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140화 (121/877)

아침 9시, 연문빈은 지쳐서 후들거렸고 그런 그의 모습을 환자가 보면 걱정할 것을 염려한 능연은 그날 회진을 취소했다.

연문빈은 행복해하면서 다른 환자가 들이닥치기 전에 병원을 뛰쳐나갔다. 꼬박 밤새는 건 레지던트에게는 흔한 일이었다. 천조국 레지던트도 수면 부족으로 8년을 보낸 후에야 큰돈 버는 일을 할지 아니면 ‘정확한 일’을 할지 선택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의사의 추가 근무는 대개 하룻밤까지다. 물론 계속하려면, 되기는 된다. 대부분 레지던트는 이래저래 밀려 34시간까지 버틴다. 하룻밤 새고 거기에 몇 시간 더 하는 건 감당할 수 있는 추가 근무였고, 36시간 넘어야 SNS에 올려 자랑할 만하지, 그전에 올렸다가는 동료들에게 엄살이라고 욕을 먹는다.

능연은 전날 포션을 마시고 지금까지 17시간 정도 일해서 이미 극한 상태였다. 계속하려면 포션을 하나 더 마셔야 했다.

결국 능연은 역시 아끼는 게 아니, 쉬는 게 좋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스태미너 포션이 143병밖에 없는 건 둘째 치고 연문빈과 야간 당직 레지던트가 쓰러진 것 외에도 당직 간호사도 쉬어야 해서 계속 수술을 하려면 아침에 출근하는 수술실 간호사를 불러 다시 팀을 짜야 했다.

가장 중요한 건 환자도 없었다.

마흔 넘은 상해 유명 정형외과 전문의인 기천록이 전화를 십여 통 해도 겨우 9명 아킬레스건 파열 환자를 모았고, 나중에 손가락 단지 환자도 3명 와서 겨우 열 몇 시간 유지했다.

관련 논문을 수십 편 본 의사인 능연은 인구 3천만 명 이상인 상해 같은 도시에서 하루에 발생하는 두어 명 아킬레스건 파열 환자는 이미 주변 도시 기준을 넘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어제 진행한 수술만으로 새로 생긴 아킬레스건 환자 1/5에서 1/3은 처리했을 것이다.

삼갑 병원이 두 자릿수인 도시에서 그는 이미 인원 초과할 만큼 환자를 받았고 더 기다려도 새로운 환자가 없으리라 판단했다. 일반인 아킬레스건 파열은 아무래도 오후가 지나야 생긴다. 배드민턴이나 농구를 하는 아마추어 선수들은 점심 먹은 후에나 활동하고 일하는 날엔 저녁 시간이 지나야 활발해진다.

그래서 능연은 한 시간 더 머물면서 그동안 지난 환자 차트를 체크했다. 그는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마음을 푹 놓고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갔다. 어제 번 수술비도 다 못 쓸 거 같아서 비싼 택시를 부르려다가 요구르트를 더 사려고 일반 택시를 불렀다.

오후까지 푹 자고 일어난 능연은 지난 밤의 피로가 완전히 풀린 상태로 물건을 챙겨서 다시 택시를 불러 병원으로 가서 곧바로 기천록의 사무실로 달려갔다.

잘생긴 능연을 본 기천록은 저도 모르게 숨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사무실에서 숨어 봐야 어디로 숨는단 말인가.

“하하하, 능 선생, 왔나?”

“기 주임님.”

능연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걸고 꼿꼿한 자세로 의자에 앉았다. 표준적인 온순한 자세로 말이다.

“음, 능연아. 어제 밤새 수술했다며? 너무 힘들게 그러지 마.”

“힘들지 않습니다.”

“우리 재무팀에서 연락 안 갔니? 수술비는 우리 센터 규칙으로 줄 거야. 아킬레스건 수술은 대충 100위안 정도? 적다고 생각하지 말고. 우리는 운화 병원이랑 달라서 말이야. 운화 병원은 50%라지? 우리는 1/4이야, 그러니까 25%. 우리 의사들도 다 투덜대.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제도가 그런 걸 어떡해. 어제 9건 했으니까 1000위안 정도 되겠네. 적은 편도 아니지.”

막다른 골목에 포위된 것 같은 느낌에 기천록은 말이 많아졌다. 미소를 지으며 말이 끝나길 기다리던 능연이 고개를 들었다.

“아직 연락 못 받았습니다. 우선 인터뷰하려고요.”

“이, 인터뷰? 아, 능연. 그 일은 말이지, 우리 일단 얘기 좀······.”

“압니다. 어제 수술을 다 못했죠. 죄송합니다.”

능연은 기천록의 말을 끊고 매우 정중하게 말을 이었다.

“그땐 환자가 없어서요. 그리고 당직 의사랑 간호사도 다 퇴근해야 하고. 그래서 수술을 멈췄습니다. 다음에 바로 메꿀게요.”

“아니, 그게······.”

“2시간이면 됩니다. 어제 12건 했으니까 4건 남았거든요. 4건 다 일반적인 아킬레스건 수술이면 2시간, 길어봐야 2시간 반이면 충분합니다. 3시간은 안 넘습니다.”

기천록은 눈앞이 다 노래졌다.

“아냐, 안 메꿔도 돼. 여기까지만 하자. 수술 12개만 해도 힘들어, 암. 진짜야.”

“수술 환자가 없나요?”

능연의 정자세가 순간 흔들렸다. 도평 여사가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는 미소를 훈련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렸는데, 쉽게 낭비할 수는 없었다.

“음, 마침 나타나지 않으면······.”

“알겠습니다.”

일부러 엄숙한 표정을 짓는 기천록의 모습에 능연은 더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기천록이 진지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운화로 돌아가는 비행기 예약해서 밤에 바로 돌아가겠습니다. 아, 맞다. 저 회진 한 번 해도 되죠? 명분은 필요 없고요, 그냥 한 번 보고 싶어서요.”

“잠시만!”

능연의 표정을 본 기천록은 갑자기 당황하기 시작했다. 능연은 평온하게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지만 벌써 운화 병원 수술실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병상 수는 적지만 추가할 수 있었다. 게다가 단지 이식 수술은 오래 할 수 있었다. 3, 4 손가락 절단된 환자가 생기면 6시간도 문제없었다.

게다가 단지 이식은 신경 봉합이라 앞으로 신경 외막 문합술과 속막 문합술을 함께 사용할 수 있었다. 작은 신경엔 외막 문합술을 써서 수술 시간을 줄이고 상처 노출로 인한 감염률을 낮출 수 있다. 중요한 신경이나 시간이 여유로운 경우엔 속막 문합술을 써서 성공률을 높이고 수술 후 환자의 자유로운 일상생활을 좀 더 보장할 수 있다.

“능연아, 뭐 그렇게 급하게 돌아가려고 그래.”

“수술이 없잖습니까.”

기천록의 말투가 부드러워졌지만, 능연의 태도는 단호했다. 기천록은 이런 의사는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이러쿵저러쿵 요구가 많은 의사는 대부분 나이 많은 중늙은이였고, 요구도 대부분 합리적이었다. 예를 들면 돈을 달라, KTV 가자, 맛있는 거 먹자, 잘 모셔라, 논문 내달라 블라블라, 기천록 본인이 들어 줄 수 없다고 해도 사람 시켜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그런데 환자를 내놓으라는 이런 요구는······.

‘너 지금 협박하냐? 협박 맞지? 이렇게 협박해도 소용없어!’

기천록은 눈으로 능연을 노려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힘껏 헛기침하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능연, 오늘 아킬레스건 파열 환자 5명 구할 수 있어. 더는 안 돼.”

“네.”

능연이 냉큼 대답하는 모습에 기천록은 흠칫해서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젠장, 많이 부른 거야. 많이 불렀다고.’

“그럼 선생님, 인터뷰도 마련해 주세요. 어제 4개 해서 12건 수술 했는데 지금 5건 더 구해 오신다면 인터뷰 한 번 모자라잖아요. 밤에 환자 3명 더 찾으면 딱 맞겠네요.”

기천록은 한참 만에 능연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얼굴에 주름이 더 생겼다.

“아킬레스건 환자 아니면 단지 이식이나 굴건근 환자도 괜찮습니다. 융통성 있게요.”

능연은 너그럽게 기천록을 대하기 시작했다. 운화 병원에 있을 때 곽종군을 봐줬던 것처럼.

‘이게 무슨 태도야! 아무리 그래도 내가 주임인데, 우리가 널 불러서 원사님 방안 A를 시킨 건 맞지만, 이런 식으로 뜯어가는 건 아니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던 기천록은 묘책이 떠올랐다.

“능연, 밤새 힘들었지? 이래서 어떻게 수술을 해. 일단 가서 이틀 정도 쉬······.”

“안 힘듭니다.”

“그건 네 생각이고. 우리는 객관적으로 판단을 해야지. 우리도 제도라는 게 있다니까? 넌 충분한 휴식이 필요해.”

기천록은 되는 대로 지껄였다.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에 그런 제도 따위 있을 리가 없었다. 병원에서는 의사들이 매일, 온종일 병원에 있길 바란다. 그러니까 치프 레지던트라는 직위도 있는 것이고.

“증명할 수 있습니다.”

능연은 호텔에서 나올 때 준비한 것을 꺼내려고 가방을 뒤졌고 기천록이 다급하게 그를 말렸다.

“스도쿠는 됐어. 스도쿠 풀어봤자 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것밖에 더 돼? 네 손발이 잘 돌아간다는 보장은 어디 있는데?!”

“압니다. 전에는 준비할 수 있는 게 스도쿠밖에 없었고요.”

능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기천록의 팔을 밀어내고 가방에서 팔뚝만 한 단열팩을 꺼내 지퍼를 열었다. 그러자 김과 함께 냉기······가 느껴졌다.

“재탕 국물?”

기천록은 능연이 뇌물을 바치려고 한다고 추측하면서 묘하게 기뻐졌다. 물론 조금 이상하고 본인도 받을 리 없는 뇌물이지만, 어쨌든 마음이 생긴 거니까.

능연은 고개를 절레저레 흔들더니 우선 얼음 두 개를 꺼내고 수건을 꺼내더니 발굽 달린 허벅지와 수술 도구 한 세트를 꺼냈다.

기천록이 미처 뭐라고 하기도 전에 능연은 단열팩을 벗기고 메스를 꺼내 돼지 허벅지를 긋더니 포셉을 쥐고 슉슉 하더니 돼지 아킬레스건을 꺼냈다.

“어떻습니까?”

능연은 기천록 앞에 새하얀 아킬레스건을 내밀었다.

“그래, 알았다. 지금 전화할게.”

기천록은 비슷한 말을 언제 했던 것 같았는데 도무지 기억이 안 나자 제 머리를 툭툭 내려쳤다.

‘아, 기억력 안 좋아졌어.’

능연은 또 밤부터 아침까지 수술을 했다.

연문빈은 새벽 5시에 도착해서 당직 레지던트를 구원했다. 혹은 다른 레지던트들의 일을 빼앗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레지던트들은 참관실에서 능연의 솜씨를 모두 지켜봤던 터라, 말로는 안 해도 속으로는 능연을 따라 기술을 배우길 바라고 있었다. 특히 능연은 태도가 공손하고 화도 안 내고 심지어 말수도 적어서 레지던트들에게 호평이었다.

수술실 대화는 가끔 상사와 식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온갖 방법을 써서 상급 의사가 수다가 재밌다고 느끼도록 맞춰줘야 해서 시간도 들고 힘도 들어서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수다로 자신도 즐기면서 하급 의사도 재미있게 하는 의사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 하급 의사에게 ‘재미있지?’라고 묻는 의사뿐이었다.

한숨 푹 자고 족발도 두 냄비 조려낸 연문빈은 심신이 충만한 상태로 능연을 따라 아킬레스건 수술 1건, 단지 이식 1건을 하고 개운해했다. 그러다가 똑같이 기운 넘치는 능연을 바라보던 연문빈은 문득 자신이 미친 게 아닌가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회진이나 가죠. 환자 없대요.”

능연은 샤브샤브를 배불리 못 먹은 느낌으로 입을 삐죽였다. 연문빈은 그보다 더 부족함을 느끼며 얼굴을 찌푸렸다.

“이제 아침인데 왜 환자가 없어? 전문 병원이라도 너무 하네.”

종합 병원에 비해서 전문 병원의 환자 비율은 많이 떨어졌다.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 같은 곳도 환자를 구하는 능력은 운화 병원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

지칠 대로 지친 순회 간호사는 오로지 능연 때문에 버티고 있다가 연문빈이 자기 병원 이야기를 하자 불편한 듯 반박했다.

“환자가 무슨 아침 식사인가요? 아침마다 새로 올라오게?”

“하하하. 아침마다 새로 올라오는 아침 식사였으면 다 사들였겠죠.”

“돈은 있고요?”

껄껄 웃는 연문빈의 모습에 순회 간호사가 무시하듯 툭 내뱉었다.

“39.9위안짜리 족발을 몇 개나 판 줄 알아요?”

연문빈이 가슴을 펴며 말했다.

“족발로 얼마나 번다고.”

간호사가 조금 머뭇거렸다.

연문빈은 입을 벙긋거리다가 고개를 흔들고 말았다.

“허풍은. 족발 팔아서 의사보다 더 많이 벌면 뭐하러 의대 다녀요?”

간호사가 어느 쪽으로든 대답하기 힘든 질문을 던지고 상대가 어떻게 대답하나 지켜보자 연문빈은 조금 멍해졌다.

“회진 갑시다.”

능연은 장갑과 수술복을 벗어 던지며 한 손으로 자기 목을 만지면서 다른 손으로 연문빈의 목을 잡았다. 목덜미를 잡힌 연문빈은 머리에 충격이 온 것처럼 고함을 질렀다.

“능 선생, 너는 돈벌이랑 의사 일을 어떻게 균형 잡냐?”

“돈도 벌고 의사 일도 하면 되잖아요.”

능연이 멍청이 보듯 연문빈을 힐끔 봤다.

“의사 해서 돈을 얼마나 번다고. 국내 의사 월급 알잖아. 출장 수술을 해도······.”

연문빈은 오후에 판 족발값을 계산하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전 월급 다 쓰지도 못하는데요. 더 벌어도 소용없어요. 선생님은 벌어서 뭐 하게요?”

능연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연문빈을 바라봤다.

“야, 돈 쓸 데 없어서 걱정하는 사람 있겠냐? 다른 건 둘째 치고 집값만 해도 월급으로 살 수 있냐? 집 없으면 결혼도 못 하는데.”

한참 침 튀기며 이야기하던 연문빈은 갑자기 아무도 자기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다는 걸 발견했다. 능연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제 목을 문지르고 있었고 간호사 두 명은 모두 능연을 바라보고 마취의는 환자를 바라보고.

연문빈은 갑자기 서글퍼졌다.

‘이런 얘기 저 새끼한테 해서 뭐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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