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시리얼과 찐빵, 짜오로우를 먹은 능연은 즐거운 마음으로 임시 차고에 들어가 제타에 올라탔다.
열쇠로 시동을 걸었······ 는데 실패했다.
시동······ 실패.
실패.
능연은 할 수 없이 차 문을 닫고 골목으로 나와 사람 없는 건널목에 서서 택시 호출 어플을 켰다. 지금 시간에는 택시가 잘 잡히지도 않고 잡혀도 가까운 운화 병원은 승차 거부를 한다.
고개를 숙이고 배차 지정을 하자 어플 화면이 바뀌면서, 곧 택시가 접근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기사 유 기사, 롤스로이스 팬텀이라는 글귀가 떴다.
몇 초 만에 육중한 세단이 능연 곁에 섰다. 문이 자동으로 열리자, 거대한 공간과 은은한 오렌지빛 실내등이 보였다.
“능 선생님! 우연이네요. 마침 집에 가려던 참인데.”
전칠이 운전석에서 적극적으로 손을 흔들더니 피곤한 듯 크게 하품을 했다. 잠시 생각하던 능연은 차에 타기로 했다. 이 시간에 차를 잡기도 힘들고, 엄지까지 세 손가락 절단된 환자가 병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능연이 차에 타는 것을 본 전칠은 재빨리 바르게 앉아 차 문을 닫았다.
“운화 병원으로 가면 되죠?”
“네.”
“온도 괜찮나요?”
“네.”
“하늘 보실래요?”
전칠은 그렇게 말하면서 한참 찾더니 롤스로이스 팬텀의 선루프를 열어 특유의 하늘 그림을 보여주었다. 능연은 뒤로 몸을 기대며 편안하게 앉았다.
“매일 이렇게 일찍 출근하세요?”
전칠은 긴장한 듯 액셀을 밟아 차를 출발했다.
“꼭 그렇진 않습니다.”
능연은 대범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호기심에 어린 표정으로 시트와 오른쪽 문 쪽 가죽을 쓰다듬었다.
“새벽에 출근하기 힘들겠네요.”
전칠은 마음 아픈 듯 룸미러를 통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능연을 바라봤다.
“별로요. 그쪽도 새벽에 운전하네요.”
“아, 네네. 저도 제힘으로 돈을 벌고 싶어서요. 아빠한테만 기댈 수는 없으니까요.”
잠시 멈칫하던 전칠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한데 속도 좀 줄여요, 속도 위반하겠어요.”
“아······.”
전칠이 브레이크를 밟자 능연이 앞으로 살짝 기울었다.
“미안해요. 괜찮죠? 오늘 운전해서 10위안 정도 벌어요. 어제 저 봉합도 해주셨는데, 이따 같이 밥 먹으면서 써버릴까요?”
“기름값도 계산해야죠.”
제타 주인이 롤스로이스 팬텀 주인에게 물었다.
“주유 카드 따로 있어요. 돈 안 들어요!”
전칠이 주먹을 불끈 쥐며 생긋 웃었다.
“능 선생님, 매일 택시 타고 출근하세요?”
전칠은 조금 뜨끔해서 차를 몰면서 능연과 가까워지려고 말을 걸었다. 그는 작년에 연애 멘토를 구해서 어떻게 남자 꼬시는지 배워둘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원래는 차 타고 출근하는데, 오늘 시동이 안 걸리더라고요.”
능연은 편안하게 롤스로이스 뒷좌석에 앉아 부드러운 시트를 문지르며 대답했다.
“왜 그런지는 알아냈고요?”
“차는 잘 몰라서요.”
“능 선생님, 차 모르세요?”
뜨끔해서 묻던 전칠은 능연이 저도 모르겠다는 듯 대답하자 한숨을 크게 돌리면서 갑자기 남자한테 어떻게 차를 모르냐고 물을 수 있는지 스스로 비난했다.
“차 고치는 건 사람 고치는 것보다 재미가 없더라고요. 기계도 잘 모르고요.”
“아아~ 능 선생님 참, 개성 있으시네요.”
길게 말꼬리를 늘리던 전칠은 능 선생이 ‘사람 고치는 방식’을 떠올리곤 저도 모르게 살짝 몸을 떨었다.
“그냥 취향이죠.”
“맞다, 이제 출근하면 언제 퇴근하세요?”
“별일 없으면 3, 4시간 뒤에?”
능연은 수술 시간만 따져서 대답했다. 수술이 끝나면 그는 병원에 머무르지 않아도 된다. 다른 초짜 의사들은 잡일을 제일 힘들어하지만 능연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끝없는 차트, 환자와 보호자, 닥터스 어드바이스, 약 처방, 검사, 보고······. 이런 건 능연과 모두 인연이 없었다.
그렇지만 전칠은 룸미러의 능연을 동정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그렇게 오래요?”
“아침에 수술이 한 건밖에 없어서 그때 끝나는 겁니다.”
“더 오래 할 때도 있단 말이에요?”
“물론이죠. 2건 하려면 대여섯 시간? 문제라도 생기면 더 오래 걸리고요.”
“선생님, 너무 힘드시겠어요.”
전칠은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진심인 것 같은 그녀의 모습에 능연은 설명을 조금 더 해주기로 했다.
“매일 그 정도 일하는 건 편한 거죠.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8시간이 기본인데. 15, 16시간은 일해야 힘들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네? 지금은 탄력 근무하는 거 아닌가요? 구글처럼요. 할 일 없으면 출근 안 해도 된다던데요? 야후도 재택 근무하는 사람 있잖아요.”
“탄력 근무는 일 처리가 늦는 사람은 더 오래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 그건 그러네. 그래도 우리 집에선 친척들을 봐도 그리 오래 일을 안 하더라고요. 다들 일찍 일을 끝낸 거겠죠?”
능연은 이렇다 저렇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앞으로 열심히 해야겠네요. 이제 곧 병원이에요.”
전칠은 고개를 들어 눈앞에 보이는 운화 병원 간판을 바라봤다. 새벽 4시, 운화 병원은 소름 끼치게 새하얬다. 전칠은 속도를 줄이며 아까 생각해둔 말을 꺼냈다.
“능 선생님, 전 오후에 차 쓸 일 없는데, 차 쓰다가 6시 이후에 돌려주실래요?”
저녁 6시면 운화 사람들의 저녁 시간이라 그 시간에 차를 돌려주려면 자연스럽게 밥 한 끼 대접하게 된다. 원래 7시로 하려고 했었는데, 능연처럼 인기 많은 남자를 누가 6시에 채가면 어쩌나 싶었다. 그래서 아예 시간을 6시로 잡아 버렸다.
잠시 멈칫하던 능연은 결국 고개를 흔들었다.
“낮엔 차 잡기 쉬워요. 괜찮습니다.”
“차 잡기 쉬워도 기다려야 하잖아요. 그럼 이렇게 해요, 위챗 추가하고 이따 메시지 보내세요. 시간 맞으면 데리러 올게요.”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전칠은 당황하지 않고 바로 플랜 B를 꺼냈고, 능연은 잠시 망설였다.
“위챗으로 돈 보내면 되잖아요. 그냥 콜이라고 생각해요. 그럼 퍼센트 떼일 일도 없고, 내가 더 많이 벌잖아요.”
“그런 식으론 돈 못 벌어요.”
전칠이 머리를 쥐어짜서 하는 말에 능연은 웃어 보였다.
“괜찮아요, 이런 게 다 경험이잖아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서 전칠의 웃음도 자연스러웠다. 그렇게까지 이야기하자 능연도 고개를 끄덕였고, 먼저 전칠의 QR 코드를 스캔해서 입력했다. 전칠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들을 잡고 뿌듯한 듯 룸미러를 바라봤다.
“그럼 앞으로 15위안으로 결정해요.”
전칠은 병원 문 앞에 차를 세우고 허둥지둥 차 문을 열고 능연이 차에서 내리는 걸 본 다음에야 천천히 출발했다. 그녀는 온몸에 힘이 풀린 듯 저도 모르게 전방을 바라보며 헤헤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