물었고, 정형외과 전문 수술실에는 남자 간호사가 불가피했다. 그래서 원래 얼마 되지도 않는 여자 간호사들이 능연을 바라보며 함박웃음을 짓는 모습에 레지던트들은 심히 불쾌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