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과 녹색으로 이뤄진 수술실로 돌아온 능연은 저도 모르게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환자와 보호자가 너무 많았다.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 의사 두 명이 함께했고 여원도 곁에 있었지만, 절망스러울 만큼 힘들었었다.
학교에서도 그렇게 많은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집에서도 마찬가지고. 대화하는 거로 이런 시련을 겪은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사회의 기대에 부합하는 의사의 대화 방식은 알고 있으므로 환자 가족을 화나게 하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물론 환자와 환자 가족이 그렇게 어리석은 짓을 할 리가 없지만. 다들 능연에게 수술을 바라고 온 것이지, 능연의 미소를 바라고 온 건 아니니 말투가 그보다 더 딱딱했다고 해도 그 자리에서 의사에게 밉보일 짓을 하지는 않았으리라.
물론 의사 뒤에서는 그렇게까지 공손하지 않았다.
“아니, 능 선생이라는 분. 너무 말이 안 통하는 거 아닙니까? 나중에 내가 농구를 하고 싶어지면 어쩌냐고 물으니까 뭐라고 하는 줄 알아요?”
LP(lumbarpuncture: 허리천자, 뇌척수액 검사)를 하기 위해 옆으로 누운 왕방군이 못 참겠다는 듯 뒷말을 했다.
“하지 마세요.”
“응? 어떻게 아셨어요?”
환자 소독하던 마취의가 능연의 말투를 흉내 내서 대답하자 환자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아킬레스건 파열인데 농구를 어떻게 합니까.”
마취의가 재빠르게 마취하며 대답하자 왕방군은 끙 소리를 냈다. 잠시 후, 서서히 허리 아래 감각이 없어졌다.
“TV 보니까 유위신은 시합도 나가던데요? 코비 브라이언트도 농구 계속하잖아요.”
“15cm짜리 대형 절개구 아킬레스건 수술하실래요?”
마취의가 아무렇게 않게 묻는 말에 다리털이 싹 깎인 왕군방은 머릿속에서 15cm를 가늠해 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좀 작게는 안 됩니까?”
“소형 절개구 봉합도 농구 못합니다. 지금 환자분은 최소 절개술로 수술받으실 거예요. 대형 절개구로 수술하시면 몇 개월 동안 관리 잘하시면서 재활도 하셔야 해요. 그럼 농구 할 수 있죠. 환자분한테 농구가 그럴 정도로 의미 있나요?”
“그럼 새로 산 신발들 다 쓸모없어지는 거네요? 돈 아까운데······.”
“평소에 신으시면 되죠.”
“그건 기분이 안 나잖아요.”
입심이 좋은 왕방군은 수술대에 올라서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능연은 헛기침하면서 수술대로 다가가 그를 힐끔 보고는 간호사가 입혀주는 수술복을 걸쳤다. 그런 모습에 왕방군도 눈치 빠르게 입을 다물었다.
“반신 마취입니까?”
“응, 환자분이 고집하시네.”
말 많은 환자는 질색인 능연이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물었지만, 마취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러죠.”
그렇다고 환자를 남에겐 넘기기 싫어서 어쩔 수 없이 그의 선택을 받아들였다. 의사가 보기에 반신이나 전신이나 마취 부작용은 비슷했지만, 환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형 절개구라면 전신 마취를 권할 수도 있지만, 최소 절개술은 반신 마취로도 충분했다.
“지혈대 준비해 주세요.”
능연은 그랜드마스터급 아킬레스건 수술을 얻었지만, 최소 절개술은 많이 해보지 않았다. 그는 환자의 발목 관절을 높이고 다리 쪽을 눌러 보았다.
“털이 깨끗하게 제거되지 않았는데요?”
“뒷부분은 다 깎았습니다.”
종아리 부분에 남은 털을 보고 능연이 지적하자 제모를 담당한 순회 간호사가 흠칫했다가 다급하게 대답했다.
“다시 한번 미세요.”
“아이고, 제가 털이 좀 많아서.”
능연은 언제나 엄격했다. 수술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니지만, 몇 가닥 남겨놓은 건 왜지 싶었다. 순회 간호사는 어쩔 수 없이 다시 털을 깎기 시작했고, 왕방군은 어쩐지 민망한 기분이 들어 한마디 보탰다.
“환자분은 관계없습니다.”
“내 털인데요?”
능연이 말을 자르자 왕방군은 눈을 껌뻑였다. 제모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다리에 아무런 느낌이 느껴지지 않자 무슨 뜻인지 알 것도 같았다.
“절개구 두 곳을 열어 상황을 보겠습니다.”
말끔히 제모하고 소독도 다시 한 후에야 능연은 메스를 집어 들었다. 대형 절개구 아킬레스건 수술은 보통 S형 절개구를 내고, 최소 절개술은 아킬레스건에 밀접한 곳에 1cm짜리 절개구 2개를 내서 아킬레스건 주위 조직을 드러낸다.
열어서 확인할 수 없으므로 최소 절개술로 할 때는 대형 절개술보다 MRI에 더 많이 기댄다. 아킬레스건이 넓게 파열된 경우, 파열 위치가 근복(muscle belly)에 가까운 경우, 아킬레스건이 끝나는 부분이 파열된 경우는 모두 대형 절개 수술을 채택해야 한다. 다른 환자들은 모두 그런 상황이었다.
왕방군의 아킬레스건 파열은 특별한 것은 없고 그냥 깔끔하게 잘린 것이라 능연은 위치를 골라 ASSAL 아킬레스 최소 절개 문합기로 끝단 위치를 고정했다.
“모스키토 포셉 좀 더 세게 당겨요. 안쪽 발이 아킬레스건 안쪽으로 오게. ASSAL 규정입니다.”
여원은 손을 놀리면서 설명하는 능연의 말을 진지하게 들으면서 그대로 따라 했다. 의사들이 모두 집중해서 바삐 움직이자 환자 왕방군은 서서히 무료해졌다.
“그러니까, 저 진짜 농구 못한다는 거죠?”
“안 됩니다!”
왕방군이 슬슬 대화의 시동을 걸자 여원은 능연을 힐끔 보고는 대신 대답했다.
“그럼 새 농구화는 팔아 버려야겠네요. 관심 있는 사람 있어요? 에어 조던 거의 새것 하나 있는데. 서너 번 신었나? 10번도 안 돼요.”
적극적으로 거래를 추진하는 왕방군의 모습에 그의 근건을 긁고 있던 의사 두 명이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숙이고는 묵묵히 계속했다.
“이 병원 수술비도 비싸던데요. 이 기계도 제가 자비로 내야 하는 거죠? 몇천 위안이나 하던데, 에어 조던 좋아하면 그걸로 바꿀까요?”
“아, 내가 아는 의사 중에 에어 조던 좋아하는 의사 있는데, 안타깝게도 상해가 아니네요.”
왕방군은 이야기를 한번 시작하자 멈추지 못했다. 연문빈을 떠올린 여원이 대답했다.
“야, 의사들 부자네요. 에어 조던도 사고. 어차피 농구도 못 하게 됐는데 두 켤레에 1만 위안에 팔죠, 뭐. 병원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그렇지, 아니면 저도 이렇게 안 판다고요.”
대화 소리에 집중력이 흐트러지자, 능연은 아예 동작을 멈추고 마취의를 바라봤다. 수다에 끼어들려던 마취의는 그의 표정을 보더니 조용히 약을 꺼내 환자에게 놓았다.
전신 마취 때 쓰는 약물이 아닌 반신 마취 환자 대응용 약물이었다. 두세 시간 혹은 그 이상 걸리는 반신 마취 수술에서는 진정 약물을 써야 할 때도 있었다. 최소 절개 수술에는 원래 진정 약물이 필요 없지만, 환자에 따라 다른 대응을 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집도의가 못 견디는데, 시간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떠벌이는 또 처음이네요.”
환자가 완전히 잠이 든 걸 확인한 간호사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능연은 그런 그를 힐끔 보고는 수술을 계속했다. 능연이 대답할 의사가 없는 걸 느낀 간호사도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
수술실은 다시 능연이 가장 좋아하는 침묵 상태로 돌아갔다.
능연은 퇴근 시간까지 수술을 이어서 하면서 8명 환자의 수술을 모두 마쳤다. 샤워하고 나온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황무사를 발견했다.
“능 선생님, 아킬레스건 최소 절개 문합기 어떻던가요?”
“수술 중엔 별다른 건 없었습니다. 이제 예후를 봐야죠.”
황무사가 웃으며 묻는 말에 능연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네네, 그러세요. 맞다, 능 선생님. 아까 축 원사님이 수술 구역에 오셨어요.”
“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아까 원사님이 노트 하나를 주고 가셨어요. 문 앞에 두셨다던데.”
머리를 치며 하는 황무사의 말에 능연은 바로 문 앞에 있는 너스 스테이션으로 향해 프린트로 된 노트를 받았다. 첫 장을 넘기자 커다란 글씨가 보였다.
<축-능 아킬레스건 보건술>
능연은 프린트된 <축-능 아킬레스건 보건술>을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읽었다.
30 몇 페이지짜리 논문에 축동익의 방안 A가 3/4, 나머지는 능연의 개량 안이었다. 합리적인 분량 배분에 충실한 내용이었고, 무엇보다 작가가 능연의 도움 없이 개량된 아킬레스건 보건술의 중요 내용을 쓴 것이 대단했다. 역시 축동익 원사는 큰 인물이었다.
“능 선생님, 축 원사님이 벌써 중화 정형외과에 논문을 발표하셨대요. 선생님도 제1 저자로요. 축하드립니다.”
황무사가 낮은 목소리로 축하 인사를 전했다.
논문의 근간은 실험이고, 임상 의학에서 임상 수술이 바로 그 실험에 해당하는 근간이었다. 능연이 수술했으니 축동익이 논문을 썼다고 해도 공동 제1 저자 기록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현재 체계상, 문제가 없다는 것이 꼭 당연한 건 아니었다. 능연이 손에 든 프린트 자체가 축동익의 태도를 나타냈다.
능연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프린트를 챙겨 돌아서다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기천록을 만났다.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 수술 구역은 모두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고 소방용 통로는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다. 병실 구역과 수술 구역을 잇는 공간은 넓고 텅 비어서 오가는 사람이 바로 보였다.
능연을 본 기천록은 바로 미소 지으며 다가왔다.
“능 선생, 아직 안 갔을 거 같더라. 좋은 소식 가지고 왔는데.”
“환자가 또 왔나요?”
“흠흠, 그게 아니고. 수술은 내일 해, 뭐가 그렇게 급해.”
“환자 생기면 바로 연락 주세요. 새벽 4시까지 올 수 있어요.”
능연은 본인의 수면 시간을 계산해서 덧붙였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스태미너 포션은 사용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던 기천록은 곁에 흥미진진한 얼굴로 서 있는 황무사를 발견하고는 그가 뜨끔할 정도로 뚫어지게 바라봤다.
“아, 기 주임님, 능 선생님,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황무사도 완전한 멍청이는 아니라서, 두 사람과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을 일단 접고 순순히 물러났다.
“이것 봐봐. 우리 재정부에서 특별히 만든 리스트야.”
황무사가 사라진 걸 확인한 기천록은 슬그머니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월급 명세서인가요?”
능연이 바로 알아보고 물었다. 그러자 기천록이 슬쩍 다가가 작업을 걸었다.
“응, 네 거야. 여기 봐봐, 지난달 월급이야. 보너스하고 수술비만이라고.”
이왕 시작한 것, 기천록은 다섯 자릿수 수입을 가리키며 능연의 표정을 살폈다.
“원래 기본급도 있고 직위 수당도 있는데, 우리 쪽에 아무런 근거가 없으니까 재무 쪽에서도 어쩔 수 없었지.”
능연은 ‘거대’한 금액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근거가 있을 수 없죠. 저는 운화 병원에 들어가야 하니까.”
“하하, 일단 그건 됐고. 너 아직 실습생이잖아.”
“저는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엔 안 맞는 거 같아요. 환자가 너무 단순해서 제 스타일이 아닙니다.”
“아니, 저기 능 선생, 결정이 너무 빠른 거 아니야?”
바로 고개를 흔드는 능연의 모습에 기천록은 크게 당황했다. 거절해도 좀 완곡하게 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단호할 줄 누가 알았을까. 기천록은 너무나도 실망했다.
“빠르다고, 너무 빨라.”
“그래도 내일 수술은 하러 와도 되나요?”
“돼, 왜 안 돼.”
능연의 관심은 시종일관 수술이었고 기천록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능연이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해도 수술하는 것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능연 같은 의사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일반적으로 의사 한 명이 수술을 많이 해 봐야 1년에 1, 2백 번인데, 능연은 센터에 있는 동안 상급 의사가 할 수술 1년 치를 끝냈으니, 센터가 손해 볼 건 아무것도 없었다.
병원으로서 선임 주치의 이하 초짜 의사들은 다 부담이지만, 부주임 이상 의사는 모두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이었다.
능연 같은 실력 있는 의사는 아킬레스건 수술만 해도 진료팀 하나를 꾸릴 수 있는데 기천록이 거절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병상 문제는······ 남아도는데 말이다. 적어도 지금은 병상은 충분했다.
“됐다. 좋은 이야기 하자. 능연, 너 지금 수입은 완벽한 고액 연봉자인데, 어디다 쓸 생각이냐?”
기천록이 친한 척 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물었다. 능연은 명세서를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이렇게 많으니까······ 아마도 속옷 사겠죠?”
처음엔 농담인 줄 알고 껄껄 웃던 기천록은 뒤로 갈수록 어깨에 뻗었던 손까지 그대로 굳어 버렸다.
타닥타닥.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도 전에 안에서 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리자마자 여원이 틈새를 비집고 빠져나왔다. 기천록이 다급하게 손을 내리자 여원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하고 계셨어요?”
“아, 맞다. 너도 월급 나왔어.”
기천록은 아무래도 제 머리가 어떻게 된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주머니를 뒤져 월급 명세서를 꺼내 여원에게 건넸다.
“보너스랑 수술비 등등.”
“와, 신나라.”
두 사람을 수상하게 바라보던 여원은 바로 긴장을 풀고 생선이라도 훔친 고양이처럼 신나서 명세서를 펼쳤다. 분위기가 풀어지자 기천록은 내심 마음을 놓으며 웃어 보였다.
“지금 막 능연한테 월급 받으면 뭐 살 거냐고 묻던 참이었어. 여원, 너는 뭐 살 거냐?”
“저요?”
여원의 눈빛이 아련해졌고, 기천록은 궁금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창고비부터 내야겠네요. 밀린 거 내도 나머지로 병이나 끈, 사도 되겠는데요?”
“창고? 병?”
여원이 명세서를 훑으며 하는 말에 기천록이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