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위신은 귀국하자마자 매체의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수많은 기자가 벌써 기사를 다 써놓고 엔터만 누르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유위신도 매우 협조적이었다.
부상 시절에 비해 얼굴도 밝아졌고 자신감도 충만했다. 더 중요한 건, 인터뷰 때문에 코치나 육상팀의 안색을 살필 일이 없어졌다는 점이었다.
“저도 정말 기쁩니다.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현지 교민의 응원도 정말 큰 힘이 됐습니다. 네, 경기 때는 아무런 생각 없이 열심히 했습니다. 기쁘죠. 부상에서 벗어났고, 상황이 아주 좋습니다. 저도 이렇게까지 좋으리라 상상도 못 했습니다. 우선 부모님께 감사드리고요. 그리고 육상 센터 관계자 여러분, 코치님, 응원해 주신 팬 여러분. 그리고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 의사분들. 특히 축동익 원사님과 능연 선생님이요. 그분들의 뛰어난 실력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완벽하게 회복하지 못했을 겁니다.”
유위신은 걸어가면서 인터뷰했고,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 입구에서 우승기를 들고 축동익, 능연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예전에 유위신은 우승기를 못마땅해했었다. 다들 자신의 병으로 화제를 만들어 억지 눈물을 짜낸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우승기로 능연과 축동익을 들어 올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다쳤을 때의 초조함, 고통, 두려움을 우승기의 몇 마디로 함축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특히, VIP 병실에서 능연이 무표정으로 했던 말을 잊을 수가 없었다.
밤에 조용히 생각에 잠길 때, 그날 능연의 따끔한 일침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절망에서 벗어나 이렇게 다시 금메달을 딸 수 있었을까, 회상하곤 했다.
그러나 그날의 일은 평생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특히 매체에는.
“능 선생님, 감사합니다.”
유위신은 우승기를 흔들면서 능연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우승기 위에 ‘대의정성, 묘수회춘’(유능한 의사의 정성과 탁월한 실력으로 건강을 회복하다)라는 의사의 공적을 치하하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능연은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는 미소를 지으면서 플래시 세례를 유위신보다 훨씬 많이 받았다.
일이기 때문에 유위신을 찍는 것과 마음에서 우러나서 능연을 찍는 건 그 목적이 엄연히 달랐다. 축동익도 마찬가지로 상장을 쥔 손끝이 하얘질 정도로 함박웃음을 지었지만, 기자들의 셔터 수에 그다지 공헌하지 못했다. 기자들에게 원사의 이름값은 소중했지만, 사진은 뭐,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위신 씨, 능 선생님하고 악수 좀 하시죠!”
기자 하나가 대형 렌즈 카메라를 들고 고함쳤다.
“네.”
유위신은 순순히 말을 들으며 몸을 틀어 능연과 단단히 악수를 한 후 그의 귓가에 감사하다고 속삭였다.
“천만에요.”
능연은 미소 지은 채 대답하면서 유위신의 손을 툭툭 두드렸다. 그는 유위신을 철저히 환자로 대했으며, 유위신이 더 많은 환자를 몰고 올 수 있을지 없을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찌 됐든 환자는 의사의 실력에 달렸다. 능연은 원래 명성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스타를 통해 이름을 날릴 생각도 별로 없었다. 거기다 그가 정말 명성을 원한다고 해도 딱히 유위신의 도움은 필요 없었다.
그는 조용히 공부하고 조용히 수술할 수 있기를 더욱 바랐다. 유명세가 가지고 온 소란스러움은 유치원 때부터 겪었으니 심드렁했다.
그런 능연을 보는 유위신은 오히려 감동했다. 그는 그런 눈빛에 매우 익숙했다. 체대에서 두각을 드러냈을 때 시 육상팀 코치가 그를 바라보던 눈빛이었다. 보답을 바라지 않고 마음 편하기만 바라는 그런 눈빛 말이다.
“감사합니다. 능 선생님.”
유위신이 또 한 번 감사를 전했다. 능연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다가 하얀 보물 상자를 발견했다. ‘진심 어린 감사’라는 제시어와 함께.
“마음 놓고 검사하시면 됩니다.”
능연은 그제야 유위신이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네, 그래야죠. 제대로 검사받을게요. 선생님이 주시는 충고라면 뭐든지 따르겠습니다.”
유위신은 군인처럼 힘차게 대답했고 능연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이든 세 번이든! 능 선생님 말씀이라면 뭐든지요! 절대로 투덜거리지 않고 다 따르겠습니다!”
능연이 자기 말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유위신은 다시 한번 다짐했다.
“모든 검사를 두세 번이나 하려면 의사가 노력해야겠네요.”
능연은 MRI를 한 번 찍어 봐야 하나 고민하며 유위신을 바라봤다. 세상엔 머리에 문제가 있는지 모르다가 MRI를 찍고 나서 발견하는 예도 있으니 말이다.
그날 저녁, 축동익은 기천록, 능연 등 의사들을 거느리고 당당하게 유의신의 VIP 병실을 찾았다. 레지던트와 연수의 중에는 처음으로 이런 호화로운 프레지던트 병실을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나같이 호기심으로 어쩔 줄을 모르며 축동익이 안에 있는 방으로 들어간 틈을 타서 몰래 핸드폰을 꺼내 셀카를 찍었다.
침대에 누워 있던 유위신이 몸을 일으키며 웃어 보였다.
“저 컨디션 좋아요. 이렇게까지 우르르 안 오셔도 됩니다.”
“검사 한 번 다시 하면 너도 더 마음이 놓이잖니. 결과부터 말하마. 괜히 딴 생각하지 말란 뜻이야. 허허. 아킬레스건엔 문제가 없단다. 잘 회복되고 있어. 훈련 계속해도 돼.”
유위신도 마음 놓은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침대 곁에 앉아 있던 코치진들은 더욱 감사하는 얼굴로 연신 인사를 전했다. 60m 단거리라 7초도 안 걸리지만, 걱정이 안 될 리가 없었다. 멀쩡한 아킬레스건도 파열 가능성이 있는데, 막 치유된 아킬레스건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코치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의사들보다 훨씬 희한한 질병을 많이 보기도 했다. 유위신이 하는 훈련 같은 건, 평소에 스쿼트 150kg도 하는 사람이 자칫 잘못해서 발을 헛디뎌 아킬레스건이 파열되기도 하는 훈련이었다.
훈련할 때는 신경 써서 움직일 수 있어도 시합 때는 그럴 수도 없었다. 코치들은 시합으로 생긴 후유증도 걱정이었다.
“원래 위신이 상태가 좋지 않습니까. 신경 써서 재활하기도 했고요. 이제 정기 검사만 잘 받으면 됩니다.”
“능 선생님한테 정기 검사받아도 되나요?”
축동익이 온화하게 웃으며 하는 말에 유위신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물었다. 축동익은 조금 난처한 듯 능연을 바라봤다. 능연을 좋게 보긴 했어도, 그로서는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가 우선일 수밖에 없었다. 운화 병원 소속인 능연이 유위신의 담당 의사가 되려면, 유위신을 운화 병원에 보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안 된다고 할 처지도 아니었다.
의사와 환자 간에 생긴 신뢰 관계는 큰 병이 치유된 단계에서 가장 견고하다. 또 한편으로 아킬레스건에 대해서는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 대다수 의사보다 능연이 더 우수하다. 그러니 더 나은 의사를 추천할 수도 없었다.
“죄송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을 것 같습니다.”
능연의 한마디에 축동익이 덜 난처해졌다. 그러자 여원이 오히려 초조해했다.
“정기 검사는 3개월에 한 번씩 하면 되는데, 시간이 왜······.”
“3개월에 오후 시간 한 번이면, 1년이면 이틀, 10년이면 20일. 현대인의 평균 수명은 80, 그럼 유위신 선수는 앞으로 60년 더 검사해야 하고 그럼 120일이잖습니까!”
능연이 언짢은 듯 내뱉는 말에 여원뿐만 아니라 곁에 있던 다른 의사들도 깜짝 놀랐다. 그러자 요즘 기분이 영 좋지 않은 104kg 레지던트가 끼어들었다.
“누가 시간을 그렇게 계산합니까.”
“예?”
능연이 고개를 돌려 육체가 ‘대규모화’한 레지던트를 바라봤다. 104kg 레지던트는 목을 움츠리며 중얼거렸다.
“처음에는 2, 3개월에 한 번씩 해도, 나중엔 줄어들 겁니다. 6개월에 한 번, 은퇴한 다음엔 1년에 한 번이면 되고요.”
“그러니까 한 달에서 40일 정도?”
여원의 암산 실력도 능연만큼 훌륭했다. 그러자 유위신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 그렇게까지 멀리 볼 거 뭐 있나요. 아, 몰라요. 능 선생님, 저는 선생님 찜했습니다. 앞으로 바로 저한테 비용 청구 하시죠. 외국 의사들처럼요. 저는 선생님 따라갑니다. 매체에도 그렇게 말할 거예요. 선생님이 제 전속 의사라고.”
중국도 미국처럼 의사 한 명이 여러 병원에서 근무할 수 있는 그런 개업 방식을 조금씩 추진하고 있었다. 물론 당연히 병원 하나에서 근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의사가 병원을 여러 개를 다니든, 하나를 다니든, 진료비는 모두 청구서를 발행해야 한다. 게다가 대다수 의사의 진료비 수령 방식과 비용은 의사 본인 그리고 환자가 계약한 보험 회사가 결정한다.
그에 비해, 병원은 종합성 서비스를 제공한다. 대형 마트와 마트 안 상점 주인의 관계라고 생각하면 쉬웠다.
외국에서 몇 번 진료한 적 있는 유위신은 외국 방식에도 익숙했다. 능연은 매우 이성적으로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죠. 뭐 스포츠 스타가 환자라면 다른 환자도 조금 늘겠죠.”
곁에 있던 사람들이 부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능연을 흘겨봤다.
이런 스포츠 스타가 다른 환자를 ‘조금’밖에 못 끌어 오겠냐?!
능연의 그런 성격에 이제 익숙해진 유위신이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능 선생님은 기분파에 직설적이신 분이죠. 저하고 잘 맞네요. 축 원사님, 서운해하지 마세요. 능 선생님이랑 나랑 성격이 잘 맞아서······.”
“나는 60년이나 더 살지도 못하네. 이제 젊은 사람들 세상 아닌가.”
축동익이 껄껄 웃으며 유위신의 말을 잘랐다. 사실 유위신이 축동익을 담당 의사로 고를 리도 없고, 당당한 원사인 축동익도 그럴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서운하지 않다고 하면 그것도 거짓말이었다.
원래 유위신 담당이던 곡 선생은 아예 이곳에 오지도 않았다.
회진을 마치고 의사들이 뿔뿔이 돌아가자, 유위신이 침대에서 내려와 축동익 등을 식사에 초대했다. 축동익은 완곡하게 거절했고, 기천록은 승낙하면서 능연을 바라봤다.
“한 시간 뒤에 수술해야 합니다.”
능연이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자 유위신이 바로 그를 설득했다.
“그럼 이럴까요? 일단 밥 먹고 같이 사진 한 장 찍어요. 제가 웨이보에 올려서 선생님 덕에 제 병이 나았다고 쓸게요. 거짓말도 아니잖아요. 그럼 앞으로 환자가 끊임없이 몰려들걸요? 지금 당장 급할 것도 없다고요.”
“일반인 아킬레스건 수술은 30분이면 되잖아.”
능연이 미처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여원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프로 선수가 아닌 일반인 아킬레스건 수술은 혈액 순환량이 풍부한지 아닌지는 관점이 아니라서 방안 A로 할 필요가 없다. 능연은 빨리할 땐 20분이면 해치우기도 했다. 그렇게 계산하면 환자가 더 많이 온다면 작업 효율도 높아지리라.
하지만 능연이 쉽게 수술을 미룰 사람은 아니었다.
“그럼 배달시켜서 병실 식당에서 먹을까요?”
“그럽시다, 그럼. 어디가 좋은지 친구한테 좀 물어볼게요.”
능연도 절충안을 낸 셈이라, 잠시 고민하던 유위신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필요 없어요. 며칠 전에 주문한 스테이크 집, 꽤 괜찮더라고요.”
능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바로 핸드폰을 꺼내 어플을 열었고, 유위신은 무심결에 코치를 바라봤다.
“능 선생님, 위신이는 밖에서 사 온 스테이크를 못 먹어요.”
“스테이크 신선하더라고요. 소금이랑 후추 간만 되어 있고.”
능연은 운동선수 식단을 잘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유위신이 궁금증을 누르며 30분 정도 기다리자 높은 모자를 쓴 셰프가 조수 4명을 데리고 병실에 나타났다. 조리도구도 알아서 가지고 와서 사람들 앞에서 거대한 철판을 달구고 연기를 뿜으면서 스테이크 열 몇 조각을 좌르륵 놓고 굽기 시작했다.
“호주 소고기 M9와 M13, 초식 사료와 곡물 사료로 키운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숙성 스테이크가 있습니다. 립아이와 설로인 중에서 고를 수 있습니다. 그밖에도 켄터키주 뒷다릿살도 특색 있는 스테이크로 추천해 드립니다.”
“이런 배달 서비스가 있는 줄은 몰랐네요. 이렇게 팔아도 남아요?”
유위신은 마블링이 예쁘게 퍼진 두꺼운 스테이크를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핸드폰을 꺼내며 물었다. 하얀 조리 모자를 높게 쓴 셰프가 잠시 망설이다가 아무것도 없는 하얀 영수증을 꺼내 이렇게 읽었다.
“플래티넘 풀 코스 당첨 고객 이벤트, 무한 리필 인당 9.9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