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원은 배를 부여잡고 수술실로 들어갔다가, 능연이 막 절개한 프레시한 절개구를 보고 하마터면 침을 흘릴 뻔했다.
“오늘 먹은 스테이크 진짜 맛있더라. 특히 그 켄터키 소 뒷다리 스테이크. 뒷다리는 질긴 줄 알았는데 식감이 좋던데? 특색 있는 맛이었어.”
여원은 그렇게 말하면서 훅을 건네받아 환자의 종아리를 힘껏 끌어당겼다.
회색 토끼 모자 간호사가 이리저리 귀엽게 움직였다. 그녀도 스테이크를 얻어먹고 기분이 좋았다.
“인터넷에서 찾아봤는데, 미국 뒷다리 스테이크는 우둔살이래요. 거긴 잘 안 쓰니까 그런가 봐요.”
“맞아요. 그러고 보면 사람 허벅지도 꽤 야들야들하네요.”
“대체 뭘 먹은 거야. 난 왜 9.9 운송비 포함 같은 행운이 없지?”
“운송비 포함이 아니라 무한 리필이요.”
마취의가 입을 삐쭉거리며 하는 말에 여원은 ‘꺼억’ 트림하며 한마디 했다.
“능 선생, 다음에는 그런 좋은 기회 있으면 나도 좀 불러줘.”
“이벤트 당첨된 거라 또 있을지 모르겠네요. 여 선생님, 브라질너트 샀어요?”
“응, 내일 아침에 올 거야.”
능연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아킬레스건 박리에 집중했다.
“브라질너트? 뭐 하게?”
“마술에 쓸 건 가보죠.”
궁금한 듯 묻는 마취의의 말에 여원이 능연을 힐끔 보고는 낮게 중얼거렸다.
“뭐?”
“선생님, 아저씨 소리 자주 듣죠? 75년생? 76년생?”
“뭐라는 거야!”
여원이 딱하다는 듯 보다가 묻자 마취의가 버럭했다.
“누가 봐도 딱 80년생으로 보이지 않니?”
“80년생이요?”
마취의는 데여서 입가에 물집이 생겼는데 누가 뜨거운 꼬치라도 밀어 넣은 듯 입가를 실룩였다.
“내가 몇 살이든 네가 무슨 상관이신데요!”
“80년생 참 좋겠어요. 조금만 일찍 군대 갔으면 홍콩 반환 때 근무도 서셨겠네요. 처음에 컴퓨터 썼을 때 이미 담배 피우던 나이 아니었어요?”
여원은 ‘이해합니다.’ 하는 시선으로 그윽하게 마취의를 바라봤고 마취의는 그런 시선을 피하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능 선생. 속도 좀 내봐. 얼른 끝내자고.”
“다음 수술 있어요? 8분 더 걸려요.”
능연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모니터를 힐끔 보고 조금만 더 버티라고 했다. 그러고는 여원에게 쉴 새 없이 지시를 내렸다. 집도의가 속도를 내니 당연히 어시가 더 바빠졌다.
허둥지둥 바빠진 여원의 모습에 마취의의 마음이 조금 풀렸다. 외과의가 집중해서 수술하면 마취의는 한가해지는 법이라 그는 좌우를 두리번거리다가 시간을 재기 시작했다.
능연은 전혀 몰랐고, 여원도 관심을 주지 않자 마취의는 끽소리도 내지 않았다.
8분 후, 능연이 정확하게 손을 멈췄다. 역시나 정확하게 시간을 계산한 것이었다.
지금 능연에게 개방성 아킬레스건 수술은 말 그대로 식은 죽 먹기였다. 수술 전엔 수술 상황을 100% 확신할 수 없지만, 일단 수술이 진행되면 나머지 스텝은 갈피가 잡힌다.
흉외나 신경외과 수술과 비교하면 아킬레스건과 탕 법 굴근건 류 수술은 모두 사지 말초에 관련된 수술이다. 사지 말초는 혈관이 가늘다거나, 근건의 부담이 막중하다거나, 기능성이 약하다거나 하는 특징이 있어서 수술하기 까다롭지만, 상태가 안정되어서 수술할 때 조작하기 쉬운 장점도 있다.
수부, 족부 외과에서 생기는 돌발 상황은 대부분 의사 본인의 조작 실수로 유발된다.
수부, 족부 외과에서 능연이 지금 못하는 수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류에게 수술을 못 할 만큼 기이한 아킬레스건은 아직 없었다. 아킬레스건 수술을 200건 넘게 해오면서 능연은 더할 나위 없이 세심하게 수술을 조정하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마취의는 수많은 외과 의사 수술방에 들어갔지만, 이렇게 초 단위로 시간을 맞추는 의사는 본 적이 없었다.
브라질너트가 진짜 무슨 특수한 효능이라도 있는 건 아니겠지?
수술을 한 건 끝낸 능연은 외국 의사가 소개한 멕시코인을 포함해 연달아 3건을 끝냈다. 게다가 치프 레지던트 한 명을 어시로 추가해서 모든 수술을 한 시간 만에 끝냈다.
“끝이에요?”
“나머지 환자랑 보호자는 일단 능 선생이 진찰하고 수술을 할지 말지 같이 결정했으면 한대.”
여원이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꼭 내가 해야 한대요?”
“능 선생 이름 듣고 온 거니까. 얼굴을 먼저 봐야 안심할 거 같대.”
능연이 다시 확인하며 묻자 여원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소개팅도 사진 먼저 보고 하는데요.”
“능 선생, 지금 나더러 능 선생 사진 보여주라고 하는 건 아니지?”
여원이 실눈을 뜨며 능연을 바라봤다.
“농담해요? 환자나 보호자나 초조해서 난리일 텐데, 내 사진 보여줘서 뭐 해요. 뭐 사러 가서 가격 흥정하는 것도 아니고.”
“가격 흥정할 때 사진 가지고 가면 효과는 있고?”
고개를 저으며 하는 능연의 말에 여원은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일단 됐고요. 우선 여 선생님이 환자랑 보호자 만나보시고, MRI 사진 걷어 오세요.”
“잠시만! 가격 흥정 이야기부터 해봐!”
“수술이 중요해요? 아니면 쇼핑이 중요해요?”
여원은 ‘남자 친구랑 엄마가 같이 물에 빠지면 누구 구할래?’에 버금가는 난제라고 생각하며 입을 뻐끔거렸다.
30분 후, 여원은 나머지 아킬레스건 환자 8명과 보호자 20명을 모두 한자리에 모았다.
모두 유위신의 홍보 덕이었다. 사실 그런 소식이 퍼졌다고 해도 없는 아킬레스건 환자가 생길 리는 없었다. 광고를 봐도 뭐 어쩔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말이다. 아무리 충성스러운 팬이라고 해도 자기 아킬레스건을 자를 수 없지 않은가. 자기 연예인이 광고하는 상품을 사는 것도 아니고.
그런 상황에 오늘 아킬레스건 환자가 두 자릿수 넘게 찾아온 것을 보면, 유위신의 이름값이 새삼 대단함을 알 수 있었다.
회의에 참석한 의사들이 오히려 막대한 자금을 들여 신경 써서 제작한 광고처럼 대단했다. 주치의 하나가 104.5kg 레지던트를 옆에 거느리고 능연을 빛내주려는 듯 서 있었다. 다만 시장통 같은 분위기라 별로 쓸모는 없었다.
원래 큰 편이 아닌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 접견실에 한꺼번에 사람이 몰리니 갑갑한 느낌까지 들었다. 영업에 속하는 이런 디테일을 다른 업계에서 이렇게 형편없이 했다면 분명 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의료 분야는 자신의 몸이 좋아진다면 아무도 병원 환경을 따지지 않는다.
어수선한 접견실에 능연이 나타나자 순간 조용해졌고, 그는 거두절미하고 입을 열었다.
“일단 분류 좀 하겠습니다. 제가 이름을 부르면 환자분은 보호자와 같이 나와 주세요.”
능연은 MRI를 들고 위에 이름을 읽어 내려갔다.
“장홍 씨, 금홍재 씨, 이만과 씨, 왕방군 씨. 네 분 보호자와 같이 앞으로 오세요. MRI 판독 결과 불완전 아킬레스건 파열입니다. 네 분이 체육 종사자가 아니거나 취미가 스포츠 쪽이 아니라면 최소 절개술을 추천합니다.”
네 가족이 미처 반응하기 전에 능연이 이어서 세 사람을 부르고는 중간으로 걸어갔다.
“비슷한 상황입니다. 다만, 파열 위치가 좋지 않으니 소형 절개구 수술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대형 절개구 수술을 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앞에 네 분도 다른 방법으로 수술하셔도 됩니다. 그러니까 최소 절개술이 걱정된다면, 소형 절개구 수술해도 되고, 소형 절개구 수술을 추천드린 환자분도 대형 절개구 수술로 해도 됩니다. 하지만 거꾸로는 안 됩니다. 이해하셨나요?”
“네.”
능연에게 압도당한 환자와 가족이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 보호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서툴러서 일부러 일대일 대화 방식을 피했던 능연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그는 여러 아킬레스건 수술 방법을 터득했고, 방안 A로 유명해지긴 했지만 일반인 모두 그런 방법으로 수술을 할 리는 없었다.
“자, 그럼 이어서 세 가지 수술 방식과 장점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환자와 가족들은 능연의 설명을 들으면서 수술을 포기하려던 생각을 버렸다.
“능 선생, 생각보다 환자랑 보호자를 능숙하게 다루는데?”
분위기를 띄우러 같이 나왔던 주치의도 마찬가지로 한숨 돌리면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잘생겨서 그래요.”
104.5kg 레지던트가 생수를 들고 호탕하게 나발을 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