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143화 (124/877)

그날 밤, 하수방은 코치와 함께 제일 먼저 의학 센터에 도착했다. 하수방은 북경 원반던지기 대표 선수였고 키 175cm, 몸무게 80kg에 양 팔뚝이 튼실하고 힘찼다. 처음으로 휠체어에 타는 그녀는 손으로 짚어서 휠체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능연은 모든 검사를 마치고 눈앞에 음식을 잔뜩 쌓아놓고 있는 하수방을 만났다.

“아이고, 이제 수술해야 하는데, 뭐 드시면 안 됩니다.”

“전 안 먹었어요. 코치님이 드셨어요. 전 냄새만 맡았어요.”

능연을 따라 병실에 들어온 연문빈이 다급하게 하는 말에 하수방은 억울하다는 듯 코치를 봤다. 40대로 보이는 코치가 겸연쩍은 듯 헛기침했다.

“밖에서 먹으려고 했는데, 우리 수방이가 먹는 거라도 보겠다고 해서요.”

“어릴 때부터 배고픈 날이 많아서, 배고픈 게 제일 싫어요.”

하수방이 닭 다리를 능연보다 더 오래 쳐다보는 걸 보고 연문빈은 그의 말을 믿었다.

“알았어요. 안 먹었으면 됐어. 오늘 하 선수 수술할 팀을 소개할게요. 축동익 원사님은 만났죠? 지금 준비하고 있답니다. 집도는 여기 능연 선생. 그리고 기천록 주임 의사, 서드 어시는 접니다. 저는 연문빈이라고 해요.”

한 사람씩 훑어보던 하수방은 나이가 제일 많고 제일 집도의 같아 보이는 기천록에게 시선을 멈췄다.

“저기 선생님, 북경에서 축 원사님이 우리 수술비는 제가 안 내도 된다고 하던데, 맞죠?”

“어? 그게······ 흠. 축 원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면 그런 거죠.”

잠시 멈칫하던 기천록이 대답하자 하수방은 바로 마음을 놓았다.

“그럼 다행이네요. 선생님, 그럼 다른 데도 좀 봐주시겠어요?”

“또 어디 다쳤어요?”

“목이 계속 불편해요. 의사 선생님이 경추 디스크라고······.”

“그럼 내가 추나 좀 해줄게요.”

능연이 휴대용 알콜겔을 꺼내 문지르고는 병실에 있던 깨끗한 수건을 꺼내 하수방 어깨에 걸쳤다. 추나 요법 1000번 이상의 경험이 있는 선수인 능연은 경기장에 오르자마자 하수방의 비범한 냄새를 맡았다.

일단 목이 굵고 근육이 탄탄했다. 능연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원반 던지는 데 목도 쓰나요?”

“연습도 하고 놀기도 하고. 아, 네, 거기······.”

3분 후, 하수방은 이제 능연을 신을 보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간절하게 말했다.

“능 선생님, 발 낫게 해주셔야 해요.”

“물론이죠.”

“내년 전국 대회 준비해야 해요.”

“네.”

“이번에 메달 못 타면 은퇴해야 해요. 13살에 시작했는데 아직 전국 대회에서 메달을 못 받았어요. 은퇴하기 싫어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도요. 노처녀라 시집도 못 가고. 먹는 것도 많이 먹고, 고기도 좋아한단 말이에요.”

하수방이 휙 몸을 돌려 거친 눈빛으로 능연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80kg 선수가 갑자기 멘탈이 무너진 모습에 방 안에 있던 남자들은 어쩔 줄 몰랐다. 코치가 천천히 닭 다리를 치우면서 고개를 숙였다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수방이가 이제 나이가 되어서 전국 대회에서 메달을 못 받으면 팀을 떠나야 하거든요. 그, 너무 부담가지지 마시고요, 수술만 잘 해주세요. 우린 돌아가서 훈련을 잘하고······.”

마지막 말은 하수방을 향한 말이었다. 그런데 하수방은 자포자기한 듯 펑펑 울기 시작했고 손으로 문질러서 얼굴이 엉망이 되었다.

“8개월이나 요양해야 하는데, 낫는다고 해도 고강도 훈련은 못 할 거고, 1년은 걸릴 거 아니에요. 훈련은 무슨 훈련이에요. 차라리 팀을 떠나는 게 나을 거 같아요. 팀에서 돈도 아끼고······.”

“무슨 헛소리야! 팀 떠나서 고향 가면? 땅 파면서 요양할래? 평생 다리 절면서 살 거냐고.”

“다리 절면 다행이게요. 다리 잘라야 하면, 장애인 대회 나갈게요.”

“자꾸 헛소리하면 아버지한테 전화한다!”

“그러지 마세요.”

하수방이 순간 울음을 그쳤다.

“우리 방안으로 수술하면 4개월만 요양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기회가 있을 거예요.”

능연이 턱을 치켜들며 말을 이었다.

“아킬레스건이 완전히 파열된 것도 아니라서 그렇게 심각하진 않아요. 푹 쉬어요. 문제없으면 내일 아침에 수술할 거니까.”

“능 선생님, 선생님이 제 수술 맡아 주시는 건가요?”

수술 베드에 엎드린 하수방이 고개를 들고 능연에게 물었다.

“제가 집도합니다. 축동익 원사님이 수술 지도하시고요.”

팔짱을 끼고 n번째 MRI 필름을 보던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하수방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대답했다.

“그럼 이따 수술할 때 상처 작게 해주실 수 있나요? 은퇴하고 나면 살도 빼고 지금보다 예뻐질 거예요. 그때 종아리에 상처가 보이면 안 되잖아요.”

“상처는 클 수밖에 없어요. 나중에 문신하면 되죠.”

능연은 딱딱하게 대답하다가 한마디 덧붙였다.

“문신 싫어요. 우리 고향에서는 문신하면 재혼보다 결혼하기 어려워요.”

하수방은 목소리까지 높였다. 준비하고 있던 간호사가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문신이 왜요. 그런 남자는 이쪽에서 버려요.”

“난 문신 싫어요!”

“수술 끝나고 봉합 잘하면 돼요. 예후가 좋으면 티 많이 안 날 거예요. 자, 다른 질문 있나요?”

단호한 하수방의 태도에 사진 판독을 마친 능연이 눈을 감고 잠시 집중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수술대가 참 작네요. 큰 수술대 없어요? 잠들었다가 떨어질까 봐 걱정이네요. 잠버릇이 안 좋거든요. 코도 골아요.”

“마취하세요.”

준비를 마친 능연이 하는 말에 지난 밤 충분히 휴식한 마취의가 실실 웃으며 다가가서 마취 마스크를 들었다.

“자, 이름 한 번만 말해봐요.”

“하수방이요.”

“원반던지기 선수?”

“네.”

“자, 약 던집니다!”

“예? 하.”

수술실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참관실에 있는 사람 모두 묵묵히 마취의의 원반던지기 흉내를 구경했다.

“어제 밤새 고민한 거야.”

마취의가 뿌듯한 듯 큰 소리를 냈다. 기천록과 축동익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는 듯 서로를 마주 봤다.

능연은 잠시 기다렸다가 펜을 받아서 하수방의 발목부터 종아리까지 16mm도 넘는 긴 선을 그렸다. 간호사가 저도 모르게 ‘아’ 소리를 내고는 긴장해서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길게 할 필요 있어?”

“아킬레스건 근처에 털이 났더라고요. 길게 자르는 게 안전합니다.”

미간을 좁히며 묻는 기천록의 말에 능연은 MRI를 통해 얻은 정보를 근거로 대답했다.

“음, 그래. 네가 결정해야지. 흉터가 좀 길어도 어쩔 수 없지. 치료가 우선이니까.”

잠시 멈칫하던 기천록이 이미 마취되어 잠든 하수방을 향해 중얼거렸다. 능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원래 작은 절개구를 선호하지 않았다. 의대 다닐 때도 절개구를 너무 작게 내서 사고 난 사례를 매우 많이 들어왔고 지금은 축적된 지식이 더 많아져서 수술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사고가 더욱 두려워졌다.

MRI에서 아킬레스건 주변이 잘 안 보이는 건 많은 가능성이 있다. 심각한 경우 악성 종양일 수도 있고 가벼워도 손상이 있을 수 있으니 집도의로서 이왕 절개했으니 더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하는 것도 당연했다.

“아킬레스건이 완전히 끊어지진 않았네요.”

S형 절개구가 열리고 수술실에 있던 의사들과 참관실 의사들 모두 일제히 한숨을 돌렸다. 완전 파열과 불완전 파열의 차이는 아킬레스건의 상처 정도에 있는 게 아니라, 불완전 파열된 아킬레스건은 심하게 수축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아킬레스건 수축 문제는 아킬레스건 파열에서 골치 아픈 문제다. 잘린 아킬레스건은 안으로 줄어들기 마련이고 심하면 7mm 이상 수축되는 경우가 있다.

근건의 일종인 아킬레스건이 그 정도까지 수축되면 봉합하기도 힘들다. 심지어 견인도 쉽지 않아서 근건 이식 방식을 선택해서 신체 다른 위치에서 근건을 잘라내 이어야 할 가능성도 있다.

MRI에서는 아킬레스건 불완전 파열을 알아볼 수 없으니 열어 봐야 파열된 구체적인 상황을 알 수 있다.

열어보니 심각한 부분은 없고 들쑥날쑥한 모양도 아니라서 상태가 괜찮은 아킬레스건을 만난 셈이었다. 일반인에게 일반 방안으로 봉합하는 것이었다면, 이런 상태의 아킬레스건은 80% 수준까지 꿰맬 수 있다. 즉, 30분을 넘기지 않는 고강도 훈련을 받아도 되는 수준이다.

선수들이 받는 수술도 대부분 이런 유사한 수술이며, 수술 후엔 각자 재활 능력에 따라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생긴다.

축동익이 설계한 방안 A를 선택했기에 능연은 조금 더 자신이 있었다. 유위신만큼 회복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어도 불완전 아킬레스건 파열은 성공률이 당연히 더 올라간다.

“아킬레스건 박리부터 합니다. 음, 직접 할게요.”

“능연, 왜 직접 하겠다는 건가?”

기천록에게 넘기지 않는 능연의 모습에 축동익이 미간을 찌푸렸다.

“최대한 혈관을 피해서 아킬레스건을 꺼내려고 아까 혈관 위치를 기억해 뒀습니다. 꺼내고 나면 저번에 했던 플로우대로 가겠습니다.”

능연이 고개를 옆으로 까딱하며 대답했다. 유위신 수술을 마친 후 되짚어 볼 때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그는 지난번에도 사실 혈관 파열을 피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면 미세 혈관을 피하는 방식으로 혈관망 재건 난도를 줄이는 것이다. 혹은 혈관망 재건은 똑같이 어려워도 혈액을 운송할 혈관이 더 많이 남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난도가 더 높아진다. 특히 MRI 사진을 잘 이해해야 하고 실행해야 한다.

잠시 고민하던 기천록은 그제야 능연의 말을 이해하고 가슴이 철렁했다.

“모든 혈관 위치를 기억한 건 아니겠지?”

“말도 안 돼죠.”

“내 말이.”

“아킬레스건 주변만 외웠죠.”

능연이 미소 지으며 하는 말에 기천록은 긴말하기 싫다는 듯 껄껄 웃었다. 축동익도 헛기침하면서 주변 분위기를 조절했다.

“기 주임, 능연이 젊긴 해도 의대 성적도 3등이었다고. 기억력이 안 좋으면 불가능하지 않겠나. 그렇지?”

의사는 다른 직업과 달리 졸업 후에도 한참 동안 학력이 영향을 준다. 특히 유명한 의대는 구직할 때 쉬울 뿐 아니라 승진도 순조롭고 시간이 흘러도 어디 어디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그때가 되면 단순한 학력이 아니라 파벌이 된다.

축동익은 얼마 전 능연의 파일을 봤기 때문에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서 이때다 싶어 끌고 와 대화를 이어갔다.

능연은 천천히 메스를 움직였다. 동작은 느렸지만 매우 정확하게 끝을 따라 서서히 근건이 파열된 부분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거기까지 하는 데만 30분이나 걸렸다. 그 부분이 끝나자 사람들은 모두 한숨 돌렸다.

이어지는 스텝은 모두 한 번 해봤던 방안 A이고 더 간단해서 조금 전 능연이 한 것보다 훨씬 수월하게 느껴졌다.

능연은 어깨를 휘두르며 빠른 속도로 봉합하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봉합한 아킬레스건만 해도 80여 개였고 그랜드마스터급 아킬레스건 수술 기술의 힘으로 그가 누적한 케이스에서 상당한 정보를 얻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인체 아킬레스건 주변 조직 기관의 탄성과 경도 등엔 더 많은 경험이 쌓였다. 똑같은 바느질이라도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의 처리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다른 화선지에서 다른 느낌의 작품이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수술 부위 조직 상황에 대해 숙지한 능연의 나머지 수술 작업은 탄탄해졌다. 언제나 하던 혈관 문합술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뛰어난 문합술 말이다.

그러나 능연은 그 뒤로 무슨 특별한 것을 선보이지 않았다. 그저 착실하게 모든 순서를 착착 한 발짝씩 끝냈다.

참관실에 있던 초짜 의사들은 그가 조직 봉합할 때까지 수술이 이미 끝났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끝입니다.”

능연은 기구를 내려놓고 자리를 내주었다.

“느낌이 어떤가?”

“유위신 선수보다 더 잘 회복할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수술까지 성공적으로 끝내 방안 A의 가치가 높아지자 축동익은 기뻐서 미칠 것 같았다. 능연은 그가 수술 내용에 대해 묻는 줄 알고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고, 연문빈과 간호사는 주먹을 불끈 쥐며 ‘잘됐다’ 하고 소리쳤다.

“능 선생님.”

“능 선생님!”

“능 선생님~.”

병실을 오가는 의사 중에 능연은 환자들이 가장 잘 기억하는 의사였다.

연문빈은 어깨를 치켜들고 능연을 따라 회진을 돌면서 환자와 보호자가 능연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부러움에 근섬유가 끊어지고 근육이 생겨 팔뚝이 굵어질 정도였다. 그의 팔뚝은 요즘 조금씩 늘어나 39인치라는 장벽을 넘었다. 그건 연문빈의 프라이드였으며 상해에 온 이래 가장 큰 수확이기도 했다.

체육관 옆에 살면 아무리 일이 힘들어도, 시간이 없어도 의지만 있으면 몇 분이라도 시간 내서 갈 수 있다. 아무도 없는 복도를 지날 때 볼펜을 잘 챙겨 넣고 물구나무 한 세트 하거나, 차트를 쓰던 방에서 아령을 들고 숄더 프레스를 몇 세트 하거나, 점심 쉬는 시간에 미친 듯이 체육관으로 달려가 몸을 풀고 시간 아껴 잠시 바벨을 들거나.

“연 선생님.”

환자가 몇 번이나 그를 부른 후에야 연문빈은 정신을 차렸다.

‘나?’

연문빈이 묘하게 기뻐하며 고개를 돌렸더니 어제 막 수술받은 원반던지기 선수 하수방이었다.

“잘 쉬었어요?”

연문빈이 다정하게 물었다.

“잘 자고, 잘 먹고, 편안하게요. 조림 달걀 좀 드실래요?”

하수방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에 든 도시락을 내밀었다. 도시락 안에 조림 달걀이 가득했다.

“달걀을 이렇게 많이 먹어요?”

연문빈이 질린 듯 물었다.

“조림 달걀이잖아요. 평소에 훈련할 땐 삶은 달걀밖에 못 먹어요. 닭 다리하고 새우도 있는데 달걀이 더 맛있어요.”

수방이 테이블 쪽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새우도 졸이게요?”

“코치님이 우리 시장에서 산 것보다 신선하다고 졸이면 맛없대요.”

연문빈은 살짝 호기심이 생겨 조림 달걀 하나를 꺼내 입에 넣고 살짝 깨물다가 바로 쓴웃음을 지었다.

“이게 무슨 조림 달걀이에요!”

맛이 배지 않은 조림 달걀은 앙꼬 없는 찐빵이며 고무줄 없는 빤스였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맛이 나냐는 말이다.

“우리 코치님 수준이 이래요.”

“밖에서 사 온 거보다 형편없네요. 길거리에서 파는 게 이것보다 맛있겠어요.”

하수방은 억울한 듯 돌아서 도시락을 내려놓고 거대한 허리를 비틀었다. 침대에서 껄껄 웃는 소리가 났다. 코치가 만들었다는 소리에 연문빈은 더욱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선수들은 밖에서 파는 거 아무거나 못 먹어요. 게다가 상해 음식은 비싸잖아요. 아낄 수 있는 건 아껴야죠. 능 선생님도 하나 드실래요?”

하수방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고는 도시락을 능연에게 내밀었다.

“전 됐습니다.”

가지고 다니던 요구르트가 떨어진 능연은 살며시 고개를 흔들었다.

“나중에 내가 달걀 졸여 줄게요, 먹어 봐요. 그리고 코치님은 좀 와서 배우라고 하세요. 이런 조림 달걀이라니, 암탉의 수고가 다 아깝네요.”

수술을 끝내고 기분이 좋아진 하수방은 별것 아닌 말에도 꺄르륵 웃음을 터트렸다.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의 병상 수는 얼마 없어도 면적은 넓은 편이라 하수방에게 1인실을 배정했고, 햇살이 비치는 방 안은 깨끗하고 특히 통풍도 잘됐다.

축동익은 외국처럼 보호자가 필요 없는 병실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 했으나 국내 상황으로는 어려웠다. 대신 하드웨어는 좋아서 환자들이 지내기엔 지금도 편안했다.

하수방도 팀 기숙사에 있을 때보다 훨씬 편안하게 지냈고 수술 후 힘든 기간이 지나자 기분도 좋아졌다. 게다가 아직은 일찍 일어나 훈련할 필요도 없었고 수술 후 오더 받은 고단백 음식은 그녀를 더욱 기쁘게 했다.

“필름 봤는데, 회복이 아주 좋아요. 재활 기준을 엄격하게 따르면 4개월 후면 훈련을 재개할 수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능연은 유위신의 회복 상태를 참고했다. 같은 상황에서 유위신이 92%였으니 하수방도 크게 차이 나지 않으리라 여겼다. 게다가 수술한 지 이제 사흘째라 앞으로 3, 4개월 요양하면 완전무결한 상태로 돌아가진 못해도 고강도 훈련을 진행하는 건 크게 위험하지 않을 것이다.

운동선수는 대부분 아킬레스건이 파열되기 전엔 보통 아킬레스건을 풀어주지 않는다. 특히 젊은 선수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충분히 몸풀기도 전에 시합에 나선다. 젊을 때는 그래도 강도 높은 부담을 잘 견디지만, 나이가 늘고 근육이 처지기 시작하는 날엔······.

아킬레스건이 파열됐던 선수가 다시 아킬레스건을 사용할 때는 일반적으로 매우 열심히 사전 운동을 해준다. 그러니 아킬레스건이 100% 회복되진 않아도 초과 부하를 주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90%까지 회복된 아킬레스건은 충분히 쓸 만하다. 특히 원반던지기, 단거리 달리기 같은 경기는 상대방이 갑자기 달려들거나 할 일이 없어서 비교적 안전했다.

의사인 능연이 그렇게 말하자 하수방은 당연히 기뻐했고 그릇을 씻고 돌아온 코치도 몇 번이고 감사를 전했다.

“회복이 잘됐다고 이야기했다가 나중에 무슨 일 생기는 거 아니겠지?”

“재활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문제없어요.”

병실에서 나온 연문빈이 묻는 말에 능연은 확실하게 대답했다. 전체 수술을 그가 했으니 그 정도 자신은 있었다.

“이제 다들 몸 사리겠지.”

“네. 수술에 문제없고, 예후도 문제없고, 재활에 문제없으면 문제없는 겁니다.”

능연의 단호한 태도에 연문빈은 잠시 멍해졌다. 그도 의대에서 막 졸업했을 땐 그랬던 것 같았다. 그러다 나중에, 나중에 점점 세속화되었다.

“9번 10번 병실도 어제 수술한 선수들 방이야. 높이 뛰기, 농구. 13번은 키 작은 농구 선수 병실이고.”

연문빈은 손에 든 차트를 보면서 능연에게 설명했다. 능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전에 얻은 ‘진심 어린 감사’ 보물 상자를 챙겨 넣고 의사의 미소를 지으며 병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떠세요?”

능연의 웃는 모습이 봄바람처럼 살랑대자 고급 보물 상자가 나타날 확률까지 높아졌다. 높이 뛰기 선수는 순순히 보물 상자를 내놓았고, 키 큰 농구 선수는 문제가 많아서 여전히 안심하지 않은 상태였다. 키 작은 농구 선수는 능연이 병실을 나간 후에야 보물 상자를 바쳤다.

회진을 마치고 보물 상자 11개를 거둔 능연은 흡족해하며 나중에 한꺼번에 열려고 챙겨 두었다.

“별문제 없는 거 같으니 슬슬 돌아가죠.”

환자가 가득한 병실 통로를 둘러보며 능연이 말했다.

“아, 그래.”

예상했던 말이라 연문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축동익 원사가 어렵게 모아온 선수 4명 수술을 모두 마쳤고, 성과도 좋았다. 다음에 올 선수들을 기다리자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차라리 운화로 돌아갔다가 수술할 기회가 생기면 다시 오는 게 나았다.

능연이 지금 확보한 기술은 아직은 전략적 기술이다. 이런 수준을 가진 의사는 국내든 외국이든 앞으로도 당분간은 어려울 것이다. 방안 A가 어느 정도 인정받으면 그 수술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생길 테고 그때나 되어서야 능연보다 부리기 쉽고 기술은 조금 떨어지는 의사를 만날 수 있으리라.

현재로서는 능연이 유일하게 방안 A를 해본 의사고, 그가 거절하거나 굉장히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내걸지 않는 이상, 축동익은 언제나 그를 가장 먼저 선택할 것이다. 그러니 능연은 자신의 자리를 대신에 할 누군가를 걱정할 필요 없이 안심하고 센터를 떠날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병상이 180개밖에 없는 센터에 지금까지 55개를 더해 놓아서 그가 더 있고 싶어도 있을 수가 없었다. 추가된 병상이 모두 능연이 한 수술은 아니었지만, 지금 상태로는 센터의 병상은 포화 상태였다.

“저녁 비행기로 하고 오늘 오는 환자 있으면 끝내고 가죠. 유종의 미.”

능연은 책임감 있게 한마디 보탰다.

“9시 비행기로 돌아가면 집에 도착하면 12시, 한숨 자고 일어나서 내일 아침엔 수술할 수 있겠네?”

능연의 뜻을 알아차린 연문빈이 물었다.

능연은 뭔가 이야기하려고 입을 뻐끔대다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하루 쉽시다.”

그제야 연문빈은 한숨 돌렸다. 능연이 밤새 수술을 할까 봐 무서운 게 아니라, 능연이 밤새 수술하면서 그는 쉬라고 할까 봐 무서웠다. 운화 병원엔 마연린과 여원이 있지 않은가. 어렵사리 거리를 벌려놨는데, 쉽게 따라 잡힐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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