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에서 나온 능연은 곧바로 새로 얻은 보물 상자 두 개를 열었다.
100번 해부 경험이 두 번 더 나온다면, 아킬레스건 수술 능력이 한 단계 더 오르겠군.
능연은 상자가 열리는 환한 빛이 사방으로 퍼지는 걸 지켜보며 그런 기대로 가득 찼다.
복잡한 수부와 달리 족부는 해부 경험이 그렇게 많이는 필요하지 않았다. 3,000번 하체 해부 경험이라면 그래도 조금 쓸모가 있을까. 종아리부터 무릎까지는 배울 디테일이 많고, 더 중간 부위는 비뇨기과와 산부인과 항목까지 포함된다. 그러나 단순한 족부 해부 경험은 3,000번까지는 필요 없다. 발 패티쉬가 있는 사람도 그렇게까지는······.
순간, 보물 상자로 인한 하얀 빛이 사라지고 녹색 스태미너 포션 2병이 나타났다.
“이게 현실이지.”
능연은 쯧쯧 혀를 찼다. 레이먼드 수술도 끝났고, 해부 경험이 필요하지 않게 되니 스태미너 포션이 나온 것이다.
고개를 흔들던 능연의 생각이 다시 두둥실 떠올랐다.
레이먼드 같은 환자가 단지 이식이나 탕 법으로 수술받아야 할 일이 생기면 알아서 수부 해부 경험을 내놓으려나. 수직 매트릭스법도 응용할 수 있으려나.
능연은 스태미너 포션을 잘 챙기고 잠시 앉아 있다가 컴퓨터를 켜서 차트를 직접 입력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 병원이긴 해도 차트는 써야 했다. 레지던트들이 만들어 놓은 편한 입력 양식도 있지만, 오늘 수술은 역시나 직접 입력하고 싶었다.
200번 족부 해부 경험을 빌려 남다른 진입로로 수술을 진행한 만큼, 자세히 남겨야 할 내용도 많았다.
수술 진입로는 외과에서 고급 연구에 속하고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항목이었다.
근골은 내측면 절개구, 족근골 절개구, 후외측면 가로 절개구, 팔자형 절개구, 확대 L 절개구 등이 있고 그보다 더 전문적인 연구도 있다.
고전적 수술 진입로 연구는 연구자를 ‘첫 보고자’, ‘선구자’, ‘주요 공헌인’, ‘진입로 개량인’, ‘진입로 반대자’ 같이 세밀하게 구분한다.
능연도 논문 몇 편 써본 사람이고, 이제 아킬레스건 수술 진입로를 개량하기까지 했으니 조용히 묻히게 둘 수는 없었다. 이 진입로에 어떤 이해(利害)가 있더라도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정리해둬야 문제가 없으리라.
방안 A는 축동익 원사의 연구 성과지만, 새로운 진입로는 능연의 개량 성과였다. 단독으로 논문을 발표할 수도, 축동익과 함께 심층 논문을 작성해 공동 발표할 수도 있다.
생각을 정리하면서 차트를 입력하느라 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는 자세 한 번 바꾸지 않았다.
“능 선생.”
여원이 발밑에 스프링이라도 있는 듯 폴짝폴짝, 천장에라도 닿을 듯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어떤 의사가 환자를 소개했어.”
“외국인이요?”
“중국 사람. 아킬레스건 완전 분리. 운동선수야. 높이 뛰기.”
여원은 최대한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팔을 들어 자기 가슴팍에 대고 ‘다리가 길어’ 하고 덧붙였다. 능연은 여원이 손짓하는 위치를 힐끔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한테 넘긴 건가요?”
“응, 능 선생 지명하고 왔어. 저기, 능 선생. 나 아킬레스건 수술 배우고 싶은데.”
“예?”
“외과 전문의가 되고 싶어! 그래, 알아. 나 부족한 거. 하지만 노력할게. 서전이 되는 건, 어릴 때부터 내 꿈이었어!”
“좋아요. 앞으로 아킬레스건 수술에 들어오세요.”
능연이 차트를 수정하면서 고개를 끄덕이자 오히려 여원은 당황했다.
“좋다고?”
“그럼 싫다고 해요?”
이번엔 능연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는 그런 부탁이 싫지 않았다.
능연 자체가 엄청난 수술광이어서, 수술을 갈망하는 외과 의사의 마음을 너무나도, 너무나도 잘 이해했다. 상황만 허락하면 그도 협조할 마음이 있었다.
그의 치료팀에서 연문빈은 탕 법을 시작한 지 좀 되었고, 마연린도 아킬레스건 수술을 배우고 있어서 여원과 경쟁하게 되겠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대다수 병원의 대다수 진료과에서 주력 수술로 진행하는 수술 방법은 다 거기서 거기였다. 레지던트들이 그중 하나 또는 몇 가지를 배우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오히려 레지던트마다 다른 수술 방식을 나눠 주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여원과 마연린은 진도에서 차이가 있으니, 이런 식의 분배는 다른 치료팀에 비해 훌륭해도 한참 훌륭했다.
“환자는 언제 온대요?”
능연은 여원이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질문을 던졌다.
“아까 말씀하신 높이 뛰기 선수 말이에요. 왔어요?”
“지금 트랜스 절차 밟고 있대. 2시간 뒤면 온다더라.”
“수술 컨디션은요?”
“바로 수술해도 된대. 안 그래도 수술 준비하고 있었다고.”
여원은 태블릿 PC를 꺼내 차트와 영상학 자료들을 꺼냈다.
“그럼 선생님이 퍼스트 하는 거로 하고, 준비합시다.”
“어, 응, 알았어.”
능연이 대강 훑어보고 하는 말에 여원은 생긋 웃어 보였다.
“그리고 제가 쓴 차트, 뭐 보충할 거 없나 보시고요. 진입로 개량에 관한 논문 쓸 수 있을지 한 번 봐주세요.”
능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넘겨주면서 그렇게 말하고는 사라졌다.
“걱정하지 마!”
여원은 주먹을 불끈 쥐고 자신에게 파이팅을 외쳤다.
그리고 그 이후로 여원의 파이팅은 멈출 줄을 몰랐다. 의사들이 끊임없이 환자들을 보냈기 때문이다.
운동선수 치료, 특히 스포츠 의학 분야는 의사들에게 양날의 검이었다. 잘하면 당연히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고, 운동선수의 지명도에 따라 의사도 이름을 알리게 된다. 하지만 잘못하면 따라오는 평가도 당연히 우울해진다.
스포츠 의학으로 전향하길 바라는 정형외과 의사는 운동선수 수술을 하려고 하지만, 스포츠 의학은 정형외과의 주류가 아니었다. 그러니 대다수 정형외과 의사로서는 환자를 믿을 만한 의사에게 적당하게 넘기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특히 지방 병원에서 온 의사들은 이번에 ‘국제 스포츠 의학 정형외과 학술 대회’에 참석할 자격이 있다고 해서 꼭 스포츠 정형외과 쪽에 대단한 실력이 있는 건 아니었다. 어쩌면 현지에서는 유명할지 몰라도 상해에서는 그럴 수준이 안 될 확률이 높았다.
의사들은 대부분 지방 병원에서 적당히 이름을 알리고, 환자도 부족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지에 스포츠 의학 환경도 구축되지 않았으니, 차라리 환자를 골관절 센터에 소개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김에 능연의 수술도 볼 수 있었으니.
능연도 당연히 오는 사람을 막을 리 없었다. 축동익이 병상만 내준다면, 능연은 메스와 니들홀더를 얼마든지 휘두를 작정이었다. 슬슬 골관절 센터을 떠나는 게 아쉬워지기까지 했다. 병상이 180개나 허가된 연구 센터에서 50개밖에 쓰지 않다니, 이런 천인공노할 낭비를 가만히 두고 볼 능연이 아니었다.
두 시간 후, 능연은 순조롭게 높이 뛰기 선수를 맞이했다.
환자 가족의 감사 인사를 받기도 전에 농구 선수 한 명도 도착했고, 능연은 다시 수술실로 돌아갔다.
능연은 저녁도 수술실에서 먹었다. 배달시킨 햄버거가 어째서 호화 초밥 도시락으로 바뀌었는지, 따져볼 시간도 없이 도시락 안에 요구르트와 견과를 넣어 돌려보냈다.
새벽이 되기 전, 능연은 아킬레스건 수술을 한 건 더 하고 나서야 택시 어플에서 보낸 마이바흐를 타고 호텔로 돌아가서 쉬었다.
다음 날, 능연은 아킬레스건 파열 환자를 잇달아 6명 받았고, 그중에 외국인도 2명 있었다. 환자 수도 환자 수지만, 특히 외국 환자들까지 능연을 지목하자 축동익조차도 혀를 내둘렀다. 그는 침대 6개를 더 내놓으라는 능연의 요구도 호탕하게 동의했다.
능연은 모두 개량된 방안 A를 채택해서 밤늦게까지 수술한 후, 스태미너 포션을 한 병 마시고 그다음에 도착한 환자를 계속 치료했다.
패기만만했던 여원도 수술 4건을 마친 후 지쳐 떨어져 한숨 자려고 당직실로 향했다. 나머지 수술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골관절 센터 레지던트에게 떨어졌다.
진료과마다 일선, 이선 당직실이 따로 있는 운화 병원과 달리 골관절 센터는 그 자체가 대형 진료과 하나이며 응급 환자가 지극히 드물어서 당직실은 모두 3개밖에 없고 일선, 이선 구분도 없었다. 여자 의사들이 쓰는 방엔 벌써 두 명이 쓰러져 있었고, 나머지 침대 두 개엔 물건이 가득 쌓여 있었다.
여원은 신경 쓸 기운도 없었고, 깨끗한 침대 위에 있던 물건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공간을 비운 다음 비스듬히 누우면 다리를 뻗을 수 있겠다고 확인하고는 머리를 대자마자 잠들었다. 그러다가 밖에서 들리는 미친 듯한 고함에 잠에서 깼다.
“유위신 파이팅!”
“파이팅 유위신!”
“아자, 아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깬 여원이 멍하니 밖으로 나가봤더니, 벽걸이 TV가 걸린 휴게실에서 의사들이 고개를 치켜들고 고함치고 있었다.
“유위신 시합이에요?”
“세계 육상 대회예요! 유위신 복귀전!”
가라앉은 대뇌를 힘겹게 살려 묻는 여원의 말에, 곁에 있던 의사가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의 말에 의사들은 또 한바탕 환호를 질렀다.
여원은 모니터를 통해 이미 트랙으로 나온 유위신이 가볍게 폴짝폴짝 뛰면서 몸을 푸는 걸 지켜봤다. 해설자도 격앙된 목소리였다.
“유위신 선수가 세계 육상 대회에 참가한다는 결정이 올해 국내 육상 시합에 열기를 띠게 했죠. 유위신 선수의 재활이 예상보다 훨씬 좋다고 합니다. 이번 시합 후, 유위신 선수는 계속 국제 육상 대회에 참가할 예정인데요······.”
창밖이 어두컴컴해서 밤인지 새벽인지 알아볼 수도 없었다.
휴게실에서 기르는 식물도 시들시들해서 넝쿨 몇 가닥이 곁에 있는 접란과 함께 얽혀 기묘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새하얀 벽은 굉장히 새하얘서 달라붙은 날벌레들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컵라면과 이런저런 배달 음식이 섞인 냄새가 모던하고 청결한 골관절 센터에 퍼졌다. 월드컵 때 대학 기숙사를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여원은 비몽사몽 간에 포르말린 냄새도 맡은 것 같았다.
“나 대체 얼마나 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