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 선생은 유위신보다 더 잠을 못 잤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센터에 도착해도 기분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식당 밥도 새로울 것이 없어서 요구르트나 우유로 겨우 입맛을 살렸다. 그는 죽을 받아들고 쟁반에 담아 자리에 앉았다.
“들으셨어요?”
아직 한 입 뜨기도 전에 레지던트 하나가 그의 맞은편에 앉아 ‘정보 있음’이란 얼굴로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그는 느긋하게 요구르트 뚜껑을 뜯고 한 입 홀짝였다.
“뭘?”
“능연이 벌써 6건 했대요.”
“아킬레스건 보건술?”
곡 선생의 눈썹이 바늘로 꿰맨 것처럼 사정없이 꼬였다.
“네. 밤새 했대요. 쉬지도 않고.”
레지던트는 아직 할 말이 남은 얼굴이었는데 곡 선생은 벌써 쟁반을 밀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곡 선생은 수술실 앞까지 거의 다 오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 길로 참관실로 향했다. 역시나 몇 사람이 이미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엔 참관실과 연결된 수술실이 4개였다. 참관실은 의사들에겐 애증의 존재라고 할 수 있는데, 의사들의 애증도에서 그들의 수술 실력을 엿볼 수 있었다.
의사들은 보통 어느 수술실에서 수술을 하든 개의치 않았지만, 카메라가 있는지를 매우 신경 쓰는 의사도 있었다. 물론 연구 센터 의사들은 내심 참관실의 존재를 사랑했다.
수술실에서 실력을 뽐내는 걸 좋아하는 의사들, 초짜 간호사와 의사를 놀리는 재미를 즐기는 의사들은 수술마다 누가 봐주길 바라고 모든 수술이 녹화되길 바란다.
곡 선생은 레지던트들이 모두 능연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참관실이 열려 있으리라 추측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역시나 모니터가 모두 켜져 있었다.
전경을 찍는 카메라 앵글이 능연의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모니터에 송출했다. 오뚝한 콧날, 깊고 강인하게 빛나는 눈빛, 피부는 논문을 쓰고 싶을 정도로 반짝거렸다.
모자도 새로 바꿨다. 노란 토끼가 귀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는데, 능연이 움직일 때마다 흔들거렸다.
그 옆 모니터엔 수술 시야가 송출되었고, 능연은 이미 봉합을 진행 중이었다. 그는 말꼬리 상태인 아킬레스건을 정리하면서 가지런하고 균일하고 촘촘하게 바늘을 놀리고 있었다.
“어제부터 계속이야?”
“중간에 4시간 잤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다시 시작했대요.”
머리를 굴리며 묻는 곡 선생의 질문에 레지던트 하나가 힐끔 쳐다보고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제가 따로 알아봤는데, 운화 병원에서도 늘 저랬대요. 새벽 3, 4시에 수술하는 게 일반적이었답니다.”
“당직 간호사들이 짜증 나겠네.”
곡 선생은 말을 끝내자마자 헛소리였음을 깨달았다. 짜증 난 간호사가 토끼 모자를 사 왔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는 고개를 돌려서 101kg 레지던트를 찾았다. 그리고 바로 구석에서 생수병을 들고 있는 덩치를 발견했다.
“언제까지 할 거래? 아는 사람 있어?”
곡 선생이 주위를 둘러보며 묻자, 그 자리에 있던 레지던트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봤다.
“나머지 환자 모두 줄 세워뒀답니다. 줄 세워둔 환자는 다 하지 않을까요?”
“얼마나?”
“4명이요.”
“그럼 10명 채우는 거잖아?”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놀라서가 아니라, 걱정이 아니라, 오히려 통쾌해서. 전사가 격렬한 전투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운동선수가 속 시원한 경기를 본 것처럼.
레지던트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데리고 온 어시는 벌써 나가떨어졌고요.”
“어젯밤부터 건장한 놈들은 끌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임 선생도 가서 한 건 했습니다. 한 시간 반 정도? 그리고 바로 다음 수술실로 들어갔대요.”
곡 선생은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레지던트들이 투덜투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조소했다가, 궁금해했다가, 좋아했다가, 두렵기도 한 모습을 보이자 곡 선생의 내적갈등은 더욱 심해졌다.
레지던트들을 부추겨서 파업이라도 하고 싶었다. 파업할 명분도 다 생각해 놨다. 센터 사람도 아닌 능연이 센터 레지던트를 부린다니, 적어도 플로우는 따라야 할 것 아닌가.
하지만 그는 그런 말을 하면 환영받지 못하리라는 것도 잘 알았다. 레지던트들은 수술 얘기만 나오면 힘들다고 불평해도 막상 수술대 앞에서는 다들 달려들지 못해 안달이다. 병원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수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상급 의사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길 자처하는 레지던트들도 많았다. 원할 뿐 아니라 나서서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레지던트도 있다. 수술대에 더 많이 서기 위해서 말이다. 곡 선생도 젊은 시절이 있었으니 그런 고달픈 시절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능연은 꽤 괜찮은 상급 의사였다. 말수도 적고, 본인을 추켜세우지도 않는다. 화도 안 내고, 심지어 레지던트가 수술대에 설 기회도 준다.
말하자면, 능연의 수술에 서는 건 조금 힘든 것 말고 나쁜 점이 하나도 없었다. 더 중요한 건, 그의 기술에 모든 레지던트들이 끌린다는 점이다. 그의 얼굴에 모든 간호사들이 끌리는 것처럼.
“곡 선생님.”
레지던트 하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곡 선생이 짜증 내며 물었다.
“유위신 씨 오셨습니다.”
레지던트도 긴말하기 싫다는 듯 대답하고는 바로 돌아섰다.
“내 방에?”
“원사님 방이요.”
그 말에 곡 선생의 가슴이 철렁했다.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능연의 수술을 보고 있을 때가 아님을 깨닫고 다급하게 유위신을 찾으러 달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