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 력아!”
몇 사람이 이름을 부르며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남자 간호사 한 명이 그들을 막았다.
“강력 가족이에요. 력아! 경찰이에요! 우린 경찰 가족이라고요, 다친 경찰.”
문 앞에 저지당한 사람들은 다급하게 해명했다. 남자, 여자, 나이 든 사람 어린 사람, 다들 목소리에 긴장감과 불안감이 가득했다.
안에서 준비하던 곽종군은 그 목소리를 듣고 능연을 불러 나가보자고 했다. 그는 언제나 능연이 의사와 환자 관계 대처에 서툰 것을 걱정했다. 특히 환자 가족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에 대해. 그래서 일부러 능연을 데리고 환자 가족을 만나면서 대화하는 법을 가르치려고 했다. 게다가 이번은 상황이 더욱 복잡한 케이스였다.
능연은 별다른 말 없이 바로 뒤를 따랐다. 그의 주요 임무는 지혈인데, 환자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니 지혈할 혈관도 당연히 없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문을 열고 나간 곽종군은 우선 안으로 뛰쳐 들어오려는 사람들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평온한 편이던 가족들이 순간 눈을 치켜떴다.
“그럴 리가요.”
“운화 병원으로 보냈다고 했어요!”
“선생님! 거짓말 말라고요!”
곽종군은 낮은 목소리로, 그들에게 들리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 오는 길이랍니다. 운화 병원 응급 의학과 주임 곽종군입니다. 응급 처치 준비하고 있어서 시간이 촉박합니다. 무슨 질문 있습니까?”
곽종군의 말을 들은 가족들은 저절로 목소리를 낮췄다.
“우리도 들어가서 기다리면 안 되나요?”
“안 됩니다. 방해될 수 있어요.”
가족 중에 나이 많은 여자가 묻는 말에 대답하던 곽종군은 짧게 고민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두 분으로 하죠. 누가 들어가시겠습니까?”
일반적인 응급 구조라면 쉽게 그런 말을 할 리가 없다. 특히 응급실은 절대로 가족이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오늘의 응급 구조는 나중에 기자들이 출입할 가능성이 있어서 철저하게 봉쇄하기 힘들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가족을 못 들어가게 할 도리가 없었다.
가족들은 침착해져서 빠른 상의 후 환자 엄마와 약혼녀가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성함이?”
“진방이라고 합니다.”
“진 여사님.”
경찰의 엄마가 대답하자 곽종군의 시선이 약혼녀 쪽으로 돌아갔다. 통통한 편인 약혼녀가 대차게 이름을 말했다.
“저는 왕이정이에요. 중학교 선생입니다.”
“왕 선생님.”
곽종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사람을 데리고 들어가서는 안으로 더 들어가면 안 된다고 알렸다.
“지금 사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따 강력 씨가 도착하면 바로 정확한 치료를 시작할 겁니다. 그러니 두 분 너무 초조해하지 마세요. 그리고 의사들이 신경 쓰이지 않도록 최대한 조용히 계셔야 합니다.”
“알겠어요.”
새하얗게 머리가 센 진방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치료 시작한 다음 1시간을 골든 타임이라고 부릅니다. 그 시간에 의사가 내린 결정은 엄청나게 중요합니다. 여러분을 들어오라고 했지만, 치료에 방해되는 행동까지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런 행동을 할 시, 바로 여러분을 나가게 할 겁니다. 알겠습니까?”
“네.”
곽종군의 진지하고 엄숙한 말에 이번에도 진방이 먼저 대답했다. 예비 며느리 왕이정도 고개를 끄덕였다.
곽종군은 다시 임무를 분배하기 시작했다. 능연은 그의 뒤를 바짝 따르며 생각에 잠겼다.
“알겠나?”
“강압적이었습니다.”
“그렇지. 할 말을 하는 건 중요하지만, 때에 따라 강압적일 필요가 있을 때도 있네. 강력은 윗선에서 지명한 구조 대상이야. 모든 것을 아끼지 말고 투입하라는 건 치료 약물도 제한 없이 하란 소리지. 의료보험 대상이든, 수입품이든. 그렇게 되면 치료하기가 쉬워지니까. 그런데 가족에게 강압적으로 대하지 않으면, 나중에 이상한 주장이라도 하면 우리가 밀리게 돼. 선 구명, 후 치료!”
‘선 구명, 후 치료’는 까딱하면 그의 묘비명이 될지 모르는, 곽종군이 가장 자주 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을 진지하게 고려해보면 단순한 일이 아니다.
곽종군이 말한 골든 타임은 치료 개시 후 한 시간 내에 의료진이 내린 결정이 끝까지 영향을 준다는 말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환자의 기대 수명에 영향을 준다는 의미. 또한 골든 타임이 바로 환자의 생명 주기를 관통한다는 뜻이었다. 절지할지 말지, 침습적 치료를 할지 말지, 장기 이식을 할지 말지, 뇌를 열지 말지 같은 결정들은 끝까지 의사와 환자를 괴롭힌다.
의사의 결정이 미치는 영향이 클수록 의료 분쟁을 일으키기 쉽다.
예를 들어 절지 환자는 그 후로 몇 년, 심지어 몇십 년 동안 ‘그때 자르지 않았다면, 지금 더 좋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계속한다.
누구나 가장 좋은 결과를 바라고, 강력의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모든 이의 주목을 받는 상황에서, 만약 강력의 가족이 부작용이 낮은 약물 사용을 원하거나 침습적 치료를 거부하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곽종군은 그런 경우를 많이 겪었었다. 병을 치료하기도 전에 약물과 수술 부작용을 먼저 고려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고, 그럴 때마다 의사는 속수무책이 되어 무언가를 빠뜨리게 된다.
아직 준비 단계인 그때, 지금 곽종군이 하는 행동도 준비 작업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진방과 왕이정은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핸드폰으로 밖에 있는 가족에게 연락했다. 머지않아 기자 몇 명이 의교과 간부를 따라 진료실로 들어왔다. 그들도 장비를 설치한 후 조용히 대기했다.
사고 발생 지점은 헬기로도 왕복 한 시간 걸리는 거리였다. 그러니 시내에서 소식을 듣고 온 사람이 먼저 도착했다.
1분, 1초 시간은 흘렀고, 사람들이 힘겹게 기다리는 동안 곽종군이 자리에서 일어나 의사들을 데리고 환자를 맞으러 나갔다.
능연은 묵묵히 마음을 다잡으며 빠른 걸음으로 곽종군을 따라 나갔다. 아직 완벽하게 응급처치 기술을 장악하지 못한 그가 초를 다투는 응급상황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출혈 포인트를 찾는 것이고 그다음이 지혈이었다.
사실 지금 능연이 응급 의학과에서 하는 기술은 단순해서 수술 이외에 장점은 맨손 지혈이었다. 평소에도 그 기술로 응급처치를 진행하고 그것 외에는 데브리망 정도였다. 능연 같은 의사는 이을(二乙) 혹은 그 이하 등급 병원 응급 의학과에 배정된다면 버티기 쉽지 않을 수도 있는데, 운화 병원 같은 대형 병원에서는 진료과 모든 사람에게 찬양받을 위치를 확립했다.
운화 병원 응급 의학과는 만병통치약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의사를 바란다. 의사 하나가 여러 문제를 해결할 필요도 없이 하나만 해결해도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헬기에서 내려져 신속하게 안으로 옮겨진 스트레처 카에서 피가 뚝뚝 흘렀다. 그 장면에 사람들의 안색이 확 변했다.
대체 피를 얼마나 흘렸단 말인가.
“20봉이나 수혈했습니다. 크리스탈로이드(crystalloid) 수액도 보충했는데도 지혈 효과가 좋지 않습니다.”
헬기에 같이 타고 온 영경현 병원 응급 의학과 주임 의사가 잿빛 얼굴로 말했다.
“능연!”
곽종군이 헬리콥터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소리 사이로 크게 고함쳤다.
“완전 지혈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흘끔 상황을 본 능연이 스트레처 카 위로 올라가 팔뚝에 붕대를 풀고 복부를 감싼 천을 잘라낸 다음에 손을 찔러 넣고 바깥쪽에서 눌렀다. 그러자 순간 출혈량이 줄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고, 위기는 조금도 완화되지 않았다.
“개복 검사.”
곽종군은 스트레처 카가 처치실에 들어서자마자 망설임 없이 결정 내렸다. 능연은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몇 번이나 찔린 건지 몰라도 환자가 아직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었다. 한 손으로 그 많은 상처 부위를 다 누를 수도 없고, 맨손 지혈 자체가 임시방편이었다. 환자의 동맥이 잘리지 않은 것도 천운이었지만, 지금까지 피를 흘린 만큼 매우 위험한 상태였다.
“정맥 통로 2개 더 확보.”
구급 헬기에서 확보한 정맥 통로 3개를 체크한 곽종군이 다시 명령을 내렸다. 일반 감기 환자에게 수액을 놓는 것은 정맥 통로 하나를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일반적인 응급 환자는 정맥 통로 두어 개를 확보하면 충분하지만, 대량 출혈 환자는 5개라도 장담할 수 없다.
가족들이 환자의 얼굴도 볼 수 없을 만큼, 작은 스트레처 카 주변에 의료진이 가득했다. 가족의 눈엔 강력의 찢어진 경찰복 끄트머리와 핏자국만 보였다.
“ABGA(arterial blood gas analysis, 동맥혈가스검사. 신체의 산염기 균형과 산소공급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검사)했나? 결과는?”
“혈압, 심박 제어해.”
“CT는? 나오면 바로 알려 주게.”
“혈액 회수기 쓸 수 있을지 확인해!”
응급 구조 총책임자인 곽종군은 구체적인 용약과 용량 문제는 직접 나서지 않았다. 물론 다른 의사들이 내리는 용약 방안과 방식은 주의해서 듣고 있었지만, 잘못이 없는 경우엔 의견을 내지 않았다.
곽종군의 관심은 오로지 구급 처치 진도와 전체 방안에 쏠려 있었다.
구급 처치에도 진도가 있다.
ABGA 분석과 CT 검사는 시간이 걸려야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먼저 배정하지 않으면 후속 작업이 이어지지 않는다. 좋은 의사는 CT만 봐도 대충 파악할 수 있다. 출혈 상처 같은 경우는 CT 장비 아래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다만, 시간 배정을 잘해야 한다.
동시에 자가 수혈도 해야 했기에 혈액 회수기 사용 시간도 잘 배정해야 한다. 곽종군은 운화 병원 그리고 창서성에서 자체 수혈을 앞장서서 전파했다. 그건 바로 곽종군이 그만큼 자가 수혈에 능통하다는 것이며 운화 병원 응급 의학과에 완전한 관련 설비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환자가 구급차나 구명 헬기에 있을 때는 자가 수혈 여건이 안 되지만, 병원에 온 다음에도 수백 봉 혹은 더 많은 혈액을 몸에 집어넣으면 나중에 이런저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자가 수혈이 그렇다고 크게 문제를 줄여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혈액이 모자라는 상황은 피할 수 있다.
다만, 자가 수혈엔 더 까다로운 조건이 따른다. 설비가 그중 하나다. 혈액 회수기로 혈액을 모아 단순 여과 혹은 세정 처리 후 다시 환자의 체내에 혈액을 운반할 때, 혈액의 오염 상황을 엄격하게 제어해야 한다.
곽종군은 다급하게 그런 일들을 하면서 끊임없이 권한을 나눠주었다. 조낙의는 복부 검사를 하면서 응혈을 대량 처리했고 두 주임은 직접 나서서 비장의 각 인대를 분리해서 비장을 노출한 다음 이중 매듭처리 후 비장을 절제했다. 주 선생은 좌측 간장 쪽 2mm 규칙적 파열구를 봉합하고 대형 거즈 매트로 횡격막 근 파열구를 압박했다. 주치의 좌량재도 단독으로 대퇴 정맥을 처리했다.
거기까지 했을 때 골든 타임은 벌써 지났고, 의사들은 지쳐서 헐떡였다.
능연은 스트레처 카에 걸터앉아 한 다리로 무릎을 꿇은 채 다른 다리를 치켜세우고 양손 혹은 한 손으로 맨손 지혈을 하거나 어시 역할을 했다. 조낙의는 발판에 올라선 순간부터 한 번도 발판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곽종군조차도 몸을 반만 비집고 들어가서 전체 지휘했고, 먼저 자리 잡았던 주 선생만 조금 여유롭게 움직였다.
그러나 공간이 조금 넓든 좁든 다들 벌서는 자세인 건 마찬가지였다. 그 상태로 한 시간 정도는 버틸 수 있어도 피로감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휴식 시간을 줄 수도 없었다. 곽종군은 한숨을 내쉬고는 능연을 불렀다.
“능연! 자네는 손으로 폐에 파열이 있는지 없는지 살펴보게. 없으면 벤틸레이션(ventilation. 환기)하고 횡경막 봉합해.”
마지막 말을 들은 마취의가 자리에서 일어나 바쁘게 움직였다. 주 선생은 7호 봉합사를 요구한 다음 능연의 대답을 기다렸다. 외과 의사는 종종 손으로 검사를 한다. 곽종군이 젊었을 때는 기본적인 검사 방법이기까지 했다. 지금도 현장의 의사는 기본적으로 그런 검사가 가능하고 주 선생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곽종군은 지금 능연의 맨손 조작을 더 신뢰했고 다른 의사들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들이 해도 되지만, 파열이 없는지 확인하는 데는 시간이 보통 오래 걸리는 것이 아니고 능연보다 잘할 자신 있는 사람도 없었다.
능연은 운화 병원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기술도 별로 없었지만, 특정 기술에 대해서는 모두 인정하고 있었다. 의사라면 다들 어느 정도 맨손 지혈이 가능하다지만, 능연이 하는 수준으로 해내라고 하면, 특히 수술 시야가 없는 상황에서 맨손 지혈을 자신 있게 나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맨손 검사도 생각처럼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인간의 폐는 매끄럽지 않고 사람마다 표면 상태가 달라서. 손으로 폐 파열을 검사하는 건 손으로 마작 패 표면을 문질러서 패를 알아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거쳐야 알아낼 수 있다.
거기에 정확성까지 보장하려면 더욱 난도가 높아진다.
능연은 맨손 지혈을 할 수 있으니 조직 파열에 관해서도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검사를 끝내고 재검사했다.
“없습니다.”
“튜브 넣고 벤틸레이션.”
환자의 폐가 부풀어 오르자 아까 압박 지혈한 상태인 횡격막이 충분히 드러났고, 주 선생이 나서서 7호 봉합사로 단속 봉합하기 시작했다.
곽종군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이제 간장, 비장과 흉부 출혈은 잡았다. 모두 심장을 제외한 주요 혈액 공급 장기였다.
“9-10 늑골 봉합. 흉관 드레인(chest drain). 능연, 위장도 체크해!”
잠시 생각한 곽종군은 흉관 드레인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다시 지시 내렸다.
이 정도 규모의 응급 처치에서 늑골 봉합은 조낙의가 가볍게 꿰매고는 수술 시야를 비워줬다.
“1mm 상처가 있습니다.”
능연의 말에 이번엔 두 주임이 나서서 내번 봉합하고 지혈 거즈를 넣어 항연고제를 뿌리고 튜브를 넣어 식염수로 씻어냈다.
“출혈 상태는?”
곽종군의 물음에 모니터링 하던 마취의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블리딩 포커스(Bleeding Focus)가 있어. 계속 찾아.”
곽종군은 속으로 어머니 안부를 물으며 겉으로는 침착하게 지시했다.
전신에 자상(刺傷)이 많은 케이스는 이게 문제였다. 칼이 조금만 앞으로 찔려도 장기까지 찔리고 얇고 날카로운 칼날일 때는 출혈 포인트도 찾기 어렵다. 수혈로 유지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특히 장기 대량 출혈일 때 수술 중에 지혈하지 못하면 환자는 금세 여러 장기 기능 부전으로 점점 심각한 쇼크 상태에 빠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모든 응급 처치가 의미가 없어진다.
곽종군은 일단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적어도 배를 덮고 빠진 걸 발견한 건 아니니까. 2차 개복 검사는 더욱 복잡하니까.
“찾을 수 있겠나?”
“오른쪽 하복부에 구멍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곽종군은 이번에도 능연에게 먼저 물었고, 능연은 땀을 뻘뻘 흘리며 여기저기 더듬으며 대답했다. 그랜드마스터급 맨손 지혈이라고 모든 출혈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얼마나 걸릴 것 같나?”
“모르겠습니다.”
“그럼 아까 발견한 곳부터 봉합하도록. 그리고 영상의학과 좀 불러와서 블리딩 포커스 찾아보라고 해.”
땀 닦을 틈도 없이 곽종군은 신속하게 결정 내리고 고개를 돌려 다른 지시를 내렸다. 순회 간호사가 대답하고 밖으로 나가 아까부터 필름을 보던 영상의학과 의사를 불러왔다. 그런데 그도 대량 출혈을 일으킨 혈관 위치를 찾아내지 못했다.
“제가 더 찾아보겠습니다.”
CT를 볼 줄 모르는 능연은 여전히 맨손 지혈 스킬에 의지해서 환자를 더듬었고, 곽종군은 인상을 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곰곰이 되짚기 시작했다.
“경찰 아저씨! 힘내세요!!”
“힘내세요! 아저씨!!”
등 뒤에서 갑자기 앳된 음성이 여기저기 들렸다. 어느새, 가벼운 상처를 입은 학생과 선생님이 구급차를 타고 도착했다. 학생들은 대부분 급브레이크를 밟은 바람에 다친 터라 많이 다친 학생은 대여섯 바늘 꿰맸고, 가벼운 상처는 찰과상에 멍이 든 정도였다.
그렇긴 해도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머리에 거즈를 붙이고 손에 붕대를 감고 있는 모습은 아무래도 안타까웠다. 평소라면 그 정도 다친 아이들은 벌써 울고불고 난리일 텐데, 그날은 전혀 울지도 않고 하나같이 긴장된 얼굴로 선생님과 약속한 대로 착하게 까치발을 들고 처치실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누가 먼저 시작한 건지 몰라도 갑자기 국가를 부르기 시작했고 모든 아이가 따라 불렀다.
아이들의 앳된 목소리는 평소에 기분 좋게 들리지만, 지금은 모든 이의 마음을 무겁게만 했다. 안 그래도 긴장해서 미칠 것 같던 강력의 가족과 동료들도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엄숙하기 짝이 없던 처치실에 무거운 기운이 내려앉았다.
다들 의학은 몰라도, 의사의 엄숙한 표정과 길어지는 시간에 느끼는 것이 있었다. 바닥에 혈흔은 이미 액체가 되어 고여 있었고 이리저리 찢긴 옷가지가 한쪽에 걷어차여 있었다. 촘촘한 수혈관이 의사들의 겨드랑이 사이로 흔들리고 있었다.
현장엔 오로지 모니터링 기계에서만 끊임없이 단조로운 알람이 들렸다.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다시 울렸고,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작은 얼굴이 점점 시뻘게졌다. 간호사들은 말려야 할지 어째야 할지 난감한 얼굴로 수간호사를 바라봤다.
“땀 좀 닦아 주세요.”
능연은 간호사가 편하게 닦을 수 있게 고개를 틀었다. 그 각도에서 아이들의 흩어진 대열이 보였다. 진지한 표정에, 눈물이 반짝였다.
강력의 약혼녀는 이미 진이 빠질 정도로 울고 있었다.
“장갑 좀 갈아 끼워야겠습니다.”
능연이 갑자기 자세를 바꿔 스트레처 카에서 뛰어 내려왔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핏자국으로 가득한 장갑을 벗어 던지고 손 씻으러 밖으로 나갔다.
어깨까지 깨끗이 씻은 다음, 능연은 오래 보관해 온 푸른 병을 꺼내서 한입에 털어 넣었다.
- 스킬 포션: 모든 스킬 +1, 2시간 유지.
능연의 눈앞에 촘촘하게 스킬 리스트가 나타났다.
- 병렬 봉합: 그랜드마스터급
- 신경 외막 문합술: 그랜드마스터급
- 신경 내막 문합술; 그랜드마스터급
- 신체 진찰: 마스터급
맨손 지혈 뒤엔 능연이 한 번도 보지 못한 색깔인 연보라 테두리가 보였다.
- 맨손 지혈 : 레전드급★
능연이 원래 가지고 있던 그랜드마스터급 능력은 맨손 지혈, 단지 이식 그리고 아킬레스건 봉합술이었다.
지금 그 세 항목 뒤에 모두 연보랏빛 ‘레전드급’이 붙었다.
능연처럼 냉철한 사람도 흥분했다.
레전드급이라니, 듣기만 해도 매우 레전드 감이 있지 않은가? 그랜드 마스터급 맨손 지혈 효과를 여러 번 본 능연은 그보다 더 강력한 레전드급에 기대가 충만해졌다.
그랜드 마스터급 맨손 지혈로도 수술 시야가 없는 상태에서 정확하게 복강 내 출혈 포인트를 찾았는데 레전드급은 확장 범위가 더욱 넓겠지?’
능연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무균실로 들어가 살균된 수건을 꺼내 손을 깨끗이 닦고 거울을 바라봤다.
“시스템, 시스템. 이 세상에서 맨손 지혈이 제일 강한 사람이 누구?”
- 아담 뢰플러 데이비스입니다.
시스템의 대답에 능연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지금 내가 가진 맨손 지혈은 그럼 몇 등인데?”
- 2등입니다.
시스템이 시원시원하게 대답하자 능연은 혀를 끌끌 차면서 손을 닦았던 수건을 내던지고 처치실로 향했다.
국가를 세 번 연달아 부른 아이들은 간호사와 선생님의 노력으로 노래를 멈추고 간절한 눈으로 병상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간호사는 아이들이 힘들지 않게 빈 병상에 다정히 눕히고 쉬게 했다. 초짜 의사들이 기억하는 수간호사의 모습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능연이 수술실 문을 밟고 들어왔을 때, ‘치익’ 하는 소리가 나자 노래를 멈춘 아이들은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봤다. 강력의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능연은 양손을 들고 처치실로 들어와 수술복과 장갑을 받아 새로 입을 뿐, 다른 사람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는 곽종군이 직접 지도할 때나 겨우 환자 가족을 상대하는 정도로 환자 가족과 소통하는 데 능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고작 머리에 거즈를 붙이고 손에 붕대를 감은 아이들인데도 능연은 겨우 고개를 까딱이고는 바로 시선을 수술 중인 강력을 향해 돌렸다.
“공간 좀 주세요.”
능연은 다시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아까는 어쩔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주 선생이 망설임 없이 자리를 비켜줬다. 능연은 손을 들고 주 선생이 비워준 자리에 서서 모니터링 기계를 잠시 바라보다가 ‘블리딩 포커스 검사하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때 의사들도 모두 매달려서 출혈 포인트를 찾고 있었지만 자가 수혈만으로는 안 될 것이 명확해지자 곽종군은 이것저것 생각할 여유도 없이 혈액 창고에서 혈액을 가지고 오라고 재촉했다. 그리고 복강을 깨끗이 하라고 명령하면서 어떤 검사를 더 할지 궁리했다.
능연은 시계 방향을 따라 더듬어 내려갔다.
레전드급 맨손 지혈이라고 손가락이 더 예민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능연은 자신감이 생겼다. 화살을 오래 쏘다 보면 화살이 손에서 떨어지는 순간 명중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명사수는 화살촉이 어느 방향 어느 각도로 날아가야 하는지 모르고, 포물선 공식 같은 것도 알 필요 없다. 그저 무의식적으로 팔을 들어 손가락에 힘을 빼고 화살을 날리기만 하면 그만이다.
능연도 가장 큰 출혈 포인트를 찾아야겠다는 생각보다 손을 더듬어 내려가면서 출혈이 있는 부위를 하나씩 찾았다. 사고 회로가 바뀌어서인지 몰라도 잠시 후, 능연은 작은 출혈 포인트 하나를 찾아냈다.
“7호 봉합사.”
능연은 찾아낸 출혈 포인트를 얇은 실이 아닌 일반 실로 봉합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한숨 돌렸던 곽종군은 모니터링 기계의 지표에 큰 변화가 없자 바로 긴장했다.
“출혈량은 여전한데요.”
마취의가 큰 걱정을 하며 그렇게 말했다. 능연은 ‘네’ 하고 대답하고 계속 환자의 몸을 더듬었다. 이번엔 작은 출혈 포인트조차도 찾아내지 못했다.
현장의 의사들은 모두 매우 초조해하는데 능연의 머릿속엔 점점 생각이 잡혀갔다. 레전드급 맨손 지혈 능력으로도 출혈 포인트를 찾아내지 못했으니 아직 찾지 않은 부분에 출혈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타당했다. 예를 들어, 장기 밑 같은.
특히 상처 입은 장기 밑 말이다.
“간 아래 좀 보겠습니다.”
능연의 손이 바로 간을 따라 미끄러져 내려갔다. 바로 옆에서 출혈 포인트를 찾던 조낙의가 능연의 방법에 찬성하지 않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지금까지 출혈 포인트를 찾지 못한 이유는 어쩌면 출혈 포인트가 깊은 곳에 숨어 있어서 그러리라 생각했다. 구석이나 다른 조직에 가려졌거나. 하지만 그에게는 능연처럼 밖으로 드러난 곳에 출혈 포인트가 없다고 단정 지을 능력이 없었다.
처음부터 여러 사람이 같이하는 수술이라는 생각에 능연은 딱히 설명하지 않고 손을 움직였다. 그는 오른쪽 장기를 한 번씩 더듬고 왼쪽으로 손을 옮겼다.
“간은 막 수처했는데, 건드리지 마.”
능연이 간을 만지려고 하자 조낙의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높였다.
“혹시 모르니까요.”
“다른 부위부터 보면 되잖아.”
“다른 부분은 없습니다.”
“그래도 한 번 다시 보고 없으면 이쪽 해.”
“그럴 필요 없습니다.”
“야! 기다려!”
옥신각신 기 싸움을 하던 조낙의는 능연에게 멈추라고 지시하면서 곽 주임을 바라봤다.
“주임님, 간은 지금 막 수처해서······.”
“들었네.”
곽종군은 조낙의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입술을 깨물면서 능연에게 조심해서 하라고 지시했다. 암묵적으로 동의한 셈이었다.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살며시 왼쪽 간을 들어 올렸다.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모니터링 기계도 가차 없이 ‘뚜-, 뚜-.’ 울렸다.
누르고 있던 물건이 없어져서 출혈이 더 빨라진 것임을 현장에 있는 의사는 모두 바로 깨달았다. 그러나 충분한 혈액이 있으니 출혈 포인트만 찾으면 문제는 간단했다.
의사들의 표정은 한결 가벼워졌지만, 밖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은 바짝 긴장했다. 모니터링 기계가 울리는 소리는 일반인에게 목숨을 재촉하는 소리로 들린다.
그런 다급한 소리는 수술실에서 항상 수술하는 의사도 익숙하지 않은데, 환자 가족은 더욱 말할 것도 없다.
울다 지친 강력의 약혼녀 왕이정은 또다시 눈물을 흘렸고 목이 쉬어버려서 이젠 목소리도 나지 않았다. 진방도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새하얘진 손가락으로 의자를 붙잡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는 아이들은 멍하니 주변의 어른을 올려다봤다.
“제가 수처하겠습니다.”
능연은 피가 완전히 멈추리라고는 기대하지 않고 그저 출혈량을 줄일 수 있게 손으로 적당한 힘으로 상처를 압박하면서 주변 조직을 보호했다. 봉합사를 받은 능연은 집중해서 바늘을 니들홀더에 걸었다.
지금 그의 병렬 봉합법도 그랜드마스터급이었다.
한 땀, 두 땀, 세 땀, 네 땀······.
능연이 잠시 바늘을 놀리자 고함치던 모니터링 기계가 잠잠해졌다.
“혈액 팩!”
꽥 고함지른 곽종군은 바로 목소리를 낮추고 입으로 ‘됐다’고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출혈이 멎었으니, 목숨은 건졌다.
곽종군은 고개를 돌려서 아직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망연한 가족과 다른 사람을 바라보면서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능연에게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다시 한번 검사해 보고 이리게이션(Irrigation: 세척)하고 문제없으면 닫아.”
닫으라는 말을 끝낸 곽종군은 완전히 홀가분해졌다.
능연은 단속 봉합법으로 출혈 포인트 봉합을 마치고 가위로 살며시 실을 잘라내고 손에 든 기구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혼자 조용히 레전드급 맨손 지혈이 가져다준 성취감을 느꼈다.
다른 의사들은 능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른다. 조낙의든, 주 선생이든, 두 부주임, 곽 주임이든, 맨손 지혈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들은 그랜드마스터급 맨손 지혈의 강력함도, 능연이 조금 전에 체험한 레전드급 맨손 지혈이 어떤 것인지도 전혀 모른다.
능연은 자기 공을 떠벌리고 싶은 마음도 없이 홀로 성공을 자축했다. 박수를 받자고 들었다면 그보다 쉬운 일도 없다. 학교 다닐 때도 콧노래만 흥얼거려도 사람들은 손뼉을 쳤으니까. 하지만, 그는 단체 생활에서는 박수받는 만큼 부담해야 하는 것도 많다고 생각했다.
그는 남몰래 느끼는 성취감을 즐기는 편이었다. 다른 사람이 무슨 일을 했다고 환호하는 것도 싫지만, 다른 사람이 자기가 한 일로 환호하는 것은 더 싫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자기가 한 일로 살아난 건 매우 기뻤다. 사람을 살리는 일보다 즐거운 일은 없었다.
물론, 레전드급 맨손 지혈이 주는 느낌도 매우 좋았다.
그는 환자 몸 안을 살피며 빠진 것은 없는지 살폈다. 그게 그의 습관이었다. 변신 로봇을 조립할 때 까슬까슬하게 튀어나온 돌기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매끈하게 갈아 없애고 나서야 조립을 시작했다.
일반 환자도 그렇게 대하는데, 의료진이 몇 명이나 매달린 강력을 소홀히 넘길 수는 없었다. 문제없으면 닫으라는 곽종군의 말에 능연은 열심히 환자의 몸을 스캔했다.
갑자기 능연의 시선이 흔들렸다.
“잠시만요!”
능연이 마스크를 낀 채로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간문(肝門: porta hepatis)이 좀 큽니다.”
“음?”
곽종군이 들여다봤지만, 어디 구분할 수 있어야지 말이다. 사람마다 장기 크기가 달라서 어떻게 구별할 수도 없었다.
“아까보다 커졌습니다.”
능연은 보다 명확하게 설명했다.
맨손 지혈은 미세한 부분을 집어내는 기술이었고, 레전드급이 되니 집중력이 더욱 오래 갔다. 그러니 재검사 과정에서 그런 문제를 짚어 낼 수 있었다.
간장이나 신장 같은 전문 외과에서는 간문 하나만 잘 다뤄도 의사는 평생 먹고 살 수 있다. 그리고 레전드급 맨손 지혈은 간문 정맥에 집중된 기술이고 막 하나 사이로 있는 동맥은 별로 중시하지 않았다. 간 고유 동맥이든, 간 좌위 동맥이든 터지면 바로 알아챌 수 있으니 말이다.
간문 정맥은 그렇게 대놓고 드러나지 않아서 경화 파열 같은 것도 자주 일어난다.
능연은 멀리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아까 복강에 생긴 응혈이 간문을 누른 거 아닐까요?”
곽종군은 심각해진 얼굴로 곁에 있던 두 부주임에게 검사해 보라고 지시했다. 사고 현장에서 병원에 도착해 개복하기까지, 환자는 4000ml 넘는 피를 흘렸고 모두 복강 안에 고여 있었으니 응혈이 생겨 흔들리면서 여기저기 짓눌렀을 가능성이 있었다.
두 주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바로 손을 뻗어 간문을 건드렸고 피가 새어 나왔다. 현장에 있는 의사들도 모두 영리한 사람이라 상황을 바로 파악했다.
“진짜 찢어졌네?”
이제 더 할 일 없이 서 있던 주 선생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음. 수처해.”
만약 그대로 닫았다면 그날 밤을 넘기지 못할 수도 있었다.
‘위험했어.’
곽종군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할 뿐,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응급 처치는 지뢰 밟기 같은 것이라, 밟게 되면 제 학문이 부족하다고 자책하고, 지뢰를 안 밟았다고 해서 대단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두 부주임이 고개를 숙이고 바삐 움직이자 멀리 있던 가족들이 또 한 번 웅성댔다. 닫으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의사가 다시 봉합하기 시작했으니 무슨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하다고 여겼다.
가족들은 이제 울 기운도 없이 맥이 빠져있는데 기자들은 사진을 찍기 위해 계속해서 곽종군에게 신호를 주었다.
촬영 허가는 윗선에서 내렸고 운화 병원에서도 필요하다고 여겼다. 곽종군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에 기자들을 수술실에서 쫓아냈으리라.
“계속하게.”
의사들을 향해 지시 내린 곽종군은 고개를 들어 기자를 바라봤다.
“무슨 일이십니까?”
“곽 주임님,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말씀 좀 해주실 수 있나요? 다들 긴장하고 있거든요.”
“음······. 환자의 출혈 포인트를 찾고 있었습니다. 지금 출혈 포인트는 모두 잡았는데, 간문 정맥에 문제가 좀 생겨서 긴급 봉합하고 있습니다.”
기자는 그 말에 대해 가타부타 평가 없이 촬영 기사에게 잘 찍었는지부터 확인하고는 곽 주임에게 엄지를 치켜들어 보였다.
“간문 정맥 봉합이 끝나면 응급 처치 성공이라고 발표해도 되나요?”
“다른 문제가 발견되지 않으면 그래도 됩니다.”
곽종군은 고개를 돌려 모니터링 기계를 바라봤다. 지금 성공이라고 말하면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그는 결국 그렇게 말했다.
가족의 기분을 생각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역시나, 곽종군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약혼녀가 먼저 울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의사들을 방해할까 봐 아직 큰 소리도 내지 못하고 훌쩍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 저······ 못 보겠어요. 나가서 기다릴게요.”
진방 역시 마찬가지로 붉은 눈시울로 고개를 끄덕였다. 끊임없이 흘러 들어간 혈액 팩과 혈장, 아들 곁에서 이리저리 뒤집는 의사들을 바라보며 진방도 벌써 다리에 힘이 다 풀려 정신이 피폐했다.
병원 응급실에 뭐 볼 게 있다고, 그는 지금 들어와서 기다리겠다고 한 것조차 조금 후회하고 있었다.
“선생님, 경찰 아저씨 이제 괜찮아요?”
초등학생 하나가 어른의 말을 듣고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선생님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괜찮아지실 거야. 넌 안 아프니?”
“아니요!! 어른이 되면 경찰관이 될래요!!”
선생님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묻자 아이는 바로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나중에 선생님도 보호해 주겠구나.”
“네!”
“저도 경찰 될래요!”
“와!”
“저는 의사 될 거예요!”
“와!”
“쉿!”
선생님이 다시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우리 조용히 경찰 아저씨 깨어나시길 기다리자. 알았지?”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구석에 숨어 있던 전칠은 사람들의 분위기에 전염되어서는 저도 모르게 의사들 사이에서 제일 눈에 띄는 능연을 바라봤다.
‘잘생겼어.’
능연은 조금도 지치지 않은 모습으로 변함없이 고개를 숙인 채 출혈 포인트를 찾고 있었다.
기본적인 응급 처치는 성공했지만, 배를 닫은 후에 못 찾아낸 출혈 포인트나 파열된 간문 정맥이 남아 있으면 예후가 상당히 안 좋을 것이고 잘못하면 다시 응급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여러 곳에 자상을 입은 강력의 배는 거의 헤집어진 상태였고, 큰 문제는 해결됐는데 작은 상처가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능연은 아까 하마터면 놓칠 뻔했던 경험을 살려 한 번 또 한 번 검사를 이어나갔다.
“능연!”
닫기로 결정 내린 곽종군은 이번에도 능연을 먼저 불렀다. 그러자 능연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됐다고 대답했다.
“닫아.”
곽종군이 명령을 내리자 조낙의와 좌량재 두 주치의가 서로 협조하며 착착 배를 닫아 나갔다.
“작은 상처 수처는 제가 하겠습니다.”
능연은 다리 쪽으로 자리를 옮겨서 압박 지혈을 끝낸 작은 상처를 찾아내 슉슉 상처 봉합을 했다.
상처 하나.
상처 둘.
상처 여덟.
능연은 상처를 찾아낼 때마다 눈 깜짝할 새에 봉합했다.
서른 곳 넘게 찔린 강력은 거의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고, 아까는 다들 대량 출혈한 중상 부위를 살피느라 피가 조금 스며 나온 부분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능연은 맨손으로 이리저리 쓸어내리면서 깊은 상처를 찾아내는 대로 바로 안에서 꿰매고, 바깥 부분은 상황이 되면 감장 봉합에 내피 봉합을 했고, 상황이 안 되면 바로 병렬 봉합법으로 봉합했다.
긴 상처는 단속 봉합으로 여러 번, 짧은 상처는 연속 봉합으로 한 번에. 아직 포션 효과도 남아서 그랜드마스터급 봉합법으로 빠를 뿐 아니라 이상할 정도로 효과적으로 꿰매나갔다.
의사들은 능연이 치트키를 쓴 게 아닐까 하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들은 어쩐지 기운이 쪽 빠졌다. 봉합법은 외과 의사의 기본 내공이긴 해도, 수술을 하는 사람은 다 알듯이 기본 내공은 잘해내기 더 힘들었다. 특히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눈에 띄게 잘하려면 엄청난 에너지와 천부적인 재능이 필요했다.
촬영 기사도 건수를 잡았다는 듯 카메라를 능연에게 들이댔다.
전칠도 망설임 없이 핸드폰을 꺼내 능연의 움직임을 녹화했다.
“주닥! 오늘 제법이던데?”
“좌 선생도 한 솜씨 했어.”
“TV에라도 나오면 꽤 멋있을지도 몰라.”
초짜 의사들은 서로 어깨를 얼싸안고 부둥부둥하며 느긋하게 의국으로 향했다. 의국에 가까워지자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발걸음이 빨라졌다.
능연이 정신 차렸을 때, 의사들은 모두 휴게실로 들어가서 일선, 이선 휴게실을 모두 점령했다.
휴게실은 당직 의사들이 쓰는 방이지만, 잠시 쉬고 싶을 때 다른 의사들도 사용했다. 그러나 의사들은 대부분 쉴 시간이 없어서 휴게실은 낮엔 비어 있기 일쑤였다.
그러니까 오늘은 예외인 날이었다.
오늘 같은 응급 수술은 의사들의 부담도 커서, 노동 강도가 매우 큰 응급 처치에 참여했던 의사들은 앞다퉈 침대를 차지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어깨동무를 하며 으쌰으쌰 하던 의사들의 우정은 납작한 침대에 깔려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주 선생은 개인용 베개 커버를 휘두르며 웃었다.
“다들 힘들었으니까 잠시 눈들 좀 붙이자고. 이따 또 바쁠 텐데.”
능연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손으로 승모근을 잡고 풀어 준 다음 손을 내려다봤다. 포션 효과가 떨어지려면 아직 30분 이상 남았다. 그 시간에 잠을 자는 건 너무 아까웠다.
“연 선생님.”
능연이 손짓하자 연문빈이 나이든 늑대가 어린 사자에게 보고하는 것처럼 허둥대며 뛰어왔다.
“수술실에 가서 탕 법이나 단지 이식, 아킬레스건 환자 없는지 좀 찾아보세요. 응급실에 없으면 수부외과에도 물어보고요. 준비 좀 하고 10분 뒤에 수술할게요.”
능연의 명령은 간단명료하고 이상했다. 연문빈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능연을 바라봤다.
“저기요, 형님. 아무리 네 스타일이라고 해도, 이건 좀 이상하지 않냐?”
갑자기 수술을 찾으면서 10분 뒤에 하겠다니. 병원에서 흔한 일이 아니었다. 환자가 수박도 아니고 자르고 싶다고 자를 수 없지 않은가.
“일단 가서 물어봐요. 저도 주임님 찾아 가볼게요.”
생각해 보니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능연 역시 바로 덧붙였다. 운화 병원에서 곽 주임은 도라에몽 이미지가 있어서 아무리 비정상인 일도 그의 손에 떨어지면 실현 가능성이 생겼다. 물론, 안 되는 일도 있었다. 연문빈은 살짝 마음을 놓고 사람을 찾으러 갔다.
전문 진료과 수술은 보통 미리 배정되어 있었다. 어떤 환자는 심지어 며칠 혹은 열흘도 전부터 의사와 소통하며 커넥션을 이용해서 유명한 의사를 선점하는 일도 많았다. 그러나 응급 의학과에서는 어느 의사를 지정해서 확정하는 건 별 의미 없는 일이었다.
단지 이식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대부분 병원은 정형외과 혹은 수부외과 의사가 단지 이식을 하지만, 환자들이 모두 완벽한 설명을 듣는 것도 아니고 의사가 바뀌는 것도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오히려 아킬레스건 수술이 선택의 폭이 넓지만, 병원에서 아킬레스건 수술에 끌리는 의사들은 별로 없었다.
연문빈은 재빨리 한 바퀴 돌고 응급 의학과 수술실들의 리스트도 살펴본 다음 수부외과, 정형외과 수술 리스트도 찾은 후에야 조건에 부합하는 아킬레스건 환자를 찾아냈다.
혼자 병원에 와서 2시간 후 수술을 배정받은 화이트칼라로 보이는 젊은이였다.
오래되지 않은 아킬레스건 문제 환자는 몇 시간 대기 혹은 심지어 며칠도 기다리는 경우가 있다. 2시간이면 수술 준비를 위해 대기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연문빈은 바로 능연에게 알렸고, 능연이 곽종군에게 연락하자 정형외과에서 바로 환자에게 통지했다. 그 환자는 사실 응급 의학과에서 정형외과로 넘긴 환자였다.
요즘 능연은 수술을 까다롭게 고르고 있었다. 손가락 두 개 이하 단지 이식은 하지 않고, 두 개짜리도 얼마나 걸리는지, 잘린 위치 등을 고려했고, 중지 관절 아래로 잘린 환자는 기회가 별로 없었다. 난도도 낮고 수술시간도 짧은 아킬레스건 수술도 요즘은 잘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오히려 지금은 딱 좋았다.
도전성도 없고 신선함도 없는 아킬레스건 수술이라 정형외과 의사들도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 의사는 부담은 크고 성공할 확률이 낮은 스포츠 의학 전문가가 될 생각도 없었다. 그들은 아킬레스건 수술을 그저 난도 낮은 커다란 근건 봉합으로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나 능연이 유위신 아킬레스건 수술을 한 걸 들었던 정형외과 의사들은 곽종군의 전화에 환자를 양보했을 뿐만 아니라 관심 없는 아킬레스건 수술이라도 바로 참관하러 달려왔다.
능연 역시 세수하고 속옷을 갈아입는 동안 아킬레스건 수술이 결정된 것에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그는 새 속옷, 그것도 45위안이나 하는 고가품으로 갈아입고 소독된 수술복을 걸치고 바로 수술 층으로 가서 정형외과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
“능 선생님, 정말 유위신 수술도 했어요?”
아킬레스건이 파열된 환자는 일찍 수술실에 들어간 정형외과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가 능연과 그를 따라온 의사들을 보고는 고개를 흔들면서 물었다.
“맞습니다.”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환자 MRI 사진을 체크했다. 마스터급 MRI (사지) 판독 능력을 가진 그는 지금 스킬 업 포션의 영향으로 그랜드마스터급으로 오른 상태라 환자의 필름을 읽는 동안 무수한 데이터가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컴퓨터에도 연결해 주세요. 데이터 좀 보게.”
능연은 순회 간호사에게 한마디 하고 컴퓨터 앞에 가서 섰다.
준비 오래 한다고 일에 지장 주는 일은 없듯이 스킬 업 포션의 남은 시간은 30분도 채 안 되지만 능연은 여전히 필름 판독을 가장 우선시했다.
MRI 필름에서 제공하는 정보력은 극강이고 프린트로 출력했다가는 방안 가득 종이로 채울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MRI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데이터이며, 필름은 의사가 판독하기 편하게 데이터를 처리한 내용이었다.
그래서 능력 있는 영상의학 전문가는 원본 필름을 읽을 때 데이터와 함께 읽곤 한다. 영상의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박사까지 올라가도 울면서 배우는 이유도 바로 그런 것 때문이었다.
물론, 데이터를 읽는다는 건 반 인류적인 일이다. MRI 표본 추출만 해도 즐상(櫛狀: 빗살모양)함수, 직사각형 함수, 이산 푸리에 변환(Discrete Fourier Transform), 로렌츠-가우스 윈도우 함수 및 다른 각종 윈도우 함수를 알아야 가능했다.
간단히 말해서 공부할 때 ‘로렌츠’만 봐도 머리 아픈 학생은 영상의학과 전공할 생각을 말아야 한다.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로렌츠가 사람을 괴롭히니까.
수술대에 누운 화이트칼라 젊은이는 의사들에게 둘러싸여 온몸에 닭살이 돋아 몸을 비틀었다.
“사람 왜 이렇게 많아요.”
환자는 다소 불안한 듯 투덜거렸다.
“사람들이 이렇게 몰리는 게 싫으면 내가 수술할 수밖에 없어요.”
바뀌어 내려간 정형외과 주치의 손 모씨는 그 이상 평범할 수 없을 만큼 평범한 주치의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오기와 비교 의식이 있었다.
“내가 올림픽에 나가는 것도 아니고. 허허.”
젊은이는 허허 웃다가 능연이 고개를 돌리자 그 틈에 그를 불렀다.
“저기······. 능 선생님, 제 아킬레스건이랑 유위신 거 무슨 차이가 있나요?”
“좀 걷어 올리세요.”
능연은 환자를 힐끔 보고는 간호사에게 지시하자 간호사가 환자 몸을 덮은 수술 시트를 걷어 올렸다.
“유위신이 좀 더 기네요.”
“무······. 무슨 소리세요. 농담하지 마세요.”
“농담 아닌데요?”
환자가 얼굴까지 새빨개져서 하는 말에 능연은 의아한 듯 그를 바라봤다.
“유위신 길이는 평균 길이 두 배인데, 환자분은 평균 길이 2/3?”
“아니······. 네? 아킬레스건 말씀이세요?”
환자가 갑자기 무슨 말인지 깨달은 듯 능연을 바라봤다.
“아킬레스건 물으신 거 아닌가요?”
“네. 그렇긴 하죠. 그런데 대답이 어쩐지······.”
“좀 이상한 거 같은데? 테스트해 봐요.”
환자가 횡설수설한다고 생각한 능연이 연문빈을 불렀다.
“아, 응. 이름이 뭡니까?”
“이주요.”
“나이는?”
“29.”
“아킬레스건이 어떻게 파열된 건지 기억합니까?”
“고리대금 업자한테 쫓기다가 잘렸어요.”
이주가 49세 중늙은이처럼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그 말에 연문빈은 흠칫했다가 질문의 방향을 조금 틀었다.
“고리대금은 왜요?”
쓴웃음 짓던 이주는 사방에 지켜보는 의사들의 눈빛에 갑자기 하소연하고 싶은 마음이 치밀었다.
“결혼 준비 때문에요. 여자 친구가 예물로 30만 위안을 달라고 해서요. 너무 많다고 했더니 반이라도 된다고. 사촌 언니도 결혼할 때 20만 위안을 받았다면서 대학 졸업까지 했는데 중학교 졸업한 언니보다 적게 받을 수 없다잖아요. 없다고 했더니 같이 대출받자고 해서 그렇게 예물값 내고는 결혼식 올릴 돈이 없잖아요. 그래서 소액 대출을 받았죠. 결국 못 갚았고 고리대금 업자들이 쫓고 저는 도망치고. 이렇게 계단에서 굴러서 아킬레스건이 파열됐어요.”
연문빈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능연마저 그 이야기에 빠져들어서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아킬레스건은 넘어져서 다친 거네요? 베인 게 아니라.”
“네. 넘어져서요.”
“그러니까, 아까는 일부러 잘못된 정보를 준 거고요?”
능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부러는 아니에요. 그럴 리가요. 포인트는 그게 아니잖아요. 와이프가 도망갔다고요. 반반씩 하기로 했는데, 가방 사고 화장품 사고······. 제 월급으로는 이자도 못 갚아요.”
“전신마취할 수 있겠어요? 신경과 사람 불러서 진찰할까요?”
능연이 의심스러운 듯 마취의에게 물었다.
“필요 없어. 근데, 재미있구만. 반신 마취하고 이야기 더 들으면 안 돼?”
“전신 마취.”
능연은 단호하게 대답한 후 한마디 더 보탰다.
“잘못된 정보가 너무 많아서 수술 방향을 오도할 수 있습니다.”
능연은 장갑을 끼고 환자의 소독된 종아리를 문질문질, 또 문질문질, 힘껏 문질문질, 충분히 문지른 후에 타이머를 20분으로 맞추라고 지시했다.
스킬 업 포션 효과가 20분 남았으니, 20분 안에 수술을 끝낸다면 이 수술은 레전드급 아킬레스건 수술 기술로 진행하게 된다. 물론, 20분 안에 수술을 끝내지 못해도 문제는 없다.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에서 수술할 때도 아킬레스건 수술 평균 시간이 30분 조금 넘었다. 지금은 수술 전 준비도 끝냈고 특별히 복잡한 수술도 아니라서 마음도 느긋했다.
운화 병원 의사들은 마음도 표정도 모두 그렇게 평화롭지 못했다.
보통 의사가 아킬레스건 수술을 하는 시간은 보통 한 시간 정도였고 꾸물거리는 습관까지 계산하면 한 시간 반까지도 흔한 일이었다.
가끔 속도를 추구하는 의사가 50분까지 단축하는 경우도 있지만 경기하듯이 시간을 한정해서 달리는 사람은 없었다.
20분은 더 말할 필요도 없고.
20분으로 뭘 한단 말인가. 일반적인 수술에서 20분으로 스킨 봉합도 모자란다. 특히 초짜 의사는 스킨 봉합만 해도 몇십 분 걸리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숙달된 정형외과 의사도 수술 한 번에 20분이라는 개념은 없다. 뼈암 환자의 뼈를 꺼내 익히는 시간만 해도 20분이 넘는다.
그러나 능연은 다른 정형외과 의사가 뭐라고 생각하든 신경 쓸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모든 사람 마음에 들 수 없다는 걸 깨달았고,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밉보일 수 있다는 걸 터득했다. 그래서 어른이 된 다음, 사람이 아닌 일의 본질에 따라 일 처리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 하는 수술도 20분 안에 할 수 있고, 20분 안에 끝내야 하면 그 시간 안에 끝낼 것이다. 정형외과 의사가 난처해지든 말든 그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 누군가 길에서 고백한다고, 그 사람이 난처하지 않도록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사귈 수는 없지 않은가? 거절 말고 다른 방법은 없었다.
“메스.”
능연은 팔을 뻗어 메스를 잡아서 선을 그려놓은 위치에 핑거팁 그립으로 S를 그렸다. 스킬 업 포션 덕에 그의 핑거팁 그립 기술은 전문가급에서 마스터급으로 상승했다. 전문가급의 기능은 운화 병원 같은 정상급 병원에서는 보통이었다.
그러나 마스터급은 정말로 절묘했다.
서른 넘은 주치의는 물론이고 천부적인 재능 없는 부주임도 마스터급 기술을 익히지 못한다. 어쩌면 천부적인 재능 있는 의사도 시간과 기회가 있어야 마스터급 기술을 익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
번 주임만 봐도 탕 봉합이 아직 마스터급 수준에 오르지 못했는데,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운화 병원에 탕 수술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능연이 오기 전에 운화 병원은 탕 봉합을 하지 않았으니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탕 법을 전개하려면,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도 익히기 힘들다.
그러니 번 주임이 탕 법으로 전문가급까지 오른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고, 그런 그라도 마스터급까지 오르려면 1, 2년, 혹은 2, 3년 끊임없이 연마해야 돌파할 수 있다.
“녹화해.”
한가해서 구경 왔던 부주임이 제법 눈치가 있어서 곁에 있던 의사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지명된 의사가 ‘아’ 소리를 내고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촬영 모드로 돌렸다.
“수술실에 핸드폰 들고 들어오면 안 된다. 이번엔 봐 주지만, 다음은 없어.”
“아, 네.”
부주임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하는 말에 초짜 레지던트가 풀 죽은 얼굴로 액정을 바라봤다.
핸드폰, 양말, 슬리퍼, 모두 수술실의 오염원이었다. 하지만 집도의, 어시, 스크럽 간호사 모두 만지지 않을 뿐, 수술실에 들고 들어가지 않는 의사는 드물었다. 병원에서 아무리 잔소리해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의사들은 갖가지 제도와 규칙을 준수하지만, 이상하게 핸드폰, 슬리퍼, 양말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래서 핸드폰은 병원에서 ‘죄악의 핸드폰’이라고 불린다. 검사할 때 분명 핸드폰이 없던 의사들도 CCTV로 지켜보면 얼마나 전화를 많이 거는지, 게임을 몇 판이나 깨는지 모른다.
부주임도 분명 핸드폰을 들고 있겠지만, 꺼내지 않은 이상 가지고 들어오지 않은 것이 된다.
지적당한 초짜 레지던트가 수술대 앞으로 다가가자 주치의 하나가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괜찮아. 우리도 옛날엔 깜빡하고 들고 들어왔어. 2년 정도 지나면 알게 될 거야.”
“선생님이 핸드폰 안 들고 들어왔으면 제 허리춤에 닿은 건 뭡니까?”
초짜 레지던트는 수술대를 핸드폰 앵글에 맞추면서 억울한 듯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