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안, 능연은 환자의 발쪽을 한참 동안 주시했다.
실제로 그 환자의 발을 보는 건 처음이지만, MRI를 통해서 봐왔기 때문에 주인보다 그 발에 대해 더 잘 알았다.
“능 선생,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
기천록이 흥미진진하게 능연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선 좀 그리겠습니다.”
정신을 차린 능연은 손을 내밀어 사인펜을 받아서 환자의 족부에 선 몇 개를 긋고 다른 색 펜을 요구해 다시 그었다.
“뭘 구분한 거야?”
연문빈이 바짝 긴장한 채로 물었다. 그는 세컨 어시였지만 아킬레스건 수술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아는 게 있다고 해도 교과서나 동영상을 통해 얻은 지식이라 거의 세컨 어시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무슨 구분이요?”
능연이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선 말이야. 두 가지 색이잖아.”
“아, 검은 건 절개선. 하얀 건, 건근이 잘린 곳이 여기예요.”
능연은 선을 그은 위치를 가리키다가 연문빈이 잘 볼 수 있도록 몸을 비틀었다.
별생각 없이 보던 기천록도 흠칫했다가 순간 깨달았다. 영상의학과 설명을 유심히 듣지 않았기에 확실한 아킬레스건 파열 위치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는 그제야 능연이 정말로 영상의학과 도움 없이 필름을 판독했음을 인정했다.
그는 한참을 능연을 주시하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85점짜리 아이는 100점짜리 아이가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아는 법이다. 기천록이 능연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아는 것처럼 말이다.
MRI로 아킬레스건 파열을 진단하면 얼마나 손상됐는지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절단면 양쪽의 형태와 끊어진 거리도 알 수 있었다. 이는 임상학적으로 의미가 큰 정보였고 MRI의 장점이기도 했다.
기천록은 저도 모르게 질투심이 치밀었다. 겨우 스무 살 남짓한 능연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니. 천부적인 재능이 대단해도 너무 대단했다.
그는 6개월 동안 시간을 투자하면 85점짜리 판독 능력을 100점으로 끌어 올릴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대답은 불가능이었다. 6개월은 둘째 치고, 2년의 시간도 모자랄지도 모른다. 아예 다른 일을 접고 필름만 열심히 들여다보면 어떻게든 가능할지 몰라도 말이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
기천록이 정형외과 피라미드를 기어오르면서 골관절과 스포츠 의학 두 방향으로 뻗은 다리만 해도 꼼짝달싹 못 할 정도로 바빴다.
기천록과 연문빈의 표정을 살핀 능연은 조수들에게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기로 했다.
“MRI를 통해 T1I,T2I에 근건에 부위성 고신호를 띠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근건속 내부도 비교적 거칠고 불규칙적입니다. 부분 손상의 특징이죠. 위치는 T2I에서 알 수 있듯이 신호가 높을수록 강하게 파열된 부위입니다.”
능연은 아예 위치를 찍어 두 사람에게 보여주고 마취의 상태를 확인한 다음 메스를 달라고 했다.
이번엔 능연의 속도가 훨씬 빨랐다. 슉슉 메스를 움직이더니 곧 벌리라고 명령하면서 메스를 플레이트에 던졌다.
기천록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수술이 이미 시작됐음을 의식했다. 그에 비해서 세컨 어시인 연문빈이 능연의 스타일에 훨씬 익숙했다. 능연은 항상 말수가 적었고, 자신감이 부족한 의사와 달리 끊임없이 어시에게 이것저것 확인하지도 않고 언제나 할 일을 묵묵히 할 뿐이었다.
능연은 전형적인 ‘나 홀로’ 유형의 의사였다. 대부분 혼자 처리하면서 가끔 어시가 감당 못 하거나 집중력이 떨어질 때 변함없이 아무 말 없이 작업을 이어받곤 했다.
그런 집중도는 서서히 연문빈, 마연린과 여원에게 영향을 주었고, 특히 연문빈과 마연린의 수술실 생활엔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연문빈은 자동적으로 팔을 뻗어 훅을 요구했고, 간호사는 기천록을 힐끔 보고는 훅을 연문빈 손에 올려놓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주위의 근육을 당겨서 아킬레스건을 노출했다. 거기까지는 근건이 더 두껍고 근육 조직이 더 큰 것 말고 탕 법과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식염수로 헹구고 나니 파열된 근건이 능연의 말대로 중심 위치에 드러났다.
기천록은 영상의학과의 설명을 들어 놓지 않은 걸 후회하며 살짝 고개를 들었다. 설명을 제대로 들었다면 정확한 위치를 파악했을 것이고, 능연에게 휘둘리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끝단 수처.”
능연의 목소리에 기천록은 뭐라고 할 말도 없이 곡 선생이 전날 사용했던 개량 케슬러 법으로 빠르게 봉합하기 시작했다.
곡 선생이 전날 낑낑거리면서 했던 건간막, 비복신경도 능연은 슉슉 해치웠다.
끝단 봉합은 끊어진 아킬레스건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맞춰서 단단히 봉합하는 가장 간단한 봉합 형식이었다. 아킬레스건은 두껍기 때문에 탕 봉합 같은 정교한 봉합 기술을 발휘할 여지가 없었다. 개량 케슬러 혹은 일반 케슬러 법은 초짜 의사 때도 쓰고 주치의가 되어서도 쓰고 전문가급 의사도 쓰지만 효과가 다를 뿐이었다.
능연은 자세를 취하고 빠른 속도로 봉합했다. 기천록은 최선을 다해서 협조했지만 그의 속도를 겨우 따라잡을 정도였다.
참관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곡 선생은 진작 넋이 나갔다. 그가 항상 쓰는 개량 케슬러 법이었고, 그 방법으로 능연의 코를 눌러줄 생각까지 했었다. 거기다 능연 앞에서 제법 잘해냈다고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퍼스트 어시 능연에서 집도의 능연이 되어 케슬러 법을 쓰는 걸 본 곡 선생은 큰 충격에 빠졌다.
너무해!
진짜, 진짜 너무해!
“10호 봉합사 연결해 줘요!”
능연이 봉합 중에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스크럽 간호사가 주저하지 않고 대답하고는 신속하게 10호 봉합사를 꺼내 니들홀더에 걸고 능연의 손바닥에 올려 놓았다. 경쾌한 ‘짝’ 소리가 나자 부끄러움에 간호사의 하얀 얼굴이 붉어졌다.
“무슨 일입니까?”
기천록이 무언가 의식한 것처럼 퍼뜩 고개를 들고 물었다.
아킬레스건 봉합에서 10호 봉합사는 두꺼운 축에 속하는 실이었다. 능연이 전에 쓰던 4-0에 비하면 3배 가까이 두꺼웠다. 집도의가 갑자기 실을 바꾸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기술 문제가 나오면 능연은 기꺼이 설명하는 편이었다. 능연은 2인용 현미경 한쪽에 앉아서 포셉으로 현미경을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했다.
“단면이 깔끔하지 않아서 4-0으로 계속하면 나중에 결손이 생깁니다.”
얇은 실은 당기는 힘이 부족했다. 촘촘하게 단면을 꿰매면 힘이 올라가겠지만, 하나하나 따지면 2, 3가닥을 합친 힘이 10호보다 떨어졌다.
아킬레스건의 탄력은 크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의사가 끊어진 아킬레스건을 강제로 이어붙이면 잠깐은 그대로 있겠지만, 아킬레스건의 탄력은 유지되니 수술이 끝나면 되돌아갈 가능성이 컸다.
끊어진 아킬레스건의 길이가 같다면 탄력받는 힘도 비슷해서 아킬레스건의 기능이 유지된다. 하지만 끊어진 아킬레스건의 길이 자체가 다르면 탄력받는 힘이 달라져서 재파열되기 쉽다.
길이가 같은 고무줄 5개를 꿰매는 것이 길이가 다른 고무줄 5개를 꿰매는 것보다 봉합 효과가 좋고 강도가 높은 것과 같은 이치였다.
해결 방법은 간단했다. 다른 강도의 봉합사를 골라 그 강도에 맞춰 근건의 강도 부족을 채워서 수술 후 탄력을 비슷하게 맞추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 당연한 해결 방법은 기천록에게는 충격이었고 참관실에서 모니터를 보는 곡 선생은 더욱 놀랐다.
“단면이 불균형한 게 너희들은 보여?”
레지던트 하나가 저도 모르게 물었다.
“피를 저렇게나 흘려서 수술 시야 확보도 힘든데, 저걸 어떻게 보냐? 기껏해야 털끝이나 보일까.”
곁에 있던 다른 레지던트가 코웃음을 쳤다.
“흥, 다른 거로 판단했겠지. 현미경으로 보는 시야는 지금 우리가 보는 시야랑 비슷할 거야. 더 잘 보이지 않는다고. 거기다 우리는 이렇게 큰 모니터로 보잖아, 아무것도 안 하면서 말이야.”
레지던트 하나가 모니터로 접근해서 스캔이라도 하듯이 바라보며 조금씩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MRI 사진으로 판단한 것일 걸세.”
축동익은 그렇게 말하고 잠시 생각하더니 설명을 덧붙였다.
“혈관 분포로 고려했을지도 모르고. 다만 그게 더 복잡하겠지.”
“이건 뭐 판타지네.”
곡 선생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의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곡 선생은 후회하는 듯 헛기침을 했다.
“제 말은 저렇게 빨리 봉합하면서 어떻게 우리보다 더 자세히 보냐는 겁니다. 그리고 설사 표면이 매끄럽지 않은 걸 발견했다고 해도 몇 번 봉합사를 써야 할지 어떻게 알고요. 저 정도면 찍은 거 아닌가요? 아니면 직감?”
곡 선생은 ‘못 믿을 사람’이라는 말을 억지로 삼켰다. 원래 입을 뗄 생각이 없어서 상황만 조금 보다가 빠져나가려고 참관실 맨 뒤에 서 있었다. 그런데 능연이 수술을 그렇게 빨리할 줄은 몰랐고, 거기다 그만 보려고 해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신속하게 절정으로 진입할 줄은 더욱 몰랐다.
곡 선생도 본인이 아킬레스건 수술을 하는 의사라서 능연의 수술을 보자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었다. 그는 심지어 능연의 수술에 정복당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봉합사를 바꾸는 것은 그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고 인정하지도 않았다.
아까 억지로 삼켰던 말처럼 그는 능연의 현장 판단이 몹시 못 미더웠고, 축동익의 설명도 마찬가지로 못 미더웠다.
본인이 케슬러 법을 사용하는 외과 의사다 보니, 누군가 혈관 분포만으로 아킬레스건의 완전성을 알아볼 수 있다고 하는 말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MRI 사진이라고 해도 그 정도로 세세히 알 수는 없었다. 적어도 현장에서는 바로 판단할 수 없다고 믿었으니까. 수술 후 분석에 사용하거나 아니면 환자의 사망 사고가 일어나서 사망 원인 분석할 때 사용하면 몰라도 말이다.
외과 의사가 현장에 있을 때는 봉합사의 당기는 힘을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만 한다. 지금 능연은 4-0에서 10호로 실을 바꿨고, 그렇다면 10호 봉합사로 꿰맬 예정인 아킬레스건이 짧아서 당기는 힘이 매우 커야 한다는 걸 그가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혈관 분포를 통해서든 MRI 사진을 통해서든 그런 정보는 알 수 없었다.
적어도 곡 선생은 그런 정보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영상의학과에 그것이 가능한 능력자가 있다는 소리도 들은 적이 없었다.
축동익은 모두를 바라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추측으로 안 되면 직접 물어보세나. 교육 수술인 셈 치면 되지 않겠나?”
말을 마친 그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능연, 단면이 깨끗하지 않은 걸 어떻게 판단한 것인가? 그리고 실의 견인력이 얼마나 되어야 하는지는 어떻게 알았나?”
앞의 질문에 비해서 뒤의 질문은 그 목적이 명확했다.
더 짧은 고무줄을 당기기 위해서는 더 큰 견인력이 필요하다. 공학 실험이라면 간단한 문제였다. 재료의 견인력과 인장 강도와 항복 강도를 측정할 기구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러나 살아 있는 사람의 아킬레스건은 그럴 수 없고 수술실에 그런 장비도 없다. 그렇다면, 능연은 어떤 견인력의 실을 써야 하는지, 대체 어떻게 판단했단 말인가. 그 판단을 내릴 수 없다면 끝단이 깨끗하지 않은 걸 판단해낸 것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었다.
사실 평범한 의사가 그런 수술을 할 때는 견인력 같은 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봉합만 한다. 끝단 문제는 이식 같은 방법으로 해결하는 사람이 더 많다. 자체 박근 이식이나, 단비골근 이식 등으로 짧은 아킬레스건을 보충해서 양쪽 길이를 맞추거나 이식하는 부분을 좀 더 길게 하면 상대적으로 파열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그 정도까지 해내는 의사만 해도 평범한 의사라고 할 수 없고, 적어도 곡 선생 같은 전국에서 유명한 의료기관에서 중견급은 되는 의사만 가능했다.
실력이 좀 더 뛰어난 기천록도 능연의 수술을 이해할 수 없어 마찬가지로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능연은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다가, 10호 봉합사로 봉합을 마친 후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손으로 당겨보고 느꼈습니다.”
“느낌?”
곡 선생은 헛웃음을 터트리고는 저도 모르게 몇 걸음 앞으로 나와 통화버튼을 눌렀다.
“감으로 수술한단 말입니까?”
“자주 추나 요법을 씁니다. 근건이나 근막 근육을 손으로 잡아보면 견인력을 알 수 있습니다. 크게 차이 나지 않아요.”
“농담하십니까?”
곡 선생은 통화 버튼을 누르지 않고 말한 것을 깨닫고는 다시 한번 반복했다.
“농담 아닙니다.”
능연의 대답은 매우 간단했다. 추나엔 ‘근(筋)’을 타깃으로 한 추법(推法), 발법(撥法)이 있다. 그리고 근은 좁은 의미로 근건과 인대를 가리킨다.
단지 이식 혹은 탕 법을 할 때 봐왔던 근건은 모두 약해서 마스터급 추나 기술로도 정확하게 힘을 판단할 수 없었다. 판단을 해낼 수 있다고 해도 의미가 없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엄지 근건은 젓가락보다 가늘어서 들쑥날쑥 파열이 된다면 개별 봉합을 할 게 아니라 가지런히 잘라낸 다음에 봉합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었다.
그런데 아킬레스건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아킬레스건은 가장 굵은 근건이고 길이는 운동 능력에 극대한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파열 정도도 다 달라서 가장 짧은 아킬레스건 기준으로 가지런히 자르면 그 아킬레스건 자체가 쓸모없어져서 이식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아킬레스건은 인체에서 가장 굵은 근건이라서 인체 내 다른 근건도 추법, 발법으로 느낄 수 있는 능연이 아킬레스건의 힘을 모를 리가 없었다.
“정말 감이라고?”
기천록이 고개를 들어 능연을 바라봤다. 그는 다시 한번 그렇다고 대답한 뒤, 손을 내밀어 3-0 봉합사를 요구했다. 다른 아킬레스건을 봉합하려는 것이다.
“정말 감으로 알 수 있다면 그야말로 대단한데요?”
능연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본 기천록이 말했다. 능연은 이번에도 별다른 대답은 하지 않았다. 능연의 동작을 바라보는 기천록은 이미 어느 정도 그를 믿기 시작했다.
감으로 수술을 한다니, 환자가 들으면 내 소중한 몸으로 무슨 짓이냐고 어이없어 할 일이었다.
하지만 인류의 과학 기술 수준은 그런 것이다. 고차원적인 수술일수록 느낌에 맡길 때가 더 많다. 특히 내장기관 관련 수술일 때는 더욱 더 그렇다. 능연이 간 맨손지혈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감에 기댄 것이었다. 물론 그런 감 뒤에는 해부학으로 얻은 경험 등이 있었지만. 어찌 됐든 그런 건 보자마자 가시화나 데이터화 되는 것은 아니었다.
심장 수술도 마찬가지로 이상할 정도의 ‘감’이 넘친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기적도 일어나는 법이다. 뇌 수술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대뇌 기능 구분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할 수 없지만, 수술을 해야할 때는 가차없이 손을 댈 수밖에 없다.
감으로 일하는 내과 의사는 더 많다. 협화 병원 회진을 예를 들어봐도, 내과 의사들은 저마다 온갖 의견을 내지만 진상은 단 하나다. 결국 재능이 탁월한 내과 의사가 바로 ‘감’이 더 좋은 의사인 경우가 많았다.
기천록 본인도 아킬레스건 수술할 때 감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아킬레스건의 탄력이 지나치게 크다고 느끼면 좀 길게 이식하고, 탄력이 약하면 강제로 끌어당겨 봉합한다. 감으로 판단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외과 의사를 도와 아킬레스건 견인력을 체크해 줄 기기는 지금까지 개발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견인력을 계산해낸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람마다 아킬레스건은 확연히 다르다. 가장 간단한 길이를 예로, 평범한 아시아인의 아킬레스건 길이는 15mm인데 아이번스는 25mm, 조던은 30mm라고 한다. 그러니 견인력도 당연히 천차만별이다.
다만, 기천록은 감으로 수술한다는 말을 입에 올려 본 적이 없고, 그렇게 물어본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능연의 솔직함에 조금 감탄했다.
한 번도 ‘감’으로 수술한 적이 없는 곡 선생은 분노를 느꼈고 씩씩대면서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기 선생님, 수술 중지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참관실엔 덕망과 명성이 높은 축동익 원사가, 수술실엔 젊고 유능한 기천록 주임의사가 있으니 곡 선생도 이성을 붙잡고 있어서 명령할 엄두는 못 내고 질문하는 말투를 썼다.
“잘 보고 배우기나 해.”
기천록은 곡 선생을 무시하는 표정을 감추지도 않고 말을 던졌다. 그러자 곡 선생 얼굴이 시뻘게졌다. 두 사람의 나이는 비슷하지만 위치는 천지차이였다. 상급 의사인 기천록이 곡 선생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을 땐, 정말 아예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곡 선생은 아무 말 없이 마이크에서 떨어져 참관실 맨 구석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곳을 떠날 생각은 없었다. 유위신 문제가 아직 남아 있기도 했으니까. 곡 선생은 먼저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마지막 결과는 보아야 했다.
“4호 가는 실.”
능연이 다시 얇은 봉합사를 요구하면서 고개도 들지 않고 계속 봉합해 나갔다. 이런 간단한 아킬레스건 봉합은 얼마나 더 잘 꿰맬 수 있을지가 문제지, 실패할 가능성은 눈곱만큼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의 수술실은 넓고 환했다.
참관실에서 전경 모니터로 보는 수술실은 더욱 판타지 세계 같았다. 옅은 파란 바닥, 진파랑 시트, 하얀 장비와 은색 기구, 검은 무늬 혹은 붉은 무늬 소모재가 각 구역을 점령하여 냉혹하면서 질서정연한 모습을 연출했다.
간호사 두 명 중 하나는 회색 토끼가 그려진 수술 모자를, 또 하나는 노란 토마토가 그려진 수술 모자를 쓰고 분주하게 수술대 주변을 오갔는데, 그 모습이 귀여운 작은 나비로 보였다.
“수술 모자 귀엽네요.”
분위기가 딱딱하다고 생각한 유위신이 티비에 나간 적 있는 본인의 예능감을 살려서 분위기를 풀어 보기로 했다.
“컬러 수술 모자가 환자의 긴장감을 완화할 수 있어 수술에 도움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네. 게다가 수술실은 모두 유니폼을 입지 않나. 그래서 각자 수술 모자를 구매할 수 있도록 허가했지.”
축동익은 차분한 말투로 이치와 근거를 늘어놓았다.
“그렇다면 능 선생은 자기 수술모자를 살 틈이 없었나 보네요. 기 주임은 빨갛고 파란 꽃무늬 모자네요. 직접 사셨나? 재미있네요.”
유위신은 무의식적으로 훅맨 연문빈을 빠뜨렸다.
“능 선생은 진지한 의사 아닌가. 환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그런 의사겠지.”
축동익은 웃으며 말했다.
“환자는 아무래도 병을 잘 고치는 의사를 제일 기대하겠죠.”
유위신은 느끼는 바가 있는 듯 대답했다.
“능연은 병도 잘 고치지.”
축동익은 유위신의 말에 직접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다. 의사 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그 말이 모든 환자의 바람은 아니고 오래된 환자의 마음이라는 걸 알게 된다. 작은 병을 앓거나, 큰 병을 한 번도 앓아 본 적 없는 환자들은 대부분 의사를 호텔 주방장 정도로 생각했다.
심지어 몇 년 전의 유위신도 그랬다. 한창 물이 올라 있던 유위신은 작은 병은 있었어도, 근육이나 뼈를 다치는 큰 병은 없었다. 그래서 센터에 올 때마다 태클을 걸며 더 좋은 진료 환경을 바라고 시간을 아낄 수 있는 플로우를 요구하고 성격 좋은 의사를 원하고······ 그랬다.
곡 선생이 바로 그때 그의 초진 의사가 되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특히 최근에 아킬레스건이 파열된 후로 요구가 완전히 달라졌다.
본인도 그런 문제를 떠올렸는지 몰라도 유위신은 직접 휠체어를 밀며 한 바퀴 돌면서 화제를 바꿨다.
“캐릭터 모자를 쓴 간호사가 있으니 기분이 가벼워지네요. 회색 토끼 모자 쓴 간호사가 스크럽 간호사죠?”
“롭(Lop: 귀가 처진 토끼)이에요.”
100kg의 거구 레지던트가 머리를 흔들고 있는 스크럽 간호사를 보며 갑자기 중얼거렸다.
“예?”
“잉글리시롭이라고요. 효운이가 제일 좋아하는 반려동물이에요.”
레지던트는 목소리를 키우면서 앞에 있는 생수를 들어 꿀꺽꿀꺽 반이나 마시고 101킬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