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182화 (163/877)

남아공에서 온 의사가 태블릿 PC를 꺼내 차트를 열어 능연에게 건넸다.

“일단 MRI 한 번 보세요.”

능연도 모니터에 뜬 단어, 특히 엄청나게 길고 어려운 의학 용어를 다 알아보진 못했다. 그러나 사진으로 대부분 문제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남아공 의사가 액정을 몇 번 건들더니 화면을 확대했다. 다른 의사들은 호기심으로 주위에 몰려들었고, 고개를 내밀어 MRI를 보는 의사도, 낮은 목소리로 서로 토론하기 시작하는 의사도 있었다.

제약 회사 직원들도 그 자리에서 의사들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속으로 이런저런 추측을 했다. 두뇌 회전이 빨라야 하는 직종이었다. 특히 능력 있는 영업 사원은 등긁개 노릇만 하다가는 지쳐서 떨어지거나 속 터져서 죽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럭저럭한 영업 사원, 그러니까 황무사처럼 얼굴만 잘생긴 직원은 얼렁뚱땅 편안하게 지낼 수도 있지만.

그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능연의 사진을 몰래 찍어서 창서 제약 단체 메시지방에 올렸다.

-골관절 센터에 도착했습니다. 능연 선생님은 포위당했네요.

-포위? 왜? 무슨 일인데?

사역하가 바로 반응했다. 창서 제약 운화 지점 책임자인 그는 운화 병원이라는 큰 고객을 붙잡기 위해서는 능연을 납치하는 일도 긍정적으로 고민할 사람이었다. 곽종군이 능연을 잘 지키라고 지시했으니 당연히 잘 지켜야 했다.

평소에 단체 메시지방에서 이야기를 해도 상대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황무사는 사역하가 그토록 빨리 반응하자 가슴을 쭉 내밀며 빠르게 글자를 쳤다.

-포위는 과장법이고요. 다른 의사가 소개한 환자 차트 보고 있습니다.

-이 새끼가.

황무사가 눈을 껌뻑이는 사이 ‘메시지가 삭제되었습니다’라는 글이 떴다. 황무사는 순간 자신의 시력에 문제가 생겼나 고민했다.

그러는 사이 능연도 MRI를 충분히 살폈다. 남아공 의사가 설명하는 환자의 병세도 통역사를 통해 전달받았고 MRI까지 살펴서 소통하는 데 별 무리는 없었다.

이러한 협진에서 의사들은 사실 의식적으로 질문을 회피한다. 의사들은 장기간 트레이닝하면서 우선 객관적인 검사 리포트를 보고 초기 판단을 내리고 주관적인 묘사를 듣도록 훈련해왔다.

환자가 의사에게 하는 거짓말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산부인과 같은 거짓말의 성지는 둘째 치고, 능연이 만났던 아킬레스건 환자들도 열 명 중 한 명은 거짓말을 한다. 농구 하다가 아킬레스건을 다친 환자는 통증을 견디고 출근했다가 일하다 다친 것이라며 120(중국 119)을 부르고, 벽을 타다가 다친 좀도둑은 도둑을 잡다가 다친 것이라고 거짓말한다.

MRI 바탕으로 판단을 내린 능연은 태블릿 PC를 남아공 의사에게 건넸다.

“운동선수면 수술 치료를 하는 게 제일 좋겠네요. 방안 A로 하면 3, 4개월 재활하면 됩니다. 리스크는 일반 아킬레스건 수술보다 크고요.”

“그럼 선생님이 수술하시면 3개월 재활 후 바로 시합에 나갈 수 있을까요?”

능연의 말을 그대로 전한 통역이 남아공 의사의 질문을 다시 통역했다.

“4개월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3개월은 힘듭니다. 흠, 저도 방안 A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참고할 만한 샘플이 얼마 없네요.”

“몇 건 하셨나요?”

“백몇 건이요.”

“성공률은요?”

“일반적인 테스트 기준으로 모두 우수였습니다.”

능연은 간단하게 재빨리 대답했다.

“실패 케이스도 있습니까?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했다던가.”

“지금까지는 우수 이하의 결과는 없었습니다.”

능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방안 A는 끝마치기만 하면 전통적인 아킬레스건 수술법보다 탁월한 회복률을 보였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테스트하니 우량 하나 없이 모두 우수가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남아공 의사는 놀란 나머지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 아까 능연의 수술도 보았고, 방안 A에 관해 설명도 들은 그는 가장 큰 리스크는 바로 수술 실패라고 생각했다. 방안 A는 일반 아킬레스건 수술보다 복잡해도 너무 복잡했다.

그런데 능연이 모든 수술에 성공했다고 하자, 희망이 생겼다. 성공률이 높은 의사가 드문 것은 아니었다. 특히 실력 있는 의사는 자신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돈을 덜 벌고 수술을 덜 해서라도 성공률을 올렸다.

그의 환자는 성공률 높은 의사가 필요했다.

“모리스라고 합니다. 닥터 능, 이번 수술해주시겠습니까?”

“어디서 합니까?”

남아공 의사가 정중하게 묻는 말에 아직 이런 경험이 없는 능연이 진지하게 물었다.

“중국에서 해도 됩니까? 동의하신다면 환자와 구체적으로 상의해 보겠습니다.”

실습생인 능연은 이게 이래도 되는 일인가 싶어서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곁에 있던 의사들이 더 초조해했다. 안 그래도 중국에서 수술하게 되겠거니 추측하고 있었지만, 모리스가 정말로 이야기를 꺼낸 건 의미가 달랐다.

국내에 출장 수술이 성행한다고 해도 외국인을 수술하는 의사는 지극히 드물었다. 반대로 중국 병원에서 외국 의사를 초빙해서 수술해도 대서특필할 정도로 난리가 난다.

“능 선생님, 뭘 더 고민해요.”

제4 중앙병원 의사가 사람들을 뚫고 나와서 대범하게 능연의 팔목을 잡고 진지하게 충고했다.

“아킬레스건 수술을 그렇게 잘하면서! 환자 보내라고 하세요. 외국인 아킬레스건이라고 우리랑 다르지 않아요. 그러니까 선생님 기술이면 외국 의사들한테도 인정받을 수 있어요!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에요.”

진지하게 말하던 그는 더욱 대범하게 능연을 똑바로 봤다.

황무사는 의사 명함을 들고 배신감이 가득한 마음으로 눈을 부릅떴다.

타박타박.

타박타박, 타박타박.

하반신이 하얀 가운에 거의 가려진 수술복 차림의 148cm 여원이 축소 수술을 받은 의사 같은 모습으로 회의실 입구에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그는 살며시 검은 테 안경을 쓸어 올리고는 180, 190, 200cm 인간들을 무시하면서 제약 회사 직원과 의사들이 만든 인간 장벽을 가볍게 뚫고 나왔다.

여원은 느긋하면서도 빠르게 몸을 좌우로 비틀어 수월하게 능연 앞에 섰다.

그러자 제4 중앙병원 의사가 멍청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여원은 맹장을 꺼내기에 아주 적합한 작고 마른 오른손을 번쩍 들더니 가볍게 제4 중앙병원 의사의 손목을 잡고, 왼손으로 능연의 손목을 잡아 살짝 잡아당겨 두 사람을 떨어뜨렸다.

이어서 여원은 마른 몸매를 이용해 여자 의사와 능연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녀는 얼룩말을 막 잡아먹은 고양잇과 동물처럼 입가에 빈정대는 미소를 띤 채 고개를 살짝 치켜들었다.

주변의 의사들이 일제히 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 장면이 주는 긴장감에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다.

여자 의사는 입을 쩍 벌리고 사라진 자신의 기회를 애도하다가 시선을 황무사 쪽으로 돌렸다.

“수술해도 돼. 우리 병원에서 해도 되고, 운화에 가서 해도 되고.”

기천록이 어느새 뒤에서 나타나 말했다. 그는 국제 출장 수술 경험도 있고, 병원에서 능연의 수술을 반대하지 않으리라는 확신도 있었다. 그러자 능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분이 회의가 끝나기 전까지 중국에 올 수 있으면 여기서 하고 아니면 운화에서 하겠습니다.”

“OK!”

모리스는 손가락으로 OK 사인을 보내며 환자에게 전화하기 위해 사라졌다. 주변에 있던 의사들은 눈앞에서 출장 수술 한 건이 성사되려는 모습에 다들 흥분했다. 외국 의사들이라고 해도 다른 나라 의사가 그런 수술을 승낙하는 모습을 보는 건 흥미진진한 일이었다. 그뿐 아니라 다들 능연 자체에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수술은 다들 할 수 있는 쉬운 수술이지만, 능통한 사람은 드물었다. 발넓은 의사들은 거의 매주 아킬레스건 파열 환자의 문의를 받는다. 그 환자 중엔 같은 의사도 있고.

사람들은 다들 이때다 싶어 핸드폰을 꺼내 들고 연락하기 시작했다. 특히 운동선수들에게 아킬레스건 문제는 프로 생활과 앞으로의 인생을 좌우할 중요한 문제였다. 돈 많은 선수는 전 세계에서 유명하고 또 자기에게 적합한 의사를 찾는다. 돈이 그렇게 많지 않은 선수는 그럴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자포자기할 수도 없었다.

주변 의사들, 그리고 제약 회사 직원을 본 기천록은 저도 모르게 부러운 마음이 들어 능연의 어깨를 두드렸다.

“축 원사님께 한마디 드려, 홍보 좀 해달라고.”

“홍보요?”

“네가 외국인 수술한다고 알려야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상상해 보라고.”

“나머지 침대를 다 쓸 수 있겠군요!”

능연이 깨달았다는 듯 고함치는 말에 기천록은 뭔가 잘못된 대답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디가 잘못됐는지 딱 끄집어내진 못했다.

“어,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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