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177화 (158/877)

“능연, 오늘 수술은 풀로 녹화할 거야.”

능연의 어시를 설 기천록이 그에게 코치했다.

99kg 거구 의사가 촬영 기사를 겸직했고 그의 곁 삼각대 위에 투명 비닐로 싸인 캠코더가 있었다.

물론 의학 센터 수술실에는 전경을 찍는 카메라와 수술 시야를 고화질로 잡는 카메라가 있어서 수술 전 과정을 참관실에서 실시간 관람할 수 있었다. 다만 회의에서 영상을 쓰게 될 수도 있어서, 축동익은 더 많은 각도를 잡을 수 있도록 특별히 일반 카메라 한 대를 수술실에 놓았다.

수술실 전경 카메라는 위에서 아래로 찍는 앵글이라 놓치는 부분이 생기니까 레지던트에게 다른 각도를 찍도록 한 것이다.

능연은 살짝 고개를 들고 ‘네’ 하고 대답할 뿐, 별다른 의견을 내지 않았다.

아킬레스건 수술은 익숙할 대로 익숙한 수술이었다. 해부용 시체로 트레이닝도 했고, 본인도 실력이 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능연은 특별히 일찍 수술실에 들어갔다. 체크도 할 겸, 기계도 살펴볼 겸.

“더 얇은 에디슨 포셉 몇 개 가져다주세요.”

능연은 눈으로 트레이 위의 기구를 훑은 다음 한마디 했다.

에디슨 포셉은 얇은 조직과 피부를 집을 때 쓰는 도구다. 규격이 여러 가지라, 의사마다 필요한 규격이 다르다. 사전에 이야기하지 않으면 간호사는 보통 정규 사이즈를 가져다 놓는다.

정규 사이즈 성형 포셉을 써도 상관없지만, 손에 익지 않았다. 하수는 뭘 쓰든 실패하고, 고수는 뭘 쓰든 성공하지만, 그래도 쓰기 좋은 도구는 있는 법이었다.

간호사는 순순히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바로 도구를 찾으러 갔다.

“환자 상태는?”

능연이 여원을 향해 물었다. 퍼스트 어시는 기천록이지만, 주임 의사인 기천록이 병상 관리를 할 리가 없었다. 그가 전자 차트를 쓸 수 있는지 없는지도 많은 사람이 의문을 가졌다. 의사는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존재가 맞지만, 급이 높을수록 놀라울 정도로 일부 기능이 퇴화하기도 한다.

여원은 오늘 환자의 병상 담당의가 아니지만, 3년 레지던트 생활을 했으니 집도의 질문에 대답할 만큼 준비는 철저했다.

“환자 27세, 국가 대표 펜싱 선수입니다. 아킬레스건 불완전 파열. 개 산책시킬 때 이웃집 허스키가 달려들어서 뒤로 넘어지면서 오른쪽 아킬레스건 통증을 느끼고 활동에 제한이 있어서 MRI를 찍었더니 오른쪽 아킬레스건이······.”

능연은 정색하고 들었지만, 기천록은 벌써 웃음을 터트렸다.

“허스키 때문에 넘어져서 아킬레스건 다쳤다고?”

기천록은 동정심조차 없는 표정으로 궁금해했다. 촬영 중임을 아는 여원은 진지한 148cm 초등학생 MC 같았다.

“환자의 말에 따르면 그렇답니다.”

“예전에 끊어진 적 있대? 옛 상처 있어?”

기천록은 너무나 궁금해서 집도의 능연이 묻지 않자 직접 물었다. 어차피 환자도 아직 들어오지 않았고.

“그런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국가 대표인 이 펜서께서는 아, 아까 27살이라고 했나? 멀쩡한 아킬레스건으로 십여 년 활동하다가, 결국 개한테 부딪혀서 아킬레스건이 끊어졌다?”

“허스키요.”

“흠흠, 개가 달려들어서 넘어져서 부러진 거죠.”

능연이 엄숙하게 헛기침하면서 말했다.

“능 선생, 너도 웃고 싶으면 웃어.”

힐끔 능연을 본 기천록이 말했다.

능연이 무표정하게 있다가 기천록이 시선을 돌리자 바로 입가를 실룩였고, 그 장면이 동영상에 똑똑하게 찍혔다. 그러자 안 그래도 웃음바다였던 참관실이 완전히 뒤집혔다. 여자들은 더욱 난리였다.

“능 선생님 웃었어!”

“아우, 귀여워.”

“능 선생님 웃으니까 쏘 스위이이이잇!”

“능연 파이팅!”

참관실이 후끈해졌다.

“안 들리는 거 알지?”

몰래 내의를 입고도 아직 한기를 느끼는 곡 선생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알죠.”

“남신이 우리 이런 꼴 보면 어쩌라고요.”

“그러니까요.”

곡 선생은 능연에게 목덜미를 잡혔을 때 느꼈던 오싹했던 공포감을 떠올리고 무심결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고는 천진난만한 간호사들을 바라보면서 ‘꽃미남의 진면목을 너희들은 몰라.’라며 혀를 찼다.

환자가 수술실로 들어온 후에야 웃음이 멎었다.

기천록도 겨우 웃음을 참고 웃다가 흘린 눈물을 닦았다.

“손 좀 다시 씻고 올게.”

“네.”

능연은 간호사가 입혀주는 수술복을 걸쳤다.

“저 처음이에요. 선생님 살살하세요.”

환자는 이리저리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긴장이 되는지 농담을 했다.

“긴장하지 마세요. 능 선생님 아킬레스건 수술은 일류예요. 전에 환자분이랑 비슷한 수술 했는데, 그 환자분 얼마 전에 전국 대회에서 동메달 땄어요.”

여원이 위로하는 말에 환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올림픽에서 메달 딸 수 있던 사람이 전국 대회에서 동메달 딴 거겠죠.”

“아니에요!”

체육계를 잘 모르는 여원은 더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환자가 자조하며 말했다.

“은퇴하려고 했었으니까, 안 되면 은퇴하죠, 뭐.”

“우리가 지금 하는 수술은 리스크가 높습니다. 그렇지만 효과는 좋습니다. 운동선수 타겟이고 아킬레스건 회복 요구가 높은 수술입니다. 회복 기간도 그렇고요. 은퇴하실 생각이면 일반 아킬레스건 수술을 고려해 보시길 건의 드립니다.”

환자의 말을 들은 능연이 갑자기 한마디 했다. 그 말에 환자가 멈칫하더니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계획대로 해요. 27살이라 은퇴할 나이는 됐지만, 사람 맘이 참 그래요. 아직은 아닌 거 같아요.”

“선생님, 약부터 드십시다.”

마취의는 능연이 눈짓하자 도구를 들고 앞으로 나왔다. 환자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바로 잠들었다.

“아킬레스건 보건술.”

능연의 말과 함께 수술이 시작되었고, 그는 메스를 들고 절개를 시작했다. 퍼스트 어시인 기천록은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봤다. 이전에 그도 능연의 동영상을 봤었으나 이번에 맨눈으로 볼 기회가 있으니 당연히 좀 더 잘 보려고 노력했다.

기천록은 아직도 동영상 속 능연의 손놀림이 놀랍기만 했다. 레전드급 아킬레스건 수술은 기천록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물론 능연은 지금 그랜드마스터급에 불과하지만, 기천록 눈엔 똑같이 완벽해 보였다.

사실 능연의 그랜드마스터급 기술은 세계 100위 안에 들 수준이었다. 의사가 어떤 수술로 세계 100위 안에 들 수 있다면, 세상 어디를 가도 특별 대우를 받는다. 이번 국제회의 참가자들만 봐도, 세계 100위에 들 만한 외과 의사는 하나도 없었다.

기천록과 축동익은 처음부터 능연을 세계 100위 강자로 보진 않았다. 그러나, 강했다. 어쨌든 강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외과 의사의 수준이 세계 100위에 드는지 아닌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 국제회의 슬로건 아래 ‘국제’라는 말이 들어가자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회의장에서 이 영상을 틀지 말지, 그것을 결정하는 것이 기천록의 몫이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얼마 전에 봤던 외국 능력자들의 영상 자료를 떠올리면서 능연의 수준을 판단하려 했다.

그랬더니······.

그랬더니, 판단이 서지 않았다.

‘요즘은 서전의 실력을 판단하기 점점 힘들어지는데, 능연 이 녀석은, 아무튼 강하긴 해.’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끝났습니다. 저는 옆 수술방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능연이 가위를 던지고 말하자 기천록은 당황했다.

“나도 같이 가.”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기천록은 능연과 수술 하나를 하면서 능연의 지금 상태를 확인한 후 다른 일을 할 예정이었다.

동영상을 틀지 말지 판단하려고 하면 할수록 자신이 없어졌다. 다른 일을 하려니 손에 잡히지도 않을 것 같았다. 제대로 능연의 수술을 봐야만 했다.

능연은 안 될 게 뭐가 있겠냐 싶어서, 나머지 일을 여원에게 넘기고 기천록과 함께 옆 수술실로 향했다.

앞장선 능연은 힘차고 당당한 발걸음으로 걸어 나갔고, 뒤를 따르는 기천록은 자신감 없이 미간을 팔자로 꺾었다.

두 사람의 위치가 바뀐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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