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그레이트 닥터-191화 (172/877)

“곡 선생, 이리 좀 와 봐. 환자랑 보호자가 대형 절개구 수술에 걱정이 많으신가 봐. 와서 말씀 좀 드려.”

기천록이 접견실 문을 활짝 열고 복도에 있던 곡 선생을 보란 듯이 불렀다. 곡 선생은 무거운 엉덩이를 끌고 기천록 앞으로 다가갔다.

“능연 수술 아냐? 이런 것도 우리가 도와줘야 해?”

“이게 싫으면, 신체 진찰할래?”

기천록은 젊은 주임 의사였지만, 사람 갈굴 줄 모르거나 갈궈 본 적이 별로 없는 건 아니었다. 마흔을 넘긴 기천록은 목을 빳빳이 들고 환자와 보호자를 등진 채 이를 갈았다.

“아니, 그냥 한 말이지. 기 주임님, 왜 이래.”

유위신을 뺏긴 화풀이로 그저 별생각 없이 툴툴거리던 곡 선생은 당황해서 꼬리를 내렸다.

“다른 의사들이 다 시간이 안 된다잖아. 오늘 온 환자들은 다 유위신 때문에 온 건데, 유위신 상황은 곡 선생이 더 잘 알잖아. 그러니까 잘 좀 설명해 봐. 나는 목이 다 칼칼해.”

“그래. 근데, 능연은 안 온대?”

기천록의 말투가 누그러지자 곡 선생은 넌지시 물었다.

“집도의는 나로 되어 있는데, 능연이 오거나 말거나가 왜 중요해. 그리고 걔 소통 능력으로 여기 와서 뭐 한다고.”

기천록은 비정상 행위를 당당하게도 말했다. 골관절 & 스포츠 의학 센터 같은 연구 센터에는 수시로 연수의, 훈련의, 실습생이 오가고 심지어 외국 의사들도 적잖게 들락거린다. 의사 면허가 있든 말든, 기본적으로 다들 합법적인 자격은 없지만 해야 할 수술은 해야 했다.

그러나 누구 이름으로 할지는 여전히 중요한 사안이었다. 능연쯤 되는 실력이 출중하고 근엄하고 잘생긴 의사 정도는 기천록이 믿고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다른 의사였다면, 실력이 좋다고 해도 성격이 튀거나 잘생김이 부족했다면 이름 쓸 자리를 비워주지 않았을 것이다. 성격은 몰라도 수술대에서 튀었다간 진짜 난리가 날 테니. 예쁜 간호사나 실습생을 만나서 뇌가 다운되어 지능이 떨어질 수 있으니 잘생김이 부족한 의사도 위험하다.

그래서 능연 같은 의사는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인풋, 아웃풋이 안정적인 외과 의사라고 할 수 있었다.

곡 선생은 어쩔 수 없이 접견실 안으로 들어갔다. 센터 접견실은 미국 병원 시스템을 모방해서 만든 가장 유용한 시설이었다. 물론 그만큼 사치스러웠다.

다른 병원은 병실 자리도 부족한데, 센터는 접견실을 12개나 준비했다. 접견실마다 비즈니스 호텔룸만 했고, 인테리어도 사람들이 깔끔하다고 느끼되 호화스럽다고 느끼지 않을 딱 그 정도 수준이었다.

호화로움과 병원은 잘 어울리는 속성이 아니며, 심지어 어울려서는 안 되는 속성이기도 했다.

접견실 내부 정중앙엔 둥근 티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나무 재질의 둥글고 매끄러운 테이블의 다리는 화난 누군가가 뒤엎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다. 테이블 곁에 있는 소파도 편안한 종류가 아니라 딱딱하고 각진 네모 디자인으로 마찬가지로 바닥에 고정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

물 마실 종이컵, 정수기 등도 마찬가지로 잠겨져 있거나 박혀 있거나였다.

일반 환자와 가족은 보통 긴장을 감추기 위해 냉정한 척하고 있으므로 일반적으로 그런 걸 알아채지 못한다. 그러나 감정을 숨길 필요 없는 경제계나 정계 인사는 자신의 상태를 감추지 못하고 드러내기 마련이었다.

곡 선생도 경험이 풍부한 의사로서 유심히 환자와 환자 가족을 관찰했다. 환자는 보기 좋게 피부를 태운 여자아이로, 운동복을 입고 손목 보호대를 찬 열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선수였다.

소녀는 소파 곁에 바싹 붙은 휠체어에 탄 채, 엄마 손을 꼭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엄마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그의 엄마는 연하게 화장을 했지만, 얼마나 울었는지 눈 밑이 거뭇했다. 아빠는 그나마 침착해 보였는데, 엄숙한 표정으로 속마음이 얼마나 초조한지 알 수 있었다.

곡 선생은 한눈에 선수의 가정 상황을 파악해냈다. 출중한 딸이 있는 전형적인 소시민 가정이었다. 부모의 사회적 지위는 다 평범하지만, 일정 경제 능력이 있고 아이에게 엄격하게 요구하지 않지만, 교육에 투자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곡 선생은 묵묵히 차트를 들어 올려 스윽 훑어보며 어림짐작하고는 입을 열었다.

“기 주임님이 아까 중요한 상황은 설명해 드렸죠? 어느 부분이 의문이신가요?”

“최소 절개술로 하면 안 되나요? 인터넷에서 알아봤어요. 아킬레스건 수술은 최소 절개하는 방법도 있더라고요. 그렇죠?”

엄마가 아까부터 묻고 싶어 근질근질하던 질문을 했다. 곡 선생은 MRI를 꺼내 슬쩍 보자마자 바로 상황을 파악했고 살며시 고개를 흔들었다.

“아킬레스건 파열 정도가 심한 편입니다. 위치도 좋지 않고요. 최소 절개술은 어려울 듯합니다. 소형 절개라면 고려해 볼 수도 있을 것 같군요. 소형 절개를 잘하는 의사를 몇 명 소개해 드릴 수 있습니다.”

명령에 따라 접견실에 들어왔지만, 곡 선생은 환자를 능연에게 넘길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소녀의 엄마는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저희 지역 병원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일반적인 아킬레스건 수술은 최소 절개로 해도 된다고.”

“죄송하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그런 환자와 보호자를 너무나 많이 봐온 곡 선생은 화도 내지 않고 부드럽게 물었다.

“서가입니다.”

“서 여사님, 일반적인 아킬레스건은 물론 가능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따님, 동효우 학생의 아킬레스건은 심각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효우 학생. 학생은 운동선수죠? 어떻게 생각해요?”

“전 운동 계속하고 싶어요. 엄마, 난 괜찮아. 흉터 남으면 뭐 어때.”

동효우는 깔끔하게 대답하고는 엄마의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 그러자 엄마가 아이의 손을 꼭 잡았다.

“지금은 괜찮을지 몰라도, 나중에 어른 되면 어쩔래? 그때까지 운동할 거니? 흉터 안 없어지면 어쩌려고.”

“뭔 상관이야. 흉터가 뭐? 아니면 문신하지 뭐.”

“문신하면 스튜어디스 못 해.”

“수술한 사람도 못 해. 아니,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내가 언제 스튜어디스 한대?”

“경찰도 못 해!”

“경찰은 될걸? 아니 근데, 나 경찰 하라고?”

아이가 멈칫하다가 웃으며 하는 말에도 엄마는 도저히 안 되겠는지 얼굴을 찡그렸다.

“어쨌든, 선생님. 제발 어떻게든 방법을 생각해 주실 수 없나요? 최소 절개술로 수술하게요. 비싸도 상관없어요. 그, 능연 선생님이라는 분 유위신 수술하신 분 아닌가요? 그 선생님이라면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능 선생도 최소 절개가 아니라 대형 절개술을 했습니다.”

“그럼······.”

“적어도 소형 절개술이어야 합니다. 게다가 소형 절개술을 하면 몇 년 동안 격렬한 운동을 못 합니다.”

“나 운동할 거야. 흉터 상관없어.”

동효우의 태도가 단호해졌다. 엄마는 애가 타고 속이 쓰린 듯 곡 선생을 바라봤다.

“선생님, 방법이 없을까요? 아니면 소형으로 하되 운동은 할 수 있는 방법으로요.”

아빠는 별말 없었지만, 같은 생각인 듯 그를 바라봤다.

“능연 선생을 찾아온 거라면······. 능 선생 전문 수술은 대형 절개구 아킬레스건 보건술입니다. 소형도 하긴 하지만······.”

“그럼 어느 선생님이 가능할까요?”

아이의 가족이 기대하는 눈빛으로 곡 선생을 바라봤다. 곡 선생은 원래 다른 의사를 추천할 작정이었고, 이유까지 생각해 뒀었다. 환자가 생각을 바꿔서 나이가 많은 외과 의사를 찾도록 설득하고 노련한 외과의 아무나 소개할 생각이었다.

어쨌든 환자의 선택이 제일 중요하니까.

그러나 엄마 곁에 기대선 아이가 긴 속눈썹을 파르르 떨면서 가늘고 섬세한 손가락으로 긴장한 듯 엄마의 손을 꼭 쥐고 있는 모습을 보자, 곡 선생은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능 선생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일단, 대형 절개구로 수술하면 효우 학생 아킬레스건은 완벽하게 회복될 겁니다. 운동을 계속할 가능성이 매우 크죠. 그다음은 흉터 문제인데, 능 선생님이 직접 봉합하도록 요청하시면 됩니다. 피부 봉합만 보더라도 능 선생의 기술은······ 국내 정상급입니다.”

거기까지 이야기한 곡 선생은 어쩐지 언짢아져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민해 보세요.”

말을 마친 곡 선생은 그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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