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게이포드, 닥터 캐딜락. 이쪽이 우리 수술 구역이라네.”
축동익은 일찍 도착한 외국 친구 몇 명을 데리고 센터를 참관했다.
게이포드는 뉴질랜드 오클랜드 시립병원에서 온 평범한 수준의 전문가였다. 캐딜락은 메이요에서 왔는데 아직 이름을 알리지 못해서 이번에 견문을 넓힐 생각으로 참석했다.
이 두 사람을 제외하고 사전에 도착한 외국 의사들은 이름도 없고 재직하는 병원조차 평범했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 온 모모 의사, 말레이시아에서 온 모모 의사, 영국에서 온 모모 의사. 축동익에게 그들은 머릿수를 채우는 존재에 불과했다.
영국에서 온 브랜든은 심지어 이제 막 서른 넘은 젊은 의사였고, 쉴 새 없이 핸드폰을 들고 동영상을 찍어대는 등 외교 매너도 없었다. 축동익 원사는 어쩔 수 없이 참으면서 우선 다른 사람들을 대접했다.
“우리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의 업무엔 하급 의사 트레이닝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병원엔 연구의가 많지요. 이따 만나볼 수 있을 겁니다.”
“저 여자들은 왜 저기 몰려 있는 겁니까? 가보죠.”
브랜든이 갑자기 핸드폰을 들고 앞쪽 모퉁이에 있는 여자 자원봉사 무리 쪽으로 달려갔다.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는 넓게 지어져서 수술실과 참관실이 있는 복도의 넓이가 5m는 되는데 지금은 핫플레이스 매표소 앞처럼 시끌벅적했다.
축동익은 멍해졌다가 힘껏 헛기침하며 설호초를 향해 눈짓했다. 바로 그 의미를 파악한 설호초가 다급하게 달려나가 브랜든을 막았다.
“닥터 브랜든, 저분들은 모두 자원봉사자입니다. 사진 찍지 마세요.”
“왜요? 자원봉사자들이 사진 찍는 거 싫어합니까? 아니면 중국의 전통?”
브랜든은 목소리를 높여서 영어로 여자들에게 말을 걸었다.
“아가씨들! 이쪽 좀 봐 줄래요? 나는 영국에서 온 브랜든입니다. 중국 여행에 관한 영상을 찍고 있어요.”
자원봉사자들은 고개를 돌려 브랜드를 보더니 뭐라고 소곤대며 웃고는 아무도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아? 영어 모릅니까?”
브랜든은 언짢은 듯 얼굴을 찌푸렸고 설호초는 껄껄 웃었다. 다들 사전 교육을 받은 자원봉사자였다. 내용도 별로 없고 시간도 짧았지만, 지켜야 할 기본적인 내용은 전달했다. 아까 그가 안 된다고 한 걸 보았으니 당연히 브랜든의 말을 따르지 않을 것이었다.
브랜든은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면서 무언가 꿍얼거리며 핸드폰을 들고 앞으로 갔다. 그는 핸드폰을 들고 자원봉사자의 얼굴을 찍으면서 지나갔다.
“이름이 뭔가요?”
브랜든은 현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붙잡고 물었다.
“한매매예요.”(중국 영어 교과서에 나오는 이름)
여자는 브랜든을 힐끔 보고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현장에 있던 젊은 사람들은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일그러졌다. 설호초도 웃음을 터트리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였다.
영문을 모르는 브랜든은 계속 질문을 던졌다.
“뭘 보는 거예요?”
“수술이요.”
“의대생인가요?”
브랜든은 학생으로 보이는 여자들의 모습에 핸드폰을 들고 물었다.
“아니요.”
“그런데 수술은 왜요?”
동영상 아이템을 찾고 있던 브랜든은 그렇게 물으며 천천히 인파를 뚫고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참관실의 대형 모니터가 바로 보였다.
참관실은 모든 의료진이 시간 날 때마다 학습하며 자기 발전을 추구하길 바라 마지않는 의도에 따라 기본적으로 의료진에게 열려 있다.
그러나 외부인은 참관실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 문제는 각자 견해가 다른 문제였다.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는 자원봉사자의 참관실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축동익은 사람들이 그곳에 몰려 있는 걸 큰일로 여기지 않았고, 다만 어서 브랜든을 데리고 가라고 설호초에게 눈짓으로 명령했다.
축동익은 다음부터 절대로 저 녀석을 초대 명단에 올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병원에서 추천해도 거절해야겠다고 말이다.
“닥터 브랜든.”
“잠시만요. 재미있는 수술이네요.”
밖에서 문을 사이에 두고 볼 브랜든이 아니었다. 그는 문을 열고 바로 참관실 안으로 들어갔다. 뒤에 있던 VIP들도 따라 들어가자 축동익과 설호초도 어쩔 수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주임님, 안녕하세요.”
“원사님!”
“주임님, 오셨습니까.”
수술 장면을 지켜보던 의사들이 일제히 일어나 인사했고 축동익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번 앞으로 걸어 나간 브랜든은 핸드폰으로 모니터의 수술 장면을 찍기 시작했고, 설호초는 얼굴을 찌푸리며 어색한 영어로 그를 말렸다.
“닥터 브랜든, 이러시면 안 됩니다.”
“당신들이 초빙한 고수죠? 우리 교수님 수준은 되겠네요. 음, 재미있는 동작이네. 매우 세심하네요. 누구입니까?”
브랜든은 똑똑한 영어 발음으로 천천히 물었다.
나이든 축동익은 한참 만에 브랜든의 교수가 누군지 기억해냈다. 브렌트 윌리스, 영국에서 상당히 유명한 정형외과 의사였다. 브랜든이 이번 회의에 참석할 자격을 갖춘 이유기도 했다.
브렌트 월리스는 한때 영국에서 유명한 정형외과 의사 중 하나로 손꼽혔고, 영국 정형외과에서 지위는 축동익의 중국 정형외과에서의 지위보다 더 높았다. 그러나 브랜든은 그의 유일한 제자도 아닌 데다 기껏해야 설호초보다 좀 더 높은 정도라 별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축동익은 브랜든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능연이 수술 중입니다. 아킬레스건 수술.”
“중국 의사가 아킬레스건 수술을 하고 있답니다.”
설호초의 설명을 들은 축동익은 능연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이런 회의에서는 이름보다 국적이 더 중요했다.
“중국 의사요?”
브랜든은 핸드폰을 쥐고 모니터를 바라보면서 점점 조용해졌다.
능연의 수술을 보는 사람들은 다 그런 반응을 보인다.
“새로 발생한 아킬레스건 수술을 이렇게······. 축 원사님, 이게 당신이 설계한 방안입니까?”
“그렇소.”
호기심이 생긴 브랜든이 묻는 말에 축동익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이런 식으로 수술할 수 있는 의사는 매우 드물겠죠.”
브랜든의 사고회로가 팽팽 돌아갔다. 그의 목적은 여전히 동영상이었다.
축동익은 그저 싱긋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만사가 손바닥 위에 있다는 것처럼. 브랜든도 더는 입을 열지 않고 오로지 핸드폰을 들고 계속해서 찍어댔다.
아킬레스건 수술의 후반부는 10분 정도였고 영상을 찍은 브랜든은 바로 이메일을 쓰고서 영상을 첨부했다.
“수술실이 바로 옆에 있는 거 맞나요?”
브랜든은 핸드폰을 집어넣으며 궁금한 듯 물었다.
참관실 동영상에서는 수술 시야의 상황과 의사도 볼 수 있었다. 브랜든은 수술도 궁금하고 능연도 궁금했다.
수술이 궁금한 건 의사의 본능 때문이었고, 능연이 궁금한 건 업로더의 본능 때문이었다.
사실 브랜든도 자기가 의사인 걸 더 의식하는지, 업로더인 걸 더 의식하는지 잘 모르는 상태였다. 의사 신분이 없어지면 그냥 평범한 업로더일 뿐이겠지만, 업로더 신분을 포기한 평범한 의사의 삶은 썩 내키지 않았다.
여자 자원봉사자 하나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브랜든을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브랜든은 그걸 본 건지 몰라도 핸드폰을 들고 사방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보통 참관실은 수술실 근처에 있어서, 브랜든은 이내 능연이 수술하고 있는 수술실을 찾아냈고 마침 그곳에서 나오던 능연을 막아섰다.
능연은 파란 수술복을 입었는데 그의 눈빛은 맑고 침착했다. 끝내주는 몸매로 곁에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그의 모습에 브랜든은 높은 산을 우러러보는 기분이 들었다. 브랜든은 자기도 이런 느낌의 사람인 데다가 의사이기까지 했다면 쉽게 인터넷 스타가 됐으리라 생각했다.
브랜든은 저도 모르게 핸드폰을 치켜들었다. 눈앞의 장면만 찍어도 편집해서 올리면 구독자를 적지 않게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멍멍.
래브라도가 빠른 속도로 달려들자, 건장한 브랜든도 깜짝 놀라 황급히 몸을 피했다.
“막아!”
뒤따르던 여경 진민이 오른손으로 브랜든을 가리키며 신속하게 명령을 내렸다. 경찰견 밤톨이는 브랜든을 막아 진중하게 지령을 집행하고는 우호적인 태도로 능연을 향해 혀를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촬영 금지 구역입니다.”
진민은 브랜든을 향해 경례하고 중국어로 한 번, 영어로 한 번 내용을 반복했다. 그러자 브랜든은 순순히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진민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능연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능연은 사람들을 향해 미소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각자 능연이 자신에게 인사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능연, 이리 오게. 여기는 닥터 게이포드, 닥터 캐딜락. 그리고, 흠, 닥터 브랜든.”
축동익은 능연에게 현장에 있는 의사들을 소개했다.
“능연은 우리 중국 젊은 의사 중에 능력자입니다. 매우 우수한 친구지요. 단지 이식과 아킬레스건 수술을 매우 훌륭하게 합니다.”
단지 이식과 아킬레스건만으로도 설명은 충분해서 탕 법까지 거론하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능연의 소속 병원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는데, 어찌 됐든 능연은 아직 운화 병원과 정식으로 계약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여전히 실습생 신분이라 나중에 어느 병원에서 근무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런 자리에서 다른 병원 이름을 꺼낼 축동익은 아니었다.
게이포드는 수염을 만지며 능연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고, 캐딜락은 우아하게 손을 내밀어 능연과 악수했다.
“닥터 능, 언제 메이요에 참관 학습 오세요. 나는 정형외과 주치의 캐딜락이에요. 언제든 나를 찾아와요.”
붉은 립스틱을 바른 입술을 오물거리며 캐딜락이 명함을 내밀었다.
영어를 알아들은 의사들이 다들 멍해졌다. 특히 중국 의사들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이렇게 메이요 초대를 받는다고? 메이요 초대가 이렇게 쉬운 거였어? 메이요라고, 세계 제일 메이요 클리닉!’
설호초마저 넋이 나갔다.
‘지난번에 난 왜 실패한 거지? 메이요 주치의가 이렇게 쉬운 상대였어? 그리고 학습까지 하라고?’
미국 병원의 진료과는 과 주임이 관리하며 그 밑에 다른 주임은 없고 주치의와 레지던트만 있다. 그래서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캐딜락이라고 해도 메이요 초대장을 보낼 수 있었다.
박사 설호초는 생각할수록 부러워서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능연은 미소 지은 채 명함을 받을 뿐, 유별난 행동은 하지 않았다. 다른 의사들은 메이요를 명성을 올리는 지름길, 혹은 최고의 학습 장소로 보지만 능연에겐 아니었다.
능연에게 자기 실력을 올리는 방법은 간단했다. 우선은 수술이고, 그다음이 ‘진심 어린 감사’와 ‘같은 의사의 칭찬’, 그리고 그다음은 퀘스트 완수였다. 메이요로 간다고 해서 퀘스트 완성도를 높이리란 보장도 없었다.
캐딜락은 능연을 바라보며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본 진민은 발로 살짝 밤톨이의 엉덩이를 찔렀다. 그러자 밤톨이는 즉시 능연에게 뛰어가 그의 주위에서 두 바퀴 맴돌고는 철퍼덕 주저앉아 귀여움을 피웠다.
역시나 능연은 귀엽다는 듯 밤톨이의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밤톨이는 망설임도 없이 능연의 손바닥을 머리로 파고들어서 힘껏 비벼댔다.
진민은 흥분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렵게 훈련한 기술은 과연 필살 효과가 있었다.
“능 선생, 수술 참 잘하시네요. 다른 수술도 예정되어 있나요?”
“녹화된 영상을 틀지도 모른다더군요.”
브랜든의 질문에 능연은 아는 대로 대답했다. 브랜든은 축동익을 바라봤다.
“능 선생의 현장 퍼포먼스를 못 본다니 너무 아쉬운데요.”
“수술은 쇼가 아닐세. 닥터 브랜든.”
외국 초짜 의사의 말 하나로 계획을 바꿀 축동익이 아니었다. 회의 순서는 다 세팅되었고, 쉽게 바꿀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실시간 수술은 능연의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과분했다.
현장에서 수술한다는 건 한쪽은 수술실에서 수술하면서 대형 모니터로 방송하는 방식이라서 커다란 참관실이나 마찬가지였다. 수술실의 집도의는 그로 인해 더 많은 발언권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런 발언권은 보통 교육적 의미가 있었다.
이런저런 각도에서 고려해도, 능연이 국제 전문가 앞에서 지도 수술을 하는 건 마땅하지 않았다.
브랜든은 여전히 아쉬움이 남았지만,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낮은 목소리로 능연에게 몇 마디 건넨 축동익은 사람들을 데리고 계속 참관을 진행했다.
“캐딜락이라는 의사를 조심하세요. 단순하지 않을 거예요.”
사람들이 모두 떠난 후, 진민이 능연에게 말했다.
“아.”
“제 말 믿으세요. 우리 밤톨이는 저 여자 냄새도 안 맡는다고요. 경찰의 경험으로 말씀드리는데, 저 나이대 외국 여자는 무섭답니다. 쉽게 믿어선 안 돼요.”
능연은 이상한 듯 진민을 바라봤다.
“무시무시해요.”
진민의 표정은 진지했고, 래브라도도 사지를 꼿꼿이 세우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능연은 웃음을 터트렸다.
주변에 여자 자원봉사자들이 일제히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이곳에서 사진 찍지 마시길 바랍니다.”
진민이 엄숙한 표정으로 경례했다. 민주 교육을 받은 대학생들은 경찰을 무서워하지 않았고, 대담하게 경찰 번호를 묻는 사람도 있었다. 진민은 일일이 대답하면서 사람들의 포위를 뚫고 능연을 데리고 나갔다.
그때 다른 경찰들이 뛰어가 진민에게 경례한 다음 의문을 품은 눈빛으로 능연을 바라봤다.
“저 승진했어요.”
“축하해요.”
진민은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능연에게 말했다. 능연은 미소 지으며 축하 인사를 전했다.
“마약 사범을 잡은 것뿐만 아니라, 휴가를 일찍 반납하고 복귀해서 승진이 결정됐다고 하더라고요. 음, 제가 인터뷰를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혹시 생각 있으시면 제가 위에 말해 볼게요. 밤톨이 구하셨잖아요.”
“아닙니다.”
능연이 재빨리 ‘완곡하게’ 거절하자, 진민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진민이 뭔가 이야기를 더 하려는데 뒤에서 브랜든이 다시 나타났다.
“닥터 능, 안녕하세요. 저의 교수님인 닥터 브렌트 월리스가 선생님 수술에 관심이 있다고 하네요. 그 환자들의 병력과 환자 상황을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브랜든은 이번엔 핸드폰 없이 친한 척 말을 걸었다.
“방안 A 말씀인가요? 그건 축동익 원사님이 설계한 방안입니다.”
“하지만 수술은 선생님이 하셨죠.”
“원사님께 여쭤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물어봤어요. 직접 물어보라고 하더군요.”
예의를 갖춰 대답하던 능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방안 A로 수술한 케이스 몇 개는 모두 운동선수 대상이었습니다. 궁금한 게 뭔가요?”
“치유 후 복귀한 선수가 있나요?”
“물론입니다.”
“잘됐군요! 이름을 알려 주실 수 있나요?”
브랜든은 긴장한 듯 다급히 덧붙였다.
“환자의 상황에 대해서 아는 것도 회의에 참석한 목적이랍니다.”
능연은 우선 하수방을 떠올렸고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환자한테 연락부터 해보겠습니다. 상대가 허락하면 연락드리죠.”
“연락 꼭 좀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브랜든은 정중하게 인사했고, 능연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육상팀은 십중팔구 하수방을 내세우고 싶어 할 것이고, 방안 A를 홍보하는 데도 좋으리라 생각했다.
육상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끄덕이지 못해 안달이었다. 돈도 안 드는 홍보에, 그것도 외국에 홍보가 된다니, 돈보다 유혹적이었다.
브랜든은 영국에서 온 못 미더운 업로더지만, 광고를 정치적 업적으로 본다면, 그를 살짝 포장해도 좋을 것 같았다.
- 영국에서 온 개인 미디어 겸 의사 브랜든 씨가 우리 시 육상팀 원반던지기 하수방 선수를 인터뷰했는데요, 하수방 선수는 이제 막 부상에서 회복해서 복귀했습니다. 브랜든 씨는 우리의 하수방 선수의 용기와 끈기, 불굴의 정신에 찬사를 표했습니다. 하수방 선수는 얼마 전에 열린 전국 육상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면서 개인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육상팀은 아름다운 환상을 품고 하수방을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로 보냈다.
번쩍번쩍 빛나는 대리석 바닥.
하늘색 벽.
넓은 의국과 진료 대기실.
굳이 평가하라고 하면, 하수방은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의 오피스 빌딩이 육상팀 사무실보다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병원 분위기는 조금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병원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궁금한 게 뭔가요?”
하수방은 파란 눈의 브랜든을 대할 때도 변함없이 무뚝뚝했다. 지금 한창 트레이닝을 할 때라 1분 1초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으나 육상팀 윗분이 지시하니 하수방도 어쩔 수 없었다. 동메달로 육상팀에 남긴 했지만, 특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브랜든은 이런 비협조적인 환자에 익숙했다. 특히 그는 비협조적인 운동선수를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자주 접해왔다. 그는 껄껄 웃으면서 통역사에게 말을 전했다.
“아킬레스건 검사를 다시 한번 해드리려고요. 걱정마세요. 아킬레스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 그냥 상황을 좀 알고 싶어서······.”
“무슨 상황이요?”
하수방의 얼굴에 의심이 가득했다.
“아킬레스건 회복 상태죠. 후속 진료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예?”
“시간이 흘렀으니까, 아킬레스건에 무슨 변화가 있는지 보자는 겁니다. 변화가 생겼다면, 좋은 쪽인지, 나쁜 쪽인지 말이에요.”
브랜든은 하수방이 알아듣길 바라면서 천천히 똑똑한 발음으로 런던식 영어를 내뱉었다. 이는 통역사에게 좋은 일이었고, 통역사는 정확한 통역을 할 충분한 시간을 벌었다.
그 말에 하수방의 태도가 조금 변했다.
“안 좋은 쪽으로 변할 수도 있나요?”
통역된 말을 들은 브랜든은 하수방을 한번 보고 웃으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모든 가능성은 존재합니다. 저는 그저 가능성을 말한 거고요. 구체적인 상황은, 검사를 좀 해보면 확실해지겠죠? MRI부터 하고 상황에 따라 다른 검사를 할까 합니다. 괜찮을까요?”
“아. 네, 그래요. 능 선생님 계시나요? 능 선생님이 해주시면 좋겠는데.”
“능 선생을 더 신뢰하나요?”
“당연하죠.”
하수방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환자들은 일반적으로 외국 의사들을 더 믿지만, 수술 경험이 있는 하수방은 의사 실력에 대해 주관이 생겼다. 육상팀에서 수술받아 본 선수는 매우 많고, 출국해서 수술받은 사람도 많다. 그러나 하수방처럼 수술 결과가 좋은 사람은 손에 꼽혔다.
의학이니 뭐니 몰라도 선수들의 수술 결과와 자신의 수술 결과만 비교해도 그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특히 같은 아킬레스건 파열은 수술 후 강제 은퇴한 선수도 있어서 더 강렬하게 대비되었다.
브랜든은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의 영국 억양은 꽤 먹혔다. 미국 혹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회의 참석할 때조차 영국 억양으로 말하면 환자들은 더욱 안심했고, 더욱 신뢰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브랜든이 제일 많이 가는 인도는 어느 진료소를 가든 그의 말이 현지 의사보다 훨씬 더 잘 먹혔다. 물론 그렇다고 다른 의사를 깔볼 생각은 없었다.
“능연 선생은 아마 조금 이따가 올 겁니다. 제가 우선 검사를 진행하고 결과가 나오면 능 선생님 자문을 구하는 건 어떨까요?”
하수방이 그 말에 동의하자 곁에서 기다리던 설호초도 한숨을 돌리면서 작은 목소리로 기천록에게 말을 걸었다.
“펑키나 락 스타일로 진료 볼까 봐 걱정했더니, 그래도 꽤 진지하네요.”
“영국 의사잖아. 의사와 환자 관계는 미국이나 영국이나 거기서 거기야. 유럽이나 미국 의사는 소송에 한 번 걸리면 돈을 배상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보험료까지 오른다고.”
외국 경험이 많은 기천록은 웃었다.
“아, 그런 걸 몰랐네요. 자본주의 의사라고 쉬운 건 아니군요.”
“그러니까 말이야. 아무튼, 쟤가 영상을 찍네, 마네, 신나서 난리를 쳐도, 문제를 만들고 싶진 않을 거야.”
기천록은 무시하듯 브랜든을 바라봤다. 그는 내가 저 입장이라면 몇 배나 성취감 있는 일을 하겠지 싶었다. 중국 의사가 명성을 얻는 건 영국 의사보다 힘들고 힘든 일이었다.
브랜든은 직접 하수방을 데리고 MRI실로 이동했고, MRI를 찍는 것도 직접 지켜봤다. 그는 벌써 하수방이 전에 찍었던 필름도 확인했다. X-ray, CT와 MRI 그리고 하수방의 차트까지. 재검사는 브랜든의 의견일 뿐만 아니라, 그의 스승의 제안이기도 했다.
아킬레스건 수술은 아무 의사라도 할 수 있었지만, 스포츠 의학에서는 걱정거리였다.
이렇게 좋은 케이스를 만난 만큼, 브랜든과 그의 스승이 ‘진실한’ 상황을 알아보고 싶은 것도 당연했다.
브랜든은 핸드폰도 꺼내지 않고 착실하게 하수방이 MRI 기기에 들어가는 것을 지켜봤고, 모니터의 피드백을 살피면서 스캔이 끝나자 바로 컴퓨터 화면을 보며 판독하기 시작했다.
“잘 회복되고 있네요.”
시간에 맞춰 아래층으로 내려온 능연이 우선 본인의 평가를 내렸다. 사진으로 봐서 하수방은 잘 회복되고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저도 좀 보겠습니다.”
브랜든은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MRI를 통해 수술 흔적을 볼 수 있었고, 마찬가지로 아킬레스건이 훌륭하게 회복되었음을 볼 수 있었다. 놀라울 정도로 훌륭하게!
“시합에도 나갔었다고요?”
브랜든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질문을 던졌다. 능연은 상대를 지정하지 않은 그런 질문에 대답하는 법이 없었다. 그러자 설호초가 웃으면서 나서서 대신 대답했다.
“네, 아까 말했던 전국 육상 대회요. 중국에서 비교적 수준 높은 육상 경기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담도 심했겠네요?”
“물론입니다.”
“회복 능력이 정말 뛰어난 선수로군요.”
브랜든은 의학이 아닌 환자 본인의 회복 능력부터 거론했고 설호초는 대답하지 않고 슬쩍 웃어넘겼다.
기천록은 힐끔 능연을 보고는 그를 추켜 세워주기로 했다.
“능연은 그때 한 번에 선수 4명 아킬레스건 수술을 했죠. 유위신은 제외하고요. 하수방이랑 같이 수술받은 선수들 MRI도 있을 겁니다. 며칠 전에 재검 받으러 왔거든요.”
그의 지시에 영상의학과 의사가 자료를 들고 나왔다.
허리를 숙인 브랜든은 코를 벌름거리면서 유심히 판독했다. 그 역시 다년간 훈련된 의학 박사였다. 기천록이나 축동익이 무시하긴 해도 어쨌든 몇 년이나 의사 생활을 한 임상의라서 기본 능력은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필름을 보던 브랜든은 결국 승복했다. 환자 4명의 수술 상황은 거의 똑같을 정도로 안정적이었고, 그 점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네 사람의 수술 결과가 특별할 정도로 훌륭한 건 말할 것도 없었다. 다만 나머지 세 사람은 하수방보다 재활과 훈련을 열심히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초급 보물 상자가 살며시 능연 앞에 떨어졌다.
‘같은 의사의 칭찬’은 상대방이 무릎을 꿇었음을 능연에게 소리 없이 알렸다. 능연은 살며시 턱을 치켜들었다.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에 온 이래 그의 보물 상자가 끊임없이 늘고 있었다. 조금 전에 받은 것까지 모두 31개였다.
그는 원래 40개까지 모은 다음 열 생각이었다. 상자를 열어온 역사를 보면, 10개, 20개를 같이 열었을 때 괜찮은 스킬을 얻었었다. 배수로 따지면 40개를 모아서 여는 게 타당해 보였다.
그러나······.
31은 소수(素數)다.
그것도 11번째 소수.
11도 소수였다.
그것도 5번째 소수.
5도 3번째 소수다. 3도 물론 소수고, 2번째다. 2도 소수다!
소수 5연패!
또 소수다.
“시스템! 상자 열어! 몽땅 열어!”
거기까지 생각한 능연은 마음이 편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