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연은 수술실에서 나와 기천록 주임 의사에게 같이 회진하자고 요청했지만 실패했다.
기천록은 백 번 사양하면서 레지던트 한 명을 보내 그들이 길 잃지 않도록 두 사람에게 붙여 주었다.
102.5킬로 레지던트는 손에 노트를 들고 주머니에 볼펜 6개를 꽂은 채 능연과 연문빈하고 인사를 나누지 않고 앞장서서 걸었다. 그는 맨 처음 고른 병실에 있는 환자와 보호자가 성질이 더러워 보인다고 생각했다.
“한 번 볼게요.”
레지던트는 친절하게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인사했지만, 능연을 소개하지 않았다. 그는 정정당당하게 능연과 겨룰 생각이었다. 물론 그건 몇 년 뒤 이야기겠지만, 지금은 일생일대의 적 능연을 도울 생각이 없었고 일생일대의 적인 능연을 편하게 해줄 생각도 없었다.
레지던트는 병실 구석에 서서 생수를 꺼내 홀짝이면서 골탕먹어 보라는 듯 능연을 쳐다봤다.
‘재능 있다고 병원 생활 편하게 할 생각 마라. 병원은 네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곳이야. 수술실보다 훨씬! 알겠냐? 청년?’
“안녕하세요, 아픈가요?”
“아파요.”
능연은 레지던트 예상과는 달리 자신만만했다. 환자는 마취 효과가 풀린 수술 다음 날이 가장 괴로운 법이었고, 대소변도 침대에서 해결해야 해서 괴롭기만 했다.
“제가 한 번 볼게요. 어디 불편한 데 있나요?”
“아파요.”
능연은 휴대용 알콜겔을 꺼내 손에 바르고 손가락으로 환자의 족부를 살며시 당기며 상태를 관찰했다.
“아픈 거 말고는요?”
“부었어요.”
“부어서 아픈 거예요.”
환자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러고요?”
“없어요.”
환자는 툴툴거리며 대답했지만, 마음속 불안은 조금 줄었다. 능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기는 잘 가라앉고 있습니다. 발등 동맥도 괜찮고요. 색도 정상이고 피부에 괴사나 감염 흔적도 없습니다. 발목 관절은요? 뻑뻑한가요?”
“뻑뻑하진 않은데, 움직이기는 좀 힘드네요.”
줄줄 나오는 명사에 겁먹은 환자가 재빨리 대답했다.
“움직이면 안 돼요. 보호자는요?”
보호자가 앞으로 나서자 능연이 연문빈을 향해 고갯짓했고, 그런 과정에 익숙한 연문빈이 앞으로 나서서 명확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담백한 음식 드시고요, 고단백, 비타민, 섬유질 높은 음식으로요. 아시겠어요?”
“알겠습니다.”
보호자도 당연히 환자가 빨리 회복되길 바란다. 능연도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한 거 있으신가요?”
“저기, 제 남편, 언제 좋아지나요?”
가족 중에 중년 부인이 간절하게 묻는 말에 능연은 미간을 좁혔다.
“좋아진 거 아닌가요?”
“아직 걷지도 못하는데요.”
“조금만 지나면 걸을 수 있어요.”
능연은 이런 질문을 못 견뎌 하는 편이었다. 가족들은 조금만 지나면 걸을 수 있다는 말에 놀랐다.
동시에 ‘진심 어린 감사’ 보물 상자가 능연 앞에 떨어졌다. 첫 번째 환자들이 문제없음을 확인한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실에서 나갔다.
1레지던트는 엄격하고 신속한 회진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능연은 걸으면서 보물 상자를 회수했다.
연문빈이 점점 아킬레스건 수술에 익숙해짐에 따라 능연은 체격 검사만 맡아서 하고 커뮤니케이션은 모두 그에게 맡겼다. 아킬레스건 수술 환자는 합병증이 가장 큰 문제였다. 아킬레스건 파열, 상처 부위 감염 혹은 피부 괴사 같은 건 심각한 합병증이고, 부종, 혈액 순환, 체온 같은 건 수술 자체가 잘됐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능연이 그랜드마스터급 아킬레스건 보건술로 진행한 수술에서 일반 환자 상대로 잘못될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 줄지어 회진 도는 동안 ‘진심 어린 감사’ 보물 상자가 연달아 8개 나왔다. 운화 병원에서 받는 것보다 훨씬 많은 숫자였다.
“상해 사람들은 수준이 높군.”
능연은 상자를 열고 싶은 마음을 견디면서 은혜를 아는 환자들을 흡족하게 생각했다. 연문빈은 갑자기 능연이 왜 그런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관심도 없었다. 그는 손을 쉴 새 없이 비비면서 유위신 회진 가야 하지 않냐고 물었다.
“가아죠. 힘들면 가서 쉬세요. 기 주임님이 벌써 확인했다고 하더라고요.”
“안 힘들어! 나도 세컨드 어시인데 방안 A로 한 수술이 어떤지 궁금하다고.”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던 연문빈이 목소리를 낮추고 뒷말을 덧붙였다. 합당한 이유에 능연도 고개를 끄덕이고 별말 없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맨 꼭대기 층을 눌렀다.
유위신은 아직 그의 호화 병실에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응접실에 맥주병과 각종 주류가 늘어져 있었고 소파, 바닥, 창틀까지 사람이 가득했다. TV 쪽에도 맥주를 마시는 사람이 있었고 다들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유위신은 제일 큰 병실에서 다리를 높이 치켜들고 있었는데 근처에 술은 없지만 가득한 과일, 음료, 정크푸드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 방에도 운동선수로 보이는 남녀들이 웃고 떠들고 있었다.
그곳에서 능연과 연문빈의 하얀 가운은 정말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었다. 연문빈은 당황해서 문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졸업하자마자 운화 병원에 들어간 연문빈은 특별 환자를 접할 기회가 없었던 터라 눈앞에 펼쳐진 흥청망청한 파티 장면에 침묵에 빠졌다.
“회진합니다.”
능연은 눈도 깜빡하지 않고 응접실을 가로질러 유위신 앞에 섰다. 집도의를 본 유위신은 머쓱한 듯 웃었다.
“친구들이 병문안을 와줘서요. 좀 길어졌네요. 다들 한참 못 만났거든요.”
“예.”
능연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하던 대로 알콜겔을 꺼내 그의 발을 살폈다. 다른 사람보다 유위신의 회진은 수월했다. 퀘스트란에 유위신의 회복 지수 92%가 명확히 나타났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회복도가 1%밖에 오르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수술과 케어 문제만은 아닌 것 같았다. 능연은 차트에 묵묵히 한 줄 써넣고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MRI 한 번 다시 찍어 보죠.”
“기 주임님이 아주 잘 회복되고 있다던데요?”
유위신이 바짝 긴장해서 그를 바라밨다. 주임 의사 기천록보다 능연이 더 대하기 어려웠다. 능연은 그다지 크게 변화 없는 표정으로 유위신을 향해 사교성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일반 아킬레스건 수술법으로 수술한 환자보다 훨씬 잘 회복되고 있습니다. 의외만 없으면 고강도 훈련을 할 수 있겠죠. 시합에도 나가고요.”
아킬레스건이 85%까지 회복되면 고강도 훈련하는 모험을 해볼 수 있는데 유위신은 이미 92%까지 회복됐으니 여기서 후퇴해도 많이 후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기대대로 고강도 훈련을 진행할 수 있다는 건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유위신은 바로 기쁜 얼굴로 미소 지었다.
“능 선생님, 감사합니다. 매니저!”
뜻을 알아차린 매니저가 달려가 능연의 팔짱을 끼려고 하자 능연이 자연스럽게 피했다.
“하하하, 능 선생님. 우리 나가서 이야기하죠. 아, 맞다. MRI 찍자고 하셨죠. 왜 그러시는 건가요?”
“저는 이거보다 더 잘 회복되길 기대했거든요. 그래서 MRI 한 번 찍어 보려고요. 결과가 나오······.”
“잠시만요!”
유위신이 꽥 고함쳤다.
“능 선생님, 아까 잘 회복되고 있다고 하셨잖아요.”
“잘 회복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상보다는 아니라서요. MRI 결과가 나오면······.”
“제가 휴식을 제대로 안 해서 그런 거죠?”
유위신이 다시 능연의 말을 잘랐다.
“그럴 가능성도 있죠.”
“능 선생님, 할 말 있으면 하시죠. 우리가 파티하는 게 싫으면 그냥 말씀하시지, 뭘 이렇게 빙빙 돌려 말씀하십니까?”
잠시 고민하다 대답하는 능연의 말에 매니저가 언짢은 듯 말했다. 능연은 의아한 듯 그를 바라봤다.
“전 환자 사생활에 관심 없는데요.”
“빙빙 돌려서 간섭하고 있잖아요.”
“아닌데요. 전 그냥 회복에 도움되길 바라는 겁니다. 수술 가이드도 다 드렸잖습니까. 최상의 케어 방법을 환자와 보호자가 알아야 하니까요. 담백한 음식에, 고단백, 고섬유, 고비타민. 하지만 당신들이 어떤 이유에서 거부한다면, 그러니까 종교적 요인이든 뭐든요. 아무튼, 우리 의사들은 최대한 맞춰서 도움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MRI부터 찍어 보자고요.”
말을 마친 능연은 다시 한번 사교성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병실에서 나갔다.
운동선수보다 더 멋진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유위신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음악 꺼.”
띵.
닫히려던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렸다.
“잠시만요.”
다리가 길쭉하고 들어갈 데 들어가고 나올 데 나온 여자 두 명이 안으로 들어가며 능연을 향해 미소 지었다.
“선수시죠?”
주머니가 두둑해졌다는 생각에 연문빈이 용기를 내서 그들을 향해 물었다.
“배드민턴팀이에요.”
“테니스팀이에요.”
여자들이 가슴을 활짝 펴자 노란 티셔츠를 입은 여자는 다리가 더욱 길쭉해졌고, 빨간 티셔츠를 입은 여자 가슴에 있던 가필드 얼굴이 더욱 커졌다. 두 사람은 능연을 바라보면서 연문빈의 말에 대답했다.
연문빈은 조금 더 애써보자는 생각으로 미소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유위신 선수 친구인가요? 아까 병실에서 본 거 같은데.”
“위신이 의사죠?”
“맞습니다.”
여자가 묻자 연문빈이 긴장해서 대답했다.
“전에 뉴스 봤는데, 유위신 의사가 아주 잘생겼다고 하더라고요. 선생님 맞죠?”
빨간 티셔츠 입은 여자가 순조롭게 화제를 능연 쪽으로 돌렸다. 연문빈은 멍해졌다가 할 수 없다는 듯 엘리베이터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능연이랑 같이 있으면서 여자 꼬실 생각을 다시 하면 내가 족발이다.’
“우리가 유위신 치료에 참여하긴 했죠.”
자주 여자들이 집적대고, ‘아주 잘생겼다’는 말도 자주 듣는 능연은 그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죠? 그렇다니까요. 마스크 쓴 것도 잘생겼더라고요. 그지?”
빨간 티셔츠 여자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약간 긴장한 듯 곁에 있는 여자를 쿡 찌르자 노란 티셔츠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능 선생님 헬스 하세요? 몸매가 좋네요. 운동 좋아해요?”
빨간 티셔츠가 용기를 내서 고개를 들고 능연을 바라보다가 그의 눈빛에 정신이 다 몽롱해졌다.
“가끔이요.”
능연은 엘리베이터의 숫자를 바라보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부원 체육관 헬스장에서 연습하세요. 다른 운동도 할 수 있어요. 우리 배드민턴장이나 테니스장도 좋아요. 그지?”
“어. 우리, 우리가 연습 상대해드릴 수 있어요.”
빨간 티셔츠가 노란 티셔츠 팔짱을 끼면서 하는 말에 노란 티셔츠도 용기를 냈다. 연문빈은 <포섬(For some)>이라는 영화를 떠올리며 침을 꿀꺽 삼키면서 팔뚝을 들어 올려 이두박근을 내보였다.
“저는 자주 헬스하러 갑니다. 벤치프레스 80kg 들어요.”
빨간 티셔츠가 헬스남 같은 연문빈을 힐끔 보고는 저도 모르게 ‘징그럽다’는 눈빛을 했지만, 예의상 말을 삼켰다. 연문빈은 눈을 끔뻑거리며 다시 엘리베이터 문에 반사된 실루엣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나는 족발이다’ 하고 중얼거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능연이 예의 바르게 레이디 퍼스트를 시전했다. 두 여자는 입을 가리고 웃으면서 먼저 내려서 능연이 나오길 기다렸다.
“능 선생님, 젠틀하시네요. 인터뷰에서 본 것보다 훨씬 멋진데요?”
빨간 티셔츠가 핸드폰을 꺼내 SNS를 열어 막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능연 앞에 내밀었다.
“능 선생님, 이거 능 선생님 맞죠?”
능연이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려 보니 하얀 가운을 입은 본인이 맞았다.
“인터뷰 사진인가요?”
“맞아요. 여러 개 있더라고요. 특히 이 인터뷰는 SNS에서 많이 돌았어요.”
빨간 티셔츠가 <잘생긴 백의 천사 강림, 스포츠 스타 수술 맡은 스타 의사>라는 인터뷰 제목을 보여주었다.
“보내드릴게요. QR 코드 주세요.”
능연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자 여자가 이때다 싶어 스캐너를 켰고 능연은 핸드폰을 꺼내 그와 노란 티셔츠 위챗을 추가하자 가필드 얼굴이 더욱 커졌다.
능연이 기 주임 사무실로 간 다음 연문빈은 어깨가 축 처져서 수술 구역으로 돌아갔다. 그는 졸임 국물과 안에 든 음식을 체크하면서 아까 열심히 외워뒀던 <잘생긴 백의 천사 강림, 스포츠 스타 수술 맡은 스타 의사>라는 제목을 검색해서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
유위신이 인터뷰 주인공이었지만, 기자의 눈은 능연에게 향해 있었다. 사진도 앞부분은 유위신이고 뒤로 갈수록 능연의 사진이 많아졌다.
풀샷, 클로즈업, 스냅샷 등 없는 각도가 없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다가 어느새 끝까지 내렸다. 문장 내용은 읽을 만했다. 젊고 잘생긴 것도 그랬고 축동익 원사에게 인정받아 유위신의 수술을 집도한 것이 능연을 더욱 멋지게 보이는 배경이 되었다.
“어머, 선생님도 능 선생님 인터뷰 보시는 거예요?”
여자 의사 하나가 고개를 내밀고 아무렇지 않은 듯 연문빈의 핸드폰을 쳐다봤다. 정형외과 여의사란 공대 여학생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어떤 여자가 알려 주더라고요.”
“여자요? 누가요? 예뻐요?”
여자 의사는 가십에 목마른 눈빛으로 눈을 반짝였다.
“아까 능 선생이랑 같이 있을 때 여자들이······.”
“아, 알겠네. 더 안 들어도 돼요.”
여자 의사가 맥 빠진 듯 손을 흔들자 연문빈은 불쾌해져서 눈을 부릅떴다.
“뭘 알겠다는 겁니까.”
“여자들은 능 선생만 아는 척하고 선생님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거 아니에요. 쓸데없이 친절하게 굴었겠죠. 아니에요?”
“마, 맞아요.”
의사가 흘겨보고 하는 말에 연문빈은 따질 말이 없었다.
“거봐요. 나라도 그랬겠네.”
의사는 이게 뭐냐는 듯 연문빈의 타이트한 스포츠 셔츠와 근육을 흘겨보다가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말투까지 부드러워져서 ‘능 선생니이임’하고 콧소리를 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호호호. 능 선생님, 수술하러 오신 거예요? 잠시 쉬셔야죠? 제, 아니, 당직 의사 휴게실 지금 비었을 텐데.”
인생을 의심할 정도로 잘생긴 능연의 목소리에 여자 의사가 몸을 베베 꼬았다.
“괜찮습니다. 지금 바로 수술하러 가야 해서요.”
말을 마친 능연은 바로 연문빈에게 인사하고 혼자 수술실로 향했다.
“이따 교대할 때 먼저 나한테 물어봐요. 내가 능 선생 어시하게.”
의사는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면서 연문빈을 보고는 딱딱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시던가요.”
연문빈은 냄비 안 족발을 저었다. 물렁물렁해진 돼지 껍질에서 자신의 물러터졌으면서도 강인한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을 보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