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으리, 일어나세요. 약 드실 시간입니다.”
“나으리, 약 드세요.”
“나으리, 약 좀 드세요.”
“나으리, 약.”
밤의 장막이 내려오면 올수록 마취의의 말은 점점 짧아지면서 환자와 간호사를 놀릴 기운도 없어졌다.
“여기 센터에 마취의가 몇 명입니까?”
다른 환자 한 명이 들어오자 마취의는 이름과 성별만 대조하고 바로 약을 먹였고 연문빈이 더는 참지 못하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은 둘밖에 안 남았어. 왜? 마음에 안 들어?”
마취의가 갑자기 정신 차린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연문빈을 바라봤다.
“아닙니다. 감히 그럴 리가요. 너무 힘드실까 봐 그렇죠.”
“우리 센터에 마취의는 모두 5명이고 여자가 둘인데 다 임신했고 남자 하나는 연수 가서 이제 둘 남았지. 오늘은 나 혼자 당직인데, 누구로 바꿀까? 마취의가 너희 서전처럼 발로 차이게 많은 줄 알아? 능력 있으면 마취의 좀 구해 와봐. 내가 술 한 잔, 아니, 석 잔이라도 산다.”
고개를 들어 씨익 웃는 마취의의 말에 풍기는 강렬한 원망은 수술대 건너 연문빈에게도 느껴졌다. 그는 겁을 먹고 도와 달라는 듯 양쪽의 간호사를 쳐다봤다. 그러나 간호사들도 30시간 이상 잠을 못 잔 마취의를 건들 엄두를 못 내서 고개를 숙인 채 못 본 척했다.
시간을 계산해 보니 오후에 포션을 마신 지 10시간 가까이 되어간다는 것을 깨달은 능연은 수술을 멈춰야겠다고 생각했다. 포션이 아깝긴 해도 마취의가 버티지 못하면 계속할 수도 없었다.
“그럼 이번 수술 끝내고 좀 쉴까요?”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의 침대와 재활실이 차기도 전에 마취의가 포화 상태가 될 줄 몰랐던 능연은 혀를 끌끌 찼다. 마취의는 억지로 눈을 뜨고 모니터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잠깐 눈 붙이면 돼. 모니터나 대신 봐줘. 전자동이니까 알람 울리면 깨우고.”
마취의는 줄곧 모니터를 지켜볼 필요 없이 보통 각 수술실에서 어슬렁거린다. 엄격한 수술 규정을 따르려면 지켜보는 게 당연하지만, 슬렁슬렁할 수 있는데 굳이 자기 자신을 힘들게 하지는 않는다.
“일단 20분만 주세요, 그쯤이면 수술 끝날 겁니다.”
“네가 수술 안 해도 당직은 서야 하니까.”
“그래도 잠시 주무실 수 있잖아요.”
수술이 없으면 마취의도 수술실에서 환자를 지키며 약을 놓지 않아도 되니 쉬러 갈 수 있다.
“일단 세수 좀 하고 올게.”
마취의는 생각이 멈춘 듯이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취의가 나무늘보처럼 느릿느릿 수술실 문을 밟고 나가는 걸 지켜봤다.
수술실 문이 뀌다 만 방구 소리처럼 ‘치익’ 하고 열렸다가 ‘치익’ 하고 닫혔다.
“저렇게 일하다가 과로사하겠네.”
“마취의가 과로사하는 건 당연하잖아요.”
연문빈이 걱정스러운 듯 말하자 카메라 앵글을 피해 구석에 앉아 있던 비교적 한가한 간호사가 양심도 없는 소리를 했다.
젊은 연문빈이 한숨을 내쉬었다.
“마취약만 놓으면 되니까 편한 줄 알았더니.”
“마취의 인생이 이런 건지 모르셨어요? 마취의는 둘째 치고 선생님하고 능 선생님도 좀 봐요. 두 분도 걱정스럽거든요? 과로사 안 무서워요?”
“나야 평균 7시간은 자니까요.”
간호사가 풉 하고 웃다가 묻는 말에 연문빈이 능연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음, 센터에 다른 마취의가 없다고요?”
“5명도 많은걸요. 그것도 축 원사님이 고관절 치환 수술하느라 추가된 거예요. 누가 자녀 정책이 두 자녀(이전에는 한 가정 한 아이 정책이었음)로 바뀔 줄 알았나요.”
“운화도 이제 두 자녀예요.”
연문빈이 대답했다. 작은 규모로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단과 병원은 이런 문제가 있다. 운화 병원 같이 침대가 3000개가 되는 성급 대형 종합 병원엔 마취의도 80여명 있어서, 휴가를 내든 연수를 내든 출산 휴가를 쓰든 그것 때문에 사람이 모자라지는 않는다.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는 그게 안 된다. 총인원이 40여 명이라 연수의와 실습생만 채워도 한계가 된다. 사실상, 실습생 모집 능력도 종합 병원에 비할 바가 아니다.
종합 병원에 능연 같은 수술광이 있다면 병원 윗선에서 어떻게든 잡으려고 쩔쩔맨다. 운화 병원이 그러는 것처럼 전원 월급이 오르는 반면,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는 붕괴 직전이 된다.
“핀셋, 더 당겨요. 음, 지혈 좀.”
능연은 환자 아킬레스건을 끌어내 봉합해서 가장 중요한 스텝을 완성했다.
“몇 시간 쉬다가 내일 다시 합시다.”
“몇 시간?”
“4시간이요. 음, 5시간. 내일 9시까지 쉬어요. 마취의 교대할 때까지요.”
능연은 이미 생각을 끝냈다. 야간 당직 마취의가 거의 기절 직전인데 계속하는 건 아무래도 비인간적이었다. 낮에는 센터도 계속 수술실이 돌아가니까 마취의 한 사람을 돌려쓰면 된다.
“내일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합시다. 밤에 9시간 쉬면 충분하겠죠.”
그렇다고 밤 시간을 허비할 수 없으니, 능연은 시간을 계산하고는 다시 덧붙였다.
“충분해, 충분해.”
연문빈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운화 병원에 비해서 가뿐했다. 게다가 아킬레스건 수술에서 퍼스트 어시의 부담은 단지 이식보다 훨씬 덜했다. 교대할 레지던트도 있고, 의국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선임 레지던트보다 그렇게 많이 일하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재수없는 레지던트보다 훨씬 수월할지도 모른다.
능연도 하루에 9시간 쉬면 스태미너 포션을 마실 필요도 없다. 꽉 찬 작업량은 아니지만, 병상이 없어서 노는 운화 병원에서보다 기분은 좋았다.
“잘도 주무시네.”
세수하고 돌아온 마취의가 정신이 조금 든 듯 모니터 수치를 확인했다.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까 내린 결정을 알려주라고 연문빈에게 지시했다.
마취의는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능연이 있든 없든 어차피 밤을 새워야 했다. 공립 병원은 사람 구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동료가 연수나 출산 휴가를 가도 정원은 변함없어서 다른 사람을 채용하는 건 더 불가능했다. 누가 더 편하고 더 힘들 것도 없이 마취의 둘이서 로테이션을 돌았다.
능연은 20분 만에 끝내주는 성과를 내며 아킬레스건 수술을 끝냈다. 사람들은 다 같이 마무리하고 퇴근했다.
능연과 연문빈은 다음 날 8시에 출근해서 9시에 정시 수술을 시작했다. 그리고 밤 12시까지. 그렇게 매일 불규칙적으로 수술을 열 몇 건씩 했다.
기천록도 점점 요령이 생겨 점점 더 많은 환자를 모집했고 교환 방식까지 터득해서 수시로 굴근건 환자, 단지 이식 환자, 아킬레스건 환자를 불러와 능연을 기쁘게 했다.
운화 병원은 현지에서 가장 유명한 수부외과였고 운화 현지 수백만 산업 인원이 이용했을 뿐만 아니라 외지 환자들도 운화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래서 능연이 단지 수술을 잘만 하면 손가락 잘린 환자를 끊임없이 받을 수 있었다.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는 그런 상황이 안 됐다. 주변 시와 현의 환자는 둘째 치고 상해 현지 환자조차 모두 그들의 손에 떨어지지는 않았다. 손가락 절단 환자가 없으면 발가락 절단 환자를 받았다. 봉합이 더 간단하긴 했지만, 드문 경험은 된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고 기천록이 더는 못 버틸 때쯤, 축동익이 북경에서 돌아왔다.
“조금만 더 늦게 오셨으면 센터가 끝장났을 겁니다.”
전화를 하도 많이 돌려서, 얼굴에 주름이 다 생긴 기천록이 축동익을 맞았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잖나.”
“침대 40개 추가했습니다. 믿어지십니까?”
축동익이 웃으면서 하는 말에 기천록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 말을 들은 축동익도 눈썹을 치켜떴다.
“다른 의사······.”
“다른 의사는 다 정상이잖습니까. 수술 환자가 없으면 간다고 난리죠, 환자를 줘도 뚝딱 해치우죠.”
기천록이 쓴웃음을 지었다. 하고 싶은 말이 가득했지만, 그렇다고 다 불평은 아니었다. 어쨌든 능연은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 명의로 일을 진행했고, 의료비, 명성은 모두 센터의 것이었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기천록은 골치 아파하면서도 능연에게 충분한 케이스를 모아주었다.
게다가 능연의 속도가 너무 빨랐다. 수술 백몇 건을 하는 동안 유위신도 퇴원을 안 했는데 그다음 환자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번에 선수 4명을 구해왔네. 능연더러 준비 좀 하라고 하면 다른 일할 시간도 없을 걸세. 그럼 되겠지?”
축동익도 만능은 아니라서 능연을 설득하는 데 자신은 없었다.
“수술하라고 하면야 당연히 좋다고 하겠죠. 방안 A 아킬레스건 수술인가요?”
“물론이지. 지금 전화해서 준비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 물어보게. 최대한 빨리 환자 데리고 온다고 말이야.”
“예, 저도 환자 오는 시간 다시 조절하겠습니다.”
축동익이 눈빛을 빛내며 재촉하자 기천록은 바로 핸드폰을 꺼냈다. 잠시 후, 그가 얼굴을 찌푸리면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뭐라고 하나?”
축동익은 기천록의 표정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밤이랍니다.”
기천록은 그렇게 대답하고 ‘오늘 밤이요.’ 하고 덧붙였다.
“그럼 밤에 하세나. 식당하면서 손님 많다고 두려워하면 쓰나.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