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관절 센터, 수술실.
능연은 뒷짐 진 채 몸을 앞으로 수그리고 무영등 아래 환한 수술 시야를 갈망하는 얼굴로 바라봤다. 거리가 충분히 떨어져서 다행이지, 설호초는 저러다 침이 떨어질까 봐 걱정이었다.
“능 선생, 호텔에 돌아가서 좀 쉬실래요?”
“지금 고관절 치환술 하는 거죠?”
설호초가 조심스럽게 물어봤지만, 능연은 상대도 하지 않고 목을 빼고 기천록의 동작을 지켜봤다.
고관절 치환술은 정형외과의 정상급 수술로, 정형외과의 대단함은 모두 고관절 치환술에서 드러난다. 넓은 개방 면적, 커다란 보형물, 복잡한 수술 전후 케어 등. 고관절 치환술과 관련 없는 수술 중에 그나마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 건 내시경 수술이었다.
그러나 능연은 고관절 치환술을 할 줄 모르고 내시경도 쓸 줄 모른다. 그가 할 줄 아는 수술은 여전히 실습생 신분에 비교적 부합하는 수준이었고, 단지 이식이든 아킬레스건이든 비교적 간단한 수술에 속했고 탕 봉합은 더욱 그랬다. 모두 직감적인 수술이었다.
고관절 치환술과 내시경은 그렇게 단순하고 직접적이지 않다. 그 수술들은 보통 한 정형외과의 방향성이 된다. 만약 어느 정형외과 주임이 개방성 수술에 능통한데 젊기까지 하면, 그 밑에 부주임은 관절 내시경(arthroscope)을 배워서 진료과를 새로 만드는 게 나을 정도였다.
골관절 센터는 거대한 진료과나 마찬가지라 내부 직위가 충분해서 기천록 같은 높은 수준의 주임급 엘리트 의사를 붙잡을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레지던트와 주치의의 이직률이 높았다. 그들은 같은 병원 나이대가 비슷한 의사들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오는 수련의, 교환 의사하고까지 경쟁해야 하는 것도 모자라, 부주임 같은 직위는 미국 유학한 박사가 뺏어갈 가능성까지 컸다.
능연은 평소에 이런 고관절 치환술을 잘 접하지 못했다. 운화 병원 정형외과는 이런 수술을 거의 하지 않고 수부외과와 관절 내시경에 집중되어 있었다.
스물 넘은 젊은 의사가 이런 수술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만으로 상당히 드문 기회였다.
설호초는 기다림에 지쳐 초조해졌다. 그는 골관절 센터의 집사나 마찬가지라서 종종 축동익 원사를 대신해서 이런저런 잡다한 업무를 처리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수술실에서 보낼 수 없었다.
“능 선생, 축 원사님 지금 북경에 계셔서 오늘은 못 돌아오십니다. 그래서 저한테 잘 모시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슬슬 돌아가실까요?”
설호초는 다시 한번 능연을 재촉했고, 능연은 고개를 돌려 그를 보더니 수술을 하겠다고 했다.
“아? 저기, 오늘은 좀.”
설호초가 어색하게 웃었다. 병상은 충분했지만,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이었다. 게다가 병원 구역에 사람이 많아지면 관리하기도 힘들어질 뿐만 아니라, 나중에 오는 참관 인원이 볼 때도 널찍해야 보기 좋을 것 아닌가.
능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면서 그럼 참관이나 하겠다고 했다. 기천록은 그런 능연을 힐끔 바라보고는 재미있다는 듯 고개를 흔들더니 다시 고개를 숙이고 집중했다.
그날 고관절 치환술도 회의 때 자랑용이었다. 국내에서 그런 수술을 깔끔하게 해내면 사람들은 모두 엄지를 치켜든다.
“능 선새애앵······.”
설호초가 다시 그의 이름을 불렀고 답답해진 기천록이 고개를 들었다.
“호초야! 할 일 있으면 가서 해. 능연이 어디 설득될 사람이냐?”
“네, 제가 오버했네요.”
“그러니까 말이다.”
멍해졌다가 입을 여는 설호초의 모습에 기천록은 하하 웃음을 터트렸다가 목소리를 낮추고 덧붙였다.
“능 선생이 툭하면 수술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실력이 저렇게 뛰어날 수 있겠냐.”
기천록의 논리에 설호초는 바로 설득됐다. 순간 심지어 부끄럽기까지 했다. 그는 수술하고 싶어 안달 난 능연을 보자 가만히 있기 뭐해서 다시 입을 열었다.
“능 선생 차라리······.”
“호초야.”
젊기는 해도 주임 의사인 기천록은 눈치가 빠른 편이라 설호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오버하지 마라.”
“예?”
기천록이 눈치를 주자 설호초는 어쩌라고, 싶어졌다.
“아이고야. 능 선생 속도 기억 안 나냐? 풀어 놓았다가 병실 꽉 채우면 어쩌려고.”
드디어 알아들은 설호초는 가슴이 철렁했다. 골관절 센터에 병상은 모두 180개인데 지금은 남은 병상이 80개가 되지 않았다. 100명 넘게 환자가 차서가 아니라, 훌륭한 의료 환경을 구현하기 위해서 축동익이 나머지 절반 병실 3인실을 모두 비워서 1인실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센터에는 지금 남은 병상이 별로 없는데, 그는 30분 만에도 아킬레스건 수술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설호초는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능연이 남은 병실을 다 채운다면 축동익이 돌아와서 그가 아닌 설호초를 죽이려 들 것이다.
설호초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능 선생, 고관절 치환술 해봤어?”
“아니요. 처음 봅니다.”
“그럼 어시 해볼래?”
기천록의 어시는 센터 주치의인데 평범한 수준의 평범한 실력을 갖춘, 생긴 것도 평범한, 그런 패기 없는 유형이었다.
“손 씻으러 갈게요!”
능연은 쌩하고 수술실을 나갔다.
그가 다시 수술실로 돌아왔을 때, 양팔을 들고 수술복을 걸친 모습이 자체 발광하듯 빛이 났다. 퍼스트 어시는 세컨드로 밀려났고, 세컨드는 곁에 선 구경꾼이 되었다.
세컨드 어시 역시 고수도 아니고 기껏해야 수술 몇 번 참여했던 평범한 의사라 마지못해 자리에서 물러나면서도 반항하지 못했다. 그가 참관실에서 능연이 능력을 발휘하던 그 장면을 목격한 것도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다. 병원에서 촌닭들의 지위는 직위로 갈리지만, 기술 잠재력이 있는 의사는 언제나 위에 있었다.
“뭘 하면 되나요?”
퍼스트 어시 자리에선 능연이 내뱉은 말은 저차원적인 말이었다. 기천록도 웃음이 터졌고 다정하게 석션부터 하라고 지시했다. 두 사람의 적응 문제였다. 능연은 기천록의 명령대로 움직이면서 서서히 고관절 치환 수술의 스텝을 익혀갔다.
곁에서 보는 것과 직접 참여하는 건 완전히 느낌이 달랐다. 의사들이 수술에 참여하려고 다투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수술실에서 잡일을 하더라도 들어가야 수술을 배우는 속도가 빠르고 정확해진다. 어시 자리에서 보는 수술 시야 역시 당연히 뒤에서 목을 빼고 보는 것보다 잘 보이고.
고관절 치환술에 강한 메이요 클리닉 정형외과 레지던트라도 잠시 적응 기간을 가진 후 고관절 수술에 들어갈 때는 지금 능연이 하는 일을 한다. 메이요에서 가장 많이 하는 수술은 고관절 치환술이라 레지던트가 아니면 시킬 사람도 없었다.
고급 수술, 고차원 수술도 퍼스트 어시까지 되면 그렇게 희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고급 수술의 퍼스트 어시는 고차원적인 작업을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모든 건 집도의 마음이었다.
능연은 지금 수준 낮은 작업을 하면서도 룰루랄라 신이 나 있었다.
곁에서 지켜보던 설호초도 점점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순수한 의사가 되는 것, 그것은 모든 의사의 바람이고 설호초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순수한 의사가 되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의사의 길엔 너무 많은 유혹이 있었다.
순수하게 미련한 의사는 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순수한 의사는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해야 하고, 우수한 기술, 수많은 자원과 좋은 운도 따라야 했다.
설호초는 능연을 바라보면서 그와 같은 의사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만날 여기저기 윗대가리들이랑 관계 맺어야지. 툭하면 삼갑 병원 행정과 주임이랑 형님, 아우 해야지. 대단한 사람들에게 막냇동생 대접받지만 사실 모두 원사님을 등에 업어서 가능할 뿐이잖아. 정말······ 지나치게 편안하게 살았네.’
그런 생각을 하던 설호초는 곧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독립해서 원장이 되면 꼭 능연 같은 의사를 뽑아야지. 단순하고 순수하고 원칙 있고······.’
띠리리리.
능연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
“죄송한데, 제 전화 좀 받아 주세요.”
능연은 허리를 숙인 채 눈으로 기천록의 동작을 단단히 쫓으면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순회 간호사는 묘하게 기뻐서 냉큼 능연의 주머니를 뒤졌다.
“윗주머니에요.”
“아, 네.”
간호사가 눈빛을 반짝이며 핸드폰을 꺼냈다.
“스피커 폰으로 해주세요.”
능연은 늘 하던 대로 말했고, 간호사는 머뭇거리다가 스피커 폰으로 받았다.
“능 선생님! 능 선생님! 저 메달 받았어요! 전국 육상 대회! 동메달이요! 메달 땄다고요! 은퇴 안 해도 돼요!”
원반던지기 소녀 하수방의 목소리가 핸드폰 스피커에서 터져 나왔다. 한참 수술 중이던 기천록까지 동작을 멈췄다.
“이렇게 빨리 회복됐어요?”
하수방의 아킬레스건 수술은 바로 능연이 집도하고 기천록이 어시 했었다. 그러니 하수방의 아킬레스건 상태를 잘 아는 기천록은 저절로 그 소리가 튀어나왔다. 능연은 오히려 태연했다.
“하수방 씨는 아킬레스건 불완전 파열이었으니까 회복 상태가 더 좋았을 겁니다. 하수방 씨, 아킬레스건 상태 괜찮습니까?”
유위신도 시합 준비 중인데, 하수방이 시합에 나간 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전화 저쪽에서 하수방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좋아요. 아주 좋아요. 전보다 더 좋아요.”
운동선수들은 긴 시간 훈련을 하니까 상처를 안고 시합에 나가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하수방의 경우 오히려 수술 후에 푹 쉬면서 회복하고 나서 훈련도 더 잘할 수 있었다.
“하수방 씨, 시간 있을 때 센터에 와서 다시 한번 검사받아요.”
“네. 저뿐 아니라 제 팀원도 갈 거예요! 코치님이 윗선에 이야기했거든요. 우리 팀 다 갈 거예요!”
기천록의 제안에 신나서 대답하던 하수방은 어느새 또 울먹이기 시작했다.
“저 메달 땄어요. 은퇴 안 해도 돼요. 팀원들이랑 같이 갈게요.”
코치와 팀원뿐 아니라 하수방의 아버지 하충도 상해로 왔다.
하충은 착실한 농사꾼인데, 긴장하고 엄숙했고, 엄숙하고 조용했고, 조용하고 우울했고, 우울하고 고집스러웠다. 그는 하수방과 같은 날 상해에 도착하기 위해 하루 일찍 출발했다.
“고속 열차표 사드렸잖아요. 왜 이걸 타고 왔어요.”
기차역 앞에서 불안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는 아버지의 모습에 하수방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지난번에 그를 만났을 때 하수방은 팀 내에서 요양하고 있었고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하던 때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전국 대회에서 메달도 땄고, 비록 겨우 육상 대회에서 딴 동메달이지만, 어쨌든 팀에 남아 있을 수 있어서 위기는 벗어났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아직도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가격이 몇 배나 차이 나잖니. 환불하고 새로 샀다.”
하충이 사투리를 쓰며 웅얼거렸다. 하수방은 늘 자기가 팀에서 제일 촌스럽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버지 옆에 있으니 자기는 세련된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속 열차는 몇 시간이면 도착하는데요. 우리 이웃들이 일하러 갈 때도 다들 고속 열차 타요.”
하수방의 억양도 무의식적으로 달라졌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 타고 싶은 사람은 타는 거지. 나는 싫다.”
하충은 알게 뭐냐는 듯 툴툴댔다.
“형님.”
코치가 앞으로 나서서 그의 손을 잡았다.
하충보다 열몇 살 어린 코치는 평소에 자주 그와 통화했었다. 코치를 본 하충의 얼굴에 우직한 미소가 드러났다.
“또 귀찮게 했네.”
“서운하게 무슨 그런 말씀을.”
“얘가 메달 못 땄으면, 자네 볼 낯도 없었을 거야. 얘 훈련시키느라 자네가 몇 년 동안 얼마나 고생했나. 성적이 안 나오면 무슨 소용이야. 나랏돈이나 낭비하고.”
하충은 코치의 손을 꼭 쥐고 흔들면서 말했다. 코치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하수방이 목에 메고 있던 동메달을 꺼내 아버지에게 건넸다.
“아빠, 봐봐. 이게 메달이야.”
“그래, 그래! 좋구나.”
하충은 한 손으로 메달을 건네받아 만지작거리다가 어깨에 멘 가방끈을 다시 조이고 일어났다.
“어서 가자, 짐도 많은데, 가서 이야기하자.”
“아빠, 아빠가 주방이 있어야 한대서 작은 집 하나 구했어요. 안 비싸요. 단기 거주 되는 작은 집 구했어요.”
“주방 있으면 됐다”
혼날까 봐 다급하게 싼 거라고 덧붙이던 수방은 아버지가 화를 내지 않자 멍해졌다.
“있어요. 도구도 다 있고요.”
“며칠 있어도 된다는 거지?”
“네네, 계시고 싶은 만큼 있어도 돼요.”
많지는 않지만, 육상팀에서 월급이 나오는데 하수방은 평소에 돈 쓸 일이 별로 없었다. 먹고 자고 모두 팀에서 해결하면서 제법 돈을 모았다. 그렇다고 해도, 자기가 상해에서 쓸 집을 구하는 건 아까웠지만, 아버지가 쓸 집이니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그럼 됐다. 어서 가자꾸나.”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동안 하수방은 왜 아버지가 반드시 주방 있는 집이어야 한다고 했는지, 또 왜 저렇게 서두르는지 알게 되었다. 하충은 메고 있던 가방 가득 채소를 담아 왔던 것이다.
“아빠, 냉이를 뭐하러 이렇게 많이 가지고 오셨어요. 조금만 가지고 와도 될걸.”
말은 그렇게 해도 마음은 따듯해졌다. 어릴 때 먹을 게 없을 때 냉이 같은 채소를 제일 많이 먹었었다.
“흥. 너 먹으라고 가지고 온 거 아니다. 다 윗분, 코치 거야. 그리고 의사 선생님도 좀 드리고. 넌 맛만 보렴. 가서 닭 좀 사 와.”
“계탕피동 만드시려고요?”
고향에서는 계탕피동만 되어도 대단한 요리로 쳤다. 냉이를 잘게 부서 가루로 만들고 밀가루에 섞어 풀처럼 끓인 다음 냉동시켰다가 작게 썰어서 치킨 수프를 위에 뿌리면 된다.
특색 있는 먹거리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범중암(范仲淹. 중국 북송 문학가이자 정치가)이 죽을 얼렸다가 나눠 먹는 것의 업그레이드 버전에 불과했다. 그리고 범중암 죽에 든 절임 채소를 생채소로 바꾼 것뿐이었다. 그 위에 치킨 수프를 뿌리는 것도 요즘 와서 생긴 방법이었다.
“아빠, 요즘 누가 이런 걸 먹어요.”
하수방은 난감한 듯 아버지를 바라봤다.
“안 먹으면 말고. 나는 만들 거다.”
하충은 손을 휘휘 내젓고는 바쁘게 움직였다.
하수방이 닭을 사러 나갈 때는 슬쩍 그녀의 발꿈치를 힐끔댔다.
“상황이 괜찮습니다. 팀 닥터 말로는 완전히 회복됐대요. 그래서 시합 나가는 것도 허락했고요.”
하충의 성격을 아는 코치가 특별히 설명을 해줬다.
“요즘 것들은 다들 약해 빠져서, 우리 애도 너무 곱게 컸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하충의 말에 코치는 그저 하하 따라 웃었다. 80kg 하수방이 지난 몇 달 동안 얼마나 힘들게 재활했는지, 다시 훈련하면서 또 얼마나 힘들었는지,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