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172화 (153/877)

새벽 5시, 능연은 도저히 잠이 더는 안 와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항상 일찍 잠자리에 드는 그는 일어나는 것도 일찍 일어난다. 학교 다닐 때도 늘 새벽 4, 5시에 일어나서 단어를 외우거나 했다. 단어를 오후나 밤에 외우면 여자아이들이 몰려들어 말로는 같이 공부하자고 하면서 툭하면 말을 걸어 새벽에 외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대부분 여자아이는 철이 들었지만, 하필 그렇지 않은 여자아이만 만났다. 그중에 한 명만 수다를 떨어도 다들 휘말렸고, 그게 아니라도 한마디씩만 해도 여럿이 모이면 말이 많아져 시간 낭비가 된다.

하지만 새벽은 다르다. 새벽은 기묘한 시간이다. 그 시간대엔 대부분 대뇌가 운행 정지 상태지만, 오히려 맑은 사람도 적지 않다. 그리고 대부분 여자아이는 그 시간에 잠을 잔다.

운화 병원에 있었다면 능연은 수술 준비를 했을 시간이고 의대 때라면 단어를 20개는 외웠겠지만, 지금 상해에서······ 능연은 부원 체육관에서 조깅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바탕 땀을 흘리고 나왔는데도, 여전히 하늘은 새카맸다. 호텔로 다시 돌아가기도 귀찮아서 그는 병원 수술실 안에서 샤워하고 바로 수술복으로 갈아입었다.

병원의 수술복은 돌아가며 입고 돌아가며 소독해두기 때문에, 윗선들은 의사들이 수술복을 입고 있다가 언제든 수술실에 들어가길 바라마지 않는다.

수술 층 문 앞에 앉아 일하고 있던 간호사가 그를 보고 생긋 웃었다.

“저희 센터는 원래 수술이 많지 않아요. 그렇긴 해도, 요즘은 정말 너무 없지만요.”

골관절 센터엔 의사가 별로 없고, 그나마 수술할 수 있는 의사는 열 명 남짓한데 그 와중에 수시로 전국을 돌기 바쁘다. 능연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수련의나 교환 의사가 수술을 많이 할 수도 없었다.

능연은 자기가 삼갑 병원에서 근무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입을 삐죽였다. 안 그랬으면 환자를 기다리다가 눈이 빠지지 않았을까.

“식당도 안 열었나요?”

“수술이 없으니까요. 밤 당직 때도 야식 제공은 안 하거든요.”

불 하나 없이 썰렁한 식당 구역을 보며 능연이 묻자 간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규모가 작은 센터에서 운화 병원처럼 밤낮없이 음식을 제공하기는 힘들겠지.

운화 병원 수술 층은 바쁠 때는 하룻밤에 수술을 몇십 건이나 하지만, 골관절 센터는 하룻밤에 3건만 해도 다들 바쁘다고 앓았다.

능연은 울적해진 마음으로 수술실을 힐끔 보고는 긴 의자에 앉아 배달 메뉴를 찾았다.

죽은 먹기 싫고. 요우타오도 먹기 싫고. 찐빵은 먹을 엄두가 안 나서, 능연은 주변에 몇 안 되는 문을 연 가게에서 찌엔빙(밀가루를 얇게 부치고 달걀과 여러 가지 소를 넣어 먹는 중국식 아침 식사)과 발효 두부를 주문했다.

찌엔빙은 배달되면 눅눅해지겠지만, 상관없었다. 발효 두부가 찌엔빙에 어울리는지 아닌지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타지에 나와 있으니, 먹을 만한 게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그는 게임을 켜고 조용히 기다렸다.

새벽의 병원은 귀신의 집처럼 조용해서 아주 작은 소리에도 놀라자빠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게임 배경 음악을 틀어놓고 넓은 로비에 있으니 능연은 오히려 더 생기가 넘쳤다.

“능 선생, 일찍 나왔네?”

여원이 눈을 문지르며 피곤한 듯 하품하면서 능연의 맞은편에 앉았다.

“네. 선생님은 웬일로?”

“치프 레지던트 되고 싶으니까.”

여원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네가 일찍 일어날 줄 알았다. 그래도 너무 일찍 일어난 거 아니냐? 오늘 수술도 없잖아.”

“네, 수술 없어요.”

능연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탁, 하고 핸드폰을 다리에 올려놓고 전방을 주시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세수 좀 하고 올게. 어디 가지 말고 여기 있어!”

여원은 얼굴을 문지르면서 졸려 못 견디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능연이 일찍 일어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역시 그를 과소평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원은 지난밤 핸드폰으로 집 안에 설치한 CCTV 라이브 화면과 녹화된 화면을 체크하고 논문을 읽다가 새벽에야 잠들어서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능연은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긴 어딜 간단 말인가. 새벽에 수술 없는 병원은 영혼 없는 병원과 마찬가지였다. 그런 곳에 있으면 일반인도 허무해 지리라.

어쨌든 능연은 허무해서 미칠 것 같았다. 게임 출전이 금지된 핸드폰을 들어서 슬쩍 보았다. 게임 실력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능연은 새로운 계정을 만들기로 했다.

“능 선생님, 아침 배달 왔습니다.”

이것저것 만지고 있는데 노란 외투를 입은 배달 기사가 앞으로 다가왔다.

“제가 의사인 건 어떻게 알았어요?”

“그거, 의사가 입는 옷 아닌가요? 아침 주문하신 능연 씨, 맞죠?”

능연이 이상한 듯 바라보자, 배달 기사가 오히려 답답한 듯 확인했다.

“아, 네.”

능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예 핸드폰을 집어넣어 버렸다. 찌엔빙은 평범한 음식이지만 그 집 찌엔빙은 특별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음식에 대한 존중은 표시해야 했다.

“업그레이드됐어요. 선생님이 주문한 다음, 마침 우리 가게 이벤트에 당첨되셔서, 지존 대상, 지존 모닝 세트로 업그레이드해드렸습니다.”

노란 옷을 입은 다른 기사 하나가 쪼르륵 뛰어와서 접이식 원탁을 펼쳤다. 먼저 온 기사는 손에 든 음식을 내려놓고 다른 기사랑 함께 오토바이로 돌아가 커다란 음식 봉투를 들고 와서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맛있게 드시고 이따 별점 평가 좀 해주세요.”

“아침 하나 시켰는데, 이렇게 줘도 돼요?”

능연은 조금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그의 운은 언제나 좋은 편이었다. 도평 여사의 말대로 잘생긴 남자는 운이 좋을 수밖에 없다고는 해도, 눈 앞에 펼쳐진 음식을 보니 가게에 남는 게 있을까 싶었다.

“저는 몰라요. 시키는 대로 배달 온 거뿐이니까요.”

기사는 그렇게 한마디 남기고 재빨리 사라졌다. 능연은 의아한 듯 봉투를 들어 올렸다. 안에 커다란 검은 락앤락 박스가 들어 있었다. 박스를 고정한 리본 위에 하얀 글씨로 몽벤토(프랑스 도시락통 브랜드)라고 쓰여 있었다.

‘요즘 장사하기 참 힘들겠네.’

도시락을 꺼낸 보니 2단 찬합의 작은 통에 무, 감자, 토마토, 목이버섯 배추, 셀러리에 훈제 생선 같은 반찬이 가득 들어 있었다. 반찬은 모두 두어 입 먹으면 끝날 적은 양이었다. 꺼내서 하나하나 늘어놓으니 금세 테이블이 꽉 찼다.

다른 봉투에도 금속 도시락이 들어 있었고 슈프림이라고 찍힌 도시락 안에 갖가지 만두, 교자, 슈마이에 고기, 달걀, 생선과 디저트들이 들어 있었다. 능연은 기사들이 사라진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며 주인이 바보인가, 생각했다.

마침 세수를 하고 정신을 조금 차린 것 같은 표정으로 돌아오던 여원은 테이블 가득한 음식을 보고 어리둥절해졌다.

“배달시켰어요. 같이 드실래요?”

“그래.”

여원도 사양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도시락통을 들고 유심히 살폈다.

“슈프림?”

“응?”

“누가 조공한 거구만.”

여원은 척추를 둥글게 말면서 전투 태세를 취했다.

능연은 소고기를 집어 황금색 만두와 함께 먹기 시작했고, 곧 작은 반찬통 세 개를 비우고는 우물우물 중얼거렸다.

“저도 몰라요. 이벤트 당첨이라던데요?”

“로또 수준인데? 슈프림 도시락, 뉴스에도 나왔었어. 하나에 1,600위안인 거 알아?”

하하 웃던 여원이 경계하는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몰라요.”

“야! 도시락 하나에 1,600위안이라고! 160이 아니라. 160위안도 비싼데, 1,600위안짜리 도시락이 몇 개냐고 여기. 얼마냐고?!”

여원이 손가락으로 꼽기 시작했다.

임무가 너무 막중했다.

여원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능연을 바라봤다.

“능 선생, 이상하지도 않냐? 아침 배달시켰는데, 이벤트 당첨? 그것도 이런 특등상?”

“이상하기야 하죠. 그런데 인생은 원래 갖가지 이상한 일의 연속이에요. 이건 지존 대상이래요.”

능연이 다시 슈마이를 집어 들고 입에 넣었더니 오징어와 삼겹살 소가 들어 있었고, 씹는 풍미가 있었다. 이번엔 갈비를 집어 들어 옥수수와 곁들이면서 작은 찬합 세 개를 또 비웠다.

여원은 아침 먹을 생각까지 사라져서 괴로워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 지존 대상에 당첨됐다고 치자. 아무리 인생은 이상한 일 연속이라도 해도, 야! 넌 그냥 아침 배달시킨 거잖아.”

“전 어플로 택시 불러도 롤스로이스가 오던데요?”

능연은 태연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여원을 바라봤다.

“손 씻고 밥 먹는 거 잊지 마세요. 알았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