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새카만 세단이 골관절 센터 후문 쪽에 멈춰 섰다.
옅은 색 버버리 맞춤옷을 입은 전칠이 고고한 한 마리 학처럼 조용히 차 옆에 서 있었다. 그가 보낸 사람과 함께 능연이 나타나자 전칠은 얼굴에 미소를 띠며 손을 흔들었다.
여원은 그보다 조금 뒤에서 졸린 듯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다.
“능 선생님, 뭐 좀 드리려고요. 아마, 선생님이 필요한 걸 거예요.”
전칠은 말을 멈추고 안절부절못하면서 능연을 바라봤다.
“선생님 친구 의견을 들은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요.”
“아.”
선물을 수도 없이 많이 받아왔고, 별별 희한한 것도 많이 받아온 터라 능연에게는 진작에 선물에 대한 면역력이 생겼다.
전칠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미리 말해두는데요, 돈을 주고 산 게 아니에요. 그냥 투자죠, 투자. 우리 집안 재단에서 어떤 기관에 설비를 기증했는데요. 새 설비가 들어가야 해서, 원래 있던 것들을 처분해야 하거든요. 어쨌든 재단에서 나서서 현지 대학에 기증하기로 했는데요, 선생님 대신 자격을 하나 신청했어요. 교육 목적이든 연구 목적이든 선생님이 그중에 하나를 처리해도 되는데요, 어쨌든 규정에 맞게 처리해야 해서······.”
전칠은 그렇게 말하면서 기사에게 눈짓해 차 문을 열었고, 그 안에서······.
“해부용 시체?!”
능연이 기뻐하며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허리를 숙여 141.4cm가 된 여원도 멍해졌다. 그리고 투명한 관 안에 있는 해부용 시체를 향해 그리움과 기대에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어느 시대든 해부에 쓸 시체는 항상 모자란다. 심지어 외과가 발전하던 초기에는 의사들이 시체를 훔치기도 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바로 해부학의 시조,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다. 그는 처음엔 동물 해부를 하다가 나중엔 연고 없는 공동묘지를 뒤졌으며, 그러다가 처형당한 사형수의 시체까지 신선하다는 이유로 훔쳤다.
나중에 묘지 수위가 안드레아스를 발견했을 때, 그의 지하실에는 피를 철철 흘리는 사람 머리, 심장, 간장, 비장, 신장, 사지들이 가득 걸려 있었다. 뇌물로 위기를 벗어난 안드레아스는 나중에 <인체 구조>라는 책을 썼고, 그전까지 권위자로 군림했던 갈레노스의 300여 가지 착오를 바로잡았다.
해부학 권위자 갈레노스는 해부할 인간 시체가 없어서 원숭이를 해부하여 정보를 모았다. 당시 외과 의사는 갈레노스의 이론으로 인체를 절개했던 걸 생각하면, 외과는 정신세계가 물질세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표본이었다.
시간이 그로부터 4, 5백 년 흐른 지금, 21세기에도 해부용 시체는 여전히 모자란다.
중국 의대생을 예로, 시체 한 구를 완전히 홀로 해부할 수 있는 학생은 아무도 없다. 각 부위 해부를 한 번씩이라도 해봤다면 괜찮은 의대를 나온 것이다. 그나마 그것도 학생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가능했다.
평균을 따져보면, 중국 임상 의사의 의사 생애 중 평균 10명 중 한 명에게만 해부용 시체가 공급된다. 의대생뿐만 아니라, 의사도 마찬가지로 해부할 시체가 없다. 대부분 의대생이 의사가 된 다음엔 해부할 기회조차 별로 없다.
기계 수리공을 예로, 평생 남이 차 수리하는 것만 보았고 직접 수리한 건 차량의 1/10일 때, 그에게 차 한 대 수리를 맡긴다면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현황을 바꾸고 싶어 하는 의사들도 많았다. 화산병원 정형외과 해부 클래스가 가장 좋은 예이다. 04년에 클래스를 열었고, 홍보도 없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방식으로 단기간에 클래스 수를 2개에서 20여 개로 늘렸다. 수강생은 모두 전국에서 몰려든 노련한 정형외과 의사였다.
사람들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화산병원까지 가서 수강하는 것도 바로 자기 병원에서는 해부용 시체를 구하기 힘들어서였다.
운화 병원도 마찬가지였다. 지역 정상급 병원이었지만, 해부 훈련은 없다. 그것 역시 지역 정상급 병원과 국내 정상급 병원의 차이 중 하나였다.
시체 한 구가 어떨 때는 수술 100번보다 더욱 효과적이다.
전칠이 해부용 시체를 가지고 왔다니, 능연뿐만 아니라 여원 역시 갈등할 이유가 없었다.
골관절 센터의 확인을 거친 두 사람은 좌우에서 해부용 시체를 호송하며 지하 1층으로 갔다. 그러곤 조심스럽게 해부대 위에 올리고 불을 켠 다음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그래, 이 냄새야.’
골관절 센터 해부실이 승화한 느낌마저 들었다. 시체가 있는 해부실이야말로 진정한 해부실이다.
다행히도 똑똑한 전칠은 아예 아래층으로 따라 내려갈 생각은 하지도 않고 진작에 쇼핑몰로 도망가 쇼핑 중이었다.
백화점이 아니라도 상관없어! 뭘 사든 상관없어! 사람이 많은 곳이면 돼!
밤에 차를 타고 병원에 온 것만으로도 한계였다. 그녀는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전칠과 달리 능연과 여원은 신이 났다. 그들은 해부용 시체 주위를 세 바퀴 맴돌면서 각자 머릿속에 방안을 떠올렸다.
어릴 때는 시체 소중한 걸 몰라서 그렇지, 의대 다닐 때는 그래도 교육용 해부용 시체가 있었다. 뻔뻔하고, 적극적이고, 잘생기고 예쁘면 어떻게든 연습 기회는 얻을 수 있었다.
병원에서 임상의가 해부용 시체의 지도를 받으려면 모든 것은 운에 달렸다. 능연은 그나마 나았다. 능연은 실습을 시작하자마자 3,000번 해부 경험(상체)을 얻었지만, 여원은 정말 오랜만에 해부용 시체를 봤다. 그녀는 장갑을 낀 손을 저도 모르게 부들부들 떨면서 시체를 더듬었다.
다음 순간, 여원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깔깔 웃었다.
야밤의 지하 1층에 불빛이 흔들거리는 사이로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퍼졌다.
똑똑.
똑똑똑.
노크 소리가 해부실에 울려 퍼졌다. 능연은 저도 모르게 눈썹을 찡그렸다.
“누구세요?”
“능 선생님? 저는 2팀 이닥이에요. 지난번에 수술하면서 만났었죠.”
문밖에서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난번 수술?”
“뺏으러 온 거야.”
능연이 아직 생각에 잠긴 사이, 여원은 콧방귀를 끼며 시체를 바라봤다.
“능 선생님, 능 선생님! 문 좀 열어 보세요!”
이 선생의 상큼한 목소리가 꼭 젊은 늑대 할아버지 같았다.
“어쩌지?”
“시체님께 물어보죠.”
“내가 어시할게.”
사회성 가득한 능연의 미소에 여원은 신이 나서 각종 수술 도구를 꺼냈고, 두 사람은 노크 소리를 완전히 무시했다.
여원은 능연이 더욱 부러워졌다. 요즘 여자들은 의사한테 해부용 시체를 선물할 줄도 알다니. 여원은 그런 남자가 있다면 그날 밤에라도 그와 결혼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능연 곁에서 어시만 할 수 있어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능연의 기술은 원래 훌륭했고, 여원도 그를 도우면서 해부용 시체를 만져볼 기회가 있으니 말이다.
지하 1층 해부실에 따듯한 노란 불빛과 반짝이는 하얀 불빛과 열심히 학습하는 초짜 의사 둘과 온화한 미소를 띤 해부용 시체가 있었다.
작고 행복한 천국이었다. 마치 무릉도원처럼.
문밖에서 노크하던 소리가 잠시 멈췄다가 또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누군가 큰소리로 고함도 쳤다.
“능연! 나 곡닥일세! 같이 유위신 수술했었던!”
대머리 의사의 고함은 10분 동안 이어지다가 목이 나갔는지 잠잠해졌다.
“능연! 황 선생일세!”
“능연! 나야 나, 유닥. 문 좀 열어 봐!”
하나 가면 하나 오고. 능연은 모두 못 들은 척했다.
그야말로 해부용 시체가 필요한 시기였다. 지금까지 능연은 탕 수술 400여 건, 아킬레스건 수술 200여 건, 그리고 500건 넘는 단지 이식 수술을 했었다. 그 밖에도 1,000번 가까운 신체 진찰과 더 많은 추나.
그런데 해부를 논하자면, 능연은 수부 해부 기초만 가지고 있어서 족부에 대한 이해는 상당히 떨어졌다. 축동익의 방안 A도 사실은 족부 해부를 바탕으로 건설된 방안이었다. 능연이 하체 해부 3,000번 기술을 가졌다면 아킬레스건 수술을 더 잘했을 것이다.
그리고 축동익도 그만한 상황이 됐다면, 방안도 좀 더 세밀했을 것이다.
전신 해부 지식은 더욱 적었다. 그래서 지금 전신 정맥 계통의 상황을 보고 싶었다. 능연은 신경 계통에 관심이 많았는데 의대에서 해부할 때 신경 계통 쪽을 전혀 접해보지 못했었다.
그리고 상체 해부를 해보는 것도 좋은 기회였다. 그의 해부 경험은 시스템에서 온 것에다 경험일 뿐이라 철저히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완전한 해부를 한번 해보면 그의 사고 정리에 더 큰 도움이 되리라.
능연은 여원과 함께 해부실에서 꼬박 밤을 새웠다.
배고픔과 갈증을 참으면서.
다음 날 아침, 해부용 시체에서 더는 배울 것이 없어진 능연은 그제야 여원을 시켜 정리하게 했고, 장 안에 잠가 놓고 슬그머니 문을 열었다.
다행히 문밖에서 잠자면서 지키는 바보는 없었다.
가볍게 숨을 내뱉던 능연은 순간 골관절 센터 의사들을 무시하는 마음이 생겼다. 하룻밤도 못 견디다니, 전혀 외과 의사답지 않지 않느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