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179화 (160/877)

하얀 보물 상자들이 능연 앞에서 열렸다.

상자들이 겹겹이 능연의 시야를 사로잡으며 한꺼번에 열렸다. 눈앞에서 불꽃이 터지는 것처럼 찬란했다. 예상했던 대로 스태미너 포션이 대량 나타났고, 능연은 평온한 심정으로 31개 보물 상자에서 스킬북 2개가 나온 사실을 받아들였다.

뭐 어찌 됐든 소수 순환으로 연 보물 상자에서 가장 작은 소수 2가 나오는 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론상으로 능연은 31개 보물 상자에서 37개의 스킬북이 나오길 더 바라긴 했지만.

“시스템, 스태미너 포션 챙겨 놔.”

스태미너 포션 누적량이 241에 이른 능연은 이제 스태미너 포션에 관심이 하나도 없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필름을 읽고 있었다.

MRI 판독은 원래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브랜든은 선수들을 비교까지 해야 해서 더 오래 걸렸다. 자기가 궁금해서 하는 게 아니었다면, 몇백 달러는 받을 정도의 양이었다.

능연은 슬그머니 스킬북 2권을 열었다.

살짝 어두운 지하실이 순간 찬란하게 빛났다.

스킬북 2권이 서서히 열리며 페이지를 펼쳤다.

- 단일 항목 스킬북: 파생 스킬 획득 - 관절 내시경 수술 (전문가급)

- 단일 항목 스킬북: 파생 스킬 획득 - 관절 내시경 반월판 성형술 (그랜드마스터급)

능연은 다소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요즘 고관절 치환술을 참여해왔으니 시스템이 눈치껏 관련 스킬을 내놓을 줄 알았다. 그랜드마스터급 고관절 치환술을 얻었다면 정말 메이요에 가서 놀다 와도 될 뻔했다.

능연은 곧 시스템은 원래 눈치가 없다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시스템이 눈치가 있었다면 진작 트랜스포머를 내놓았겠지.

물론 관절 내시경도 훌륭했다. 능연 나이의 정형외과 의사는 모두 관절 내시경 공부에 열중일 때였다.

70년대부터 추진해 온 관절경은 개방성 정형외과 수술보다 크나큰 장점이 있었다. 관절경은 카메라 렌즈가 달린 금속관으로, 관절 구조를 직접 관찰할 수 있다. 관절경은 개방성 수술보다 상처가 적다는 장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관절 병변을 관찰하고 검사하여 수술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신세대 정형외과 의사는 이런 최소 절개 수술 도구를 선호하기 때문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어깨, 팔꿈치, 발꿈치, 관골, 무릎 등에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랜드마스터급 관절경 반월판 성형술에 비해 다른 부위 전문가급은 아무래도 시시해 보였다.

이렇게 되면 관절경 적응 증후군은 반월판 위주가 되겠다고 생각하며 능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러시죠?”

능연의 한숨 소리를 들은 브랜든은 자기한테 불만이 있는 줄 알고 조심스럽게 그를 바라봤다.

“아, 관절경 수술 기회가 없을까, 생각 중이었습니다.”

능연은 매우 솔직하게 대답했다. 나, 의사, 한다, 수술. 문제없는.

자기 문제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은 브랜든은 바로 마음을 놓았다.

“영국에서 저도 관절경 수술 자주 합니다. 기회 되면 우리랑 함께하시죠. ‘공동진보!’”

어디서 배운 건지 몰라도 ‘공동진보’라는 중국어를 불확실한 발음으로 발음하자 주변에 있던 중국인들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모든 부위 관절경 수술을 하나요?”

“네, 그렇습니다. 무릎이랑 발꿈치를 제일 잘하지만요.”

브랜든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반월판 성형술은요?”

“반월판 성형술, 반월판 절제술 다 합니다. 운동선수에게 반월판 손상은 큰일이니까요. 영국에 오신다면 그쪽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같이할 수 있는 일이 많을 듯한데요.”

브랜든은 다시 한번 함께하자고 거론했다. 능연의 아킬레스건 실력만으로도 브랜든은 그와 함께하고 싶은 이유를 얼마든지 들 수 있었다.

스포츠 의학은 따지고 보면 의학의 샛길인데, 그에 따른 요구도 부당한 경우가 많다.

일반인에겐 매우 완벽한 수술도 운동선수들은 부족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운동선수들은 정상인과 다른 점이 많고, 혈액 같은 바이탈 사인도 정상인과 다르다는 것, 회복 시기와 운동 강도도 정상인과 다르다는 걸 고려해 보면 문제는 더 많다.

지금 이 시대 운동선수들은 대부분 돈을 많이 벌어서 그렇지, 키가 2m 넘는 농구 선수가 평균 수명을 유지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고, 생활 퀄리티 유지는 더 어려웠다. 각종 관절 질환, 심혈관 계통 질환은 없어지지 않는 문제였다.

그러나 운동선수들이 돈이 많으니, 의사와 의학 연구진들이 스포츠 의학 영역에 뛰어드는 걸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스포츠 의학의 특수성 때문에 의사들의 실력에 대한 요구가 심해도 너무 심할 정도로 높았다.

축동익이 방안 A를 실현하기 위해 능연 같은 의사가 필요했던 것처럼 브랜든과 그의 스승도 마찬가지였다.

능연은 안 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했고 기천록은 빌려온 소가 납치될 것 같은 위기감을 느끼고 얼굴을 찌푸렸다.

다음 순간, 기천록은 미소 지으며 능연을 바라봤다.

“능연아, 너 관절경 하고 싶어졌구나? 고관절 치환술은 됐냐?”

“너무 어려워서요. 당분간은 안 배우려고요.”

“어렵긴 하지. 그래도 배워 놓으면 전 세계를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어. 요즘은 골관절 질환이 엄청 흔하거든. 잘만하면 미래가 있다. 배우는 데 몇 년 걸린다고 해도 후회 안 할 거야.”

외국 친구도 있다는 생각에 기천록은 수입 문제는 입에 올리지 않고 삼켰다.

기천록은 외국 친구들의 몇십만 달러 수입이 부럽지 않았다. 외국 의사 수입이 정확히 얼마인지 몰라도, 몇십만 달러를 받아 세금 내고, 보험 들고, 생활비로 쓰고······. 기천록이 중국에서 버는 수입도 그만큼은 됐다.

정형외과가 벼락부자 진료과라고 불리는 이유도 고관절 치환술로 벌어들이는 수입 때문이었다. 고관절 보형물 가격만 해도 만 5천에서 6~7만짜리까지 다양했다. 제약 회사의 페이백은 다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많이 돌려주지 않는 회사는 거래 상대에서 탈락했다.

연 수입이 천만 위안이라는 정형외과 의사도 있다. 정상 수준 정형외과 의사는 그렇게 못 벌지만, 백만 위안 정도는 된다.

기천록 같은 의사가 테크놀로지 트리에 더 올라갈 생각을 버리고 돈벌이에 집중한다면 브랜든의 수입 몇 배도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능연은 그런 쪽으로는 별로 생각이 없어서 기천록의 말을 들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도 관절경 먼저 해보고 싶어요. 아니면 기관지 절개도 좋고.”

기관지 절개도 어렵게, 그것도 경찰견 밤톨이에게만 했다는 걸 생각하면 한숨이 나왔다. 능연은 저도 모르게 운화가 그리워졌다.

상해도 좋고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도 수준이 높았지만, 축동익 원사의 연구 센터엔 응급 의학과도 없고 ICU도 없었다. 정상인이 갑자기 기관지 절개할 일이 얼마나 있을까.

관절경도 운화보다 편할 것이 없었다.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는 원래 환자가 많지 않고 디테일하게 나뉘어서, 능연의 손에 떨어지기가 어려웠다.

“회의는 아직 사흘 남았나요?”

능연이 울적한 듯 곁에 있는 설호초에게 물었다.

“내일 하고 모레가 중요하죠.”

“아······.”

설호초는 웃으면서 대답했지만, 능연은 퀭하게 대답했다. 지루하고 심심했다.

수술이 없는 건 둘째 치고 게임도 순조롭게 풀리지 않았다. 운화에 있었다면 적어도 자가 진료소라도 있었다. 추나라도 할 수 있는 진료소가. 거기까지 생각한 능연은 사람들의 목으로 시선을 돌렸다.

기관지 절개는 어쩔 수 없지만, 관절경이라면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

기천록은 갈아야 할 밭이 너무 많아서 화내는 소가 있으면, 갈아야 할 밭이 너무 없어서 화내는 소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저도 참여해도 됩니까? 관절경 수술 말입니다. 아킬레스건도 좋고요. 기관지 절개는 됐습니다.”

통역을 통해 그들의 말을 전달받은 브랜든이 끼어들었다.

“저는 반월판 성형술 할 수 있습니다.”

능연은 망설임도 없이 콕 찍어 말했다. 능연이 수술광인 걸 아는 기천록은 그저 수술병이 도졌나 보다 하고 별생각 없이 받아들였다.

“다른 병원에서 적당한 환자 두어 명 받아 올게.”

잠시 고민하던 기천록이 말했다.

“아킬레스건도요.”

“능연을 꼬셔서 영국에 데리고 가려고요?”

브랜든의 말에 기천록이 웃음을 보였다.

외국 의료 환경은 더 엄격해서 의사 면허를 받지 못해 막노동하고 트럭을 모는 의사가 천지였다. 기천록은 브랜든에게 능연을 스카우트해 갈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브랜든은 씨익 웃으면서 능연을 바라봤다.

“의사가 못 가면 환자가 오면 되죠. 능 선생님, 윌리스 교수님이 당신의 아킬레스건 수술을 매우 높이 사고 있습니다. 특히 운동선수들 수술 후 상태에 매우 놀라고 계셔요. 높은 성공률을 보장할 수만 있다면 더 좋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브랜든의 말을 들은 기천록은 잠시 조용히 있다가 통역사를 향해 브랜든의 말을 더욱 정확하게 통역해 달라고 부탁했다.

더 자세하게 통역하는 통역사의 말에 기천록과 설호초는 속으로 고함쳤다.

‘역 출장 수술이잖아!’

‘외국 사람한테 출장 수술이라니, 끝내주게 벌겠군! 아니, 돈이 아니라도 이름을 얼마나 알리겠냐고!’

“호초야, 능연이 아킬레스건 수술할 운동선수 좀 찾아야겠다고 원사님께 말씀드려.”

다른 의사들은 쟁취할 수도 없는 좋은 기회였지만, 기천록은 여기서 발목을 잡혀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국제 스포츠 의학 정형외과 학술 대회>는 정시에 시작되었다.

축동익 원사는 사회자의 신분으로 연단에 올라 유머 3개를 연달아 말해서 사람들의 웃음을 끌어냈다. 그리고 기나긴 학술 강연이 이어졌다. 중간에 전문 사회자가 나서서 유머 몇 개를 늘어놓자 사람들이 다시 집중했다.

능연은 앞쪽 관객석에서 알 듯 모를 듯 강연을 듣고 있었다. 중국에서 열리는 학술회의는 영어로 발표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결과는······ 영어를 조금 아는 의사, 모르는 의사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의사들 모두 제대로 회의 내용을 알아듣지 못하는 결과를 맞았다.

특히 인도인, 일본인, 한국인, 아르헨티나인, 그 밖에 비영어권 국가 강연자가 연단에 설 때는 영어를 잘하는 의사들도 못 알아들었다.

그래서 첫 학술 강연이 끝난 후, 외국인들은 서서히 자리를 떴다. 머릿수를 채우러 온 중국 의사들은 어쩔 수 없이 잠시 더 자리를 더 지켰다.

그러나 회의장을 가득 채운 중국인 앞에서도, 연단 위의 중국 의사는 여전히 중국식 영어를 고집했고, 몇 안 남은 외국 의사들도 버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떴다.

연단의 중국인은 차라리 안심하며 한숨 돌렸다. 회의장에 외국인이 있으면 부담 때문에 더 떠듬떠듬 말하게 된다. 다들 전인교육을 받고 키워진 인재들이라 가능한 한 국가 얼굴에 먹칠하고 싶지 않았던 터라, 외국인들이 자리를 뜨자 부담이 없어져서 영어로 마음껏 떠들 수 있었다. 어차피 알아듣는 사람도 별로 없고, 입에서 맴도는 단어는 그냥 얼버무리면 그만이었다.

능연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장을 떠났다.

문 앞에서 기천록과 브랜든이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었다.

“안 나와서 부르러 가려던 참이야.”

의학 센터 주임인 기천록은 굳이 회의장에서 머릿수를 채울 필요가 없었다. 능연은 머리를 긁적였다.

“적당한 환자 찾으셨습니까?”

“생중계도 세팅했지.”

기천록이 브랜든을 가리켰다.

“인터넷 테스트도 마쳤어요. 바로 생중계할 수 있답니다. 교수님도 보실 거예요.”

능연은 저도 모르게 브랜든을 높이 평가하며 슬쩍 바라봤다.

“무슨 수술입니까?”

“아킬레스건.”

브랜든이 머뭇거리지도 않고 바로 대답했다. 능연의 관절경 실력은 모르지만, 아킬레스건 수술을 어떻게 할지는 매우 궁금했다. 능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킬레스건 합니까?”

기천록을 향해 물은 것이었다.

“그러자.”

“능연 선생, 그럼 지금 바로 생중계할까요?”

브랜든은 그렇게 말하면서 핸드폰을 꺼내 능연을 향해 돌렸다.

능연은 매우 노련하게 고개를 까딱하면서 미소를 드러냈다.

유치원 때부터 카메라를 볼 일이 많았다. 알지도 못하는 유치원 친구 부모가 힘들게 구한 한 번에 28장 또는 30장밖에 찍지 못하는 필름을 온 가족을 찍고 난 다음에 꼭 능연을 한 장 찍어갔다. 나중에 친척들에게 잘생겨도 너무 잘생긴 딸(아들) 친구를 자랑하기 위해서 말이다.

앨범에 하트 수를 남길 수 있다면, 능연의 사진은 아마도 최고 수치의 하트를 받지 않았을까.

브랜든은 능연의 카메라 감각에 매우 기뻐했다.

업로더 생활을 즐기는 브랜든은 수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일상생활을 드러내는 걸 좋아했고, 수술실에서 멋진 척하는 것보다 즐겁게 생각했다. 더군다나 중요한 건, 그는 수술실에서 멋진 척할 기회가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능력자급 스승, 그리고 수많은 엘리트 선배가 있는 후배 의사의 생활은 고달픈 법이었으니까.

브랜든은 카메라로 계속해서 능연을 비추면서, 이미 접속한 시청자들의 반응을 확인하고는 미소 지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지금 중국 상해에서 생중계하고 있습니다. 병원의 허가를 받았고요, 환자와 보호자의 동의도 받았습니다. 자, 이게 그 증명서입니다.”

브랜든은 스승과 동료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면서 불필요한 소송 가능성을 배제했다.

능연은 브랜든의 행동에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앞에서 걸었다. 이 영국 의사는 다른 사람에 비해서 쓸모 있었다. 어쨌든 그의 한마디에 결국 환자가 생겼으니 말이다.

회의 기간에 축동익은 엄격하게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를 관리했고,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하느라 수술실과 병상이 비어 있어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규모가 작은 연구 센터에 나중에 무슨 문제가 생길까 걱정하는 마음에서였다.

브랜든의 요구는 ‘마음대로’에 해당하지 않았다. 업로더인 그의 신분을 충분히 발휘해서 생중계를 한다니까, 생중계가 뭔지 몰라도 브랜든의 영상이 바로 외국에 연결되어 윌리스를 비롯한 사람들이 볼 수 있다는 걸 아는 축동익이 바로 허락했다.

축동익의 머릿속에 생중계란 설날 저녁에 해주던 이원 방송 같은 그런 이미지였다.

브랜든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수술실에 도착했을 때도 시청자는 별로 없었다. 그래도 다들 실제 시청자였고 브랜든의 마지노선은 넘었다. 그는 3명을 마지노선으로 잡았고 그보다 내려가면 생중계를 끝낼 생각이었다.

기천록은 혼자 중얼대는 브랜든의 모습이 어쩐지 우스웠다. 그는 이런 문화를 조금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할 나이대였다. 그는 영어도 잘해서 브랜든의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있어서 더 웃기기도 했다.

능연은 변함없는 표정으로 정상적으로 목욕하고 속옷을 갈아입고 수술복으로 갈아입었다. 물론 브랜든은 쫓겨났다.

“자, 이제 곧 중국 역도 선수의 수술을 진행할 겁니다. 현지에서 금메달을 딴 적도 있는데요, 군(郡)에서 딴 거지만, 인구가 2,000만도 넘는다는군요. 대단하죠?”

“능연은 중국의 신세대 의사입니다. 의대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요. 네, 그렇다고 하네요. 아킬레스건 수술을 할 예정입니다. 아킬레스건을 봉합하는 거죠.”

브랜든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이런저런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때우면서, 접속할지 모르는 그의 스승과 생중계를 보고 있을 동료 의사들에게 능연을 소개했다.

어렵게 수술 기회를 얻어서 눈에서 빛이라도 쏠 기세인 능연은 그를 전혀 상대하지 않았다.

“나으리한테 약 드리세요.”

이제 메스를 잡기만 하면 된다.

외국인이 촬영하는 데다가 집도의가 이상한 소리까지 하니 환자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90kg 넘는 몸을 축 늘어뜨렸다.

“절개구 크게 낼 겁니다.”

환자의 종아리를 누르면서 상황을 확인한 능연은 마취의에게 말했다. 마취의는 모니터의 BIS 모듈을 보면서 몇 분 기다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깊이 적당함. 나으리 잠드심. 시작하셔도 됨.”

마취의의 말에 능연은 핑거팁 그립으로 메스를 들고 단숨에 커다란 절개구를 냈다.

“능 선생님은 절개구가 큰 게 좋습니까?”

브랜든이 핸드폰을 들고 묻자 기천록이 통역사 역할을 했다.

“환자가 원하는 건 더 건강한 아킬레스건이니까요. 종아리 상처 길이는 개의치 않을 겁니다.”

“그래도 작으면 더 좋아하지 않을까요? 제 환자도 전에는 그런 걸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요즘은 다들 생각이 바뀌어서······.”

지징.

순간 핸드폰 진동이 울리며 메시지가 도착했음을 알렸다. 브랜든은 기뻐하며 고개를 숙였다. 시청자가 별로 없는 생중계에서 누군가 남기는 메시지는 소중했다.

- 윌리스2781: 수술 구역 비춰!

월리스라는 단어에 브랜든은 기쁨보다 놀라움으로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말이 너무 많아서 화나셨나.’

브랜든은 조금 더 자세하게 수술을 볼 수 있도록 황급히 앵글을 옮겼다.

능연은 새하얀 장갑을 끼고 일사불란하게 아킬레스건을 박리하고 있었다. 혼란스러웠던 수술 구역이 정돈되는 걸 브랜든은 직접 목격했다. 동시에 그의 핸드폰도 연달아 흔들렸다.

-이게 중국에서 하는 수술이라고?

-수준 높군!

-서전 얼굴 좀 보여줘!

-누구 저 닥터 자료 있나?

윌리스는 생중계 채팅방을 개인 대화창처럼 사용하면서 계속 명령을 내렸고, 그의 제자들은 어쩔 수 없이 계속 대답했다.

이름을 알린 지 오래인 월리스는 세계 각국에 제자가 있는데, 오늘 이 생중계를 통해 제자들도 제법 많이 모여들었다.

브랜든은 영상 아래쪽 시청자 수가 두 자릿수로 늘자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동문 중에 대단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의 발언도 더 힘차졌고 내용도 더 전문적으로 되었다.

“능 선생이 아킬레스건 끝단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근처 혈관을 아주 중시하는 것 같은데요. 정신 집중하고 하나하나 처리하고 있습니다. 전에 본 동영상에서도 알 수 있지만, 능 선생의 혈관 봉합 속도는 정말 놀랍도록 빠릅니다. 아킬레스건이 아니라 주변 혈관망을 먼저 처리하려는 모양인데요. 오, 속도는 굉장히 빠른 건 아닙니다만, 순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정상적인 아킬레스건 수술과 완전히 다르군요. 방안 A라고 부르더라고요. 아주 기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브랜든이 주절주절 이야기하는 동안 핸드폰이 다시 미친 듯이 떨려서 그는 우선 알람 기능을 끄고 난 후에 메시지를 확인했다.

- 월리스2781: 클로즈업!

- 월리스2781: 설명할 필요 없어!

- 월리스2781: 흔들지 마!

브랜든은 어쩐지 의기소침해졌다.

‘내 채널인데, 앵글도 컨트롤 못 하면서 무슨 생중계를 한다고.’

핸드폰으로 촬영하는 것이긴 하지만, 핸드폰 카메라도 카메라 아닌가. 그렇다면 제대로 컨트롤 해야지.

그때, 핸드폰이 다시 진동했다.

브랜든이 아까 설정에서 ‘월리스2781’의 메시지만 알람이 오도록 조절해 놨으므로, 그 의미는!

- 월리스2781: 초점!

브랜든은 조용히 액정을 바라보며 새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어이없다는 듯 코를 찡그렸다.

‘요즘 핸드폰은 다 자동 초점인데 어쩌라고! 하아, 아무것도 모르는 노인네 같으니라고.’

브랜든은 속으로 그렇게 비웃으면서 핸드폰을 능연 쪽으로 대고 앞뒤로 몇 번 움직였다.

지잉.

- 월리스2781: 좀 낫군.

브랜든은 큰 짐을 내려놓은 듯 한숨을 쉬고는 웃는 얼굴로 화면을 바라봤다.

“능 선생의 수술 경향은······.”

지잉.

- 월리스2781: 조용히!

멈칫했던 브랜든은 고분고분 입을 다물어 버렸다. 핸드폰 액정에 다른 사람들도 대화하는 것 같았지만, 들여다볼 기분도 나지 않았다. 자신에게 말도 하지 말라니, 생중계할 의미가 있나 싶었다.

능연은 원래 말이 많지 않았기에 수술실도 몹시 조용했다. 그가 말이 많아지면, 여자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어서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어진다.

기천록은 원래 가끔은 엉큼해진다. 마흔 넘은 외과 의사는 그런 쪽으로 매우 발전한 데다, 오늘 배치된 간호사 두 명은 그가 미는 유머를 못 들어본 간호사라 입이 근질근질했다.

그렇지만 생중계를 보고 있을 외국 사람 앞에서 헛소리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수술실은 능연이 가장 바라는 상태가 되었다.

조용하고, 질서 있고, 가치 있는 곳.

능연은 흡족하고 즐겁게 수술하면서 점점 속도를 줄였다.

방안 A로 하는 운동선수 아킬레스건 수술은 원래 시간이 좀 걸리는 수술이고, 14cm나 되는 절개구를 낸 것도 충분한 수술 시야 확보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능연이 더 천천히, 더 디테일하게 한다고 해도 다른 의사들보다는 훨씬 빨랐다.

능연은 천천히 수술을 즐기고 있었다. 며칠 전 해부용 시체를 통해 배움을 얻던 것처럼 천천히 음미해야 더 자세히 느끼고, 얻고, 배울 수 있었다.

- 월리스2781: 건피 봉합으로 아킬레스건 하단을 봉합했는데, 근거가 있는 건인가? 아니면 개인 습관인가?

잠시 멈칫하던 브랜든은 곧 정신을 차리고 대신 질문을 던졌다.

“능 선생님. 건피 봉합으로 아킬레스건 하단을 봉합하셨는데, 이게 어떤 연구 근거가 있는 건가요?”

“토끼로 실험한 사람이 있습니다.”

능연은 관련 연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브랜든은 재빨리 영어로 통역하면서 힐끔 핸드폰 화면을 살폈다.

‘오, 시청자 22명! 대단한데.’

본인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는데도 시청자 수가 늘고 있다는 사실에 브랜든은 꽤 기뻐했다. 물론 기뻐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회의장에서는 회의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메인 회의장엔 온통 카메라가 줄지어 있었다. 강연자는 영어로 웅얼웅얼 연설했고, 청중은 이어폰을 꽂고 건성건성 들으면서 오로지 카메라에 찍히기 위한 표정과 동작을 취했다.

차라리 작은 회의장이 오히려 활발했다. 위원회에서 내준 몇 가지 의제로 의사들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작은 회의장엔 사회자도 따로 없거나 아니면 의사들이 직접 사회를 보거나 했다.

의사들은 연단에서 자기가 겪었던 사례를 공유하거나, 큰 소리로 의료 정책을 토론하기도 하고, 최신 연구 결과를 소개하면서 동료 의사의 협력을 호소하기도 했다.

의료 분야가 모든 학문 중에 가장 국제화되어 있다. 그리고 글로벌 협력 빈도와 협력 정도를 따지면 임상학이 다른 학문을 월등하게 앞선다.

임상 의학은 인류를 직접 대면하는 학문이고 언어나 문화 혹은 전통 같은 것과 크게 상관없다. 생사가 걸린 일이 닥치면 언제나 육체에 부속된 정신이 가장 먼저 날아가 버린다.

임상 의학엔 사람들이 협력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요소가 있기 마련이다.

지역성 질병 같은 경우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열대지역에서 흔한 말라리아를 열대지역이 아닌 병원과 임상의들이 연구하고 싶을 때, 열대지역 의사와 함께 협력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다.

페스트 같은 전염성 질병도 합동 연구가 필요하다. 돌림병이 발생하는 지역에 관련 연구를 한 병원이 반드시 있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런 병원이 있다면 해당 돌림병이 빈번히 발생하도록 방임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스포츠 정형외과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협력 방식은 바로 선수와 의사의 흐름이다. 스포츠 강국이 꼭 의료 강국이란 보장은 없으니 상호 간 필요성이 협력을 구축하게 되는 첫 번째 이유가 된다.

의사들도 말 몇 마디로 앞으로 협력하게 되리라 기대하지 않지만, 그래도 기대하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서로 접촉한다.

“생중계 영상 하나 틀어 보겠습니다.”

의사 하나가 연단에 올라 핸드폰을 꺼내 들고 연결 작업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주최 측과 이야기된 부분이었다. 잠시 후, 의사의 핸드폰 화면이 스크린에 연결되었다. 곧 사람들 앞에 수술 장면이 나타났다.

“아이고, 깜짝이야!”

“아킬레스건 보건술입니다.”

중국 의사가 펄쩍 뛰었지만, 영상을 튼 의사는 긴말할 생각이 없다는 듯 어떤 수술인지만 설명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시청자가 고작 20명입니까?”

“꽤 흥미진진합니다. 영국 닥터 월리스가 추천한 수술입니다.”

“브렌트 윌리스요?”

“네.”

시청자 수를 보고 무시하는 듯 말하는 어느 의사의 말에 생중계를 튼 의사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간단한 그의 말에 사람들이 금세 스크린에 집중했다.

다 똑같이 국제회의에 참석하러 온 의사지만, 실력은 천차만별이고 성향도 다 달랐다. 하지만 아킬레스건 수술은 기본 중의 기본 수술이라 이해 못 할 의사는 없었다.

“되게 복잡하게 하는걸?”

“축동익 방안 A라고 하는 방식이래요.”

“꽤 어려워 보이는데요.”

“효과는 좋다고 하더라고요.”

스포츠 의학은 원래 고차원 기술을 추구하는 학문이라서, 언제든 새로운 기술을 배울 준비가 되어 있는 의사들이 스포츠 의학의 신기술에 빠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돈 많은 스포츠 스타는 항상 최신 기술을 갈망하고, 그것이 바로 의사들이 끊임없이 공부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니 다들 축동익의 방안 A를 궁금해했다.

“축동익 선생님이 수술하는 겁니까?”

“병원 의사라던데요.”

“정말 훌륭한 솜씨네요. 누구랍니까? 회의 참석자겠지요?”

누군가 갑자기 묻는 말에 의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자, 눈치 빠른 제약 회사 영업 사원이 밖으로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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