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 참관실은 옴짝달싹하지 못할 만큼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센터 30여 명의 재직 의사, 10여 명 연수의에 10여 명 실습생 및 비슷한 인원의 간호사, 원무 인원까지 의자를 채웠을 뿐만 아니라 통로까지 가득 차 있었고, 마지막엔 테이블 위에 올라선 사람까지 있었다.
사람들은 호기심을 도무지 견딜 수 없었다. 수술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수술받는 환자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유위신은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 건립 이래 가장 거물급 스포츠 스타라고 할 수 있었다. 축동익 원사가 젊었을 때는 더 유명한 환자의 수술에도 참여했지만, 원사가 된 다음에는 오히려 그런 기회가 줄어들었다.
특히 국내 스포츠 스타는 점점 외국 의료 기관으로 나갔다. 한마디로 글로벌 바람이 전체적으로 몰아닥친 것이다.
돈벌이가 안 되는 기초 의학은 고작 수입 의약품의 영향을 받았을 뿐이지만, 고차원이고 돈벌이가 되는 의료 서비스업 쪽은 일본, 미국 심지어 한국, 홍콩 등 경쟁자가 아닌 곳이 없었다. 세계에서 유명한 전문의와 전국에서 유명한 전문의, <뉴 잉글랜드 의학 잡지>의 대장과 중화 브랜드 대장, 존 홉킨스 대학 교과에 있는 이름과 교육부 교재 편찬 위원, 수담 병원 꼬마 마왕을 내려다보는 메이요 의대 대마왕까지, 경쟁이 치열해졌다.
스포츠 의학과는 경쟁이 더욱 극심했다. 원래 몇 안 되는 정상급 운동선수의 선택권은 지극히 많았고, 그들이 부상 입었을 때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의료기관과 의사는 결국 탑 오브 탑 중 몇 명이었다.
유위신의 부상이 심각하고 바라는 게 많지 않았다면 수술이 지금까지 미뤄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킬레스건은 세계적으로 운동선수의 프로 생활 종결자로 여겨졌고, 이름 그대로 운동선수들에겐 ‘아킬레우스의 발꿈치’였다.
일반인은 아킬레스건이 파열되어도 두려울 것이 없다. 최소 절개술이든 개방식 수술법이든 모두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수술 후에 몇 달 동안 굽이 높은 신발을 피하고 동작을 주의하면 처음처럼 회복되며 기껏해야 앞으로 배드민턴, 농구 같은 도약이 많은 운동만 피하면 된다.
그러나 뛰고 달릴 수 없고 급정거를 할 수 없고 빨리 뛸 수 없는 운동선수라면 선수 생명이 끝났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상처 회복만 따진다면 현대 스포츠 의학의 발전으로 이미 아킬레스건 상해를 대응할 수 있다. 잘 알려진 아킬레스건 파열 환자인 코비 브라이언, 데이비드 베컴, 월리엄 주니어 같은 사람들도 수술 치료 후 뜀뛰기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아킬레스건 재파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운동선수 대부분은 아킬레스건 파열 이후 예전 경기 실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코비와 베컴, 천시 빌럽스도 아킬레스건 파열 이후 몇 년 뒤에 은퇴를 선언했으니까.
은퇴한 후에도 코비나 베컴 같은 사람들은 여전히 프로 선수 실력을 유지하고 전 세계 대부분 사람의 경기 실력을 뛰어넘었지만, 어찌 됐든 스포츠 선수의 기준은 높았고 정점에서 퇴보하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스포츠 의학에 대한 바람도 높아지는 것이다.
거의 기적과도 같은 바람 말이다.
그러나 정말로 기적처럼 회복한 선수도 있다. 월리엄 주니어는 2010년에 아킬레스건이 파열된 다음에도 계속해서 여자 테니스를 군림했다. NBA 스타 도미니크 윌킨스는 아킬레스건 수술 9개월 후에도 ‘인간 하이라이트 영화’라는 별명답게 실력을 과시했다.
기적은 희망을 만들어낸다.
유위신이 바라는 것도 바로 그런 희망이었다.
그는 국내에선 육상계 일인자였고, 더 노력하면 비록 올림픽 메달을 받지 못한다고 해도 아직 골든 리그에서 두각을 드러낼 가능성이 있었다. 그것은 그의 가장 낮은 바람이기도 했다. 그 정도도 이룰 수 없다면 아킬레스건 파열이라는 리스크를 안고 계속 뛰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광고주와 팬들도 어느 정도 성적이 있어야 그를 따른다. 유위신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을 해도 수술 후 최저치의 기대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인기는 바로 떨어질 것이고, 두어 번 반복되면 그대로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더 인기 많고 더 매력 있는 성적 좋은 스포츠 스타가 그를 대체하리라.
세계 3위 안에 들지는 못해도 적어도 중국 1위는 해야 한다. 중국 스포츠 스타의 등 뒤엔 모두 비슷한 논리와 바람이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