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161화 (142/877)

아침에 수술을 한 건만 한 능연은 느긋하게 회진을 돌면서 진심 어린 감사 보물 상자를 4개 더 거뒀다.

시스템 인터페이스에 누적된 보물 상자 16개를 보며 능연은 고민에 빠졌다. 16은 2의 4제곱으로 쓸 수 있다. 2*2*2*2를 2진제에서 보면 16은 10000이니 정말 딱 맞아지는 숫자가 된다.

그럼 지금 상자를 열 것인가 말 것인가.

지난번 연속 열기에서는 한 번에 두 스킬을 얻었었다. 감장 봉합과 피내 봉합은 겹치는 기술 같지만, 세트 기술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기술이 연달아 나오는 것이 더 유용하다.

보물 상자 16개에서 스킬 두 개를 얻을 확률엔 자신이 별로 없었다.

능연은 깊이 생각에 빠졌다가 빠르게 결정 내렸다.

“아직 수술 없으면 신체 진찰이나 할까요?”

“아까 덜 봤어?”

연문빈은 안 될 건 없지만 의아하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다 볼 수 있나요, 어디.”

능연은 입을 삐쭉거렸고, 연문빈은 반대할 여지가 없었다. 의사에게 검사란 아무리 많이 해도 부족한 것이다. 인체는 사람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혈압 수치를 정밀하게 따지지 않아서 그렇지, 간단한 혈압 체크도 혈압을 재는 방식에 따라 다르고, 양팔의 혈압도 다르고, 자세에 따라 다르고, 아침, 저녁에 따라 다르다. 정밀도를 요구하는 검사 항목도 사실 사정은 비슷하다.

MRI도 정상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참고 자료를 정상인 100명에서 400명까지 통계로 만든 것에 불과하다.

신체 진찰은 그래도 간편한 검사 방안인데 시행 빈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환자들은 항상 확실한 답을 원했고, 의료 소송도 마찬가진데 신체 진찰만으로는 힘들었다. 그러나 초기 판단을 내릴 때는 신체 진찰의 필요성을 무시할 수 없었다.

능연은 병실로 돌아가서 한 바퀴 돌면서 순서대로 환자들의 신체 진찰을 다시 했다. 뒤를 따르는 연문빈은 정신없이 바빠져서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6, 70년대 의사들은 회진 두 번 했다고 듣긴 했는데, 내가 겪을 줄은 몰랐다야.”

“처음엔 그냥 환자들의 기본 요구를 맞춰 준 거고, 다시 자세히 검사하면서 환자 문제 해결 해주는 거니까 안 될 것도 없죠. 내과 의사가 아니라 아쉽네요.”

외과와 내과의 적응 증후군은 확연히 달라서 대응 능력도 달랐다. 배탈 같은 고질병은 어쩌면 작은 병이라서 환자가 집에서 처리할 수도 있지만, 외과 의사는 내과 의사보다 배탈을 자유롭게 다루지 못한다. 고려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겨우 증상만 해결할 뿐, 문제는 해결 못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능연도 함부로 약 처방을 내릴 수 없어서 가끔 문제가 검출된 환자를 만나면 검사를 좀 더 하도록 준비해주곤 했다.

연문빈은 아직 외과 기술도 제대로 터득하지 못하고 여전히 테크놀로지 트리 뿌리 쪽에 있었고, 노트만 점점 무거워지고 차트는 점점 쓰기 어려워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혹시라도 상급 의사에게 말을 꺼냈다가는 욕만 한 바가지 먹을 것이 뻔한 그런 생각은 혼자 생각할 뿐이었다.

그는 노트를 바라보면서 듣기 좋은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넌 내과 의사보다 신체 진찰 잘하잖아. 잠깐 사이에 벌써 여러 문제를 체크해 냈고.”

“안 그래도 침대도 모자라니까, 검사 열심히 해서 회복이 빠르고 별문제 없는 사람들은 일찍 퇴원시키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연문빈이 껄껄 웃었다. 그렇게 회진을 한 바퀴 더 돌면서 능연은 ‘진심 어린 감사’ 보물 상자를 하나 더 얻었다. 거기다 환자 두 명의 퇴원 시기를 정했으니 성과는 있었다. 마지막 병실을 나왔을 때, 연문빈은 벌써 지쳐서 숨을 몰아쉬었는데 능연은 그만둘 생각이 없다는 듯 꼿꼿하게 서서 52번 환자를 세밀하게 검사했다.

“간담췌외과 회진 요청 좀 해야겠어요.”

“뭐가 안 좋아?”

연문빈은 능연의 조수로 수술 수백 건을 참여했지만, 병원에서는 여전히 레지던트였고 병실 구역에서는 침대 관리 의사였다. 그래서 그는 환자와 가장 가깝게 지내면서 환자의 상태를 이해했고, 환자들의 걱정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매일매일 접촉하다 보니, 2주 정도 지나면 집에 키우는 강아지 이름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환자의 부모, 친척, 먼 친척, 동료까지 만나게 된다.

능연은 사실상 상급 의사, 그것도 외과 상급 의사 생활을 하므로 그의 주요 업무는 수술이다 보니 환자 상태는 침대 관리 의사보다 더 몰랐다. 이런 상황도 모두 병원 시스템 때문에 생긴 현상이었다.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 한국, 인도 등 아시아 혹은 유럽, 미국도 마찬가지였고 집도하는 외과 의사는 의식적으로 환자 관리 시스템에서 몸을 뺀다.

단순히 일이 바빠서라고 그런 행위를 해석할 수는 없다. 내과 의사도 일이 바쁘지만, 내과는 거물 의사들도 경중에 상관없이 직접 일을 처리해야 한다.

능연은 다른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는 데 서툴지만, 연문빈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능연은 특별히 진지하게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급성 담낭염일 가능성이 있어요. 압통(tenderness)과 반발통(rebound tenderness)이 있어요. 담낭 압통은 아직 두드러지지 않은데, 진행 중일 가능성이 있어요.”

급성 담낭염인 경우 수술해야 하지만, 신체 진찰 하나로는 확증할 수 없었다. 대단한 증상도 아니라서, 연문빈은 오히려 안심하며 재빨리 준비하러 사라졌다. 잠시 후, 간담췌외과에서 누군가 뛰어 내려왔다.

운화 병원 간담췌외과는 평범한 수준이었다. 물론 그건 정상급 삼갑 병원 기준이었고, 급성 담낭염 같은 질병은 간담췌외과 의사 중에 아무 주치의나 불러도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단 선생님, 여기 능 선생입니다.”

“그래, 차트 좀 줘 봐.”

안면 있던 연문빈이 소개하자 단 선생은 살짝 고개를 까딱이며 손을 내밀었고 연문빈은 준비된 차트를 건넸다. 단 선생은 복도에 서서 바로 읽기 시작했다.

“심박, 혈압이 다 높네. 이러면 수술 못 하는데.”

단 선생은 연문빈의 기록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연문빈은 흠흠 헛기침하고는 입을 열었다.

“능 선생이 직접 검사했고, 정상 수치입니다.”

“이렇게 젊은 사람이 혈압이 130이 넘는데 정상이라고? 심박도 90이면 높은 거야.”

단 선생이 연문빈의 대답에 언짢은 듯 대답했다.

“일반적으로, 능 선생이 직접 검사할 때 여자 환자, 특히 미혼 여성일 경우 혈압과 심박이 올라갑니다. 그 수치에서 15에서 20을 빼면 됩니다.”

단 선생은 턱이 빠질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서 별다른 변화 없이 침착한 능연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다시 연문빈을 바라봤다.

“농담이지?”

“제가 왜 농담을 합니까. 숫자가 떨어진다는 걸 제가 어떻게 알았게요?”

연문빈이 슬픈 표정을 지었다.

단 선생은 차트를 확인하고 병실로 들어가서 52번 침대를 찾아서 환자 한 번 차트 한 번 번갈아 봤다.

“이로 씨, 운화 병원 간담췌외과 주치의 단명입니다. 검사 좀 할게요.”

스물 대여섯 정도 되어 보이는 달걀형 얼굴의 아가씨인 이로는 단 선생의 말에 별생각 없어 보였는데, 곁에 있던 엄마는 다급해졌다.

“얘한테 무슨 일 있나요?”

“아직은 확진할 수 없습니다. 먼저 검사 좀 하고요.”

단 선생은 친절하게 대답했다. 병원에서 의사가 친절하게 대하는 환자는 진짜 환자밖에 없었다. 특히 자기 주력 수술에 부합하는 환자는 더욱 인내심을 가지고 대했다.

단명 같은 주치의는 한 달 수술량이 대략 20건에서 30건 정도였고 평균 매주 이틀에서 사흘 수술했다. 즉 하루에 두어 건 수술하기 때문에 수술 전날 환자 두어 명 상대하는 건 그렇게 큰 부담이 아니었다.

이로의 차트를 본 다음 단명은 급성 담낭염 가능성을 70% 이상 확정했지만, 수술을 할 건지 말 건지, 수술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검사를 더 해봐야 한다. 그리고 그는 확정 전에 결과를 말하지 않는다.

“마가 꼈나. 다친 손도 안 나았는데 갑자기 간담췌외과 의사는 왜······.”

이로의 엄마는 다급하긴 해도 어쩔 수 없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단 선생은 변함없이 미소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자, 머피 징후 테스트 좀 할게요.”

이로는 어안이 벙벙한 듯 단 선생을 바라봤다.

“똑바로 누워서 무릎을 감싸고 안아요. 복부 좀 누를 거예요.”

단 선생은 자세를 알려주며 침대 주변의 커튼을 쳤다.

운화 병원 응급 의학과 병실은 3인실 아니면 4인실이었다. 병실의 벽은 하늘색으로 칠해졌고 침대마다 커튼이 달려 있었다. 하늘색 커튼을 치면 소형 검사실이 된다.

단 선생은 가족에게 나가라는 지시 없이, 이로가 자세를 취하자 왼손바닥으로 그의 늑골 아래를 누르면서 왼손 엄지로 담낭 위치를 찾았다.

“천천히 심호흡해 보세요.”

“아까 능 선생님이 검사했는데요······. 한 것 같아요.”

“다시해 보는 겁니다.”

이로가 인상을 찌푸리며 하는 말에 단 선생은 긴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같은 검사를 여러 번 하는 것은 병원에서 흔한 일이었다. 의사들은 서로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의사들이 실수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외과 의사는 특히 그런 쪽 교육을 강력하게 받는다. 의대에서도 지금까지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직접 테스트해야 한다, 차트를 믿으면 안 된다고 교육한다.

외과 의사는 아무도 못 믿는 병에 걸린 사람들이다.

머피 테스트는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직접 해봐야 했다. 예전엔 머피 테스트에서 담낭염이 검출되면 수술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염증이 생긴 담낭을 단 선생이 힘주어 누르자 이로가 순간 통증으로 몸을 떨었다. 능연이 테스트했을 때와 똑같이. 그러자 이로 모녀는 상황이 안 좋다는 걸 깨달았다.

단 선생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급성 담낭염 같습니다. 심각한 건 아니고요. 일단 소염하고 상황을 지켜보도록 하죠. 일단 개복 CT 신청해놓을 테니 가서 해보시고요.”

“네. 급성이면 위험한 건 아니죠?”

“급성 담낭염은 작은 병이죠.”

이로의 엄마는 마음을 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럼 됐어요. 아이고, 진짜 마가 끼었네. 삼시 세끼 비둘기탕이니 삼계탕이니 오리탕이니 해주는데도 이런 병에 걸리다니.”

“그래서 그런 겁니다. 단백질이 너무 높아서.”

단 선생이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너무 많이 먹어서요?”

“그렇죠. 좋은 걸 너무 많이 먹으면 췌장염, 담낭염에 걸릴 수 있어요.”

이로의 엄마는 멍해졌다가 갑자기 고함쳤다.

“다 남편 때문이에요! 꽃이나 심으라니까 안 심고, 무슨 비둘기 기른다고. 멀쩡한 연꽃 연못에 무슨 붕어를 기르지 않나. 그것도 얼마나 많은지, 아니었으면 제가 탕으로 끓일 생각을 했겠어요?”

단 선생도 잠시 멍해졌다가 한참 후에 부럽다는 듯 이로의 엄마를 바라봤다.

“요즘 시골 생활 좋네요. 도시는 하늘 보려고 고개 들었다가 내려다보면 시멘트 바닥이고, 출근만 했다면 20시간이라서 집에 갈 때 시장도 다 닫거든요.”

“우리도 그래요. 우리 저기 대관영에 살아요. 병원에서 얼마 안 멀어요. 처음에 별장 살 때 주변 땅도 좀 사서 정원으로 만들었거든요. 집에서 먹을 것 정도는 심어서 먹을 수 있게. 그래도 진짜 시골이랑 다르죠. 일단 공기가 완전히 달라요.”

한숨을 내쉬며 하는 이로 엄마의 말에 단 선생은 운화 집값과 대관영 별장 구역 집값을 저절로 떠올렸다가 거기에 땅값까지 계산하고는 담낭이 다 떨리는 기분이 되었다.

“혈압이랑 심박도 좀 검사해 봅시다.”

단 선생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렇게 말했고, 5분 뒤에 병실에서 나갔다.

“연 선생, 환자 우리 진료과로 보내.”

연문빈은 시키는 대로 했다. 급성 담낭염에 ‘급’자가 있다고 해서 응급 의학과에서 처리할 필요는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담낭염에 관심 있는 응급 의학과 의사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능연 같은 의사를 제외하고 일반 응급 의학과 의사는 전문 진료과 수술을 뺏으려고 들지도 않는다.

새로운 수술 방법 하나 터득하려면 적어도 수술 몇백 건을 해야 하는데, 일반 의사는 3, 4년 걸린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다.

능연은 연문빈이 진료과 변경 리스트를 치우는 걸 보다가 옆에 보조 사인하고 멍하니 빈 침대를 바라봤다.

“다른 환자도 병이 있는지 확인해서 다른 진료과로 보내려는 건 아니겠지?”

“설마요.”

연문빈이 어두운 얼굴로 묻자 능연이 껄껄 웃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 같은데? 능 선생,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지?”

“환자 진찰해서 병 찾아내는 것도 문제인가요?”

능연이 되묻는 말에 연문빈은 뇌가 잠시 다운됐다.

“하마터면 설득당할 뻔했네.”

“이론적으론 잘못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내과 진료도 하겠다는 거네?”

연문빈은 한숨을 내쉬면서 능연의 팔을 잡아끌고 나갔다.

“능 선생, 수술 말고 다른 거 하고 싶은 생각 없어?”

“예를 들면요?”

“집을 산다던가? 수술비 많이 벌었잖아. 조금만 더 벌면 계약금 낼 수 있을걸? 요즘 여자들은 말이야, 결혼할 때 집, 차 있어야 해. 선은 더 그렇지. 차 없고 집 없으면 소개도 못 받아서 성사도 안 돼.”

“아.”

능연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휴, 능 선생아, 좀 진지하게 생각해. 집 문제는 작은 문제가 아니라고. 본가가 있긴 해도 결혼해서 그 집에서 살 것도 아니잖아. 요즘 여자들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아냐? 누가 시집 식구랑 같이 사냐. 언젠가는 집을 사야 할 텐데, 일찍 사두면 좋잖아. 일찍 하면 부담도 덜하고, 몇 년 지나면 대출도 갚을 수 있고.”

연문빈은 눈빛을 빛내며 능연을 바라봤다. 능연은 여전히 가볍게 ‘아’ 소리를 내며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연문빈은 잠시 아무 말 없이 걷다가 못 견디고 다시 말을 꺼냈다.

“능 선생. 나는 병원 앞에 작은 집 계약금 낼 생각이야. 같이 가서 볼래?”

“집 산다고요?”

능연이 드디어 반응하자, 연문빈이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딱 계약금 낼 정도로 모았어. 집은 살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잖아. 결혼처럼 말이야, 나중에 아이 학교도 생각해야 하고······.”

“능 선생님, 안녕하세요.”

“능 선생님, 오늘 싱싱한 대하를 구해왔어요. 언제 식사하실 거예요? 이따 주방장님한테 요리해 달라고 하게요.”

“40mm 넘는 새우예요. 끝내준답니다.”

간호사들이 방긋방긋 손을 흔들면서 새하얀 팔뚝을 내밀며 대하 크기를 보여줬다. 연문빈은 그들의 손짓을 보며 저도 모르게 침묵에 잠겼다.

“점심때 수술할 생각이라서 우유나 마시려고요. 저녁에 먹을게요.”

“그러세요, 그럼. 천천히 해동해 두라고 할게요.”

간호사 두 명이 손을 흔들면서 폴짝폴짝 뛰어갔다.

“이따 잣 한 박스 너스 스테이션에 보내주세요.”

능연이 당부하는 말에 연문빈은 어깨를 늘어뜨리고 중얼거렸다.

“난 곧 집을 살 사람인데, 왜 이런 중개인 역을 해야 하냐고······.”

능연은 연달아 2주 동안 하루 평균 수술 건수를 2건 이하로 컨트롤하고 나머지 시간엔 곽종군을 따라 응급 의학과의 이런저런 업무를 익히거나 의국에서 책을 읽었다.

평생 공부해야 하는 사람인 의사는 하루에 2시간을 자가 학습에 써도 최신 논문은커녕 새로운 교재를 다 읽지도 못한다.

다른 사람에 비해 능연은 책을 빨리 읽는 편이었다. 대학교 2학년 때 그는 해부용 시체 곁에서 기초 교과서를 다 읽어 치웠다. 나머지 3년 동안 능연은 치열하게 공부했지만, 겨우 3등에 머물렀고, 1등은 아주 가끔 할 뿐이었다.

능연은 그런 성적에 만족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공부 천재는 아님을 인정했다. 천재는 대학에서 성적 경쟁에 끼어들지 않는다. 그가 어린이 스타 선발전에 나갔을 때도 곧장 결선에 갔던 것처럼 말이다.

본가에 돈이 궁하지 않아서 어린이 스타의 길을 따라 성인 연기자가 되지는 않았지만, 초등학교 때 그런 경력은 충분히 참고 자료가 되었다.

대학교 1학년 기말고사에서 세 과목만 1등이고 나머지 과목 중 하나는 8등을 했을 때, 능연은 자기가 공부할 재목은 아님을 깨달았다. 그 후로 능연은 겸손한 마음으로 공부했다.

시스템을 얻지 못했다면, 능연은 다른 사람 배는 되는 시간을 들여 공부하면서 연구 쪽 일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시스템이 그에게 탁월한 공부 능력을 주지는 않았기에 계속해서 고개를 박고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수술과 비교해서 단순한 공부는 지루하기만 했다.

수부외과 왕해양이 출장 수술을 한 건 더 주선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능연은 근질근질해서 나머지 침대를 다 채워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능연이 아무리 ‘절약’해도 남은 병상은 점점 줄어들어서 금세 한 자릿수가 됐다.

“능 선생님, 침대 추가도 한계가 왔어요. 이제 더는 안 돼요.”

수간호사가 일부러 의국을 찾아 그 사실을 알렸다. 그의 등 뒤에 연문빈, 마연린과 여원이 조심스러운 얼굴로 서 있었다. 의국 안의 의사들은 능연이 폭발하는 장면을 기대하며 눈을 크게 떴다.

의사는 병원 생활을 하다 보면 언젠가 한 번은 숨이 넘어갈 정도로 화를 내다가 산소마스크를 껴보기도 해야 하는데, 아직 능연이 화내는 걸 본 적이 없어서 늘 뭔가 부족한 기분이었다.

차트를 보던 능연이 몸을 돌리더니 온화한 목소리로 ‘한계요?’ 하고 물었다.

“101개요. 이제 더는 무리예요. 자리도 없고, 간호사들도 그렇게 많은 환자를 케어할 수 없어요. 의사들도 회진 시간이 너무 길어지고요. 그리고 응급 의학과는 원래 침대 여유가 좀 있어야 해요.”

“네, 알아요.”

능연은 그때 180개 침대에 더 추가할 수 있었던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가 조금 그리웠다. 그의 기억으로는,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엔 아직 개방하지 않은 구역이 반이나 더 있었다. 전부 개방하면 침대를 180개 더 추가하는 것도 문제가 아니었다.

운화 병원 응급 의학과는 건물은 컸지만 그런 공간은 없었다. 능연도 그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능 선생, 수술 잠시 멈출까?”

“퇴원 환자 없어요?”

“평균 입원율을 줄였는데도, 당분간은 없을 거 같아.”

“알겠어요. 휴우, 그럼 쉬어요. 저도 집에 갈래요.”

그는 간다고 말하고는 바로 컴퓨터를 끄고 의국에서 나갔다. 응급 의학과 다른 의사들은 계속 응급실 업무를 해야 하지만, 능연은 내킬 때만 데브리망 하러 갈 뿐이었다. 침대가 없다고 하니 집에 갈 수밖에 없었다.

능연이 응급 의학과 건물 밖에 도착했을 때, 곽종군이 어슬렁어슬렁 의국에 나타났다.

“능연은? 집에 갔나?”

“네, 돌아갔습니다.”

뻔히 알면서 묻는 곽종군의 말에 마연린이 냉큼 대답했다.

“휴우, 도저히 침대가 비워지지 않는군.”

곽종군은 영웅의 뜨거운 눈물이라도 흘리는 듯 의국 창문 앞의 난간을 붙들고 멀리 사라지는 능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의사가 필요한 만큼 만족시켜주지도 못하다니. 다 내 탓이지, 내 탓이야. 다음 원무 회의에서는 더 노력해야겠어.”

“곽 주임님!”

“주임님!”

“감동입니다!”

주치의들이 앞다퉈 곽종군의 장단에 맞춰 춤을 췄다. 레지던트들은 분위기 파악 못 하고 어리둥절해서 눈만 껌뻑였다. 부주임쯤 되는 의사는 그런 식으로 생존할 시기는 이미 지났다. 다행히 응급 의학과 주치의 수가 충분해서 어찌어찌 곽 주임의 TV쇼 급 무대를 받쳐줄 수 있었다.

“작은 가능성만 있어도 나는 우리 과에 더 많은 병상을 얻어 내겠네. 대형 응급 의학과는 병상이 없으면 안 돼. 병상은 지금 우리 과 아킬레스건이지만, 다들 너무 초조해하지 말라고. 우리 응급 병동을 지을 때 예비 공간을 남겨 뒀었네. 정 안 되면 입원 병동을 쪼개서라도 자리를 만들어내겠네.”

“곽 주임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역시 주임님은 다르시네요.”

“주임님도 너무 초조해하지 마세요. 젊은 사람들은 원래 성격이 급하잖습니까. 조금 기다리라고 하세요.”

곽 주임이 긴긴 한숨을 내쉬며 하는 말에 주치의들이 너도나도 한마디 보탰다. 역시, 짬밥은 무시할 수 없었다.

곽 종군은 잠시 서 있다가 능연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멋쩍은 듯 자리에 앉아 연문빈 등을 바라봤다.

“수술실에서만 능연 어시할 게 아니라 생활도 많이 도와야 하네. 능 선생 멘탈, 생활 같은 거 말일세.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건 도와야 해. 알겠나? 능연이 수술에만 집중하다 보면 다른 건 놓칠 수 있어. 그때 자네들이 잘 처리해야 하네.”

“네······.”

연문빈은 대표로 대답하면서 속으로 ‘능 선생 생활을 우리가 챙길 필요가 뭐가 있나요, 여자들이 다들 난리인데요.’하고 꿍얼거렸다.

당부를 마친 곽종군은 죄책감을 내려놓고 얼굴에 미소를 드러냈다. 능연이 응급 의학과에 온 이래, 과 전체 수입이 점점 올라서 이미 손실 언저리를 벗어났다. 어느 병원 응급 의학과든 손실의 늪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이익 창출을 위한 어떤 운영 방식도 허용했다.

곽종군은 뭔가 능연을 서포트할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기 시작했다. 대형 응급 센터는 정형외과의 이익을 취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다른 과에서도 조금씩 빼앗아 와야 했다. 정 안 되면 다른 병원에서 환자를 빼 올 생각까지 했다.

다만 그렇게 하려면 응급 의학과의 지출이 더 커질 수도 있었다. 어쩌면 새로운 수술 기계와 도구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그런 쪽으로 가야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되면 주치의들은 반대하지 않더라도 다른 주임과 부주임은 반대할 것이다.

곽종군은 본인의 연기에 제법 만족했다. 응급 의학과 큰 주임 노릇을 몇 년 동안 하면서 그런 일 정도는 가끔 했다. 그리고 언제까지 응급 의학과 모든 의사가 능연의 피를 빨고 살 수는 없었다.

“주임님, 전화 왔습니다.”

의국에 있던 의사가 전화를 들고 의아한 듯 곽종군을 불렀다.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내던 곽종군도 의아한 듯 수화기를 바라보며 다가갔다.

“여보세요.”

“곽 주임, 나 축동익이오. 하하하, 초대장 보낼 게 있어서 말이오.”

“무슨 초대장 말씀입니까?”

“음, 우리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에서 능 선생의 도움에 크게 감사하고 있어서요. 이번에 우리 센터에서 국제 교류 회의를 한 건 주최하는데, 능 선생을 손님으로 초대하고 싶소. 그래서 내 특별히 곽 주임께 전화 드렸소, 능 선생 시간을 좀 비워주시라고 말이오.”

수화기 너머 축동익의 힘이 가득한 격앙된 목소리에 곽종군도 기뻐했다. 국제 교류 회의는 의사들이 꽤 좋아하는 이벤트였고 그도 해마다 참석했다. 그런 회의에 능연이 참석할 수 있다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로 승낙하려던 찰나, 곽종군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손님으로 가서 뭘 하면 되나요?”

“골관절에 대해 연설을 해야지요.”

“능연이 그럴 자격이 될까요?”

“왜 안 됩니까. 충분하고도 남지요. 외국 의사 앞에서 연설도 하겠네. 하하하.”

축동익은 껄껄 웃었고, 이상한 걸 발견하지 못한 곽종군은 직접 능연에게 연락해 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를 끊은 곽종군은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돼, 안 돼. 병상부터 늘려야겠어. 원장한테 가 봐야겠다.”

“예?”

“갑자기요?”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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