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186화 (167/877)

“유위신 선수는 60m 단거리에 강하지 않습니까? 지금 4번 트랙에 있고, 왼쪽 3번 트랙에 있는 선수가 세계 선수권 대회 우승자입니다. 미국 안토니 선수. 저 안토니가 유위신 선수 라이벌입니다.”

“유위신 선수, 좀 조심스러운 감이 있네요. 아까 몸 풀 때도 아주 진지했죠. 코치진이 선수보다 더 긴장한 거 같습니다. 아킬레스건 파열이 아무래도 한창 상승세이던 유위신 선수에게는 타격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단기간에 트랙으로 복귀하다니, 이는 체육계 전체에 힘이 되는 일입니다.”

“안토니는 세계 선수권 대회 이후 수많은 인터뷰를 비롯한 홍보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그동안 체계적인 훈련을 못 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추측하는 소리도 있습니다. 안토니를 제외하고는 1트랙 러시아 선수 야곱도 60m 단거리에서 유력한 경쟁자입니다. 개인 최고 기록은 6초 49, 유위신 선수 6초 55보다 빠르거든요.”

휴게실에 있던 의사들은 점점 조용해졌다. 60m는 순식간에 끝나는 단거리 경기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 능 선생이 수술한 유위신 선수구나.”

“그렇죠. 아니면 뭐 하러 이렇게 모여서 보겠어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여원이 중얼거리는 소리에 앞줄에 앉아 있던 105kg 거구 의사가 손에 든 맥주를 홀짝이며 콧방귀를 뀌었다.

“TV에서 능연이나 센터 이름을 꺼낼 리는 없지만 말이에요.”

“그럴 필요 있나요? 우린 병원이잖아요. 아킬레스건 파열 환자들이 알아서 수소문하겠죠.”

잠에서 막 깼어도, 여원의 머리는 휙휙 돌아갔다.

“그러니까 말이야. 우리가 무슨 소모품도 아니고.”

탕!

“자, 흥분되는 60m 단거리가 시작됐습니다. 스타트가 제일 빠른 건······ 아, 유위신 파이팅! 네! 유위신 선수가 금메달을 땄습니다! 금메달! 유위신! 금메달입니다! 금메달!”

한 옥타브 높아진 해설자의 목소리가 대화를 나누던 의사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

여원이 다급하게 고개를 들었더니 동양인이 테이프를 끊는 장면이 화면에 비췄다. 그리고 곧 사람들이 똑똑하게 볼 수 있도록 슬로 모션으로 이어졌다.

“유위신이 세계 육상 대회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6초 45! 6초 45의 기록으로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와! 유위신 복귀 성공!! 이번 경기 세 번째 메달입니다. 그리고 중국 대표팀의 세 번째 메달이기도 하고요! 유위신 선수 축하합니다! 중국 팀 축하합니다!”

초짜 의사고 주치의고 모두 입을 쩍 벌리고 화면을 바라봤다.

“끝?”

“유위신이 이긴 거?”

“아니, 아킬레스건이 저 정도로 회복된다고?”

TV 속의 해설자도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말을 이어갔다.

“4개월 전 위험한 아킬레스건 수술을 받은 유위신 선수! 왕의 귀환입니다! 본인의 최고 기록까지 경신했죠! 금메달은 유위신 선수 본인에게도 크나큰 보상일 겁니다! 중국 선수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는데요, 중국 육상팀으로서도 이건 대단한 기록입니다. 6초 45! 중국 최고 기록도 경신했거든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아킬레스건 부상은 선수에게, 특히 육상 선수에게는 치명상이거든요. 국내외 유명한 단거리 선수 중에 아킬레스건 때문에 소리소문없이 은퇴한 선수도 많습니다. 유위신 선수는 그런 저주를 돌파했을 뿐만 아니라, 최고 기록도 세웠는데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스포츠 정신 아닙니까? 유위신 선수, 만세! 중국 육상팀 만세입니다! 아, 유위신 선수, 국기를 들고 나왔어요. 오성기가 브뤼셀 하늘에 휘날립니다. 아, 흥분한 모습인데요. 그렇죠, 그럴 만도 하죠. 부상 후 다시 트랙에 돌아오기까지, 본인의 부담도 노력도 만만치 않았을 겁니다······.”

트랙 위 유위신의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었다. 그 순간 온 세계 카메라가 자신의 가장 ‘나약한’ 모습을 찍으리란 것을 알고 있었지만,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금메달을 따지 못했으면 이 많은 카메라가 자신을 비출 일도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자신을 증명해낸 지금 감출 것이 뭐가 있을까.

유위신은 불현듯 깨달았다. 그동안 그는 이미지를 생각해서 언제나 착한 사람처럼 굴었고, 기본적으로 이미지 메이킹에도 성공했다. 그러나 아킬레스건이 파열된 순간, 모든 이미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팀 내의 압박, 매체의 풍랑은 둘째 치고 에이전시와 광고주들이 꺼내는 위약금 문제만 해도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가 금메달을 목에 거는 순간, 모든 압박, 풍랑, 위약금에서 벗어난 셈이었다.

유위신은 천천히 트랙을 돌다가 다시 한번 국기를 치켜들고 팀원들과 사진을 찍었다. 뒤를 돌아 전광판을 보니 6초 45라는 숫자가 기이할 정도로 눈에 들어왔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눈물과 함께 웃고 있는 모습. 눈물도 웃음도 진실했다. 그것이 지금 유위신의 상태였다.

유위신은 편안한 느낌으로 가볍게 발목을 풀었다. 아킬레스건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사실 아킬레스건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전력 질주했다.

몇 달이나 갈망해왔지만, 그동안은 함부로 시도하지 못했던 순간이었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의 아킬레스건이 격렬한 시합을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시합과 훈련은 전혀 다른 일이니까.

유위신은 제자리에서 몇 번 뛰면서 발목도 뱅글뱅글 돌려보고는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다시 확인하고서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순간 점점 강한 희열이 유위신의 광대를 끌어올렸다. 코치가 우다다다 달려가 그를 얼싸안았다.

“잘했다! 잘 뛰었어! 진짜 잘했어!”

“컨디션 좋더라고요.”

“좋기만 해?! 완전 깜짝 놀랐잖아. 육상 센터에서 전화까지 왔어! 하하하. 아참, 다리는 어때?”

“좋아요.”

“그럼 됐어. 그럼 됐어. 휴우, 그럼 다시 훈련 스케줄 짜도 되겠다.”

“네.”

유위신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기자의 요구대로 포즈를 취했다. 눈 깜짝할 새, 수십, 수백 장의 사진을 찍는 동안 코치는 진지한 얼굴로 계속해서 옆에 서 있었다.

“이제 시합 스케줄 잘 짜야겠다.”

기자들이 흩어진 다음에도 코치는 감격한 표정이 여전했다.

“상해에 가야겠어요.”

“상해엔 요즘 별 경기 없는데?”

“능 선생님 좀 만나고 싶어요.”

담담하게 말했지만, 유위신의 말투엔 단호함이 가득했다.

능연이 수술실에서 나왔을 때, 대문, 복도, 외래 진료 접수처, 휴게실에 있는 전광판의 붉은 문구가 모두 ‘유위신 선수 본 센터에서 아킬레스건 수술, 국제 육상 대회 60m 단거리 금메달 획득 및 개인 기록 경신을 열렬히 축하합니다.’로 바뀌어 있었다.

능연은 온몸이 근질근질한 상태로 복도에 서서 한참을 지켜본 후에야 전체 문구를 읽었다. 글자가 움직이는 속도가, 초등학생에게 읽히기라도 하려는지, 느려도 너무 느렸다.

“능 선생님, 축하해요!”

“어이, 능 선생!”

“능 선생, 나중에 잘됐다고 우리 잊으면 안 된다!”

그를 지나치는 의사마다 놀리는 듯 한마디씩 인사했다. 연공서열과 실력을 중시하는 병원 같은 기관은 나이 많은 실력자들이 훌륭한 논문을 발표하거나 그런 성과를 거뒀을 때 부러워하면서 존경을 표한다. 그러나 젊은 사람이 지나치게 능력을 발휘하면 그보다 나이 많은 의사들이 순수하게 부러움을 표시하기는 조금 껄끄러워한다.

다만, 다른 업계와 다르게 병원은 지위가 조금 높은 나이 많은 의사는 껄끄러워하면서도 고집은 부리지 않았다.

능연이 복도를 걷는 동안 주변 의사와 간호사들이 다들 아는 척을 하니 학교 때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학교 다닐 때부터 능연은 아무리 비사교적으로 굴어도 알아서 주변 사람이 다가오는 그런 유형이었다.

그중 성적이 공개되는 순간이 제일 싫었다. 전교 1등이었으면 몰라도, 몇 과목 2등, 심지어 5등을 해도 사람들이 몰려들어 축하한다고 인사하는 게 제일 싫었다.

머쓱해서라기보다 짜증이 나서였다. 바로 지금처럼. 그가 유위신에게 해준 아킬레스건 수술은 최종 회복력이 92%에 불과했고, 그다음에 한 케이스보다 성공률이 높지 않았다. 원반던지기 소녀 하수방보다, 그리고 그다음에 한 육상 선수들보다 못한데 사람들이 끊임없이 유위신 수술을 칭찬하고 있었다.

능연은 묵묵히 고개를 까딱이며 사무실로 돌아가 유위신 경기 리플레이 방송을 봤다. 슬로 모션으로 보니, 유위신의 아킬레스건이 정상 상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전에도 그의 사진을 두 번이나 봤었는데, 운동선수라서 그런지 확실히 회복 속도가 빨랐다. 종합적으로 유위신의 아킬레스건은 완전히 회복되었다.

“어때? 성취감 좀 있어?”

기천록은 초짜 의사들이 쓰는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능연이 켜둔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는 물었다.

“지금 다시 하면 성취감이 좀 더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능연은 확실히 방안 A보다 개량된 방안 A에 훨씬 성취감을 느꼈다. 기천록은 그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소식이 있는데 말이야. 그래서 기분이 어떤가 보러 왔더니만.”

“네?”

“유위신이 재검받으러 온대.”

기천록은 말을 빙빙 돌리지 않고 소식을 전했다. 그 역시 유명인을 많이 치료해 온 정형외과 의사였고, 유명인이 재검받으러 오는 것보다야 새로운 유명인이 진찰받으러 오는 게 더 큰 소식인 걸 잘 알고 있었다.

능연은 짐작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거 같더라고요.”

“응. 고강도 시합을 했으니까. 특히 단거리 스타트할 땐 위험하기도 하고. 축 원사님도 오실 거야. 그리고 넌 좀 쉬는 게 어때? 유위신 소식이 퍼지면, 환자가 어마어마하게 늘 거야. 아, 맞다. 원하는 진료실 있어? 네 진료실 따로 마련해 줄 수 있는데.”

진료실을 따로 만들어 주겠다는 건 진료실에서 사무도 보고 환자의 초기 진찰도 할 수 있는 별로의 독립 공간을 내주겠다는 말이었다. 진료실엔 보통 간호사 한 명, 퍼스트 어시 혹은 의사 여럿이 같이 부리는 어시가 배정된다. 유럽이나 미국 의사들의 진료실 형태였고,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의 주임급 의사의 진료실 형태이기도 했다.

축동익의 지지를 받아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는 많은 부분을 개선해왔다. 주임 의사 수만 해도 다른 일반 병원보다 훨씬 많았다.

“진료실을 따로 써 본 적은 없는데요.”

호기심이 생기긴 했다. 진료실이 생긴다는 건, 앞으로 진료를 해도 된다는 말이었다. 물론 정식으로 모든 진료를 하라는 건 아닐 테지만. 아직 정형외과의 다른 질환을 잘 모르는 그가 정식으로 외래를 받았다가는 제 이름에 흠집을 낼 수도 있고.

그래도 트랜스된 환자를 진료실에서 2차 진료하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능연이 2차 진료를 하겠다면 말이다.

“원하면 말해. 원사님한테 말씀드리면 방법이 있을 거야. 원래는 주임급 의사한테나 주는 거지만, 파격 대우라는 것도 있는 거니까. 원사님만 허락하시면 쉽지, 뭐.”

타닥타닥.

여원의 머리가 문틈을 비집고 튀어 들어왔다. 누가 보면 머리로 문을 뚫은 줄 알았으리라.

여원은 민첩하게 그 틈을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기 주임님, 물 좀 드세요.”

여원은 일회용 컵에 정수기 물을 받아 기천록에게 건넸다. 기천록이 고마워하며 컵을 받아들자 여원은 하얀 가운 매무새를 고치며 ‘운화 병원’이라는 타이틀을 드러냈다. 그 모습에 기천록은 싱긋 웃었다.

“여원이라고 했나?”

“예.”

“관심 있으면 같이 센터로 와도 돼.”

“관심 없습니다.”

여원은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기천록은 다시 싱긋 웃었다.

“정말? 상해인데? 모든 조건이 운화보다 나을 텐데?”

이 말은 능연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여원은 콧방귀를 뀌었다.

“상해 조건이 좋은 거랑 의학 센터랑 무슨 상관인데요.”

“아?”

기천록은 간언을 듣는 표정으로 여원을 바라봤다.

“저는 응급 의학과 출신이고 일반 외과를 선호하는데, 여기 없잖아요.”

“잉? 너 아킬레스건 수술하려는 거 아니었어?”

“저는 고고학자가 아니지만, 똥도 수집하는데요?”

“뭐?”

길게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 대답하는 여원의 말에 기천록은 자신의 상식에 망점이 생긴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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