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위신은 ‘온 김에’ 정신으로 다시 한번 풀세트 검사를 했다. 그는 지금 방사능, 귀찮음, 비용 같은 걸 고려할 상황이 아니었다. 아킬레스건을 제대로 고쳐 트랙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건강하게 트랙으로 돌아가서 1, 2년 더 버틸 수만 있다면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해도 불만이 없었다. 지금의 유위신이 1년에 버는 돈과 얻는 명성은 평생 벌어온 돈, 얻은 명성과 같은데 이런 때에 트랙을 떠나야 하는 건 유위신 본인뿐 아니라 매니저, 광고주와 체육부 리더도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합동 진단실로 돌아간 능연은 축동익, 곡 선생, 유위신이 나란히 앉아 있는 걸 발견했다. 그 곁에 처음 보는 세 사람이 조금씩 떨어져서 앉아 있었는데, 각자 커다란 컵을 놓고 있어서 사무실 분위기가 났다.
축동익을 힐끔 본 곡 선생은 그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살짝 안심하고 입을 열었다.
“능 선생, 능 선생과 토론해 보고 싶은 아이디어가 하나 있습니다.”
“네.”
능연은 컵 하나를 찾아 물을 따라서 꿀꺽꿀꺽 마시고는 회의 테이블 앞에 앉았다. 곡 선생이 일부러 연출한, 사람을 압박하는 분위기엔 별생각이 없었다. 능연은 그렇게 세심하게 세팅된 자리를 너무 많이 겪어왔다. 사람을 잔뜩 동원한 고백이든, 반드시 이기고 말겠다는 기세의 시위든, 젊은이들이 곡 선생보다 더 재미있고 진지하게 준비하는 편이니 말이다.
“능연 씨!”
“네.”
곡 선생의 말투는 더욱 진지해졌지만 능연은 여전히 가볍게 대꾸하면서 그를 바라봤다. 축동익을 바라본 곡 선생은 그가 이번에도 별 말을 하지 않자 어쩔 수 없어 하며 능연을 바라봤다.
“능연 씨, 진지하게 임합시다. 중요한 이야기라고요.”
“알겠습니다.”
능연은 자세를 가다듬고 다년간 연습해 온 상대방을 존중하는 표정으로 앞을 바라봤다. 눈을 좀 더 크게 뜨고, 입가에 살짝 미소 지으며, 허리를 곧게 펴고 언제든 일어나서 질문할 자세를 취했다.
그제야 만족한 곡 선생이 미소를 지었다.
“능연 씨, 오늘 수술 제법이었습니다. 축하해요. 우리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에서 진행한 첫 수술, 성공 가능성이 크군요.”
“감사합니다.”
능연이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축 원사님, 그러니까 우리 축 주임님이 당신을 우리 센터에 모셔온 건 유위신 수술을 집도하게 하기 위함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 당신의 수술을 보니 역시 우리 주임님은 안목이 탁월하군요.”
곡 선생이 조금 부드러워진 얼굴로 하는 말에 능연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유위신 씨 담당 의사입니다. 이론적으로 당신이 보여준 실력은 상당히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유위신 씨 수술은 매우 복잡하고 난도가 높습니다. 나와 유위신 씨 모두 아직 걱정이 되고요. 그래서 우리는 이야기를 나눴고요, 제안을 하나 하려고 합니다. 고려해주면 좋겠네요.”
곡 선생은 능연의 태도를 살피려고 그의 얼굴을 주시했다.
“말씀하세요.”
능연은 변함없이 담담한 얼굴로 대답했다.
“수술 몇 건 더 해줬으면 합니다. 비슷한 아킬레스건 수술 말입니다. 당신의 수술에 대해 객관적으로 점수를 먹일까 해요. 통과하면 유위신 씨의 수술을 넘길 수도 있고 통과하지 못하면, 미안하지만 우리도 고민을 좀 해야겠어요.”
곡 선생은 능연을 똑바로 바라보며 받아들이겠냐고 물었다. 그는 능연이 벌떡 일어나 횡포를 부릴까 봐 살짝 불안했다.
스포츠 스타의 수술은 성공하면 평생 허풍 떨 수 있는 스타성을 띤 작업이었다. 앞으로 끊이지 않고 환자가 몰려들 것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어느 도시 의사든 그런 수준에 이르면, 전문가 호칭, 주임 직책, 각종 위원회 의석이 그를 향해 손짓한다.
실패한다고 해도 걱정할 것이 없었다. 수술 실패는 흔한 일이라서 의료 사고만 아니면 의사에게 치명적인 타격은 없다. 기껏해야 명성을 조금 잃는 정도인데 능연은 애초에 잃을 명성이 없었다.
곡 선생은 자기가 능연의 길을 막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원래 유위신은 자기가 가야 하는 길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일방통행 길에서 선후는 중요했다.
“몇 건이면 됩니까?”
능연이 묻자 곡 선생이 미소 지었다. 예상한 반응이었다. 게다가 기대보다 훨씬 좋았다.
“흠흠.”
곡 선생은 짐짓 헛기침하면서 네가 말랑말랑하게 군 것이니 나중에 터트렸다고 원망하지 말라고 생각했다.
“흠, 봅시다. 적어도 5, 6건은 해야겠죠?”
능연의 얼굴에 표정 변화가 없자 곡 선생은 냉큼 말을 이었다.
“상황만 된다면야, 우리는 당연히 더 안정적인 결과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7······ 10건 정도가 제일 좋죠.”
“10건, 좋습니다. 환자는 언제 오나요?”
능연은 재빨리 최대치를 불렀다. 곡 선생은 그제야 상황이 미묘함을 깨닫고는 미심쩍은 듯 얼굴을 찌푸렸다.
“언제든 불러올 수 있······.”
“지금, 아 지금은 안 되겠구나. 밥 먹어야죠. 한 시간 반 뒤에 첫 번째 환자를 불러 주실 수 있나요? 다음 환자도 바로 다음에 불러 주실 수 있나요?”
능연이 진지하게 묻자 곡 선생은 조금 멍해졌다.
“그렇게 급할 것 없어요. 10건 하면 좋기야 좋지만, 우리도 합리적인 사람인데······.”
“10건 괜찮습니다. 문제없어요. 한 시간 뒤에 수술실에서 바로 환자 볼 수 있죠?”
능연이 강조하면서 다시 한번 묻자 곡 선생은 어쩐지 언짢아졌다.
“당신이 수술 10건을 끝내기만 하면 유위신 씨 수술을 할 수 있다는 게 아닙니다, 지금.”
“압니다. 지금 밥 먹으러 갈 생각인데, 바로 호텔로 갈까요? 아니면 돌아와서 수술할까요?”
능연은 곡 선생을 말을 끊고 다시 물었다.
“준비하지요.”
곡 선생은 언짢은 듯 툭 내뱉었다.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는 많은 병원과 협력하고 있어서 원하는 환자가 있다면 언제든 구할 수 있었다.
“그럼 먼저 밥 좀 먹고 오겠습니다.”
능연은 신이 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만요. 유위신 수술 허가가 떨어지는 기준은 안 궁금합니까?”
테이블 가까이 앉아 커다란 컵을 앞에 두고 앉은 남자가 능연을 부르더니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안 궁금한데요.”
잠시 머뭇거리던 능연은 있는 대로 대답했다.
“에? 왜요?”
질문한 남자는 재미있다는 듯 물었다.
“상관없으니까요. 저는 축 원사님이 부탁해서 온 거고, 환자가 수술받기 싫다면 강요할 생각 없습니다. 제가 담당의도 아니고요.”
능연은 유위신 한 번, 축동익 한 번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그 대답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다. 유위신은 더욱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그가 다리를 다쳤다는 걸 알고 수술하고 싶다고 나서는 의사는 많았어도,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의사는 또 처음이었다.
순간 유위신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자신의 수술에 생각이 가장 많은 건 누가 뭐래도 유위신 본인이었다.
능연의 행동을 전진을 위한 후퇴라고 생각한 곡 선생은 웃음을 터트렸다.
“농담도 참. 우리 센터에 고작 아킬레스건 수술 10건 하려고 왔단 말입니까?”
“더 많이 하면 좋고요.”
“그러니까, 당신 목적은 수술이라고?”
“그렇게 생각하셔도 되겠네요.”
곡 선생이 콧방귀를 뀌었다.
“유위신 수술을 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능 선생한테 수술받겠다는 사람으로 병원이 터질 거라는 걸 압니까, 모릅니까? 정말 수술을 하고 싶다면 어떻게든 유위신 씨 수술을 하려고 애를 써야 하는 거 아닙니까?”
“침대가 모자라서 안 돼요.”
능연은 고개를 저으면서 경험자의 말투로 대답했다. 곡 선생은 이해할 수 없어 미간을 좁혔다.
“침대가 모자란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운화 병원에서 하루에 3건에서 5건까지 단지 이식 수술을 했습니다. 그런데 초반을 제외하고는 5건까지 할 수가 없었어요. 한 번 입원하면 퇴원하기까지 40일은 걸리는데, 저희 진료과에 침대가 70개 정도밖에 없었거든요. 추가해도 100개 정도? 그러니까 침대가 모자라죠, 환자가 아니라.”
침대 문제를 뼈저리게 깨달았던 만큼, 능연은 아주 상세하게 설명했다.
“단지 이식 수술 5건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능연은 운화 병원에서 평균 하루에 손가락을 10개에서 12개 정도 수술했다네.”
곡 선생이 완전히 넋이 나가서 묻자 축동익은 낮은 목소리로 설명을 보탰다. 원사의 말은 당연히 근거가 있을 테니 곡 선생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도 현미경 수술을 하는 사람이라 하루에 손가락 10개를 수술한다는 게 어떤 건지 잘 알고 있었다. 정상적인 의사는 하루만 그 짓을 해도 쓰러질 테다. 심지어 쓰러져 죽기 전까지 해도 아마 못할 것이다.
평범한 외과 의사가 현미경 수술을 한다면, 에너지가 충만한 상태에서는 2시간에 손가락 하나가 표준이이었다. 조금 빨리 한다고 하면 1시간 반까지 줄일 수 있었다. 같은 의사가 수술을 많이 하면 할수록, 수술 시간이 길면 길수록 작업 효율은 떨어진다. 지속성을 따지면 손가락 7개 현미경 수술을 한다는 것도 지옥급 도전이었다.
손가락 10개는 뭐······.
“그렇다면, 대체 우리 센터에 온 목적이 뭡니까?”
곡 선생이 입술을 핥으며 물었다.
“단순히 침대 때문은 아니고요.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가 어떤 곳인지, 여러분은 어떻게 수술하는지 궁금해서요.”
능연으로선 보기 드문 겸손한 말이었다.
곡 선생의 머릿속엔 단 한마디가 떠올랐다. 다만 내뱉지 않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해야 했다.
‘우리는 정상 인간처럼 수술한다,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