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164화 (145/877)

능연은 재빨리 자신의 스킬을 검색했다. 마스터급과 그랜드마스터급 기술은 일단 고려하지 않았다. 그 기술들의 전국 순위는 원래 높았고, 도시 순위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120위나 오를 자리가 있는지는 둘째 치고 난도도 너무 높았다.

그에 비해 전문가급 스킬은 올라갔을 확률이 높았다.

“단속 수직 매트리스 봉합은 알 봉합 전문이고, 곽 주임님이 알 모으기 쉽지 않을 거야. 수직 매트리스 내번 봉합이랑 단속 수평 매트리스 봉합은 주로 위장 봉합에 쓰니까 이것도 어렵고. 핑거팁 그립이나 핸드 그립 메스법이 가능성이 그나마 있군.”

메스라······.

능연은 우선 쌍꺼풀 수술을 떠올렸다. 회전율로 봐도 하루에 100번은 오버라고 해도 4, 50번은 가능했다. 다만, 운화 병원엔 그런 항목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성형외과를 찾아 연결하기도 귀찮았다. 게다가 쌍꺼풀 수술은 대부분 여자고, 하루에 50명 가까이 상대하다간 지쳐 쓰러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시스템! 내가 고기 사다가 연습해도 돼?”

능연은 아무래도 허점을 찾아낸 것 같다고 생각하며 물었다.

- 됩니다. 순위만 계산합니다.

시스템이 통쾌하게 대답했다. 순위만 계산한다는 건 결국 연습 성과에 달렸다는 뜻이었다.

돼지고기를 사서 연습하는 건 초심자의 연습 방법에 매우 적합하지만, 전문가급 메스 기술을 효과적으로 올리려면 돼지고기만으로는 어려울 것 같았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능연이 다시 물었다.

“그럼 내 메스 스킬은 몇 등인데?”

- 핸드 그립은 운화 시 765위, 핑거팁 그립은 558위입니다.

능연은 대부분 핑거팁 그립으로 메스를 잡고, 비교적 세밀한 핸드 그립은 덜 사용했다. 순위를 들은 능연은 자극을 받았다.

운화 시 500위 밖이라는 얘기는 능연의 기술이 평범하다는 말이었다. 이건 신체 진찰과 달랐다. 신체 진찰에 능통한 건 아무래도 내과 의사고, 특히 나이든 내과 의사는 경험이 있고 본 것이 많아서 신체 진찰 수준도 당연히 높았다. 연습할 기회도 많고, 해마다 학교, 회사 등 건강 검진을 나갈 기회도 많다. 그러니 능연이 몇 등에 있어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러나 절개술은 순수한 외과 기술이다. 능연의 핸드 그립이 765위라는 건 운화 병원에서도 백몇 등이라는 소리였다. 그것도 스킬을 얻은 후 수백 번 수술을 한 다음에 말이다. 그러나 순위를 올리고 싶다고 바로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또 ‘전문가급’이라는 것도 사실 실수를 안 할 정도의 수준인 것이다.

동자승 동한생이 추나를 배우는 것만 봐도 입문에서 전문가급까지 매우 빠르게 올라갔고, 조건도 상대적으로 낮았다. 그러나 전문가급에서 그 위로 올라가는 건 느렸다.

능연이 신체 진찰을 시작한 지도 좀 됐는데 아직도 전문가급이었다. 그런데 순위는 꽤 올라갔다는 건 전문가급 기술 트리가 아직 높다는 뜻이었다.

“핑거팁 그립을 100등 올리려면 얼마나 걸려?”

능연의 질문에 시스템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정확한 대답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중급 보물 상자 열어 봐.”

능연은 입을 삐쭉거리며 그렇게 말해놓고 속으로 절개, 절개, 절개하고 외쳤다.

찬란한 빛 속에서 스킬북 하나가 눈앞에 나타났다.

-기관지 절개술(그랜드마스터급)

그랜드마스터급이라는 글씨에 능연은 이미 만족했다.

의사의 스킬은 당연히 난이도 구분은 있지만 문제 해결은 모두 가능하다. 관상동맥 우회술을 할 줄 아는 의사라고 반드시 장폐색을 할 줄 아는 의사보다 사람을 더 많이 구한다는 보장은 없다. 물론, 장폐색은 똥을 건져야 하니 특수하긴 하지만.

기관지 절개술은 응급 의학과와 ICU에서 가장 자주 쓰는 기술 중 하나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가장 자주 쓰는 외과 기술이기도 하고. 길에서 갑자기 고함치며 만년필을 바로 기도에 꽂고 폐를 가르는 것을 보면 기관지 절개술이구나 하듯이 말이다.

이론상 훈련의는 모두 기관지 절개술을 트레이닝 받는다. 게다가 적으면 5번 많으면 10번 실제로 조작해야 하고. 그러나 국내 현재 상황으로는 기관지 절개 수술할 기회를 얻는 젊은 의사는 많지 않았다. 그럴 기회가 있을지는 운도 따라야 하고 본인의 적극성에도 달려 있었다.

능연도 학교에서 기관지 절개술을 배웠었다. 그러나 실제로 조작하기 전에 배운 걸 유용하게 써먹긴 힘들었다. 그러나 눈앞의 스킬북을 살짝 터치한 후, 능연은 이미 기관지 절개 능력자가 되어 있었다.

“괜찮네.”

능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관지 절개술도 절개고, 핑거팁 그립이든 핸드 그립이든 다 쓸 수 있어서 조금은 연습이 되리라 생각했다.

“능 선생?”

여원이 능연을 불렀다. 회진을 마친 그들은 차트를 쓸 생각으로 의국으로 돌아왔다.

“아, 쉬세요. 전 응급실에 좀 다녀올게요.”

해도 해도 일이 끝나지 않는 연문빈과 여원은 망설임도 없이 사라졌고, 마연린은 재빨리 능연 뒤로 따라붙었다.

“능 선생, 내가 도와줄게.”

“할 일 없는데요. 그냥 할 거 없나 가보는 겁니다.”

당분간 어시는 필요 없었다. 그럼에도 마연린은 헤헤 웃으면서 능연을 따라갔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사람 없는 복도를 지날 때 다시 낮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능 선생, 나 로테이션 기간 끝났어. 주임님한테 말씀드렸더니 응급 의학과엔 빈자리가 없다고 다른 과로 가라고 하시더라고.”

훈련의는 많은 진료과를 로테이션 해야 하는데 마연린은 응급 의학과에서 이미 예정보다 오래 머물렀다. 마연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능연을 바라봤다.

“곽 주임님한테 말씀드려서 나 응급 의학과에 있게 해주면 안 돼?”

“훈련의가 그래도 되나요?”

“넌 실습생인데요.”

“아······. 말씀드려 볼게요.”

제도니 규칙이니, 이런 걸 잘 몰라서 묻던 능연은 마연린이 눈을 껌뻑이며 하는 말에 크게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마연린의 표정이 그제야 가벼워졌다. 그는 로테이션 문제로 벌써 며칠째 고민했었다. 다른 진료과에 가는 것보다 능연 밑에서 배우는 게 훨씬 좋은 기회였다. 단지 이식 퍼스트 어시만 해도 정형외과에 간다고 해서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마연린은 한 바퀴 다시 돌아서 왔을 때 능연 밑에 다른 조수가 있을까 봐 제일 두려웠다.

그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높은 수술 빈도에, 많은 환자에, 능연의 작업량은 일반 진료과의 소규모 진료팀보다 훨씬 많았다. 마연린이 떠나면 바로 새로운 조수가 필요할 것이다. 그럼 그의 자리가 없어진다.

마연린은 능연을 바라보며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덧붙였다.

“능 선생. 곽 주임님이 다른 레지던트 붙여준다고 할 수도 있어. 알았다고 하면 안 돼. 너 오래 따라다니면서 네 습관도 다 익숙해졌잖아. 다른 레지던트는 나처럼 편하지 않을 거야. 내가 응급 의학과 사람이 아니라서 그렇지, 내가 응급 의학과 사람이었으면 곽 주임님도 나 안 보냈을걸? 사실 응급 의학과로 신청했는데, 곽 주임님이 신경 쓰시기 귀찮은가 봐.”

“그러면 곽 주임님을 설득하면 되잖아요.”

“어떻게?”

“아킬레스건 수술이랑 탕 법 집도해 보세요.”

마연린이 눈을 반짝거리며 묻자 능연이 제안했다. 단지 이식은 난도가 너무 높아서 꺼내지 않았다. 혈관 문합 한 항목만 해도 마연린이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아킬레스건 수술 집도하게 해준다고?”

“기회는 드릴 수 있죠. 앞으로 아킬레스건 수술에 들어오세요. 연 선생님은 탕 봉합에 들어오고요. 제가 스텝을 분석해드릴게요. 수술할 때마다 한 부분 집도해 보고, 전부 정확하게 되면 다음을 생각해 보죠.”

능연의 조건은 일반적인 경우보다 까다로웠지만, 마연린은 감지덕지하게 받아들였다. 이건 거의 손을 잡고 가르쳐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무슨 토 달 말이 있을까. 오해받을까 봐 두렵지만 않았다면 여기서 능연을 끌어 않고 좋은 사람이라고 볼에 뽀뽀라도 해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럼 난 질식 환자 기다리러 갑니다.”

능연은 손을 흔들면서 응급실로 들어갔다. 병원에서 기관지 절개술이 가장 필요한 곳은 응급실 아니면 ICU였다. 수술실은 그다음이었고.

운화 병원 같은 병원은 보통 하루에 두어 명 기관지 절개 수술 환자를 받는다. 비가 오길 기다리는 건 너무 운에 맡기는 것 같지만 그밖에 다른 방법도 없었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능연이 알람에 여러 번 실망하고 있을 때, 구급차가 피로 얼룩덜룩한 환자를 옮겨왔다. 그는 지루한 듯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말없이 앞으로 다가갔다. 위중한 응급 환자에 대해서는 시스템에서 능력을 받지 못해서 아직 배우는 상태였다.

“나는 괜찮아요. 개부터 구해주세요. 제 개부터요.”

갑자기 깨어난 환자가 이불을 젖히자 스트레처 카 위에 금빛 래브라도 리트리버가 숨을 헐떡이며 누워 있었다. 래브라도 몸의 조끼와 환자 몸의 경찰복이 두 사람의 신분을 증명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경이었다.

스트레처 카를 밀고 들어온 간호사가 어쩔 수 없이 환자의 어깨를 눌렀다.

“움직이면 안 돼요. 상처가 벌어집니다. 경찰 수의사가 오고 있어요.”

“나는 괜찮아요. 내 몸에 피는 다 강도 거예요. 못 믿으면 볼래요?”

벌떡 일어나려던 여경이 ‘아’ 소리를 내며 다시 쓰러졌다.

“다리에 칼이 찔렸는데, 느낌 없나요? 기억 안 나요?”

담당 의사가 핸드 라이트를 켜고 환자 동공을 비추면서 계속 질문을 던졌다.

“제 개, 밤톨이도 찔렸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겨우 2살인데 벌써 세 사람이나 구했어요. 이번에도 마약 냄새를 맡은 바람에 공격당한 거예요.”

구급 의사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은 몰라도 개를 구해 본 경험은 없었다. 게다가 사람을 내버려 두고 개를 구할 수도 없었다. 능연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새까만 래브라도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제가 할게요.”

- 퀘스트: 경찰견 살리기

- 퀘스트 내용: 경찰견 ‘밤톨이’ 살리기

- 퀘스트 보상: 초급 보물 상자 6개

능연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개를 구하는 데 보물 상자를 준다고?’

게다가 6개였다. 24개를 더하면 딱 30개가 된다.

능연은 심호흡하면서 직접 스트레처 카를 밀고 가 두 사람의 도움을 받아 개를 옮겼다.

실려온 경찰은 간절하게 개를 바라보다가 능연을 힐끔 보고는 바로 기절해 버렸다.

“숨넘어갈 거 같아요.”

곁에 있던 간호사가 고함치자 능연이 고개를 숙이고 살폈더니 과연 곧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기관지 절개 수술 하죠.”

능연은 그 순간 가장 정확한 선택을 했다.

능연은 사람 기관지 절개를 한 적 없지만, 개는 해봤었다.

의대에서 동물 실험은 학생들이 외과 기술을 학습하는 주요 통로였고 운화 병원은 기관지 절개 수업에 개를 사용했다.

수술대 위에 누운 경찰견 ‘밤톨이’는 다른 개들보다 행운이었지만 그만큼 감당해야 하는 것도 컸다. 능연이 손으로 머리를 만지자, 겨우 2살 된 밤톨이는 숨도 쉬기 힘든 상태로 그저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적당한 마취제 있나요?”

능연이 물었다.

“반려동물은 보통 846를 쓰지. 군수대학 수의과 연구소에서 개발한 건데, 뭐라더라, 속어쩌고 였는데.”

마취의가 대답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속면신이요.”

집에서 개를 기르는 마취의가 종종걸음으로 다가가 밤톨이를 쓰다듬었다.

“제가 배합해서 만들어 올게요. 일단 검사부터 하세요. 산소 공급하시고요.”

나중에 온 강아지를 기르는 마취의가 약 선반 쪽으로 달려가 뒤지기 시작했다.

능연은 청진기를 들고 심장 청음, 타진을 한 다음 이어서 폐 기능 검사를 하고 호흡수를 체크했다. 개의 신체 진찰도 사람과 비슷했다. 능연은 개 전용 신체 진찰이 있는지 없는지 몰라도 지금까지 상황으로 봐서 일단 사람 방식으로 하는 것만 해도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1분에 14번. 개 호흡은 얼마가 정상입니까?”

“10에서 30이래요.”

능연이 멍청하게 묻는 말에 간호사가 검색한 후 대답했다.

“14번은 어떻대요?”

“야, 너 이제 좀 실습생 같다.”

능연이 다시 멍청하게 묻자 뒷짐 지고 어슬렁거리던 주 선생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주변 의료진들도 웃음을 참았다.

강아지를 기르는 마취의가 그때 돌아와서 능연이 말한 숫자를 듣고는 손에 든 바늘을 치켜들었다.

“주사 놓을게요.”

마취의는 래브라도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이고 상처 쪽을 살핀 다음 주사를 놓았다. 경찰견 ‘밤톨이’는 힘이 빠져서 버둥거리지도 못하고 경련만 일으켰다. 곧 경찰견의 사지에 힘이 빠졌고 호흡 소리도 작아졌다.

“털 제거해 주시고요. 사지는 역시 묶는 게 좋겠어요.”

마취의가 핸드폰을 보며 사람들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간호사는 30kg 이상 나가는 대형견을 난처한 듯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개털······ 을요?”

“네, 목 주변 털 다 깎아 주세요. 어서요, 호흡 곤란 왔잖아요.”

“너 수의사였어?”

마취의가 재촉하는 모습에 주 선생이 궁금한 듯 물었다.

“친구 중에 수의사가 있습니다.”

마취의는 진지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핸드폰으로 이미지를 봤다. 잠시 동작을 멈췄던 현장의 초짜 의사와 간호사가 이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적어도 누군가 지도하는 사람이 있으니 다행이었다. 위급 상황엔 사람 역시 누군가의 지도가 필요했다.

대부분 의사는 개의 목숨을 연연하지 않는다. 의사 생활하면서 개죽음 한 번 안 본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경찰견은 달랐다. 특히 사람을 구했던 경찰견이라면 다들 노력할 마음이 있었다.

“됐습니다.”

털을 다 깎았을 때 개는 아까보다 더 심하게 호흡 곤란이 왔다. 능연은 조심스럽게 메스를 골라서 드러난 개의 경추를 따라 순방향으로 메스를 그었다. 그리고 근육층을 분리해서 기관지를 드러나게 했다.

기관지를 옆으로 그은 능연이 정확하게 삽관하고 산소를 잇자, 경찰견 ‘밤톨이’의 호흡이 금세 좋아졌다. 전체 과정에서 능연은 속도를 추구하지 않았다. 완전히 질식할 상태가 아닌 이상 다급하게 기관지 절개를 할 필요는 없었다.

기관지 절개는 후유증이 생길 수 있었다. 긴급 절개는 그 후유증이 더 컸다. 그러니 일시적인 호흡곤란을 견딜 수만 있다면 차라리 조금 천천히 하는 게 더 나았다. 물론 너무 느리면 안 된다.

주 선생은 곁에서 뒷짐 진 채 능연을 지켜봤다. 할 일 없이 어슬렁거리는 거 같아도 사실은 곁에서 능연이 실수하지 않도록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기관 절개술은 응급 의학과에서 하찮아도 너무 하찮은 수술이었다. 기관을 4층으로 부분 절개하고 경추골 사이에 작은 절개구를 내고 산소관을 집어넣으면 된다. 손상은 지극히 적었고 위험성도 크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수술이라도 실습생에게 맡기면 계속해서 실수하는 사람도 있었다. 환자의 몸에 바늘을 꽂는 일이라면 몰라도 기관 절개술이나 심폐소생 같은 작업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할 가능성도 있었다. 실습생이나 훈련의가 그런 수술을 하려면 오랜 시간 개인 연습을 거친 후에야 적당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능연도 지금 사람이 아니라 개의 기관지 절개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말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주 선생은 옆에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

“연습했냐?”

“연습한 건 아니고요, 배운 지 얼마 안 됐습니다.”

상처 처리를 마친 걸 확인한 주 선생이 묻자 능연은 이상한 대답을 했지만, 사실이었다. 개의 목숨을 구했음을 확인한 능연은 이어서 봉합을 시작했다.

경찰견인 밤톨이는 견용 호신복을 착용해서 흉부와 복부는 다치지 않았지만, 사지엔 여러 곳 베인 상처가 있었고 귀 뒤 같은 위험 구역에도 상처가 깊었다.

사람이었다면 CT나 MRI를 찍은 다음에야 수술을 진행했을 정도였다. 그런 대우를 받지 못하는 개는 의사들의 경험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고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항생제를 놓고 능연에게 전면적인 봉합을 하게 했다.

의사에겐 수월한 작업이었지만, 정상적으로 수술할 때라면 설사 가족이 요청했어도 이런 식으로 일하지 않는다.

마스터급 병렬 봉합은 바늘을 찌를 수만 있다면 가장 수월한 봉합법이었다. 능연은 변함없이 굵은 선에 얇은 선을 잇는 방법으로 최대한 밤톨이의 겉모습을 예쁘게 하려고 애썼다. 특히 모공 위치는 바늘을 특히 주의했다.

경찰견이라고 해도 예뻐서 안 좋을 건 없었으니까.

“다 됐습니다.”

능연은 실을 자르고 가위를 플레이트에 내려놓았다. 반려견 봉합이긴 해도 도와줄 간호사가 있으니 드레싱 같은 후속 작업은 그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마취의는 웃는 얼굴로 기기를 바라봤다.

“일도 끝났고 밤톨이도 살았지만, 물건은 소독해야겠네요. 됐죠? 그럼 전 갑니다.”

마취의는 마취과 소속이지만, 다들 곽 주임의 불호령의 위력을 알고 있었기에 경찰견이 별일 없다는 걸 알게 되자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났다.

“수간호사님한테 죽었다, 이제.”

간호사는 저도 모르게 우는소리를 했다.

“나중에 개를 보고 월급 깎는다는 소리를 안 하면 다행일걸?”

주 선생이 껄껄 웃으면서 눈을 감은 경찰견을 쓰다듬고는 핸드폰을 꺼내 사랑 넘치는 셀카를 찍어 SNS에 올렸다. 간호사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볼을 부풀리고 셀카를 찍어 편집한 다음 SNS에 올렸다.

손을 씻으러 갔던 능연은 손을 다 씻었는데도 개털이 몸에 붙어 있는 걸 보고 아예 샤워실로 달려가 샤워한 다음 속옷까지 갈아입고 후련한 듯 거울 앞에 섰다.

“시스템, 시스템, 나 메스 스킬 몇 등이야?”

- 핸드 그립은 현재 운화에서 766등, 핑거팁 그립은 558등입니다.

“잉? 지난번엔 몇 등이었더라?”

-핑거팁 그립은 지난번과 같고 핸드 그립은 한 자리 떨어졌습니다.

“떨어지기도 해?”

-그렇습니다.

미간을 찡그리고 묻던 능연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순위가 올라가면 다른 사람이 떨어졌다는 뜻이니 당연한 얘기였다. 새로 속옷을 갈아입은 청량감 덕분에 다시 샤워면서 화를 풀고 싶은 충동을 누를 수 있었다.

그는 머리를 굴리며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아까는 3시간 기다려서 겨우 기관지 절개할 개를 만났는데, 이제 얼마나 기다려야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1층엔 온통 환호성이 들렸다. 자세히 살펴보니 경찰견이 정신 차리고 발바닥을 핥고 있었다. 옅은 금색 래브라도는 길쭉길쭉한 얼굴에 새까만 두 눈에 기운이 넘쳤다. 녀석은 고개를 기우뚱한 채 혀를 조금 내밀고 있어서 보는 사람 마음을 즐겁게 했다.

마찬가지로 간단한 수술을 받은 경찰도 곁에 누워 있었는데, 화장을 한 건지 아닌지 모를 달걀형 얼굴이 예쁘장하고 큰 가슴과 가는 허리가 보는 사람을 기쁘게 했다.

주변에 남자 의사들은 경찰을 보고 간호사는 강아지를 쓰다듬는 장면은 그야말로 누구에게나 먹히는 장면이었다.

경찰견 밤톨이는 능연의 냄새를 맡았는지 가까이 다가가자 낑낑대며 고개를 들었고, 경찰은 어쩔 수 없이 앉으라고 명령했다. 2살짜리 래브라도 경찰견은 대부분 22살 먹은 인간보다 더 진중해서 낑낑 소리를 잠시 내다가 바로 순순히 자리 잡고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능연도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가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난 내가 환상을 보는 줄 알았어.”

경찰은 멍하니 능연을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다치고 나면 환각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어요.”

의사로서 대답하는 능연의 말에 경찰의 얼굴이 다 빨개졌다.

“아니, 그게, 그 뜻이 아니라. 저는 진민이라고 해요. 밤톨이 구해 주셔서 감사해요.”

“별말씀을요.”

능연은 환자에게 필요한 미소를 드러냈다. 그가 새로 익힌 기술이었다.

경찰의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

“멍!”

경찰견은 가볍게 짖으며 의아한 듯 경찰을 바라봤다. 녀석은 지금 경찰의 분위기가 큰일을 앞두고 출동하기 전처럼 심각하다고 생각했고, 온 집중력을 다해 언제든 출동할 태세를 취했다.

“곽 주임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순경 대대와 경찰견 중대를 대표해서 운화 병원, 운화 병원 응급 의학과에 감사를 표합니다. 대가도 없이 수고를 아끼지 않고 사람을 구하면서 우리의 영웅 여경 진민을 치료했을 뿐 아니라 우리의 공훈 경찰견 밤톨이의 목숨도 구해주시다니······.”

경찰견 중대의 중대장이 더듬더듬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기자들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병원은 뉴스에 나올 수 있을 만한 일이 생긴 것에 무한히 기뻐했다. 불려온 기자들도 괜찮은 이슈라고 느껴서 우승기를 전달하는 대목까지 세팅했고 경찰견 중대도 거절하지 않았다.

진민을 치료하는 건 병원의 의무지만, 경찰견까지 수술해 준 것에 대해 경찰견 중대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매우 감사하고 있었다.

‘숭고한 의학 도덕’이라고 크게 글씨를 박고 옆에 운화시 순경 대대, 경찰견 대대의 이름도 새겨 넣은 우승기는 보고만 있어도 기뻤다. 특히 곽종군이 매우 기뻐했는데, 그는 개 때문에 대청소해야 했던 일도 다 기억 저편으로 던져버리고 좋아했다.

사진 촬영까지 마친 후, 곽종군이 먼저 나서서 경찰견 중대 중대장과 순경 대대 리더들을 식사에 초대했다. 응급 의학과 의사와 가까이 지내 두면 나중에 써먹을 일이 있으리라 생각해서인지 그들은 초대를 매우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렇게 분위기 좋게 한 무리 사람들이 휩쓸 듯 사라졌다.

주 선생을 포함한 수술 참여자들도 초대받았지만 능연은 망설이지도 않고 거절했다. 사교 활동을 원래 싫어하는 데다 지금 같은 사교 파티는 더더욱 질색이었다.

주 선생은 안타까운 듯 능연을 팔을 붙잡고 그를 설득했다.

“능연아, 병원에서 이러면 안 돼. 다들 상아탑, 상아탑 그러지만, 상아탑이 왜 위험한지 아니? 내일 누가 네 이를 뽑으러 올 수도 있어서야.”

“구강외과에서요?”

“야, 상아 얘기잖아. 유머 감각도 없냐, 넌.”

능연이 입가에 슬쩍 웃음을 드러냈다.

“일부러 그런 거냐?”

“선생님 생각에는요?”

“으으으으. 됐다 됐어! 강호인이라고 해서 꼭 칼을 맞을 필요는 없지. 나는 접대나 가야 하는 그런 의사인 걸 어쩌냐. 안 바쁘면 그래도 한 번 들여다봐. 순경 대대 높은 분들하고 알아 두면 좋잖아. 널 죽이려고 드는 환자가 있을 때 전화해도 좋고.”

“농담하시는 거죠?”

“이게 왜 농담이야. 잠시만, 지금 나 가지고 노냐?”

주 선생은 조금 전 능연의 미소 때문에 계속 갈피를 잡지 못했다. 능연은 그런 주 선생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설득할 의지를 잃은 주 선생도 어쩔 수 없다는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의사는 사교 활동이 필요한데. 사람들도 좀 사귀어 둬야지 만날 병원에서 수술만 하다가 나중에 문제 생기면 어쩌려고······.”

“능 선생님.”

맑은 고함이 등 뒤에서 들렸다.

능연과 주 선생이 동시에 뒤를 돌아보니 커다란 휠체어에 진민이 앉아 있고 그 옆에 밤톨이도 앉아 있었다. 진민의 휠체어를 미는 사람은 그와 닮은 정장 차림의 30대 여자였다. 여자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능연을 바라보면서 휠체어 브레이크를 채워 고정했다.

“잠시만, 전화 좀 하고 올게.”

“응.”

고개를 돌려 능연을 본 진민의 두 볼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의 곁에 엎드린 밤톨이는 귀를 쫑긋 세우고 이상한 듯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고 임전 태세를 취했다.

“밤톨, 엎드려.”

그는 밤톨이가 왜 그러는지 알고 있었다. 능연이 아는지 모르는지 몰라도 말이다.

“움직이셔도 되나요?”

능연은 그의 회복력에 놀라면서 물었다.

“그저께 출혈량이 1,000cc를 넘었는데.”

응급 의학과에서 오래 일해 온 그는 출혈 과다 상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보통 헌혈할 때 200cc 또는 400cc를 하는데 건강한 사람이면 이상 반응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700~800cc까지 출혈하면 보통 기운이 빠지고 어지럼증이 일어난다. 거기서 200cc 더할 때마다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는데, 그중 누워서 못 일어나는 건 가벼운 증상에 속할 정도였다.

볼이 붉게 물든 진민을 보고도 능연은 탐구 정신을 발동했다. 진민은 손으로 밤톨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저는 피를 그렇게 많이 안 흘렸어요. 대부분 다 범인 피였지. 그때 범인이 칼로 밤톨이를 위협하길래 걱정이 되어서, 그래서 제가, 전 평소에 그렇게 험악하게 범인을 대하지 않아요.”

진민은 긴장한 얼굴로 자기를 변호했다. 그러자 주 선생이 헛기침하며 끼어들었다.

“마약 사범인데 경찰이 당연히 무서워야죠. 우리 시민의 안전이 제일 아닙니까.”

“평소엔 마약반 일도 안 해요. 저는 경찰견 중대인데······. 아무튼, 보기에 심하게 다친 거 같아도 사실 피는 많이 흘리지 않았어요.”

진민은 자기는 원래 스마트하고 지적인 경찰관이라고 해명하고 싶었지만, 직접 말하기 껄끄러웠다.

“그럼 다행이고요. 음, 그럼 그 마약범은 큰일이네요. 1,000cc 넘는 피를 흘렸다면, 한참 고생하겠네요.”

“아니에요. 두 사람이 흘린 피에요. 그러니까 한 사람당 몇백밖에 안 되겠죠.”

능연이 미소 지으며 하는 말에 진민은 초등학생 식 덧셈 뺄셈으로 계산하다가 문득 자기 아이큐가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듯해서 흠칫했다. 아니나 다를까, 곁에 있던 주 선생이 공포에 사로잡힌 표정을 드러냈다.

“1대2요? 와, 칼 든 마약범을 둘이나? 큰 공 세우셨네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진민은 이미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생각에 다급하게 해명했다.

“저랑 밤톨이가 같이했잖아요. 1대2는 아니죠. 게다가 동료들이 바로 백업해줬어요. 그리고, 그리고, 마약범 중의 한 명만 칼을 들고 있었어요. 또 둘 다 피라미들이지 거물이 아니에요. 진짜 거물은······.”

한참 이야기를 늘어놓던 진민은 문득 자기 말이 너무 길어졌다는 생각과 함께 이미지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느껴 고개를 숙이고 우울하게 밤톨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밤톨이가 멍, 하고 짓더니 머리로 살짝 여경을 치고는 혀를 내밀어 그의 손을 핥았다.

“그럼 밤톨이가 대단한 거네요.”

능연이 래브라도의 커다란 눈을 바라보며 진심에서 우러난 칭찬을 했다.

“그러니까요, 원래 래브라도는 공격성이 없는데, 그날 정말 용감했어요. 그렇지?”

진민은 밤톨이를 바라보며 말꼬리를 올렸다. 래브라도가 순종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고개를 갸우뚱 귀여운 척을 하자 능연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능 선생님, 감사하다는 말을 계속 못 드렸네요. 밤톨이 살려 주셔서 감사해요. 밤톨, 능 선생님께 감사 인사해.”

진민은 무너질 대로 무너진 이미지가 더 무너질까 봐 슬그머니 사촌 언니에게 전화하면서 능연에게 인사했다. 래브라도가 고개를 들어 능연을 향해 헉헉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민이 머리를 쓰다듬자 바로 조용해졌다.

“천만에.”

능연이 미소 지으며 앞으로 나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만져도 돼요.”

능연이 점점 다가가자 진민은 무심결에 가슴을 폈다. 마침 그쪽으로 다가가던 사촌 언니는 그 광경에 멍하니 굳었다. 요즘 여자애들, 저렇게 적극적이야?

휠체어 앞에서 능연은 드디어 래브라도의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부드럽고 따듯하고 기분 좋은 것이 동한생의 민머리를 만질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했다.

“고마워할 것 없어요. 푹 쉬시길 바라요.”

그는 화끈하게 몇 번 쓰다듬고는 인사하고 돌아섰다.

아무런 미련도 없이.

주 선생은 멍하니 보다가 미안하다고 인사하고 그 뒤를 따랐다.

“간도 크다.”

“응?”

진민의 사촌이 그제야 그쪽으로 다가가 그녀를 흘겨봤다.

“친구들한테 전화 걸어서 저 능연이라는 의사 정보 좀 알아봤는데. 일주일 뒤에 국제회의 참석하러 상해 간다고 하더라. 이번엔 안 되겠네, 일단 몸 다 나은 다음에······.”

“별거 아닌데 뭐. 수의사가 밤톨이도 겉만 다쳤대. 며칠만 지나면 퇴원해서 중대로 돌아가도 된다고 하더라고. 일주일이면 나도 그 회의에 갈 수 있어. 언니, 나 대신 신청 좀 해줘.”

진민은 밤톨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두 눈을 빛냈다.

“능 선생님 혼자 다른 지역 가서 운화 사람 보면 반갑겠지?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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