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 누님, 바빠 보이네.”
수술복을 입고 수술 구역에서 셀카를 찍던 왕장용은 왕가와 다른 간호사들이 무균 기계실에서 수술 기구를 체크하는 걸 보고 빵긋 웃으며 인사했다.
“누가 누님이야?”
진한 녹색 수술복을 입은 왕가가 순간 폭발하자 실습생 왕장용은 흠칫했다.
“지난번에 누님이라고 부르라며.”
“내가?”
“지난번에 누나라고 부르라고 했다고.”
“누나랑 누님이랑 같냐? 차라리 누나라고 불러! 아, 짜증 나, 다시 세야 하잖아. 둘, 넷, 여섯······.”
“그럼, 일 봐. 먼저 갑니다. 왕가 누······.”
왕가가 고개를 180도 돌려 사람 잡아먹을 것 같은 눈빛으로 왕장용을 노려봤다.
“왕가 누······나······. 안녕.”
“어.”
왕장용이 힘겹게 손을 흔들고 돌아서자 왕가는 손에 들고 있던 대장내시경용 파이프를 내려놓고 다시 숫자를 셌다.
“저기, 근데 왜 다들 대청소하고 그래요? 재활실도 수술실도 다 난리던데.”
“16, 18, 20. 능 선생님 돌아오시니까.”
왕장용이 문 앞에서 다시 물어도 왕가는 완고하게 숫자를 센 다음에야 대답했다. 왕장용은 왕가의 목소리까지 부드러워졌음을 확실히 느꼈다. 능연의 룸메이트인 왕장용은 그런 현상에 매우 익숙했다.
왕장용 위챗 친구 리스트에 각 학년 각 반 여학생들이 가득했었다. 그 이유는 능연에 대해 캐고 싶은데 능연의 룸메이트 중 진만호는 집에 돈도 많고 생긴 것도 괜찮은 편이라 오해가 생길까 봐 다들 만만한 왕장용을 이용하기 때문이었다. 생긴 것도 안전했다.
하지만 왕장용은 이런 병원 분위기를 아직은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다.
“능연이 돌아오는데 대청소는 왜요? 이래도 돼? 수간호사님은 아무 말 안 한다고 해도 주임님들은 뭐라고 하지 않아요?”
“곽 주임님이 지시하신 건데?”
“왜요?”
왕가가 턱을 치켜들자 왕장용은 정말로 놀랐다.
‘역시 사회는 학교보다 복잡한 것인가? 곽 주임님까지?’
“능연이 돌아오면 수술을 해야 하잖아. 게다가 한 번 했다 하면 수술실 2, 3개는 열어야 하는데, 그때 가서 대청소하면 늦지. 재활실도 마찬가지고. 재활실에 사람 많이 줄어들지 않았어? 퇴원 환자들, 다 능 선생님 환자였으니까 선생님 돌아오면 금방 다시 차겠지. 쉴 수 있을 때 많이 쉬어 두시라고요. 바쁠 때는 5시부터 재활한다던데?”
왕가가 경험자의 포스를 풍기며 말했다.
“새벽, 5시?”
왕장용은 능연이 학교에 있을 당시 새벽 4시면 해부실에 가서 시체와 놀던 일을 떠올리고 가능성 있다고 믿었지만 바로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술실은 우리 응급 의학과 거라지만 재활실은 수부외과 건데, 새벽 5시에 열어 줘요?”
“능 선생님만 그때 재활실 쓰는 것도 아닌데 뭐. 수부외과 큰 주임 금서 주임님도 5시에 재활실에 오셔. 전엔 새벽 5시에 시작해서 6시 반에 닫는 재활팀도 특별히 만들었어. 수부외과는 회의하기 전에 수술한 환자 재활 상태를 보고 가야 하는데, 9시에 회의하는 사람이 5시가 아니면 언제 재활실에 가냐?”
수량 체크하던 간호사 중 가장 나이 많은 우 간호사가 손뼉 치며 웃기 시작했다.
“재활에 그 포 주임, 대머리 주임 말이야. 전엔 5시에 회진하는 거 좋아했는데 한 번은 우연히 부부가 침대에서 흠흠, 암튼 그래서 문 앞에서 10분을 기다렸잖아.”
“맞아, 맞아. 저도 기억나요. 그때 포 선생님 조용하고 좋다고 밤새 수술하고 바로 회진하고 했는데 그런 일 있은 다음부터 새벽 회진 그만두셨죠.”
“부부가 고소라도 했어요?”
“그건 아니고요. 그때부터 머리가 심하게 빠졌다는 말도 있고. 게다가 밤새우면 머리 빨리 빠진다잖아요. 어쨌든 못생긴 주임이라 선생님도 딱 보면 알 거예요.”
왕장용이 묻는 말에 우 간호사는 손을 휘휘 휘두르며 대답했다. 그는 등에 한기를 느끼며 머리를 만졌다.
비행기에서 내린 능연은 택시를 잡아 연문빈도 태웠다.
“돈이 좋긴 좋네요. 시간도 아끼고.”
능연이 가방을 툭툭 치며 버스 탈 준비하는 연문빈을 잡자, 연문빈은 입을 뻐끔거리다가 그를 따라 택시에 올라탔다.
축동익 원사는 통 크게 능연의 수술비를 통째로 현금으로 지급했다. 두꺼운 현금다발은 폼이 났다. 연문빈은 기준대로 5,000위안을 받았다. 능연은 배분율을 수정할 생각은 없는지 차에서 내리는 연문빈에게 시간 나는 대로 수술해서 수술 수량을 늘리자고 했다.
다른 상급 의사와 달리 능연은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잘 하지 않는 편인데, 그런 말을 한 것도 요즘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상해에서 진행한 축동익의 방안 A는 매우 어려운 수술이었다. 유위신 수술을 할 때만 해도 이미 최고 기술이라 생각했는데 하수방 수술할 때 능연의 기술은 눈에 띄게 더 좋아졌다. 유위신 수술을 하면서 경험이 누적되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수술량은 경험치가 되고, 실력이 높을수록 수량만큼 질량이 높아지는 것이다. 연문빈 같은 레지던트가 백, 이백 번 어시를 하다 보면 수준이 높아질지도 모른다.
능연을 따라 수많은 수술을 해오면서 실력을 높인 연문빈은 앞으로도 수술을 많이 하자는 그의 말에 마음이 따듯해졌다.
“앞으로 나도 택시 타고 출근해야겠다. 시간 아껴야 너한테 더 많이 배우지.”
“그것도 괜찮겠네요. 돈은 수술해서 벌면 되니까.”
능연은 활기가 가득한 하구 골목 앞에서 내리면서 연문빈의 몫까지 택시비를 계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