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151화 (132/877)

동한생은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하구 진료소 앞에 서서 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동한생, 왜 안 들어가고?”

승복을 보고 동한생을 알아본 골목 사람이 나와 물었다. 12천사는 작긴 해도 조금이나마 이름난 편이고, 전에 노스님이 산에서 내려오던 시절엔 하구 골목 사람들은 거의 그와 알고 지냈다.

“명절 때나 날 법한 냄새가 나길래 혹시 제가 방해라도 될까 봐요.”

예를 갖춘 동한생이 눈썹을 찌푸리고 하는 말에 골목 사람은 멈칫하다가 코를 킁킁거렸고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이게 무슨 명절 냄새야. 그냥 짜오로우 냄새란다.”

“아, 제가 속세 냄새를 잘 몰라서요. 시주님,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린 나이에 제법 설교하는 스님 분위기를 풍기는구나.”

“설법입니다, 시주님.”

“동한생,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고지식해지고, 아이는 크면 클수록 귀엽지 않구나.”

골목 사람은 손을 뻗어 동자승의 매끄러운 머리통을 쓰다듬고는 온 길로 되돌아갔다. 동자승은 하구 진료소의 문패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가가 문을 똑똑 두드리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하구 진료소는 항상 문을 반쯤 열어 놓았고, 동한생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정원 가득 모여 앉은 사람들이 평소와 다름없이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았다.

정원 중간에 기름에 튀긴 감자가 담긴 커다란 솥과 소스가 담긴 커다란 그릇, 작은 그릇과 이쑤시개도 있었다.

사람들에게 대접하는 음식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가끔 그런 식으로 보시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오는 사람보다 훨씬 많이 준비하기도 했다.

“동한생, 올 때가 됐다 했다.”

“능 시주님, 오늘 무슨 날입니까?”

능결죽은 튀긴 감자 한 솥을 얹은 카트를 밀면서 다가가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어 동한생의 머리를 문질렀다.

“넌 왜 키가 안 크니.”

“시주님, 며칠 전에 쟀을 때 0.8cm 컸습니다.”

동한생은 악마의 손아귀에라도 있는 것 같은 고분고분한 표정을 지었다.

“하하하, 신발 신고 쟀을 때랑 아닐 때 차이 아니냐? 우리 능연이는 네 나이에 쑥쑥 컸단다.”

동자승은 미묘해진 표정으로 지난 번에 키를 쟀을 때 신발을 신었었는지 열심히 떠올렸다.

“감자 좀 먹으렴. 옆에 소스 보기엔 매워 보여도 하나도 안 맵단다. 열 몇 가지 조미료로 배합한 우리 집 특제 소스란다. 뜨거운 감자에 차가운 소스 뿌려 먹으면 정말 맛있단다. 후후 불어 가면서 먹어라, 데지 말고.”

“감사합니다.”

능결죽은 다정하게 감자 한 그릇 가득 담고 소스를 뿌려 동한생에게 건넸다.

“착하지. 이따 마사지할래? 네가 해주는 걸 골목 사람들이 참 좋아한단다.”

“정말입니까?”

동자승은 매우 놀라면서 기뻐했다. 절에 가끔 오는 사람들은 매번 사부를 찾지, 한 번도 그를 찾은 적이 없었다.

“정말이지 그럼. 다들 고질병인데 네가 오래 주무르면서 비용도 합리적으로 받아서 다들 좋아한단다. 이따 표지판 걸까?”

“감사합니다, 시주님.”

감자 솥을 내려놓은 능결죽은 바로 창고로 가서 ‘추나 5분 10위안, 순서대로 진행함.’이라고 적힌 팻말을 복도에 걸고 ‘추나 2분 25위안, 사전 등록.’ 팻말을 내렸다.

감자를 먹은 동한생은 입을 닦고 일을 도우러 갔다.

진료소의 일상 작업은 매우 번잡해서 수액만 걸어도 연자는 허둥지둥 대며 바빴다. 동한생은 시트 갈고 나서 청소하고 테이블 닦고 비품 창고에서 베개도 꺼내 갈았다.

기본적인 일을 끝내고 마사지 받으러 온 골목 사람들 옆에서 오후까지 바빴던 동한생은 쉴 틈이 생기자 편안한 듯 복도에 있는 긴 의자에 드러누웠다. 곁에 있던 능연이 마침 새 게임을 시작했고, ‘적군이 5초 뒤에 전장이 도착합니다’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능 선생님, 제가 마사지해서 선생님 일이 없어진 것 아닙니까?”

“아니야. 어차피 마시지 받는 사람이 많지도 않아서 재미도 없어.”

동한생이 당황해서 쳐다보며 하는 말에 능연은 솔직히 대답했다. 동한생은 그제야 안심한 듯 계속 의자에 기대서 능연이 게임하는 걸 바라봤다. 그렇게 한 10분쯤 보다가 능연이 손을 떼자 그제야 말을 꺼냈다.

“능 선생님. 아까 마사지할 때 잘 안 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돌려서 하는데 아무래도 제 위치가 아닌 느낌이 들었습니다.”

“돌리는 게 잘 안 되면 누르면서 미는 방식으로 해 봐.”

동한생이 곧바로 일어나서 능연의 목을 문질렀다. 능연은 마사지를 즐기면서 설명해줬다.

“맞아, 이렇게 하는 거야. 힘을 좀 더 주고 정확한 위치를 찾아서 엄지를 따라 위로, 음, 잠시만.”

게임 속 인물이 부활하자 능연은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집중하며 양손으로 핸드폰을 잡았다. 동한생도 잠시 쉬면서 능연이 게임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능연은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던졌다. 동한생은 벌떡 일어나 능연의 목에 손을 걸쳤다.

“능 선생님, 이렇게 하는 거 맞나요.”

“응. 괜찮네. 응. 계속해.”

한참 동한생을 훈련시킨 능연은 오후에 병원으로 가서 막 도착한 세 손가락 절단 환자를 수술하고 수부외과로 가서 왕해양의 아킬레스건 수술 어시를 했다. 왕해양은 축동익 밑에서 그가 세운 전적을 듣고 생각한 바가 있어 한 번 테스트해 보고 싶었다. 능연은 뭐가 어쨌든 수술만 할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응급 의학과 병상은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 병상보다 부족했다. 추가 병상을 따지면 응급 의학과는 최대 200개까지 동원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옆으로 걸어야 할 정도가 된다.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는 달랐다. 의사가 30명 정도 되는 진료과인데 커다란 건물 한 채를 다 쓰고 있으니 필요한 경우 아무렇지 않게 200개, 혹은 300개까지도 병상을 추가할 수 있다. 의료진이 부족해지면, 축동익의 이름값으로 전화 몇 통이면 도와줄 의사를 100명은 부를 수 있다.

응급 의학과의 유일한 장점은 의사들이 병상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문 진료과에서는 일단 주치의급이 되면 수술을 해야 하는 진료과 의사는 병상을 목숨처럼 여긴다. 의사의 균형을 잡기 위해 아예 처음부터 의사마다 병상을 명확하게 분배해놓는 병원도 있다.

하지만 응급 의학과 의사는 병상에 목숨 걸지 않을뿐더러 심각한 환자일수록 구급 처치를 마친 후 다른 진료과로 보내곤 했다. 1급 위험 환자는 뇌경색이든 심근 경색이든 출혈 과다 쇼크든 응급처치 후 신경과나 심장외과 쪽으로 보낸다.

곽종군처럼 화상 외과를 함께 맡은 의사나 되어야 병상에 심하게 연연한다.

능연은 병상을 아끼기 위해 심지어 새벽에 수술하는 좋은 습관까지 버리고 세 손가락 잘린 환자가 오면 바로 했다. 그래서 환자는 기다릴 필요 없이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두 손가락 환자도 수부외과에서 오래 기다리진 않았다. 운화 병원 수부외과는 규모가 큰 만큼 경쟁도 치열해서, 능연이 매일 신나게 단지 이식을 해대는 모습에 다들 영향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후 6시, 전자 차트를 전부 체크하고 최근 며칠 차트와 약처방 상태를 확인한 능연은 중점적으로 여원을 칭찬했다.

“여 선생님이 확실히 제일 디테일하네요.”

“쟤들은 시간 나면 먹기만 하거든.”

여원이 거만하게 고개를 들고 미소 지으며 연문빈과 마연린을 힐끔 보자, 두 사람이 펄쩍 뛰었다.

“억울해!”

이구동성으로 그 말을 내뱉은 두 사람은 다시 동시에 입을 열었다.

“나는 족발 졸이면서도 논문 본다고.”

“봉지에 담긴 말린 생선은 사람들이 잘 안 먹어.”

두 사람은 서로의 생각이 충돌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서로를 마주 봤다.

“여 선생은 타이핑이 정말 빠르더라고.”

한숨을 내쉰 연문빈은 일단 여원을 칭찬하기로 했다.

“우리는 다 느리거든.”

“나 1분에 200타거든? 빠른 것도 아니야.”

연문빈의 뜻을 알아차린 마연린이 동조하자 여원이 거만하게 그들을 흘겨봤다.

“1분에 200타라니, 우린 복사해도 그렇게 안 빠르겠다.”

“차라리 차트는 여원한테 맡기자. 우린 논문 쓰려면 느리고, 잘 쓰지도 못하니까 차라리 할 일을 나누는 게······.”

“됐거든!”

두 사람의 말에 이번엔 여원이 펄쩍 뛰었다.

“다들 돌아가지 말고 일단 대기!”

곽종군이 의국에서 그렇게 고함치고는 방송으로도 내보내라고 사람을 보냈다. 능연 등은 저도 모르게 자세를 가다듬고 곽종군을 바라봤다. 의사가 추가 근무하는 일은 흔했지만, 이런 식으로 통보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헬기가 곧 도착할 거야. 원장님한테 전화도 여러 통 왔다는군. 다들 신경 쓰게. 능연, 자넨 나랑 같이 헬기 맞으러 간다.”

“네.”

“병원의 윗선들도 다 갈 거야. 가서 얼굴 좀 내보이면 나중에 일하기도 편하지.”

주름이 꾸깃꾸깃한 하얀 가운을 집어 올린 곽종군은 능연에게 고갯짓하며 입을 열었다.

“자넨 새 가운으로 골라 입게. 우리 응급 의학과의 위엄을 드러낼 수 있······ 음, 지금도 괜찮군.”

능연의 가운에도 주름이 가득했지만, 그가 입고 있으니 주름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사람이 잘생겼는데, 누가 옷을 볼 틈이 있을까.

“이번엔 어느 보험회사에서 보낸 비행기입니까?”

주치의 조낙의가 두 주임 뒤에 서서 호기심 가득 찬 모습으로 물었다. 그러자 곽종군이 그를 힐끔 봤다.

“왜 꼭 보험회사라고 생각하는데.”

“보험이 아니면 누가 타겠습니까. 한 번에 3, 4만 위안 하잖습니까. 게다가 돈 있는 사람들은 다 보험 들잖습니······.”

곽종군의 비웃는 표정을 알아차린 조낙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요. 개인이 띄운 거라고요? 무슨 상황인데요?”

“복통. 외상도 좀 있고.”

곽 주임의 대답에 조낙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말이 쉬워서 복통이지, 병원에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복통은 배탈이거나, 생리거나, 변비거나, 충수염일 가능성이 있고, 조금만 더 복잡해져도 위급한 증상이 많아진다. 응급실 의사에게 가장 골칫거리는 바로 기생충과 관련된 질환이었다. 특히 현지 구역이 아닌 기생충은 증상과 병의 경과가 별별 희한한 게 다 있다.

주치의인 조낙의는 환자가 도착하면 솔선해서 진단해야 하고 다른 부주임과 주임들은 그의 곁에서 실수가 없는지 지켜보다가 최종 증상이 확정되면 그제야 나와서 결론을 내린다. 거기까지 이르기까지 시행착오는 당연히 주치의의 몫이었다.

이렇게 헬리콥터까지 불러서 올 수 있는 환자라면 주치의의 부담은 더 커진다. 특히 ‘복통’ 같은 증상 진단을 실수하면 창피한 건 둘째로 치고 잘못하면 병원 윗선이나 상부의 눈에 ‘오진한 의사’로 찍힐 수도 있다.

“1분.”

그 자리에 와 있던 뇌 주임이 시계를 보더니 한마디 했다. 행정과 대장인 곽 주임은 보통 손님을 접대하느라고 옥상에서 바람맞으며 기다릴 일이 별로 없다.

운화 병원 같은 병원은 일반 지방 처급(處級) 간부쯤으론 곽 주임이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기다리지 않는다. 그 점을 떠올린 조낙의의 표정이 더욱 심각해졌다.

헬기 한 대가 서서히 하강하며 옥상에 흙먼지를 일으켰다. 잠시 후, 남자 간호사 하나, 여자 의사 하나가 스트레처 카를 밀고 앞으로 뛰어나갔다. 그들을 본 곽종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에서 남자 간호사는 소중한 존재였다. 특히 응급 의학과는 사람 옮기든 물건을 옮기든, 힘쓰는 일에 바로 쓸 수 있었다.

환자 관리 면에서는 남자 간호사가 의사보다 훨씬 나았다. 다른 건 접어두고, 주사만 봐도 간호사가 의사보다 훨씬 더 잘 놓았고, 욕창 같은 것 때문에 환자를 움직일 때도 남자 간호사가 훨씬 유용했다.

“옷이 샤넬이네.”

조낙의는 헬리콥터에서 내려 배를 잡고 스스로 스트레처 카 위에 올라가 살며시 눕는 환자를 보고 저도 모르게 혀를 끌끌 찼다.

“그걸 어떻게 알아?”

추가 근무하게 된 주 선생은 말도 하기 싫은 듯 서 있었는데, 그런 화제엔 또 흥미를 느꼈다. 조낙의는 살짝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며칠 전에 와이프가 더럽게 비싼 샤넬 백 샀거든. 예쁘긴 한데, 암튼 비싸. 더럽게 비싸.”

“두 달 월급은 썼겠네.”

주 선생은 조낙의가 신은 짝퉁 신발을 내려다보며 동정하듯 말했다.

“안 쓰고 모아도 모자라더라. 다행히 상금 받은 게 좀 있었어. 상금 못 받았으면 안 샀겠지. 샤넬 옷 엄청 비싸. 그런 옷 입는 사람들은 보통 신상만 입잖아. 옷은 5, 6만 위안, 신발은 1, 2만, 일반 액세서리는 몇천에서 만, 아무렇게 걸쳐도 10만 위안이야. 한 벌만 있겠냐? 일 년에 돈이 얼마나 들겠어.”

“어린 아가씨가 꽤 예쁘장하게 생겼던데.”

“그러게 말이야. 유명한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화장했겠지. 연예인 머리하는 데 몇천 달러 한다는 거 못 들었어? 우리가 병원에서 머리 수술하는 거보다 비싸더라. 요즘 연예인은 머리부터 좀 청소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 근데 연예인은 아닌 거 같던데, 10만 위안 하는 옷 입으면 어떤 기분일까?”

“조 선생!”

곽종군의 무거운 음성이 전해졌다. 조낙의는 곽종군의 음성을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심지어 그의 기분이 어떤지도. 조낙의는 바로 여러 가지 장면을 연상했다.

- 하나하나, 자네 껍질을 벗겨 줄까?

- 내가 네 껍질 못 벗길 거 같냐?

- 껍질 기증이라도 하려고?

여러 가지 상황을 상상하던 조낙의는 비참한 미소를 지으며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주임님!”

군기가 바짝 들어간 목소리로 포악한 곽종군에게 경의를 표했다. 사실 포악하다는 건 7, 8년 전 곽종군이고, 조낙의는 주치의가 된 후로 그가 포악한 말투로 화내는 걸 거의 보지 못했다. 아마도, 그럴 필요가 없어서였겠지.

“하나하나, 살피게.”

환자를 슬쩍 본 다음에 곽종군이 하는 말에 조낙의는 피부 가죽이 저릿한 느낌이 들었다.

“네.”

헬리콥터가 일으킨 바람은 멀리서도 느껴졌다.

“안녕하십니까. 주치의 조낙의입니다. 전칠님 맞으십니까?”

조낙의는 뒤에 선 상사들을 앞질러 진단하러 앞으로 나갔다. 응급 순서에 따른 일반 과정이었다. 환자를 앞에 두고 상사에게 일일이 보고를 할 순 없었다.

“맞아요.”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전칠은 조낙의 말대로 세심하게 화장을 했고, 붙인 건지 아닌지 알아볼 수 없는 긴 속눈썹과 가발인지 아닌지 알아볼 수 없는 긴 머리에 아마도 진짜인 긴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 전칠님, 어디가 어떻게 안 좋으신가요?”

조낙의는 이름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묻지는 못했다.

“배가 아파요. 그리고 손도 다쳤고요.”

전칠은 인상을 살짝 썼고, 조낙의는 환자 손에 감긴 밴드를 풀고 상처를 들여다봤다.

“과도에 벤 건가요?”

“캔 따개예요.”

“아, 캔 따개. 이따 상처 처리해 줄게요. 배는 어떻게 아픈가요? 꼬인 듯이? 아니면 아팠다 안 아팠다? 칼에 베인 듯이? 아니면 계속 쿡쿡쿡?”

조낙의는 손에 있는 작은 상처를 일단 내버려 두고 계속 물었고, 두 사람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병원 윗선들은 나중에 헬기에서 내린 동행인과 악수하면서 한담을 나눴다.

“가스 찬 거 같아요.”

“가스?”

“꾸르륵거려요.”

“아, 팽창감? 심한가요?”

조낙의는 기초 문진하며 머릿속으로 미친 듯이 고민했다. 처치실까지 가는 길이 그에게 가장 큰 기회다. 처치실 혹은 응급실에 도착하면 바로 환자 상황을 분석하고 상응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약물을 써도 되고, 수술을 해도 되고 해당 진료과 합동 진단을 요청해도 된다. 심지어 바로 해당 진료과, 해당 진료과의 수술실로 보내도 된다.

같은 복통이라고 해도 장폐색이나 충수염이면 일단 치료를 할지, 바로 수술실로 보낼지, 일반 외과를 불러 합동 진단할지 결정해야 하고, 다른 유형의 질환이라면 내과 합동 진단까지 선택의 범위 안에 있다. 그러나 이런 당연한 작업 전에 바로 환자를 고칠 수 있는 것이 가장 훌륭한 방법이었다. 조낙의는 속으로 끊임없이 분석하며 추측했다.

‘이런 환자가 단순한 배탈일 리 없다. 가장 심각한 경우인 기생충도 일단 배제한다. 복부 종양은 젊은 사람한테 잘 일어나지 않지만, 일단 생기면 배가 부풀어 오를 수 있고, 혹시라도 복수가 찬 것이면 정말 큰 일이다.’

“어제랑 오늘 뭐 먹었어요?”

“프랑스에서 생굴 먹고 이탈리아에서 고기만두, 와인, 디저트 그리고 현지 치즈랑 생선. 터키에서 완자랑 채소 수프, 점심엔 비행기에서 독일 햄, 대여섯 조각? 그런데 맛있더라고요. 운화에 돌아와서는 달걀 추가한 소면, 그럭저럭 먹을 만했어요.”

전칠이 손가락으로 꼽으며 하는 말에 조낙의가 헛기침을 했다.

“어제랑 오늘 먹은 거면 돼요.”

“어제 프랑스랑 이탈리아에서 먹었어요. 오늘은 터키에 갔고요. 제 비서한테 자세한 스케줄 표 있을 거예요.”

“아, 그러니까 이틀 만에 세 나라, 아니, 중국까지 네 나라를 오갔다는 거예요?”

전칠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소화기관 검사 좀 할게요.”

조낙의는 맥이 탁 빠졌다. 우르르 모여 헬기가 도착하길 기다렸는데 알고 보니 배가 터지도록 먹은 재벌 2세 때문이었다니. 그런데 전칠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긴장한 듯 손은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캔 따개에 다쳤다고요?”

“네, 친구가 일본 생굴을 보내주면서 프랑스 거랑 비교해 보라고 해서요. 근데 생굴 따다가 손을 다쳤지 뭐예요.”

“음, 제가 처리하······.”

“저분도 의사인가요? 그럼 저분한테 받을래요.”

전칠이 손가락으로 능연을 가리켰다. 조낙의는 고개를 돌릴 필요도 없이 재벌 2세가 누굴 가리키는지 알 수 있었다.

“능연, 이리와서 데브리망 해.”

조낙의는 환자의 뜻대로 능연을 불러 주었다. 헬리콥터를 타고 온 샤넬 재벌 2세의 심기를 거스를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자신이 데브리망할 군번도 아니었다. 능연도 아무 말 없이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에게 데브리망은 일반적인 일이었고, 지정받아 하는 건 더욱 흔한 일이었다.

“저는 전칠이라고 해요. 일곱째라서 특별히 이름 지어주는 분을 모셨는데, 이름이 간단해야 잘 산다고 해서요. 숫자 칠은 아니고요. 발음만. 이름이 능연이에요? 특별한 이름이네요.”

전칠은 입을 오물거리며 붉은 입술을 매력적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조낙의는 도저히 못 들어 주겠다고 생각했다. 옛날에 그가 와이프를 꼬실 때도 전칠처럼 낯간지러운 소리는 안 했었다. 어린 시절에는 능력으로 여자 마음을 흔들었었는데, 나중엔, 나중엔 어땠더라 생각해 보니 컵라면 먹어가며 여자 친구나 약혼녀 가방 살 돈을 모았던 것 같다.

예전에 받던 월급으로 구찌 가방 하나 사는 게 얼마나 고생스러웠는지 떠올린 조낙의는 능연을 힐끔 보고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젊은 놈이, 심지어 정식으로 일자리도 없으면서 얼굴 하나로 샤넬을 두른 여자의 마음을 쉽게 사로잡다니.

“저기 침대 더 안쪽으로 좀 옮겨.”

깊게 생각하기 싫어진 조낙의는 전칠의 침대를 처치실 안쪽으로 옮기고 침대 두 칸 자리를 비워내 독립된 공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병실에 비해서 처치실이 소란스럽기는 해도 기계가 더 완전하게 구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낙의는 더 이상 눈앞의 환자에게 바라는 게 없었다. 기껏해야 배가 터지도록 먹은 재벌 2세 아닌가. 쓸 만한 병이 걸린 것도 아니라 이제 메리트도 없었다. 몸매가 좋고 얼굴이 예쁜 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어차피 제대로 바라봐 주지도 않는데. 그는 흥미를 잃은 모습으로 차트에 사인했다.

“일반 외과 불러서 합동 진단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작은 병은 재미도 없고, 잘 치료해 봐야 상을 받을 것도 아니고 잘못하면 찍히기나 한다. 지금 일반 외과를 불러 합동 진단을 한다는 것은 여차하면 같이 뒤집어쓰자는 말이었다. 많이 먹고 배탈 난 재벌 2세 고쳐놔 봐야 자랑할 것도 없고, 혹시라도 해괴한 병을 놓친 거라면, 다 같이 죽는 거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나중에 도착한 윗선들도 조낙의의 일 처리에 불만이 없었다. 응급 의학과에서 합동 진단하자고 하니 하면 그만이었다.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응급처리 장면은 없었지만, 그런 불꽃 튀는 장면이 없는 게 윗선에겐 나쁜 일은 아니었다.

일반 외과 의사들이 같이 뒤집어쓰든가 말든가, 윗선 입장에서는 보고도 못 본 척, 알아도 모르는 척할 일이었다.

마흔 넘은 일반 외과 의사가 신이 나서 응급 의학과로 달려왔다. 주임이나 부주임쯤 되면 그렇게 신나서 달려오지도 못한다. 응급 의학과에서 합동 진단을 요구하면 보통 레지던트가 오고, 아주 가끔 수술 없는 주치의가 내려온다. 부주임으로 승진 전인 선임 주치의는 웬만해서는 합동 진단에 참여하지 않는다.

군대가 출동할 때도 앞에 선봉장을 보내고, 선봉장 앞엔 정찰병을 보내고 그 앞에 먼저 스파이를 보내지 장군 홀로 출동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치료 한 번으로 이름을 날릴 생각으로 기뻐서 내려왔던 선임 주치의는 조낙의의 설명을 듣고 질문 몇 개 던진 다음 바로 얼굴이 누렇게 떴다.

“초음파부터 하지.”

일반 외과 의사가 기운이 쭉 빠져서 그렇게 제안했다. 그는 항상 똥을 거르는 일반 외과 의사였다. 체한다는 건 아직 똥이 안 된 음식으로 일어난 증상이고, 거기서 조금 더 변하면 일반 외과의 수비 범위를 벗어난다.

초음파 해보자는 말 말고 할 말이 뭐가 있단 말인가. 선임 주치의는 원망스러운 듯 조낙의를 흘깃 보면서 오더 내렸냐고 물었다. 사실 그는 ‘이 새끼야, 왜 합동 진단하자는 거냐.’고 말하고 싶었다.

“응, 내리긴 했는데 아직 안 했어.”

“그럼 해.”

조낙의가 웃으며 대답하자 일반 외과 주치의는 한숨을 내쉬며 초음파 기계를 끌고 오라고 시켰다.

“여자 의사 선생님은 안 계시나요?”

그때, 전칠의 비서가 사근사근하게 물었다.

“그냥 배만 살짝 걷으면 됩니다. 제가 직접 봐야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일반 외과 의사가 눈썹을 치켜들고 강하게 나왔다.

“여자 의사 선생님이 하시고 결과만 보셔도 되지 않나요? 그런 방법이 익숙하지 않다면 저희 주치의를 불러서 진단하고 결과를 말씀드리고요.”

전칠의 비서는 걸크러쉬가 느껴지는 서른 넘어 보이는 엘리트로, 당당한 그녀의 두어 마디에 일반 외과 의사는 벌써 기가 죽었다.

“여자 의사 불러드리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합동 진단할 의지를 잃은 일반 외과 의사가 대답하자 전칠이 예의 바르게 대답했고 그나마 그의 마음이 조금 풀렸다.

“먼저 상처 처리하겠습니다.”

능연이 어서 할 일을 마무리하고 집에 가려고 서두르자 전칠은 기쁜 듯이 손가락을 내밀었다. 길고 가는 손가락은 관절도 고르고 마디 길이도 균형적이었는데 다만 왼손 검지에 작은 상처가 나 있었다.

능연은 그의 손가락을 잡고 살며시 들췄다.

“잘 꿰매셔야 합니다. 흉터 남으면 절대로 안 돼요.”

“백 비서, 능 선생님은 알아서 잘할 거야.”

걱정스러운 듯 말하는 비서의 말에 전칠이 고개를 들었다. 비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났다가 운화 병원 높으신 분을 만나러 순식간에 사라졌다.

잠시 후, 곽종군, 뇌 주임을 비롯한 운화 병원 사람들과 뒤늦게 나타난 높으신 분들이 우르르 출동했다. 능연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사람에게 둘러싸인 것이 한두 번도 아니고, 자연스럽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작은 손가락 봉합도 봉합 방법이 수두룩했다.

전칠은 능연의 진지한 옆얼굴과 침착한 태도를 바라보며 가슴 가득 기쁨이 차올랐다. 머릿속에 오로지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잘생겼어, 짜릿해.’

“다 됐습니다.”

봉합 후 검사를 마친 능연은 습관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드레싱을 넘기고 바로 그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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