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맛있네.”
도시락 음식을 먹은 순간 여원의 눈이 번뜩였다.
9년 의무 교육, 본과 5년, 3년 석사, 3년 레지던트 생활을 한 솔로 여원은 얼마나 많은 아침을 배달해서 먹었는지 모른다.
눈앞의 슈프림 도시락 안의 음식을 보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 도시락 다섯 개짜리 월급 받는 직업을 지키기 위해, 대체 얼마나 막강한 적을 상대해야 하는 거냐!’
능연의 표정은 태연하기만 했다. 우걱우걱 먹는 모습까지 완벽하게 아름다웠다.
“전에도 이런 아침 받은 적 있어?”
여원이 떠보듯 물었다. 상습범이라면, 업무 난도는 더 높아진다.
“우리 엄마가 해주는 게 더 맛있어요.”
“그게 아니라! 이것처럼 호화로운 아침 말이야.”
잠시 생각하다가 솔직하게 대답하는 능연의 말에 여원은 어이없어했다.
“호화로운 건 포인트가 아니에요. 가짓수는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가짓수가 많다고 호화로운 건 아니니까요.”
능연이 진지하게 내용을 수정해주자 여원은 테이블에 쌓인 열 개 넘는 빨간 금속 도시락을 보면서 하, 하 웃었다.
“집에서 먹는 아침은 신선해서 좋죠.”
엄마가 만든 아침에 익숙한 능연은 까다롭게 굴려고 들면 얼마든지 까다롭게 굴 수 있었다. 자주 안 만들어서 그렇지, 도평 여사는 만들 땐 완벽하게 만들었다. 눈앞의 아침은 가짓수는 많아도 배달 오는 과정도 있었고, 몇몇 음식은 아무래도 바로 만들어서 먹는 것보다 못해서 그냥 좀 괜찮은 수준이었다.
그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는 여원은 뱃가죽을 만지며 도시락이 착착 쌓여가는 걸 바라봤다. 잠시 후, 테이블에 쌓인 빈 도시락이 여원의 키만 해졌다. 그런데도 음식이 남았다.
“내가 치울게.”
배불리 먹은 여원은 고양이처럼 하품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같은 브랜드 도시락을 한데 모은 다음 나머지 음식을 처리했다. 바삐 정리하는 와중에 길고 긴 복도 끝에서 하이힐 소리가 들렸다.
또각또각.
또각또각 또각또각.
새벽 7시 병원에 하이힐 소리가 점점 더 크게 울렸다. 간이 작았다면, 도망칠까 말까 고민할 타이밍이었다.
하이힐 소리는 여원의 간이 아니라 책임감을 저격했다. 곽 주임의 신신당부가 여원의 뇌리에 떠올랐다.
곽 주임의 웃는 모습, 툭 튀어나온 입술, 살짝 휘어진 입매, 날카로운 이, 벌름거리는 콧구멍, 둥그렇게 부릅뜬 눈, 불벼락 같은 성격, 칼날 같은 명령.
여원은 아직도 이미 해고된 자신의 동기가 곽 주임한테 혼나고 펑펑 울던 장면이 생생했다.
-차렷! 움직이지 마!
-여기는 병원이얏!
-구조 실패하면 이 사람은 죽는다, 알겠나?
-선 구명, 후 치료!
여원의 뇌리에 저절로 곽 주임의 목소리가 둥둥 떠다녔다. 그렇게 흉포한 주임이 등 뒤에 있으니 병원에 사는 귀신도 알아서 피할 것이다. 여원은 깨끗이 씻은 도시락의 물기를 털어 내면서 침착하게 세면실에서 걸어 나왔다. 그리고 하이힐 소리가 울리는 방향으로 자세를 잡고 몸을 살짝 둥글리고 입술을 끌어 올리고 송곳니를 드러내면서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눈을 부릅떴다.
“능 선생님! 어머나, 이런 우연히. 상해에서 만나다니요!”
하이힐 소리가 멈추자 전칠의 목소리가 청량하게 울렸다. 여원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구부렸던 몸을 더 낮췄다.
‘아, 식상해. 이런 인사말이라니. 능연 같은 녀석한텐 턱도 없어!’
“굿모닝, 병원엔 왜?”
“아, 집에서 일 좀 돕고 있었는데, 능 선생님 주문이 들어와서요. 능연이라는 사람이 또 있나 싶어서 와 봤죠.”
“식당에서 일했다고요?”
능연이 바라보자 에르메스로 휘감은 전칠이 고개를 끄덕이려다 머뭇거렸다. 스토리에 구멍이 숭숭 나 있었다.
“배달 업체들을 모니터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마침 선생님 번호가 떠서······.”
잠시 고민하던 전칠은 그렇게 대답했다. 여원이 하하 웃으면서 느릿느릿 다가가 가녀린 몸으로 두 사람 사이의 공간으로 파고들었다.
“여원이라고 합니다.”
여원은 고양잇과 동물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네, 여원 선생님. 기억나요.”
잠시 멈칫했던 전칠은 웃음을 보였고, 여원은 턱을 높게 치켜들었다.
“능 선생님, 오늘 뭐 하실 거예요?”
“게임하겠죠.”
전칠은 여원을 사이에 두고 능연에게 물었다. 전혀 시야를 가리지 않아서 대화하는 데 문제는 없었다. 배불리 밥을 먹었더니 살짝 졸리기도 해서 능연이 나른하게 대답했다.
전칠은 그런 능연을 활활 불타는 눈으로 바라봤다. 능연이 에너지가 넘칠 때는 비타민 같은 멋짐이 있었고 나른하게 있을 때는 느긋한 힐링미가 있었다. 전칠은 능연에게 무슨 게임을 하느냐고 물었다.
“왕자 영광이요. 해본 적 있어요? 레벨 뭐예요?”
“아, 깔긴 했는데, 제대로 해본 적은 없어요.”
“아, 그럼 됐어요.”
전에 프로 게이머들과 같이 게임 했던 때를 떠올린 능연은 고개를 흔들었고, 뭐가 됐다는 건지 설명도 하지 않았다.
능연이 게임하는 걸 본 적 있는 여원은 옆에서 웃음을 터트렸다. 게임 할 줄 모르면 확실히 능연의 파트너로는 부족했다.
전칠은 몇 마디 더 나누다가 다른 생각이 있는 듯 인사하고 떠났다. 그녀는 질질 매달리는 여자가 아니며 시간을 쓸데없는 곳에 쓰는 걸 싫어했다.
자기 집에서 운영하는 호텔로 돌아간 전칠은 침대에 누워 조공 단체 메시지방이 있는 핸드폰을 꺼내 사람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멍하니 있었다.
오늘의 메시지방은 조금 조용한 편이었다. 능연이 운화 병원에 있지 않으니, 조공 계획이나 협력 사항을 체크할 필요가 없었다. 남신들의 사진을 올리고, 음식 솜씨를 뽐내고, 윗선 욕을 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전칠은 머리를 두드리며 일어나 앉았다.
‘아니야! 입이나 배만 해결할 게 아니야. 능연 같은 의사가 혹할 만한 선물이 있을 거야. 먹는 거보다 훨씬 유혹적인 게!’
전칠은 핸드폰을 꺼내 5번을 길게 눌렀다.
“의료 문제 자문 좀 구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